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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플랑드르>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꽤나 닮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시골의 작은 마을-약간은 고립적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그렇고, 전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그렇다. 영화 속 여성들의 모습도 닮았고-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나서 울부 짖는 모습이-바람에 흔들 거리는 보리밭의 풍경도 닮아있다.


<플랑드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니가 죽었을 수도 있었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무기를 탈취하기 위해 IRA가 영국군을 공격했을 때, IRA 중 한 친구는 작전 중 죽게 된다. 슬픔에 휩싸여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그들에게 대장은 말한다. 니가 그 자리에서 죽었을 수도 있다고.
그것이 전쟁이다. 누구라도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공간, 그 시간.


<플랑드르>에서는 함께 사막의 전지를 이동하던 군인들이 하나씩 죽어간다.
모두 다른 방식이지만,
마치 모든 것이 우연같지만
절대로 우연이 아닌 죽음들.
수류탄이 터져 죽는 것도 나일 수 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죽였던, 지나가던 농민이 나일 수도 있다.
마을에선 착하던 청년인 그들도
아이들에게 총을 겨눌 수 있는 곳.
그 곳이 전쟁터다.

이 두 영화를 보면서 나는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전쟁이라는 것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느껴졌다. 차마 화면을 쳐다볼 수 없게 만드는 몇 개의 장면들은 그 장면의 잔인함을 떠나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의 끔찍함이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면서는 <호텔 르완다>를 봤을 때 느꼈던 내전의 참혹함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고, 가상의 공간인 사막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보여주는 <플랑드르>에서는 전쟁 그 자체가 얼마나 인간을 잔인하게 만들어버리는가를 그 사막만큼이나 건조한 어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영화는 또 매우 다르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상당히 계몽적이거나 혹은 도식적, 전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모양새를 가졌음에도 그 이야기 안에 들어가 눈물을 쏙 빼게 만든다. 켄 로치의 이야기는 좀 유치한 거 같으면서도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유약한 지식인 풍의 주인공을 일깨워 주는 사람들도 늘 등장하고 :)

(저 아저씨 정말 멋졌어!)






그에 비해 <플랑드르>는 관객들에게 자꾸 멀어질 것을 요구한다.
너무나 건조한 어투와 온갖 상징들로 가득차 있는 영화는 영화 속의 어떤 인물들에게도 감정이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저 그 풍경과 분위기를 지켜보게만 만드는 거다. 플랑드르라는 마을에 살던 청년들이 왜 갑자기 사막의 전장터로 나가는지, 주인공 여자는 누굴 좋아하는건지 영화는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는다. 대신 주인공들은 그야말로 '관찰'되고, 관객들은 그들의 사소한 변화들도 눈치챌 수 있다. 전쟁이 그들의 삶을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서서히 변해가는 인간들이 얼마나 추악한지 그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두 영화 모두 보는 내내 힘이 들었다.
피하고 싶은 현실을 굳이 이렇게 봐야 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고민도 들었다.
감독들이 참 잔인하구나, 이렇게까지 보여줄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했고,
그럼에도 영화를 본 후 들었던 생각은
이 영화 속 과거의 역사가, 혹은 상상 속의 전쟁이
내가 사는 지금의 이 곳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래서 보기 힘들었던 거 같다.
여기서도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죽기도 하고 일상을 잃기도 한다.
영화 속 그들의 폭력에 치를 떨면서도
일상 속 내 눈 앞에 폭력에 점차 무뎌지는
내 삶의 전.쟁.

당분간은 우울한 영화를 보지 말아야겠다.


+) 그나마 '보리밭'의 경우 '태름아버지'라는 훌륭한 분 덕분에 자막의 상당수 오류로 인하야 웃으며 볼 수 있었던 것을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인사. 땡큐베리감사.-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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