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식 중 가장 마음 아픈 것은 "누군가가 얼마 전에 단체 활동을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특히 그 사람이 단체에서 IT관련 업무를 맡고 있던 사람이면 더욱 그렇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활동 분야를 찾아 떠나는 선택은 존중할 일이고 잘된 일이지만, 한국의 IT활동가가 너무나 부족한데다가, 그가 그런 선택을 하는데 사실은 평소 조직적 지원 부족이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면 더욱 안타깝다. 그리고 내가 그런 단체들을 더 찾아 다녔는지는 몰라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단체는 거의 찾아볼래야 볼 수 없어서 누구를 원망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이 더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2006년 정보운동포럼에서 한국의 비영리단체에 IT인력 유입이 적은 이유를 악순환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지금 단체들에 IT인력이 없으니 IT를 적극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없고, IT의 중요성이나 가능성에 대해 인식이 부족해지니 더욱 인적, 물적 투자를 줄이게 된다. 그런 환경이 심화되니 새롭게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려는 IT인력은 더욱 부족해진다. 비영리섹터가 현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과 범위가 늘어난다면, 그것을 뒷받침하고 혁신하는 IT인력 규모 또한 늘어나는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IT인력의 유입이 늘지 않고, 오히려 오래 일해온 사람이 그만두는 경우가 늘어난다. 누군가 그만두면 새롭게 그 역할을 대체할 만한 사람이 있지도 않고, 있다 하더라도 인수인계가 잘 안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들려오는 소식 - "모 단체의 누가 귀농을 한데." 이런 말을 들을때마다, "귀농 인구가 한명 늘어났다"보다는 "정보통신활동가가 한명 줄었다"는 사실에, 그 귀한 사람의 "손실"에 나 혼자 괜히 많이 속상했다.
속상해하는데서 멈추지 않고 2006년의 고민을 이어서, 그럼 비영리IT 조직에서 IT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내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두가지이다.
1. 비영리단체의 IT 수요는 대체로 만성적으로 저평가 되고 있다.
2. 비영리단체로의 IT인력 유입(공급)은 탄력적이지 않다.
여기서는 활동가 개개인의 지향성은 고려하지 않고, 조직의 IT 관련 지원 정도가 IT분야의 활동을 선택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단순화시켰다.
활동비를 포함한 조직의 IT 투자를 "가격"으로, 한 단체에서 필요로 하는 IT 서비스의 총량을 "수요", 상근/비상근 활동가의 참여를 "공급"이라고 해서 수요공급곡선을 그려보자.
내가 모 단체에서 자원활동을 할때 이런 얘기를 몇번 들었다. 그 단체는 한국에서 인지도가 좀 있는 편이라, 뜻있는 IT인들이 가끔 같이 일해보려고 지원하는데, 대체로 단체에서 활동가 구인할때 활동비를 정확히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규에 의한다"고 하고 막상 면접을 오면 얘기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 단체에 지원했던 IT인들이 제시하는 가격을 듣곤 깜짝 놀라서 바로 자리를 뜬다는 것이다. 나와 직접 연관된 이야기도 있는데, 2003년인가 4년에 "노동네트워크"란 곳에서 구인광고를 KLDP에 냈다. 여기엔 활동비가 얼마 수준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뜻밖에 이 글이 관심을 얻었다. IT인력을 이런 임금에 쓰는게 말이 되느냐는 분개의 덧글, 그리고 단체들 상황을 조금 아는 사람들이 저 정도면 적은 것도 아니고, 단체 활동비는 일반적인 임금과는 다르게 봐야한다는 옹호 덧글이 번갈아 나오면서 엄청나게 이어졌다. 우연히 내가 그걸 보고 노동넷이란곳을 알게 되서 내가 상근활동까지 결국 하게 되었다. (당시 진보넷 지원 메일 보내고 미끄러져서 실의(?)에 빠져 있는 상태였던걸로 기억)
한국의 IT노동자들은 많이 알려졌다시피 야근, 주말 근무를 당연시하고 수당을 못받는 등 정말 여러가지로 노동권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그저 "지식근로자" 혹은 "전문가"로 치장해주면서 임금을 많이 받는 일부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여기엔 IT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은데, 결과적으로 IT인들이 바라는 기대수준은 높은데 비해, 단체들이 제시하는 수준은 턱없이 낮으니 활동의 비전이고 뭐고 간에 아예 대화가 안되는 일이 허다하다. 결과적으로 비영리조직들은, IT인력을 단체 내부에 유지하는 것은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고, 공급곡선이 이렇게 수정된다. (S1 -> S2)
(경제학을 잘 알아서 이런 걸 제시하는게 아니고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 그렇습니다)
IT인력 유지 비용이 증가하는데 대한 비영리조직의 대응은 대체로 예측할 수 있는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IT수요를 축소, 저평가하는 것이다. (특히 IT가 노동자 고용을 줄인다고 믿는 전통적 노동조합의 경우 더 그렇다)
IT 관련 업무를 전담하던 활동가에게 다른 활동을 겸직시키고 (그러면서 일을 줄이진 않는다), 활동가에 대한 이해없이 조직을 개편한다던가, 대외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를 줄인다. 내부 데이터가 손상되거나,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도 그냥 방치하다 더 예전 방식으로 회귀한다. 이런 일들은 의도적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때때로 조직의 의사결정권자들이 정말 몰라서 이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민주노총 같은 경우도 예전에 정보통신국이 있을때 노동자 감시 대응 운동을 전개한다던가, 내부 IT교육등을 통해 앞으로의 비전을 모색하는 긍정적인 활동이 있었지만, 여러가지 계기를 거치며 미디어/홍보만 강조하고, 내부 IT인력을 단순 기술 실무자만 유지하는 방향으로 축소해왔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수요곡선이 다시 수정되서, 일정 수준의(가능한 최소한의) IT 관련 지출 수준으로 돌아가 유지시키려는 단계로 간다.
일반적이라면 Q1,P1의 수준에서 비영리조직의 IT관련 지출과 IT인력 유입이 일어나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Q2,P2의 수준으로 퇴보하게 된다. IT관련 서비스/역량은 Q1 -> Q2 로 줄어들면서도, 정작 IT관련 지출은 줄어들기보단 더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내부적으로 관리가 잘 안되서 생기는 물적,심적 손실 등을 감안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치뤄야 한다.
비영리조직의 IT역량 강화를 위해
한국 비영리조직이 IT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1. NGO의 IT 수요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지출을 늘인다.
2. IT인의 "시민 시장 civil market" 공급을 확대한다.
한국 비영리조직들은 정말 지금 맡고 있는 사회적 역할에 비해 충분한 재정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부나 기득권층 정책에 대해 비판적일수록 더 심하다. 이런 상황인데 그들 개별 단체에 대해 IT지출을 늘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그래서 취할 수 있는 방안은 세 가지 정도를 일단 꼽을 수 있지 않을까.
1. 영세한 NGO의 IT 관련 비용 일부를 공공의 기금으로 지원한다.
2. NGO들이 서로 협력하여 IT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공유한다. (핵심 주장)
3. IT인의 비영리섹터 참여를 촉진,지원하는 정책을 실시한다. 미취업학생 혹은 은퇴자의 비영리조직 활동을 지원한다던지.
NGO의 IT 공급량을 유지하기 위해 P2 - P1 만큼의 재원을 공공영역에서 만들어 지원하는 그림(첫번째 방안). 장기적으로는 3번 방안을 통해 공급곡선을 다시 S2 -> S1으로 낮추려는 노력을 진행한다. P2 - P1 만큼의 재원은 공공기금도 가능하고, 규모 있는 연합체 성격의 조직에서 저만큼의 비용을 마련해서 개별 하위 단체들을 지원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영세한 노조들의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다 보면, 돈을 제대로 받기가 뭐하다. 실제 돈이 없고, 힘들게 싸우는 그들을 보면 그냥 해주고픈 마음이 막 든다. 그래서 약간의 돈을 지급받는데, 사실 그러다보면 좀 더 큰 규모의 노조에서 이런 용도의 기금을 만들어 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예전부터 많이 했다.
협동으로 최적화하기
내가 추천하고 실제로 비영리IT단체를 만들어 진행하고자 하는 것은 두번째 방안이다. 단체의 IT역량을 개별 단체 수준의 노력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축적하고, 키워가는 것인데, 대부분의 단체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IT관리 업무 - 시간은 많이 들어가지만 그 자체로 어떤 플러스 효과를 주는 것은 아닌 일 - 등을 여러 단위가 같이 수행하는 것이다. 크게 6가지를 꼽고 있는데
* 데이터 백업과 손실 복구
* PC/네트워크 관리 (정기적)
* 보안 관련 공동 점검 및 응급 대응
* 웹 관리 (스팸, 오류 해결 등)
* 컨설팅, 전략 기획 (공동 통계 기반)
* 교육 (기술, 기술사회학)
이런 6가지 업무는 개별 단체내 IT인력이 있을때 가장 많은 시간들을 잡아먹게 되는 일들이다. 이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단체 내 활동가가 수행할 권장 활동"은 기획과 교육분야인데, 이것들도 기본적인 수준의 기획과 교육은 공동으로 수행하고, 활동가는 그 단체의 특화된 컨텐츠와 사업을 개발하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활동을 공동으로 수행하면 개별 단위별로 비용을 지출할때에 비해서 좀 더 효율적일 수 있다. 한 단체의 상근/비상근/자원활동가가 그 단체에서 여러가지 비전문분야를 포함한 모든 IT관련 활동을 수행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 소속 단체와 이웃 단체들에게 함께 서비스하고, 다른 영역은 다른 단체의 활동가의 서비스를 받는 식으로 구조를 만들면 어떨까. 혹은 지금 만들고 있는 비영리IT단체가 저런 6가지 업무를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개별 단체들은 저 단체를 후원함으로서 IT 활용 수준을 크게 향상 시킬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 저 6가지를 포함한 기본적 IT 서비스 수요의 상당수 부분이 무시 혹은 저평가 되고 있어서 중장기적인 비용이 오히려 늘어날 수 있는데, 이런 방식을 통해 중장기적 비용을 절감하고 단체 내 IT활동가가 보다 진보된 IT활용 연구와 기획을 만들어 갈 수 있다.
2006년부터 시작된 "정보통신활동가네트워크"는 사실 이런 비전으로 시작되었다. 개별 단체의 벽을 넘어 여러 NGO의 IT활동가들이 서로 교류, 협력함으로써 지금 처한 "일상 업무"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단체내 IT 활용 및 사업기획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여 단체들의 IT관련 투자를 늘리는 효과까지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효과가 실제로 발생하려면 실제 여러 단체의 활동가들이 다른 단체의 활동에 개입하고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 단체의 벽을 넘는데는 실패했다. 좋은 정보들은 오갔지만 실제 활동이 공유되지 않고, 한 단체의 혁신이 다른 단체들로 확산되는 속도는 너무 더뎠다. 그래서 올해 만드는 단체는 이 "네트워크"의 비전을 승계하며 현실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비영리IT (소비자)협동조합" 형태로 만드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다만 아직 한국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듯하여 (나조차도 충분한 것 같진 않다) 사람들의 폭넓은 이해와 지지를 받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비영리단체들의 IT활용 역량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보다 다양한 범위와 수준의 IT를 활동에 접목시키게 되면 그만큼 일반 IT인의 참여 경로도 넓어지게 된다. PC에 아래아한글 문서를 만드는 것 외에는 하지 않는 단체보다, 스마트폰 앱을 기획하고, 다양한 SNS를 어떻게 활용할지도 고민하는 단체가 더 많은 사람들의 "개입"이 가능할테니까. 그리고 한국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비영리IT 사회적기업 (다른 이유도 분명 있겠지만) 이 지속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 "시장"으로서 성숙할 수 있다는 측면도 굳이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