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벌정책이 뿌리째 바뀌고 있다. 정부가 관리·감독하는 '포지티브 규제'(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를 열거하는 방식)에서 시장 자율에 맡기는 '네거티브 규제'(원칙적으로 허용하고 금지대상만 지정하는 방식)로 정책 방향이 선회하고 있다.
새 정부는 재벌 규제의 대표격인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금산분리를 단계적으로 완화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는 그동안 두 제도가 기업들의 투자 활성화에 발목을 잡아왔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문어발식 방만경영의 폐해, 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돼 중소기업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문제 등은 여전히 논란이 될 전망이다.
◇이름뿐인 출총제, 폐지로 가닥=공정거래위원회는 현재 출총제가 예외가 많은데다 규제가 완화되면서 실효성이 떨어지는 만큼 속도의 문제지 폐지라는 대원칙은 불기피하다고 보고 있다. 출총제는 총자산이 10조원 이상인 기업집단 계열사 가운데 자산이 2조원 이상인 기업은 순자산의 40%를 초과해 다른 회사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1987년 처음 도입됐다가 1998년 2월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맞선 경영권 방어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잠시 폐지됐지만 1999년 12월 부활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출총제 폐지가 이명박 당선인의 공약인데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출총제가 지닌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재벌들이 계열사를 만들고 새로운 사업영역에 공격적 투자를 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재벌그룹의 문어발식 확장, 내부거래에 따른 중소기업 고사 등을 방지하는 규제장치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현재 법에 규정된 상호출자 금지를 순환출자 금지로 강화하고, 공시제도 등 시장 감시기능을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재벌그룹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도록 강도높게 유인하는 장치도 구상하고 있다.
◇해묵은 금산분리 논쟁 '결말'=금융감독위원회와 인수위는 금산분리 규제의 단계적 완화로 가닥을 잡았다. 다양한 외국자본이 우리 금융산업에 진출하는 상황에서 국내 산업자본에만 금융산업 참여를 막는 것은 역차별 성격이 짙다는 지적이 높기 때문이다.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금산분리 규제는 불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금산분리는 산업자본의 은행진출을 막는 장치로 1982년 도입됐다.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가 금융기관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을 4% 초과해 보유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규제다.
인수위는 무조건적인 금산분리 적용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대기업이 자기 자본이 아닌 고객예금으로 금융기관을 장악하거나 은행을 대기업 사금고로 전락시키는 부작용을 막는 사후 규제책을 마련하는 대안을 구상하고 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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