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불편하다

  • 등록일
    2009/05/26 07:55
  • 수정일
    2009/05/26 07:55

1.
불편하다.

2002년 광화문을 가득 메우던 붉은 물결이 노무현을 향해 달려갈때도 그랬고,
2004년 탄핵사태때도 그랬다.

 

가장 불편한건, '사실은 나도 노빠였어'로 시작하는 고해성사의 물결이다.
뭐 자신의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는 일이 뭐 그리 기분 나쁠일이 겠나.
단지, 그러면서 내뱉는 그들의 말투들.
노무현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그야말로 한 줌도 안되는 극 소수의 비주류들에게
'머리속에 든건 이념 밖에 없다'는 둥
'우리가 진정으로 싸워야 할 상대는 따로 있다'는 둥
갑자기 철든 것처럼 굴며
사정없이 밟아 버리는 것이다.

 

진중권이 진보신당 게시판에 썼다는 글을 보며(별로 추천하지 않는 글이기에 원문 링크는 하지 않겠다)
지난 총선에서 민노당에 던지는 표는 사표라며 헛 소리하던 '유시민'이 오버랩되는 건
너무 심한 비약이라고 할라나?

 

2.
또 불편하다.

 

한 진보한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 쏟아내는 추모사들 속에, 눈에 띄는 사회당 대표의 한 소절
"그의 임기 내내 목소리를 달리하고 싸웠던 사람들도 그에게 많은 빚을 졌다"

 

문득 그런가?
이 알수없는 불편함의 정체가 그거였나?
그래서 지난 노무현의 동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노동자 파업때 했다던 그 유명하다던 연설들.
스타덤에 오르게 한 5공청문회 장면들.
80년대 필 팍팍풍기며 은퇴한 386을 전선으로 다시 모이게 했다던 문성근의 연설들.
아마 노무현의 눈물로 유명했지?

 

그를두고 수구세력과 반공세력에 맞썬 아웃복서가 아닌 진정한 링위의 인파이터였다고 하던 누군가의 말도 생각이 난다.
새삼 사람들이 그를 노간지라고 부르는 이유들을 다시 기억해냈다.

 

그래 빚이 있다 치자.
하지만 그 빚은 유독 '바보 노무현'이 아니라,
80년대 수없이 쓰러져간 열사들, 그리고 지금은 역사속에서 철저히 배척당하고 외면당한 이름없는 영웅들에게 진 빚이다.
(진중권, 네가 비웃은 그 2-3%의 지지율 말이다.)

 

어쩌면 지금 사람들이 이 노무현 추모의 물결속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한때 같은 길을 걸을 줄 알았던 그 시대 속의 노무현에게서,
지금은 사람들이 잊어버린 그 이름없는 영웅들과
거리에서 청춘을 보냈던 젊은 시절의, 그 시절의 영웅담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장례기간 동안은 입닥치고 그를 추모하고 안타까워할 요량이었다.

딴건 몰라도 '혹시 담배 있냐'는 피곤과 절망에 가득찬 마지막 일성은 정말 간지나기 때문이다.

 

3.
그러기엔 여전히 불편했다.

 

내가 아는 한, 노무현은 어느순간부터 지속적으로 그리고 일관되게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거리를 두는 정치행보를 계속 해왔다.
같은 길을 걸을꺼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그는 배신자였겠지만.
뭐 내 생각에는 그는 그닥 변절한게 없다. 그저 자신의 길을 갔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의 파열음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참여정부의 탄생과 노무현의 죽음으로,
그렇게, 386은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시대적 종말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무얼했고, 무얼 하고 있나?
그의 재임시절, 무노조의 신화 삼성이 지어준 참여정부라는 이름아래,
수많은 사람을 가난과 죽음으로 내몰던 시절 우리는 무엇을 했나?
실은 스스로 자멸하여, 쪼그라들어 피폐해지고, 패배감 가득한 깃발만 남아..
간지난 그의 죽음앞에 사람들은 다시 반이명박 전선으로 모여들고 있는데,
이 어정쩡한 추모행렬에 동참하며, 뭐 주어먹을거 없나? 이렇게 볼썽사나운 비평이나 하며
무얼하고 있나?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하기엔 너무 지치고 늙어버린 것인지..

 

여기저기 주저앉아 힘들어하는 주변 사람들 생각에.
스스로 돌아보고 씹어보는.
그런 불편한 새벽녘.

 

ps.
자책하거나 자괴하진 말자.
내가 끝낼 때까진 아직 끝난건 아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