물신주의는 동일성의 논리를 통해 작동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모든 유용한 것들이 시장을 통해 화폐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시장은 동일성이라는 용광로에 다름아니다. 물론 유용하지 않은 것, 심지어 인간의 삶에 해로운 것들조차 자본의 이윤을 위해 시장에서 화폐가치를 획득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동일성의 논리를 벗어나서 살아갈 수는 없다. 한 개인이 유용한 존재로 인정받는 과정은 동일성의 논리에 포섭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신주의를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먼저 한 개인은 자신의 노동을 통해,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판매함으로써만 유용한 존재로 인정받는다. 즉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맑스는 이것을 '개인의 구체적 노동이 추상적 노동(화폐)으로 환원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물신주의의 첫 번째 테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 개인은 사적 존재에서 사회적 존재로 전환된다. 이것은 물신성의 두 번째 테제이다. '한 개인의 사적 노동은 사회적 분업체계의 일부로 편입될 때만 사회적 노동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의 경제체제에서는 '개인의 사적 부가 사회적 권력으로 전화된다"는 것이다. "Money is power, power needs money"라는 말이다. 만일 정몽준이나 이건희가 단지 돈이 많은 부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그저 순진한 사람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믿음은 일반적이다. 나아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자본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전두환이나 노무현, 이명박이라는 개인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만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미 물신주의에 사로잡혀있고 물신주의는 굿을 한다거나 우리의 강력한 의지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이런 논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저 환경을 잘 보살피고 채식을 하고 농사나 지으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일상에서 국가라는 기구를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 경찰이 다가와 신분증을 요구하고 눈을 부라릴 정도가 되어야 겨우 국가기구의 존재를 깨닫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점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국가권력이며 국가기구의 억압을 대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실제적으로 "국가란 경제적 지배집단의 정치적 지배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철수의 등장은 한국 사람들이 이제야 겨우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요청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용기
(김종철, 경향신문, 2012. 9. 6)


옛 중국의 사회적 위계질서는 엄격했다. 수많은 백성 위에 관료가 있었고, 관료조직의 정점에 대신(大臣), 그리고 그 위에는 말할 것도 없이 황제가 존재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황제 위에 또 누군가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한 존재를 후세인들은 일민(逸民)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는 황제의 권력 바깥에 있는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군주의 권력행사는 신하를 자처하는 자들의 협력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 ‘일민’이란 말하자면 그 신하됨을 거부한 인간이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의 인간적 존엄을 지키는 것이 가능했으나 동시에 온갖 시련과 불이익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중국 역사상 대표적인 ‘일민’은 아마 시인 도연명(陶淵明)일지도 모른다. 그는 동진(東晋) 사람으로 지방 여러 곳에서 관직생활을 하다가 41세에 사임하고 향리로 돌아가 평생 농사를 짓고 살기로 결심했다. 그때 그가 쓴 것이 “돌아가리라, 전원이 황폐해지고 있는 지금 내 어찌 아니 돌아갈 것인가”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 묻는 사람에게 그는 “쌀 다섯 말 때문에 (상사에게) 허리 굽히기 싫어서”라고 답했다. 말하자면, 쌀 다섯 말이 봉급으로 주어지는 직장을 그만두고, 쌀을 직접 지어서 먹는 자유로운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향리라고는 하지만, 대대로 벼슬살이를 한 가문의 후손인 도연명에게 농사는 낯선 경험이었다. 따라서 그의 농사일은 서툴 수밖에 없었고, 항시 곤궁을 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농사를 짓고 살다가 62세에 시 130편을 남기고 죽었다. 다작(多作)이 아니었던 것은 그가 단지 자연을 즐긴 음유시인이 아니라 무엇보다 하루하루의 생계를 위해 몸소 노동해야 하는 농사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도연명이 택한 ‘일민’의 길은 한가로운 은둔자의 생활이 아니라 끝없는 고투의 삶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정작 임금 곁을 떠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입으로는 늘 ‘귀향’을 말했던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관념적인 ‘탈속’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도연명이 속세를 초월한 인간이 아니라 정치적 현실에 예민했던 인간이었음을 명확히 지적한 것은 노신(魯迅)이었다. 노신은 완전히 초탈한 인간이라면 시를 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노신의 생각으로는, “사귐도 어울림도 이제 모두 끊으리라/ 세상과 나는 어긋나기만 하니 다시 수레에 오른들 얻을 게 무엇이냐”라는 ‘귀거래사’의 구절에 이미 세상에 대한 도연명 자신의 ‘분노’와 ‘저항’이 내포되어 있었다. 동시에 거기에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버린” 지금까지의 생활을 청산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하겠다는 준엄한 윤리의식이 작용하고 있었다.

노신이 1500년 전의 시인 도연명에 각별히 주목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마 그 자신 불의(不義)한 세상 속에서 한 자루의 붓에 의지해 분투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지식인으로서의 강한 자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식인이란, 따져 보면, 자신의 역할이나 재능을 인정해주는 권력자·후견인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매우 불안한 존재이다. 현대사회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성공을 바란다면, 변덕스러운 대중의 취향을 무시할 수 없는 게 또한 모든 현대의 작가, 예술가, 철학자, 지식인들의 기본적 운명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아첨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권력자나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살아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지식인의 생존상황이다. 노신이 도연명에 관해 언급한 것은 그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심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그것은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의 작가·지식인으로서 좋은 삶, 혹은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노신 자신의 고뇌가 담긴 언급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이상호 기자 X파일>이라는 책을 읽었다. 2005년 7월에 MBC 방송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삼성녹취록사건’이 보도되기까지의 전말이 세세히 기록된 일기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담당기자가 처음에 제보를 받고, 관련된 취재를 하고, 그것이 실제로 보도되기까지 10개월이 걸렸다.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그리고 그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것을 해명하는 게 이 책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다.

‘삼성녹취록사건’이란, 간단히 말해, 이 나라 최대의 자본권력이 국가권력을 좌우해왔거나 하려고 해온 내막이 명확한 증거와 함께 폭로된 사건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근본적으로 금권정치라는 사실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삼성녹취록사건’이 보여준 것은 그 금권정치의 방식이 너무나 비열하고 음습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공공질서도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민주주의를 뿌리로부터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상호 기자 X파일>을 보며 새삼 전율하는 것은 이보다 조금 다른 문제 때문이다. 즉, 지금 자본이 행사하는 영향력은 국가의 공권력뿐만 아니라 지식인 사회 전체에도 걸쳐 있다는 가공할 사실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언론자유가 보장되고, 노조위원장이 방송사 사장이 되어 있던 시절임에도, 이 중대한 사건이 보도되기까지 10개월이나 걸린 이유는 외부압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요인은 권력의 눈치를 보며 미리 자기검열을 하는 방송사 내부 분위기였다. 이 책에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고군분투하는 기자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괴로운 게 뭐냐면 본의 아니게 선후배, 동료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상처를 준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생각해봤다. 그 상황에서 나라면 어떠했을까. 나 역시 내 일상의 평온을 깨뜨리는 이상호 기자를 십중팔구 미워했을 것이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생애 말년에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서 강의했다. 그는 진리를 말하는 데는 목숨을 걸 정도의 용기 혹은 적어도 남들과의 우호적 관계를 손상시킬 각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뒤집어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은 ‘진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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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 10:24 2012/09/06 10:24

청춘은 신체다

일상 2012/09/05 19:26

돌고 돌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자조적인 말처럼 허망한 것은 없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이 일말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제자리 걸음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가 단순하게 냉소적인 자기 경멸이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플라톤이 가장 위대하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서양철학이란 플라톤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고 영문학이란 셰익스피어를 변주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을 했는데, 어떤 점에서 이 말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사랑의 기능이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다.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한다면, 모든 사람은 신체나 영혼을 통해서 임신을 하고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그 본성에 따라 낳기를 욕망한다. 그런데 추한 것 안에서는 낳을 수가 없고, 아름다운 것 안에서만 낳을 수 있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 낳는 일, 즉 임신과 출산은 신적인 것이며, 가사자적인 생명 안에 들어있는 불사적인 것이다. 이런 일은 조화를 이루지 않는 것 안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그런데 추한 것은 신적인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지 않지만 아름다운 것은 조화를 이룬다. ... 또한 에로스가 원하는 것은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아름다움 속에서의 생식과 출산이다. 젊은이에게 있어서 생식이 왜 사랑의 대상이 되는가? 생식이야말로 가사적인 자를 영원히 살게 하여 불사적인 것에 가장 가깝게 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서서 동의한 것이 옳다면 사랑이란 좋은 것을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고, 그러면 결론적으로 우리는 좋은 것과 함께 불멸성을 필연적으로 욕망하게 된다. 이러한 논의에서 역시 사랑의 대상은 불멸성이라는 결론에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된다."(플라톤의 <향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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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5 19:26 2012/09/05 19:26

저녁을 먹으면서 한겨레신문을 펼쳤다. 내가 있는 공간은 경향신문을 공동구독하고 있어서 한겨레신문은 잘 안 보고, 사실 한겨레신문을 부러 찾아 읽지도 않는다. 그런데 오늘 한겨레신문을 펼쳐 읽으면서 강창희 국회의장의 인터뷰를 굳이 읽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무리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치가들이 무식하고 정신머리가 없다고 해도 이정도로 무식하고 염치가 없을 줄이야.

전두환이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는데 군인이 정치에 개입하여 실패하면 쿠데타가 여러 번 발생할 수 있으니 이번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정치에 나섰다는 이 말은 말인가? 아니면 그저 소리에 불가한가?


“난 바나나킥 안배워…스트레이트로 가며 국회 선진화 이끌것”
한겨레신문, 2012. 8. 27.

한겨레가 만난 사람
강창희 국회의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대 국회는 과거와 달리 여야 합의가 있어야 국회 운영이 가능하다. 국회의장이 청와대와 여당 편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직권상정권이 사라졌다. 따라서 새로운 선진 국회를 위해서는 칼은 없되 권위와 위엄이 있는 국회의장의 존재가 절실하다. “청와대 눈치 안 보겠다”는 자신의 말을 스트레이트하게 지키면 의회사에 뚜렷한 이름을 남기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국회 선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으로 국회 운영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국회의장의 역할이 다를 수밖에 없을 텐데?

“선진화법 때문에 19대 국회가 잘되겠느냐는 견해가 많다. 저도 그런 우려를 많이 한다. 그러나 결국 정치인들이 따라야 하고 두려워하는 게 여론이다. 이제는 국민이 여론으로 판가름을 해주면 국회는 따를 수밖에 없다. 협의가 안 되고, 여야가 대립하면 이걸 언론이 정확하고 공정하게 보도해서 국민이 판단하게 해달라. 그럼 어느 쪽으로 기울 거다. 그러면 풀린다. 대표적인 게 김병화(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다. 여론 추이가 바뀌면서 풀리더라.”

여야, 김병화 문제때처럼 대립할땐
원내대표 쫓아다니며 중재로 풀것
19대 국회, 국민여론 더 두려워해야

-의장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뭔가?

“의장은 성급하게 판단해서 직권상정하기보다는 한 템포 늦춰서 여론을 보고 여론을 환기하는 게 중요하다. 내가 새누리당에서 의장 후보로 선출될 때 한 얘기가 있다. 의장이 되면 여당엔 한 번 묻고, 야당엔 두 번 묻고, 국민에게는 세 번 묻겠다고 했다. 그 말대로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서 얘기하겠다. 의장실에 안 오면 내가 그들 방에 쫓아가겠다. 그래서 적극 중재해서 풀겠다. 김병화 대법관 문제 때도 내가 이한구 원내대표(새누리당) 방에 갔다. (김병화로는) 안 되지 않겠느냐, 그러니 태도를 바꾸라고 했다. 그랬더니 (상황이) 급변해서 그렇게 됐다. 앞으로도 첨예한 대립이 있을 땐 나서겠다. 그렇게 풀어가면 선진화법이 조금씩 정착하지 않겠나. 물론 어렵긴 할 거다.”

-지난 7월 임시국회에서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직권상정 처리한 데 대해 새누리당이 독단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의장의 직권상정 발동은 국회법 개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등 인사에 관한 사항은 의장에게 주어진 극소의 권한 중 하나다. 인사에 관한 안건은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처리하도록 국회법에 시한이 정해져 있다. 질질 시간을 끌어서 넘길 수도 있지만 그것은 직권상정해서 처리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다. 물론 법안 등 일반 안건은 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못한다.”

-역대 국회의장 가운데 역할모델이 있는가?

“오래된 분들은 겪어보질 않아서 모르겠다. 그동안 경험해본 의장으로선 이만섭 의장이 강단 있고 소신껏 했다.”

-이 전 의장은 국회 위상을 지키려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맞다. 그렇게 하셨다. 의장을 두 번이나 했다.”

이만섭(79) 전 의장은 14대 국회 전반기와 16대 국회 전반기 등 두 번이나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그가 의장을 맡았던 때에는 예산안이나 법안에 대한 날치기 처리가 한 번도 없었다. 이 전 의장은 2010년 12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난장판 국회를 없애기 위해선 국회의장이 청와대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한다. 나는 국회의장을 하면서 청와대의 무리한 요청은 끝까지 거부했다.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이 입법부의 권위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강 의장은 친박계 핵심 중진 인사였다. 여당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후보와의 긴밀한 관계가 국회 운영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그 정도를 극복 못할 입장이 아니다. 이번에 박근혜 전 대표가 후보가 됐을 때도 전화 한 번 안 했다. 비서실을 통해 난 화분 하나 보냈을 뿐이다. 이건 민주당 후보에게도 똑같이 할 예정이다. 제가 자민련 시절 의원 꿔오기에 반대하면서 제이피(JP), 이한동과 싸워서 제명당한 사람인데 그런 무분별한 일은 안 할 거다. 여야가 보고 있고, 제일 무서운 건 국민의 눈이다. 국회의장이 어디 경도돼서 그런 처신을 안 할 것이다. 박 전 대표도 그런 걸 요구할 사람이 아니다.”

친박계 핵심 중진인사이긴 했지만
어디 경도되거나 청와대 눈치 안봐
박근혜쪽 모임 7인회 가끔 밥먹는 정도

-과거 국회의장들을 보면 청와대 입김에 상당히 휘둘리곤 했다.

“걱정하지 마라. 제가 스트레이트적 인간이지 않은가. 하하하.”

그는 인터뷰 전에는 박근혜 대선후보 쪽 원로인사들의 모임인 이른바 ‘7인회’를 거론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보였으나, 답변에서는 “가끔 밥 먹으면서 동네 아줌마들처럼 떠드는 수준의 모임”이라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현재 국회 현안으로는 통합진보당의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 문제가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윤리위 자격심사안을 공동으로 발의하기로 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양당이 합의해서 하는 거니 받아주는 거다. 의장이 둘을 데려와서 제명하겠다는 거 아니다. 그런 기능이 있다면 하는 것이지, 그걸 꼭 해야 한다, 안 해야 한다 이런 건 없다.”

-당 내부 문제를 국회가 심사해서 의원직을 제명하는 게 맞느냐 하는 문제제기가 있다.

“윤리위원회에서 제명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어놨다면 할 수 있는 거다. 만약에 제명하는 게 불합리하다면 (앞으로) 제도를 고쳐야 한다. 하여튼 규정이 있으니 이걸 들고나온 것인데 현실적으로 잘되겠느냐. 추이를 두고 봐야 한다.”

-5·16 등 과거사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김황식 총리가 그 부분에 대해 국회에서 참 잘 (대처)하더라. 뭐라고 했느냐 하면, 왜 정쟁을 하려면 자기들끼리 하지, 중립지대인 나를 끌어들이느냐는 거다. 나도 똑같다. 국회의장도 중립지대에 있어야 하는데, 쿠데타라고 하겠나, 우국충정이라고 하겠나. 중립지대에 있는 나를 끌어들이지 마라.”

이석기·김재연 자격심사안 발의 문제
양당이 합의해서 하니까 받아주는 것
난 중립…5·16 등 과거사 문제 말못해

-정치를 5공화국에서 시작했다. 계기는 뭐였나?

“저는 1979년에 진해에 있는 육군대학에 공부하러 갔다가 80년에는 교관으로 있었다. 그래서 10·26이나 12·12, 5·18을 다 피해갔다. 하루는 당시 외교안보연구원장이던 강영훈 전 총리가 초빙강의를 하면서 애국심을 강조하는데 심금을 울리더라. 강 전 총리를 김해공항에 모셔다 드릴 때 육군사관생도 시절의 소책자인 <군인정신의 양식>에 있던 핸슨 볼드윈이란 전사작가가 쓴 글이 생각났다. ‘군은 강력해야 한다, 그러나 전지전능해선 안 된다. 군은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지배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옳다.

그런데 군대가 이미 12·12와 5·18로 정치에 다시 개입했다. 이제 이것을 잘 매듭짓지 않으면 또 동남아처럼 쿠데타가 연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군이 두번째 정치개입한 건데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정치하겠다고 마음먹고 청와대에 있던 친구 황진하를 찾아갔다. 그 뒤 전역을 하고 민정당 창당 작업에 실무를 맡으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군이 정치에 나왔으니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이번에 군이 개입을 했는데 또 실패해서 군이 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앞으로는 군이 지배하거나 전지전능해선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정상적 민주주의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보고, 그래서 의회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회 활동은 어떻게 된 건가?

“육사에서 제가 축구선수를 했는데, 그때 공수단 부단장으로 있던 전두환 소령이 낙하훈련 때 받은 생명수당을 모은 돈으로 축구부에 빵과 불고기를 자주 사주면서 알게 됐다. 졸업하고 강원도 양구의 2사단에 부대를 배치받았는데 당시 청와대 경비하는 30경비대장이던 전 전 대통령이 ‘6개월 있다가 우리 부대에 와라’라고 하더라. 11개월 뒤에 30경비대 소대장으로 발령이 나서 갔더니 그는 육군본부 서종철 당시 참모총장 수석보로 갔더라. 그래서 같이 근무를 한 적이 없다. 청와대 30경비대는 하나회 소굴이었다. 나도 그래서 하나회가 됐던 거다. 내가 우리 동기 하나회의 대장이었다. 안광찬, 권경석 등을 다 끌어들였다. 하지만 그때는 지원서를 낸 것도 아니고, 하나회라는 이름도 없었다. 신문 보고 그게 그거냐 그렇게 알았다. 그때 (모임에) 가면 훈시만 받다가 끝났다.”

그는 하나회에 대해 자전적 에세이인 <열정의 시대>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뭉치고 명령체계가 생명인 공조직에서 사조직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나 또한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 하나회는 어느 사회나 조직에 존재하게 마련인 일종의 리딩그룹 같은 것이 아니었나 짐작된다”고 돌이켰다.

30경비대 근무때 하나회 많아 회원 돼
이름도 없던 모임이라 신문 보고 알아
한-일갈등 해소, 의회차원 조용히 지원

-17~18대 8년이나 야인으로 있었다. 국회 바깥에서 보니 정치권이 어떻던가?

“바깥에서 보니까 국민이 정치를 어떻게 보는지 알겠더라. 그래서 안철수 현상이 벌어진 이유도 알겠더라. 그동안 정권이 여러번 바뀌는데도 역시 정당은 니나 내나 그놈이 그놈이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을 만큼 기존 정치권이 불신을 받는 게 보이더라. 그런데 그렇다고 안철수 현상, 이건 아니다. 안철수 현상이 일어나면 안 된다.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하고, 월반을 해도 초등학교 졸업하고 하버드나 스탠퍼드를 가도 가야지, 초등학교 졸업도 하지 않고 하버드 가면 정상적으로 되겠느냐. 정당 불신을 절감했다. 내 힘으로 다 할 수는 없는 거고, 문제제기라도 해야 한다. 청와대 눈치 안 보겠다는 건 그런 맥락에서 하는 말이다.”

-후배 정치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국회의원들이 공부를 안 한다. 나는 의원 시절 아무리 바빠도 가끔 공허해지면 책 보따리를 싸서 호텔이나 콘도에 들어갔다. 책도 보고 못 봤던 좋은 다큐프로그램 등을 녹화해서 하루 종일 봤다. 또 마음 수련회도 1년에 며칠씩 가서 했다. 의원들이 너무 현실에만 매몰되면 안 된다. 자기 직무 공부를 하고, 인격 공부도 해야 한다.”

-올해 대선의 화두는 뭐라고 보나?

“중립을 지키려면 그것도 얘기를 하면 안 된다.”

-한때 내각제 전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는데 아직도 내각제 개헌 의지가 강한가?

“디제이피 연대해서 김대중 대통령이 됐는데, 내각제 약속을 안 지켜서 장관을 사표 냈다. 당시엔 선거비용도 그렇고 대통령제 폐해도 많고 해서 대통령 직선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뒤에 정권이 엎치락뒤치락했다. 이렇게까지 비용을 치르면서 대통령제로 왔으니 대통령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내각제는 안 해봐서 어떤 함정이 있는지 모른다. 다만, 지금 나타난 대통령제의 불합리한 부분을 4년 중임제 등으로 고치면서 그대로 갔으면 좋겠다.”

-한-일 관계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우리 땅에 우리 지도자가 간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로, 잘 이뤄진 것이라 본다. 한-일 양국간의 외교전이 매우 첨예한데 치밀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너무 감정적으로 나가는 것은 안 좋다. 노다 일본 총리의 계속되는 강경 발언과 일본 의회의 성명서 채택 등에 주목하면서 우리 국회도 관계 당국과 긴밀히 협의해 대응해 나갈 생각이다.”

-국회 차원에서 양국관계를 풀 방안이 없는가?

“지금은 양쪽이 서로 (더이상) 거론 않고 쿨다운 해야 한다. 그 뒤에 한일의원연맹 우리 쪽이 다시 구성되면 의회 차원의 교류도 하고, 의장도 조용히 지원해야지.”

-남북관계도 새 정부 들어서면 해결해야 할 우선순위 과제 중 하나인데, 국회 차원의 교류를 구상하고 있나?

“누가 정권을 잡든 다음 정부는 대화 기조로 바뀌지 않겠나. 그때 의회도 대북관계를 정부와 같이 가는 게 맞지 않겠나. 남북관계도 인간관계와 똑같다. 북한에 대해 우리가 큰 시혜를 베푸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하는 건 옳지 않다.”

강 의장은 평소 시를 몇 수씩 암송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요리도 즐긴다. 야인 시절에는 출근하는 부인을 위해 된장국을 끓여 아침밥을 차리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요리하느냐는 질문에는 “의장 공관 환경이 그러질 못해서 지금은 쉬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김용석 시인의 ‘가을이 오면’을 멋들어지게 낭송했다. 요리와 시는 스트레이트한 그가 다듬는 인생의 ‘바나나킥’ 같아 보였다.

정리 김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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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7 19:28 2012/08/27 1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