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여러가지 자료들

사교육비 부담, OECD 평균 4배..최고 수준

사교육비 부담, OECD 평균 4배..최고 수준
저축.소비 줄여 학원.과외비로

(서울=연합뉴스) 이준서 기자 =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부담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으로 이로 인해 개인저축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가계소비 위축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은 29일 `가계의 교육비와 저축간 관계분석'이라는 보고서에서 2003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교육비 지출은 2.9%로 OECD회원국 중 최고이며 OECD 평균(0.7%)보다 4배 수준이라고 밝혔다.

   GDP 대비 총교육비(공공교육비+민간교육비) 비중도 7.5%로 미국(7.4%)과 비슷하다.

   아이슬란드(8%)보다는 낮지만 아이슬란드는 공공부담 비중이 90%로 민간부담 비중이 10%에 불과한 반면 우리나라는 민간부담 비중이 40%로 OECD 평균(12%)의 3배를 넘는다.

   특히 대학교육비의 경우 2004년 공공부담 대비 민간부담 비율이 3.7배로 OECD 평균(0.36배)은 물론 상대적으로 대학교 학비가 비싼 미국(1.8배)이나 일본(1.4)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라고 한은은 밝혔다.

   반면 우리나라의 개인 순저축률(순저축/처분가능소득)은 1995년 16.4%에서 2005년 4.2%로 12.2%포인트나 떨어졌다.

   같은 기간 미국은 5.0%포인트, 일본은 8.1%포인트, 독일은 0.6포인트, 영국은 5.8%포인트, 대만은 4.1%포인트 각각 하락하는데 그쳤다.

   2003년 기준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자산 규모도 우리나라는 2.8배(2005년)로 미국(4.2배, 2004년)이나 일본(4.6배), 영국(4.4배), 대만(4.9배)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경원 금융연구실 과장은 "교육비가 1% 늘면 저축은 0.02~0.04% 하락하고 기타 가계소비도 위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변수간 상호관계를 배제한 분석으로 수치 자체에 의미를 두기는 어렵지만 교육비가 저축 및 기타 소비와 음(-)의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유 과장은 "우리나라처럼 GDP대비 민간교육비 비중이 높은 미국(2.1%)은 상대적으로 저축률이 낮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 등 민간교육비 부담이 낮은 유럽국가들은 높은 저축률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년 토지소유현황

<부동산 `부익부빈익빈'..외지인 소유 41%>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7-10-24 15:33
 
 
     
  광고
 
 
행자부 `2006년 토지소유 현황' 자료

 

(서울=연합뉴스) 이강원 기자 = 행정자치부가 24일 내놓은 `2006년 토지소유 현황'을 보면 국민 가운데 1%인 50만명이 전체 개인소유 토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 부동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20세 미만 미성년자가 여의도 면적(8.4㎢)의 17배에 이르는 땅을 갖고 있는가 하면, 강원도 땅의 절반 가량을 외지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 미성년자 여의도 17배 면적 소유 = 우리나라 전체인구 4천899만명 가운데 27.9%(1천367만명)만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즉 국민 4명당 1명 정도만 자기 땅이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전체인구의 약 1%인 50만명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가 전체 개인소유 토지의 56.7%를 점하고 있어 소수의 땅부자들에 의한 과점현상이 두드러졌다. 토지 소유자 1명당 평균 소유면적이 3천548㎡에 불과한 반면 땅부자 상위 1천명의 평균 소유면적은 143만9천242㎡(1.43㎢)로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는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 토지 소유자 가운데 상위 999명이 여의도 면적의 171배에 달하는 1천438㎢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개인소유 전체 토지의 3.0%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상위 10명은 여의도 면적의 7.9배인 67㎢를 소유해 1명당 평균 면적이 무려 6.7㎢에 달했다.

이와 함께 20세 미만 미성년자가 소유한 토지도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미성년자 소유토지는 2005년말 133㎢에서 2006년말에는 142㎢로 늘어났는데 이는 여의도 면적의 16.9배에 달한다. 땅부자들의 부동산 `대물림'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는 게 행자부의 설명이다.

다른 연령대별 토지소유 비율은 50대 27%, 60대 25%, 40대 19% 등이다.

◇ 외지인 토지소유 증가..지역별 20∼50% 외지인 땅 = 광역단체별로 토지 소유자를 분석한 결과 외지인들의 토지소유 비중은 41.6%에 달했다. 해당 지자체에 속해있는 개인 땅 40% 이상이 외지인 소유라는 얘기다.

특히 강원도는 외지인 소유비중이 48.2%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강원도를 포함해 경북(47.4%), 충북(47.2%), 전남(44.3%), 충남(42.0%) 등 5개 지자체는 외지인 소유비중이 40%를 넘어섰다.

이외에 경남 39.8%, 울산 36.1%, 경기 34.8%, 제주 34.3% 등이었다. 전국 지자체중 땅값이 가장 비싼 서울은 외지인 소유비중이 15.2%로 가장 낮았고 부산은 21.1%였다. 서울을 제외할 때 전국 각지의 외지인 토지 소유비중이 20∼50% 수준에 달해 외지인에 의한 부동산 매입.투기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행자부 관계자는 "충남의 외지인 소유비중이 높은 것은 행정수도 이전 등에 따른 부동산 투기 열풍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토지소유자가 다른 지역의 토지를 소유하는 `관외소유비율'은 서울이 97.8%로 가장 높았고 이어 부산 85.9%, 광주 83.4% 등의 순이었다.

◇ 외국인 토지도 증가 = 외국인과 외국공공기관이 소유한 토지면적은 2006년말 현재 68㎢로 2000년말의 23㎢에 비해 약 3배 가까이 늘었다. 이는 외국인 토지소유 자유화 조치에 따른 것으로 외국인들은 주로 임야(55㎢)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자부는 "외국인과 외국기관의 소유토지는 면적 기준으로 크게 늘어났으나 전체 토지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로 아직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외국인과 외국기관의 지역별 소유 현황은 경기가 15㎢로 가장 많았고 이어 전남.경북 8㎢, 강원.충북.경남 6㎢, 충남.제주 5㎢, 전북 3㎢, 인천 2㎢, 서울.부산.광주 1㎢ 등의 분포였다.

gija007@yna.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belle and sebastian - Sukie In The Graveyard

Sukie In The Graveyard

 

Sukie was the kid, she liked to hangout in the graveyard
She did brass rubbings, she learned you never had to press hard
When she finished hanging out she was all alone
She decided that she better check in at home
There was an awful row between her mum and dad
They said she hadn’t done this, she hadn’t done that
If she wanted to remain inside the family home
She’d have to tow the line, she’d have to give it a go
It didn’t suit Sukie
So she took her things and left

Sukie was the kid, she liked to hang out at the art school
She didn’t enrol, but she wiped the floor with all the arseholes
She took a bijou flat with the fraternity cat
She hid inside the attic of the sculpture building
She had a slut slave and his name was Dave
She said ‘Be my photo bitch and I’ll make you rich’
He didn’t believe her but the boy revered her
He got her meals and he got her a bed
He watched behind the screen and she started to undress
He never got far
Just lookin’ and playing guitar

Autumn hanging down all the trees are draped like chandeliers
Sukie saw the beauty but she wasn’t wet behind the ears
She had an A1 body and a face to match
She didn’t have money, she didn’t have cash
With the winter coming on, and the attic cold
She had to press her nose on the refectory wall
They served steamed puddings she went without
She had to pose for life for all the scholars of art
She didn’t feel funny, she didn’t feel bad
Peeling away everything she had
She had the grace of an eel, sleek and stark
As the shadows played tricks on the girl in the dark

Sukie was the kid, she liked to hangout in the graveyard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트르담 드 파리 -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의 사랑 이야기

미쳤다는 게 맞았다.

내 주제에 공연 한 번 보는데 5만원이 넘는 거금을 쓰겠다는 결심 자체가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도 보고싶었다. 작년에 보았던 책, 연극, 영화, 공연 중에서 최고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빅토르위고의 원작인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꼽을 것이다. 작년에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국내 초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는 너무 보고 싶어서 열병처럼 앓았다. 왜 그랬을까? 사실 잘 모른다. 다만 오래 전에 빅토르위고의 작품이었던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고 난 이후 빅토르위고의 다른 작품이 초연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랍고 반가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공연 전에 미리 공개된 그 뮤지컬의 음악을 함께 듣고선 나는 열에 달뜬 사람처럼 흥분되기 시작했다.


빵을 훔친 장발쟝이 감옥을 탈출하여 출세했다는 이야기야 너무도 잘 아는 이야기이지만, 사실 레미제라블은 장발쟝과 코제트의 로망, 적어도 영화 레옹과 같은 스토리는 아니다. 마치 그림 형제들이 반사회적이고 저항적인 온갖 우화들을 미화시켜 오늘날의 전래 동화집을 만든 것처럼 우리에게 알려진 ‘장발쟝’은 그렇게 각색된 작품이다. 하지만 원작 레미제라블은 대단히 혁명적인 소설이며 뮤지컬 역시 혁명적이다. 비록 레미제라블이 1848년 2월 혁명 상황을 직접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프랑스 대혁명이후 샤를 10세의 몰락까지, 파리꼬뮨의 형성 전까지의 상황을 다룬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 빈자들의 인간애를 다룬 매우 웅장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지만, 먹지는 못해도 탱자 역시 입이 쓸 정도로 매우 신 과일이다. 파리에서 초연되었던 이 작품은 영국을 거쳐 미국까지 왔다. 내가 본 작품은 한국에서 초연된 브로드웨이팀의 공연이었다. 들은 바로는 파리 공연작은 매우 사실적이어서 단두대에 국왕의 목을 다는 장면까지 나온다고 했지만, 바다를 건너 미국에서는 삭제와 자진 검열로 매우 순화된 작품이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의 진정성은 순치시킬 수 없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노동자들이 봉기하여 "너는 듣고 있는가 성난 민중의 노래..“라는 자막이 선명했던, 파리꼬뮨의 전사들이 부르다 죽어간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ong)'를 부르며 노동자들의 주검위에서 붉은 깃발을 치켜드는 것으로 막을 맺는다. 


그렇게, 레미제라블은 내게 너무도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그런데, 노틀담의 꼽추로 알려져 있는 빅토르위고의 또 다른 작품 ‘노트르담 드 파리’의 (브로드웨이 날나리들이 아닌) 프랑스 오리지널팀이 한국 초연을 한다고 한다.


그가 남긴 작품의 성격과는 달리 근대 저작권 형성의 창시자라는 이름표가 붙은 작가 빅토르위고. 여러 작품을 남겼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 역시 위대한 작품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볼 때, 집시여인 에스메랄다를 놓고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 성당 주교 프롤로, 근위대장 페뷔스 사이의 애정과 인간적 갈등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제는 놀랍게도 중세의 몰락을 다루고 있었다.(어렸을 때, 우화집으로도 봤고 좀 컸을 때는 영화로도 봤던 노틀담의 꼽추...의 원작이 정말 이런 작품이었는 지는 뮤지컬을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중세 하면 떠 오르는 두 가지 상징이 있다. 첫 째가 교회이고 두 번째가 기사(고급장교)일 것이다(중세 초기에는 기사이지만 후반기로 갈 수록 봉건영주에 귀속되어 고급장교로 된다). 이 작품은 이 두 상징의 몰락과 타락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성당 주교 프롤로는 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세속의 정염에 휩쌓이게 된다. 에스메랄다를 여인으로서 동경하게 되고 콰지모도를 시켜 에스메랄다를 납치하게 만들고 그녀를 결국 죽음으로 내몬다. 또한 근위대장 페뷔스는 사랑하는 여인을 배신하고 에스메랄다를 쫓게 되나, 자신의 명예와 미래를 위해 다시 에스메랄다를 마녀로 몰며 그녀를 배신하게 된다. 기사(장교)에게 이제 명예와 신의는 땅에 떨어진 빵조각 만도 못한 것이 되었다. 이처럼 중세의 정신적 이념을 표상하는 성당 주교의 타락과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되었던 중세봉건 시대의 기사 근위대장 페뷔스의 배신과 이기심은 곧 중세의 몰락을 표현하고 있다.


이를 확인하듯이 이 작품의 2부 시작은 다음과 같은 독백으로 시작한다.


“피렌체에서는 지구가 둥글거라 하네 지구상에 또다른 대륙이 있을거라 하네

탐험선이 이미 항해를 떠났네 인도제국으로 열린 길을 찾아서

루터가 신약을 다시 쓰겠네 우리는 분열시대의 새벽에 서 있네

구텐베르그라는 자가 세상을 바꿔 놓았네

뉘른베르그 인쇄소에서는 쉴새없이 인쇄물이 쏟아지네“


또 하나, 이 작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할 경우 우리는 더욱 경이로운 결론에 다다른다. 작품의 주인공이랄 수 있는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신분은 어떻게 될까? 콰지모도는 노예신분이지만 성당의 종지기로 일하고 있고 성직자인 프롤로에 귀속되어 있다.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어떻게 보면 그냥 노동자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가 행한 하인노동의 형태와 노동의 주변적인 특성을 볼 때, 콰지모도는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에스메랄다는?


에스메랄다는 집시여인이다. 그런데 당시 집시라는 집단은 어떤 집단이었까? 그들에게는 조국이 없었고 때문에 어디 한곳에 정착할 이유도 없었다. 즉, 그들은 국경을 넘나드는 이주노동자였다. 에스메랄다와 그 집단이 파리로 온 까닭은 일을 하기 위해서이고,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숨어 든 것도 권력집단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 찾아 들었다 (우리 이주노동자들이 명동성당에서 농성했던 상황과 똑 같다. 이들 역시 권력의 탄압에 맞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점거하고 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프롤로의 죄를 뒤집어 쓰고, 마녀사냥을 당했지만 콰지모도를 위해 죽음을 택하는 에스메랄다. 그리고 에스메랄다를 구출하기 위해 불법체류자로 감옥에 갖힌 집시일행을  구출하는 콰지모도. 그리고 성당에서의 최후의 투쟁... 이들의 사랑은 비린내 나는 중세에 맞서 치열한 투쟁으로 진하게 번져 나간다.

 

결국 이 작품은 중세의 몰락과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사랑, 연대, 열정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며, 중세의 몰락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간의 연대와 저항이 동력이 되고 있음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음악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음악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고 프랑스어로 된 노랫말들이 어떤 뜻인지도 몰랐지만 들어서 좋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메인 테마 곡인 ‘대성당의 시대’,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 ‘벨르(참 아름답구나)’, ‘달아’ 등 수십곡의 창작곡들이 애잔한 가슴을 짓누르면서 우리의 귀를 속삭이고 있다.

 

또한 노랫말이 어떤 내용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프롤로와 페뷔스와 같은 지배계급들의 비열하고도 기만적인 변명, 계급과 신분의 굴레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콰지모도의 외침, 억압에 맞선 에스메랄다와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의 목소리들을 우리는 다시 듣게 된다.


그리고 함께 공연을 보았을 때, 이 노래들은 무용수들의 몸 짓으로 하나 됨을 보게 된다.


이 뮤지컬이 다시 18일부터 공연을 시작한다...

사실 한 번 더, 너무 보고 싶다.

 

 

 

 

대성당의 시대

 

 

Belle(참 아름답구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