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IT지원센터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든지 3년째가 되었다. 그 동안 겪으며 풀어놓고 싶었던 얘기가 많지만 그때 그때 풀지 못하고 일만 하며 살다보니 바보가 되었고, 이야깃거리는 뒤엉키고 채색되어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좀처럼 모르겠다. 바보인데 성격까지 나빠지는 것 같으니 걱정이다.
바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지 못해 이슈가 안 된 것, 그 중에 가장 답답하고 계속 마주하게 될 문제 중 하나는 "비영리단체/사회적경제조직에서 일하는 활동가 혹은 직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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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조직에는 많은 직원들이 있다. "비영리조직"에 대한 개념 정의와 구분은 다양하고 계속 변해 혼란스럽지만 흔히 말해지는대로 "비영리단체"(제 3섹터 : NPO, NGO, CSO, 공동체 등 포함)와 "사회적기업"(제 4섹터 :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 포함)로만 구분하는게 나을 듯 하다. 전통적으로 "시민사회영역"이라 불려 온 비영리단체들에서 직원은 조직 규모와 역사, 활동 성격에 따르지만 대체로 "활동가"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서 "활동가"란 표현은 한국의 그것보다 좀 더 과격한 의미를 갖는다고 들었는데, 내가 비영리IT지원센터를 만들기 전에 만나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활동가"라는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과격해서가 아니라 그 말이 의미하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직원"이라는 말은 대체로 수동적이며, 비자발적으로 정해진 업무를 지시 받아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개인적으로 단체들을 다니며 IT지원을 하고 다닐 때에는 주로 작은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왔는데 그들에게서 느낀 이미지는 그런 "수동적인 직원"과는 많이 달랐다. 한국에 있는 조직인만큼 권위주의적 문화가 완전히 없는 곳은 적었지만 대체로 자기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일 수 있으며 스스로 책임을 지며 활동하는 사람들이었다. 100%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의 진퇴는 납득할만한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 초안을 몇 시까지 보고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사"의 요구로 몇 차례 바꾸다가 결국 처음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는, "직장인 웹툰"에서 단골 소재로 다뤄지는 상황은 적어도 내가 만난 비영리단체들에서는 많이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고 소수자를 배제하지 않기에 회의 시간이 길어지고 과감한 행동이 어려워지는 경우는 있어도, 누군가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자의적 판단으로 흔들어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가는 당장 뒤집어 질 수 있는 것이 내가 보아온 "전통적 비영리단체"의 모습이다.
비영리IT지원센터에서 상근활동을 겸하면서 같이 일하는 사람을 지칭할때 나는 꼭 "상근활동가" 혹은 "활동가"라는 명칭을 써왔다. 직책은 있었지만 별명만을 불렀고, 내가 갖고 있는 약간의 권한이 있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이상 납득했다는 신호가 오지 않으면 일을 진행하지 않았다. 물론 정말 급한 상황에서는 "아 좀 일단 해봐"라고 말했지만 이후 회의에서는 그렇게 밀어붙인 이유에 대해 꼭 밝히고 납득시키고 비판을 받고 진행했다. 이것은 내 신념이라기보단 그동안 만나왔던 "훌륭한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고 그냥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미지대로 해온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미리 한 것이 아니라 "비영리단체는 원래 이러하다"고 여겨왔기에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내 방식대로 다 같이 하자고 말하진 않고(그럴 수도 없었다), 좋아보이면 다 같이 따라할 것이라 생각해서 내가 속한 팀 안에서만 꾸준히 그렇게 해왔다. 그렇지만 내가 하는 방식을 분명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이 비영리IT지원센터의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방식으로 자리잡히진 않았다. 내가 상근활동을 그만두는 시점까지도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과 서로의 정체성을 "활동가"보다는 "직원"으로 여겼던 것 같다.
내가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직원"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 민감한 이유는 그것이 비영리조직내 권위주의 문화의 척도일 수 있으며, 비영리조직의 가치와 사회적기업의 방식이라는 이상적인 결합이 아니라 사회적기업의 가치(이윤)와 비영리조직의 방식이라는 아주 부정적인 결합이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1. 한국의 중대규모의 비영리단체와 보통의 사회적기업은 소수의 대표급에 많은 권한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오래 활동하며 척박한 환경에서 "기업"을 일으켰다는 존중의 의미를 더해 대표급 혹은 "사회적 명사"들에게 모든 관심과 성취가 돌아가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기업 리더의 숭고한 의지를 강조한다는 명목하에 마치 몇 사람의 선택과 결정이 모든 것을 이뤄내는 것처럼 비춰지는 듯한 문화가 지금 한국의 비영리단체-사회적경제조직 네트워크에서 감지된다. 실제로 존경할 만한 행보를 걸어왔고 위험을 무릅쓰고 통찰을 발휘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시류에 따라 흘러왔다 사라지는 사람처럼 여기는 것은 조직 내 의사결정권을 분산시키지 않고 집중하는 경향을 강화하게 되며, 이것은 권력이 분산되기를 바라는 현대의 보편적 흐름과 맞지 않는 것이다.
2. 사회적기업으로 대표되는 제 4섹터가 가장 빛나는 장면은 기존의 1~3섹터가 각자의 노력과 서로의 분쟁을 통해 타협을 도출하지 못해 방치되는 부분들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내놓을 때이다. 브라질의 호사는 가난한 농촌에 전기를 공급하여 농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킨 대표적인 사회적기업가인데, 이 배경에는 그것을 요청해 온 시민단체와 정부의 갈등이 장기화, 고착화되어 앞으로 나가지 못하던 상황이 있었다. 비영리단체가 올바른 가치를 제시해 왔으나 적절한 해법을 찾지 못하던 일에 대해 영리기업의 방식을 적용해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한 이 사례는 내가 사회적기업에 대해 마음을 열고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사례를 접한 지 2년 후 비영리IT지원센터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든 이래 일단 비영리단체보다는 사회적기업에 더 포커스를 두며 IT지원사업을 해왔는데, 한국에서 많은 사회적기업들이 "가치를 독점"하고 여러 지원에 기대며 정작 운영은 비효율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 이런 사회적기업에 대해 보통 깊이 없이 처방으로 제시되는 것은 "영리기업의 효율적 경영방식"을 더욱 강조하는 것인데, 이 기업이 사실상 비영리단체의 성격을 많이 갖는 곳의 경우, "직원"들이 사이에 끼게 된다. 자발성과 존중, 책임감보다는 영리기업의 "직원"처럼 의무와 대가성에 의해 일하게 되면서도 정작 급여나 복지 수준은 "비영리단체다운"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대표급들이 독점하던 명예와 보람을 왜 직원들은 느끼지 못하냐며 은근히 헌신을 바라는 경향에 바탕을 둔 것이 요즘 문제가 많은 "열정페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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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이던 사회적기업이던 "좋은 일을 하겠다"고 모인 사람은 돈을 이미 벌어두었던 아니던 그 이상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시작한다. 그 가치는 자신이 하나의 장기말처럼 치부되고 소모되면서 이루고자 하는 저 위의 숭고한 가치만은 아니다. 대체로 그 과정에 자신의 만족과 완성도 함께 바라게 되는데, "숭고한 가치"보다 "자신의 완성"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그 전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것이라 요즘에 비영리단체/사회적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는 개인적 목적을 위해 일한다는 혐의가 씌워진다. 반면 보다 숭고하고 근본적인 가치를 지키는 것은 대표급, 오래 해온 활동가,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수행한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요즘 비영리단체와 사회적기업은 그 규모와 성격과 무관하게 "일반 직원"들을 그냥 스쳐갈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충분한 권한을 주지 않으며 "기업 경영"이라는 명목하에 해고, 전보 등을 해도 괜찮다는 의식을 갖는 경향이 보인다. 여기에 한국에서 "노동자"에 대해 씌워진 부정적 인식을 덧붙여서 비영리단체/사회적기업의 "직원"들에 대한 암묵적인 배제와 차별, 제한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대표-이사-사회적명사 들이 "경영권"을 갖고, 일반 직원들을 "노동자"로 여기며 정작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할 때는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슬쩍 요구하는 경향이 일부의 모습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확대 강화되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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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 가지 더하면, 한국에서 "비영리단체"(제3섹터)와 "사회적기업"(제4섹터)의 구분이 모호하고 바람직한 상호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것도 원인일 것 같다. 비영리단체가 규모와 분야, 성격에 따라 아주 상이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영리쪽에서 비영리로 영역을 넓힌지 얼마 안되거나, 오래되고 규모가 큰 비영리단체를 먼저 만난 사람들은 흔히 비영리단체와 사회적기업이 서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영리기업->사회적기업->비영리단체로 같은 지식과 노하우가 그대로 전파될 수 있다는 생각에 비영리단체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는 협동조합에 초빙된 사람들이 경영효율화 조치라는 명목으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일이 지금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대체로 그런 협동조합을 창립하는데 기여한 "전통적 비영리조직 활동가"들에게 비판이 가해지기도 하는데, 그들의 대응을 들으면 갸우뚱거리게 된다.
전통적 비영리단체에서 "활동가"는 대표와 회원 혹은 수혜자 사이를 단순 중개하거나 대리로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조직 내 위계가 있더라도 결국엔 모든 활동가가 자신의 가치에 기반한 관점으로 활동을 기획해내고, (형식적일지라도)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조직의 활동/사업으로 채택한다. 전통적/보편적인 중소규모 비영리단체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이 대표급의 결정을 그냥 "어떻게든 알아서" 수행해내는 사람이 아니기에 수동적인 의미를 갖는 "직원"이란 말은 적절치 않다. 특히 회원기반조직의 경우는 설사 대표급이라하더라도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에 지나지 않으며, 그 대표가 얼마나 조직에 기여했는가와 무관하게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적절하게 행사할 책무를 가진다. 대표급은 각각의 활동가가 자신의 소신대로 회원들의 바람을 현실화하기 위해 활동하도록 지원하면서, 오랜 경험과 축적된 사회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각 활동가의 자율적 활동을 외부의 충격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데서 자연스러운 권위를 획득해야 한다. 그렇지만 기부 문화나 사회적 인식등 한국의 제반 여건이 좋은 편이 아니기에 비영리단체 내부의 권위주의는 비판하기엔 이르거나 그것이 유용한 측면이 있어서 유지된 면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새롭게 형성, 발전되는 사회적경제조직네트워크로도 자연스럽게 확산되는 것 같다.
지금 오래 글을 쓸 상황이 아닌데 앞으로 꼭 이 문제를 제기할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정리하려고 쏟아내고 있지만 역시 이 정도로 멈춰야겠다. 내가 원하는 것은 "좋은 일을 하는 조직"내의 권위주의적 방식들이 좀 더 드러나 현대적으로 극복되고, 비영리단체/사회적기업 내 노동자인 "직원"이 좀 더 존중 받는 것이다. 이사회와 사무국이 상하관계가 아니라 다른 역할을 하는 분립된 기구처럼 여겨지면 좋겠고, 직원으로 대하면서 "활동가"이길 바라지 않으면 좋겠다. 사회적경제조직을 이끄는 "훌륭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더불어 시민사회의 적절한 비판과 감시가 함께 있어야 정말 사회적경제조직이 질적으로 성숙,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