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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은 세계적인 거장 다르덴 형제의 작품입니다.
영화계에서는 사회문제를 조명하기로 유명한 감독입니다.
주요 작품들을 보면 청소년노동<로제타>, 버려진아이<자전거타는 소년>, 이민자<로나의 눈물>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삶을 담은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 역시 자본주의사회 노동자의 냉엄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작은 공장에서 일을 하는 여성노동자 산드라는 우울증으로 휴직중입니다.
복직을 앞둔 산드라(주인공)에게 전화가 걸려옵니다. 회사 동료들이 그녀와 일하는 대신 각자 보너스를 받기로 했다는 것이죠.
과정에서 투표가 공정하지 않게 진행되었다는 제보가 있었고, 월요일 아침 재투표가 결정됩니다. 영화는 산드라가 주말동안 16명의 동료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복직을 위해 투표를 해줄 것을 설득하는 내용입니다.
상당히 비극적인 상황입니다.
보너스를 포기하고 자신을 선택해 달라는 말은 어렵기만 합니다. 지지해주는 동료도 나타나지만 그렇지 않은 쪽의 반발도 셉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나름대로의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말알바 투잡을 뛸 정도로 생계가 어려운 사람도 있고,
계약직이라 회사 눈치가 보이는 동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무작정 돌을 던질 수도 없는 현실이죠.
‘내일을 위한 시간’은 영화 <카트> 처럼 노동자의 극한투쟁을 보여주진 않습니다. 처연한 주인공과 동료들의 만남을 그저 묵묵히 따라갈 뿐이죠. 자신의 생존을 위해 연대하기 힘든 노동자들의 모습이란, 자본주의가 강제하는 우리의 민낯이기도 합니다.
경제가 나빠지면 늘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단결되지 못한 계층들은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특히 직원이 많지 않은 회사, 그리고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라면, 그곳이 복지가 잘되어 있는 유럽이든 한국이든, 경제활동을 하는 노동자에게 이런 불행한 일은 언제든지 닥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봐도 현재의 조선업 위기나 경제불황의 해법을 노동자의 해고와 성과연봉제를 통한 노동자 쥐어짜기로 하려고 하니 말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산드라 역시 자신에게 이런 불행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원제는 <투데이즈 원나잇> 이지만, 한국에서 개봉하면서 <내일을 위한 시간> 이라고 제목을 바꿔 개봉했습니다.
여기서 내일은 내일(tomorrow) 와 내일(my job)의 중의적 표현입니다.
바뀐 제목이지만 오히려 작품 메세지를 잘 함축한 좋은 제목이라고 봅니다.
자본주의에서의 우리의 생존은 늘 칼날 끝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노동자)의 잘못이 아니며,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기에 노동자들의 내일은 '연대' 에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 산드라의 주말과 최종선택은 관객들에게 담담하지만 묵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시간이였다고.
2016.10 마트노동자 신문 4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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