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세상을 바꾼다 혹은 아니다에 대한 얘기들

IT / FOSS / 웹

 

"무엇이 세상을 바꾼다." vs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얘기들이 생산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회변화와 사회운동을 구분하지 않고 극단적인 관점에서 대립하는 모양이 되는 것은 싫다. 

 

예를 들어 트위터는 세상을 바꾸나?

이건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트위터는 세상을 바꾼다. 블로그는 세상을 바꿨는가 아닌가? 처음 블로그가 대두됐을때는 어땠을까?

하지만 트위터가 일으키는 변화의 영향력을 너무 지나치게 찬양하는 자세는 역시 병맛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너무나 많은데, 크고 작은 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 받고 있고,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말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에 경도되어서 한 가지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내게 세 가지 모습으로 보인다. 하나는 종교 신자의 모습이고, 두번째는 지금 큰 영향력(권력)을 갖는 것을 내가 이해할 수 있고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과시욕, 세번째는 그럼으로해서 뭔가 얻을게 있어보이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것의 반대쪽에 위치한 관점이 있는데, 트위터의 가치와 그것이 갖는 함의들을 폄하하는 듯한 태도이다.

이들은 주로 "비판자"의 역할로 기능하고,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다음 세가지 모습 중 하나로 보이기도 한다. 

1. 트위터를 비롯한 여러 미디어들, 메시지의 생산과 유통방식이 개개인에게 미치는 변화를 과소평가하거나 고민이 깊지 않고, 2. "사회운동"을 "사회변화" 그 자체로 보는, 어찌보면 "사회운동 권위주의"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관점으로 보이며, 3. 포도를 따 먹지 못한 여우가 "저건 아직 익지 않았어"라고 돌아서는 모습이다. 

 

극단적 기술결정론에는 나도 원래 반대하고, 내가 만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이 만날 사람들이 기술결정론적 사고를 갖기 쉬운 혹은 선호하는 IT기술자들이다보니 더 반대하는 입장이 되곤 한다. 

심지어 내가 요즘 몰두하는 NGO IT교육도 기술결정론적 관점에서 하는게 아님을 기회만 있으면 언급하면서 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극단적 관점도 난 싫다. 사람이 극단적인 관점을 택하거나 표현하는 이유가 사실은 다 어떤 전략적인 판단에 따른 것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스스로 인식 못하더라도) 이젠 누가 극단적인 말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려 하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말이 많아지면 내 몸이 잘 못견딘다.  

 

트위터나 여러 미디어를 정말 "또 하나의 도구"로만 인식하고 많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을 오직 기능적으로 활용하는 것에는 소극적일 필요가 없다. 그것이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진정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 정말 실질적인 사회운동 방식 아닐까. 사실 이 글을 쓰는 내 의도는 이것이다. 새로운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각자의 자유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면 실질적인 사회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면 좋겠다. 기존 "사회운동가"들의 권위를 버리고. 난 역시 토론하는 사람은 아닌 듯. 

 

--- 추가 ---

 

멀리 다른 나라 사례나 연구 결과 볼 것도 없이,

지금껏 컴퓨터에 담쌓고 일만 하던 중장년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과 인맥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해준다고 생각하면, 역시 블로그와 트위터 만한게 없다. 트위터는 소개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중장년 회원에게 IT교육을 해본 적 있다는 활동가의 말로는, 아무것도 모르던 분에게 트위터는 오히려 가르쳐 드리기 쉬운 도구였다고 한다. 복잡한 것 없이, 짧은, 텍스트로만 말하면 된다는 것.

 

한국의 수많은 중장년 비정규직노동자들 중의 10만명이 트위터와 블로그를 하게 되는 걸 상상해본다. 비슷한 얘기를 예전에 트위터였던가 페이스북에서였던가 했더니, 어떤 분이 한 말. "그건 혁명이네요!"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세상을 좋거나 나쁘게 바꿀 수 있고, 혁명의 도구도 지배의 도구도 될 수 있다는건 이젠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인 것 같은데. 구체적 상황을 빼고 도구에 대해 무조건적인 찬양 혹은 비하하는 건 언제까지 이어지려나. 역시 난 하던 거나 계속하자 -_-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9/10 14:36 2010/09/10 14:36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h2dj/trackback/726
치치 2010/09/10 16:44 URL EDIT REPLY
그런데 혁명적 도구란 말과 혁명의 도구란 말은 완전히 다른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음악사에서 신시사이저의 발명은 혁명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신시사이저의 도입으로 멜로디와 가사위주에서 리듬과 비트위주의 음악으로 바뀌었죠. 그래서 70년대와 80년대의 음악은 질적인 단절이 이루어집니다. 신시사이저가 없었다면 힙합이나 디제잉도 없었을 것이고 클럽문화도 없었겠죠. 더욱 중요한 것은 음악을 만드는 방식과 사람들의 감성을 많이 바꾸어놓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트위터가 세상을 바꾼다고 하는것도 이런 의미에서 쓰고 있는 것 같은데 김규항씨는 후자쪽으로 해석을 하니까 논쟁이 어긋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각생 | 2010/09/10 16:59 URL EDIT
네 그러니까 애초에 양쪽이 각자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을 다른 의미로 쓴 탓일텐데요. 사실 요즘 저 말이 너무 흔히 쓰이는 것 자체가 불만이긴 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내가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을 하는 건 좋은데, "나만 세상을 바꾼다" 혹은 "내가 진정/많이/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꾼다" 이렇게 믿고 말하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사실 전 모든 글을 다 본 건 아닌데요. 애초에 토론의 시작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치치 | 2010/09/10 17:39 URL EDIT
지당하신 말씀. 저는 맑스나 바흐만큼이나 존경하는 분이 신시사이저를 대중화한 무그박사님입니다.
겨울보리 2010/09/22 00:02 URL EDIT REPLY
바뀌는 세상이 늘 좋은 것일 거라는 순진한 믿음도 이 표현이 전제하는 맹점 중 하나죠.
물론 나쁘게라도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한번 당해보니... 그건 아니에요.
세상을 바꾼다... 앞에 '좋게'라는 부사어가 결합되어 있으면 좋겠어요.
치치 | 2010/09/22 07:37 URL EDIT
저는 이 세상에서 모두에게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혁명이 일어나도 모두에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세상이 좋아진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보편적 해방이기때문인데 현실에서는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낡은 것에 집착하는 것도, 새로운 것을 맹신하는 것도 별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 흐름을 볼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