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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교훈

지난주 절반 이상을 골골거리며 보냈다.

월요일부터 있던 감기 기운은

수요일을 피크로 하야 정점에 달했고

끓는 열로,  꺽꺽대는 비명으로, 뒤척임으로, 잠으로 나흘을 보내고

이제 겨우 사무실에 나와 앉았다.

 

피파 백방기념 파티도 못 갔고

대추리의 지킴이 파티에도 못 갔다.

(만들어 가고 싶은 요리 있었는데 흑)

 

이번에 정말 추하게 꺽꺽대며 아프면서 얻은 교훈에 대해

포스팅을 하고 싶었는데

그것조차 기력이 딸려 못하다보니

그 때의 그 절절함은 날아가버렸다.

여하튼 그래도, 얻은 것들.

 

-이제는 아주아주 급한 일이 아니면 밤새 일하지 않는다,

-손이 하얘지면 피가 잘 안 돌고 있다는 거다.

-놀랍게도 사람의 눈,코,귀,입은 연결되어 있다!

-아플 때 애인은 매우 유용하다

-요즘 무한도전은 예전만큼 재미가 없다.

-나는 하루에 20시간도 잘 수 있다.

 



이까이 몸살 한 번 걸렸다고

뭐 그리 대단하고 고매한 생각을 했겠냐마는

어쨌든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랄까, 그런 역할을 해 주었다. 몸살이란 녀석이.

최근 1-2년 사이 왜 이렇게 자주 아프다 소리를 하는 건지

얼굴만 보면 유도도 거뜬히 해 낼 내가 왜 요모냥으로 골골거리고 있는지.

심지어 최근 1-2년 사이 나는 담배와 이별했고 술을 절반이상으로 줄였으며

밥도 잘 먹는데 말이다.

 

뭔가 재미가 없는 게 분명해.

기린언어적 사고에 따르면

'이런 느낌 (혹은 결과?) : 몸이 자꾸만 고장난다. 금세 피로하다. 쉽게 짜증이 난다"

나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재미있고 싶은 욕구? 잘 하고 싶은 욕구? 아님 쉬고 싶은 욕구인가..

 

마음이 콩알만해서 작은 일로도 몸에 병이 나타난다는 점쟁이 아줌마가 또 떠올랐다.

 

일이 재미가 없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 점쟁이 아줌마를 만나기 전 만났던 점쟁이 아저씨는

나에게 '연출'같은 건 못해먹을 팔자라 했다.

연출자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돼도 연출할만한 품은 못된다기에

괜히 어디 그러나 보자 했는데

생각해보면 아저씨 말이 틀린 게 없다.

나는 시야가 넓은 편이 못 되고, 품이 넓지도 않다.

여럿을 아우르거나 한꺼번에 여러 일을 진행하지도 못한다.

안 되는 일을 자꾸 하려고 덤벼서, 그래서 힘들었던 걸까.

 

아님. have to?

해야 한다는 강박은 언제나 사람을 참 숨막히게 한다.

그 이유가 아무리 높고 숭고한 것이더라도

나는 해야 한다는 명제 앞에서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찾곤했다.

대충 피하거나 아님 애써서 그 일을 좋아하려고 해 봤지만

대체로 결과는 실패였다.

 

요즘 내가 하는 일들은 have to에 가까운가 love to에 가까운가.

하기 싫은데 시작한 일은 없는데

누가 하라고 등떠민 거 같지도 않은데

근데 어느틈엔가 많은 일들이 해야하는 것들이 되어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의 일의 순위라는 것은

늘 해야 하는 것이 앞쪽을 차지하고 있어서

결국 하고 싶은 일들은 계속해서 뒷방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재미있었던 일을 가장 빨리 포기할 수 있는 것.

그게 내 장점이자 단점..... 아니 장점은 아닌 거 같다. -_-

 

가끔 돕은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넌 뭘 잘해? 넌 뭘 좋아해?

이런 거.

다른 사람들은 안 어려운가?

생각해 보면 난 돕에 질문에 제대로 답한 적이 별로 없다.

적당히 웃으며 때우거나 얼버무리고 만다.

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님 알면서도 챙피해하는지도 모르겠다.

며칠간 방바닥과 대화하며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자꾸 생각해봤다.

방바닥도 대답을 해 주지 않고 나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내가 재미나게 하고 있지 못하다는 건 안다.

 

빡빡하지 않게 여유롭게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더 고민해봐야겠다.

그건 꼭 다큐멘터리나 영상이 아닐 수도 있고

글도 아닐 수도 있고

다른 새로운 무엇일지도 모른다.

누구누구의 말처럼 어린 나이에 너무 내 세상을 가둬놓았는지도 모른다.

쓰다보니 모른다가 너무 많군.

역시 확신이 없다는 증거다.

 

아!

그러고 보니 난 요리를 좋아해.

이번에 대추리에 갈 때 토마토두부찜을 해 갈 생각이었는데..흑

다음 기회를 노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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