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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근비가 버겁게 느껴지는 이유(펌)

깨손(moonok.com)에서 펌...

 

글쓴이 : 벼리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커뮤니티...로 시작해서 지금은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 인터넷 카페가 있습니다.  카페 회원들에게 발송하는 이메일레터에 쓴 글입니다. 야심차게 시작했으나 마감을 하루 넘기며 담당자의 구박속에 급히 마무리하느라 지리멸렬....-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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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근비가 버겁게 느껴지는 이유

한국비정규노동센터라는 조그만 단체에서 상근하고 있습니다. 34세, 근속3개월인 제가 받는 월급은 실수령액 기준으로 100만원 가량입니다. (4대보험은 단체에서 전액 부담합니다.) 일반적인 임금수준에 비하면 절반밖에 안되는 돈이지만 단체 활동가로서는 상당한 ‘고임금’에 속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다산인권재단이 발간하는 월간지 [사람]의 2006년 2월호에는 인권활동가 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경제생활 현황이 실렸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권활동가들 중 67%가 월 65만원 이하를 받고 있습니다. 100만원이 넘어가는 경우는 70명 중 11명에 불과합니다. 덧붙여 말씀드리면 이 조사에 응답한 활동가들은 대개 30대의 수도권 거주자들입니다. 대다수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한달에 50만원 이하의 생활비로 살고 있다고 합니다.

8만당원이 있고 국고보조금까지 받는 민주노동당의 경우에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활동비를 지급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던 시절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지만 대개의 상근자들이 받는 월급은 저와 다르지 않은 수준입니다.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의 경우에도 당의 규정에 따라 노동자 평균임금에 맞춰서 월급을 받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는 지방의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신인 경우에는 그나마 낫지만 자식이 있는 40대 가장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금액입니다. “책을 덮고 노동현장으로 갈 때는 부모에게 죄를 져야 했다면, 40대에 진보정치를 시작한다는 것은 자식에게 죄를 짓는 처지”라는 말도 나옵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많은 활동가들이 운동에 대한 역량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생계때문에 운동을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 일정한 자산소득이 있는 사람만 끝까지 남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활동가에게 주어지는 임금이 노동자 평균보다 많지 않도록 한 당의 결정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비정규노동센터의 임금도 비정규노동자들이 받는 수준을 넘어서는 안되며 필요하다면 어느정도 삭감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독신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작년 가을에 민주노동당 정책위에서 공공부문 여성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다양한 정부기관에서 주로 조리, 청소 등의 일을 하고 있는 이 아주머니들이 받는 돈은 하나같이 최저임금입니다. 예전에는 정부기관에서도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경우가 적발되기도 했었는데 몇 번 여론의 질타를 받고 나서 위반사례는 사라졌습니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정확히 최저임금만큼만 계산해서 줍니다.

우리가 들고 간 면접조사지에는 희망급여를 적는 칸이 있었습니다. 잘해야 한달에 70만원을 받는 아주머니들이 한번쯤 받아보고 싶은 월급은? 150만원? 200만원? 아닙니다. 80만원이었습니다. -_-; 원칙적으로는 면접진행자가 함부로 설문결과에 영향을 줄만한 발언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만 답답한 마음에 넌지시 말을 꺼내고야 말았습니다. “어머님이 이 직장에서 공헌하시는 거랑, 한달 생계비를 고려해서, ― 하다못해 버스비도 올랐는데 ― 합리적(?)인 금액을 적어보시라”고 했더니 그 아주머니 말씀은 이랬습니다. “평생에 80만원만 한번 받아봐도 소원이 없겠어.”

면접조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다름아니라 “명절에도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분들은 일용잡급으로 근무일수만큼 돈을 받습니다. 명절이라고 이틀이라도 쉬게 되면 월급에서 5만원 정도가 빠지게 됩니다. 부유층의 하루저녁 술값도 안되는 그 5만원이 이분들에게는 생계에 상당한 타격이 되는 금액입니다. “우리가 명절을 정해놓은 것도 아니고 쉬고 싶어서 쉬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차라리 휴일에도 일을 시키라”는 것이 한결같은 요구였습니다.

이 분들처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노동자들을 ‘근로빈곤층’이라고 부릅니다. 2005년 현재 한국의 근로빈곤층은 정부통계로도 130만을 넘어섰고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중 절반 가까이가 여성가장 가구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달에 70만원이 가정의 유일한 소득원인 겁니다. 한국사회의 물가수준에서 이 돈으로 3-4명의 사람이 생계를 꾸려가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광주에서의 조사결과를 보면 여성가장의 79%가 빚을 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신용불량자가 되어 빚추심을 당하고, 전기료를 못내서 촛불을 켜고 살다가 화재가 나도 사회면 1단 정도를 차지한 후 곧 잊혀집니다. 한국사회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정부와 언론이 떠드는 노동유연성이란 결국 더 많은 노동자들을 ‘비정규직화’하자는 것입니다. 위에서 보듯이 저임금과 잦은 계약해지를 감수하면서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져야 하고 그렇게 해야만 기업이 살고 경제가 산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불안과 절망으로 몰아넣어야만 경제가 살아난다면 경제를 살려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요? 그런 식으로 유지되는 경제시스템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누구에게 득이 되는지 모를 일입니다.



3월에 있었던 철도 파업을 기억하실 겁니다. ‘시민을 볼모’로 ‘불법파업’을 한다는 언론의 공세 속에 결국 철도노조는 5일을 못넘기고 파업을 접었습니다. 그 무렵에 철도의 비정규직 조합원 한분을 만나서 급여명세서를 볼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고 철도에서 일한 지도 10년이 넘은 그 조합원이 한 달을 꼬박 일해서 받은 실수령액은 81만9천원이었습니다. ‘귀족노조’ 운운하는 조중동 기자들의 월급명세서를 그 옆에 붙여놓아 보면 어떨까요? 3월 24일자 조선일보 사설은 월 460만원을 받아도 자녀교육비 등 지출을 고려하면 생활하기 버겁다고 적어놓고 있습니다. 이때 ‘버거움’의 기준은 아마 조선일보 기자들의 눈높이에서 정해졌을 겁니다. 기자협회보 보도에 따르면 조선일보 직원의 월급은 평균해서 600만원이 넘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사회주의자인 존 러스킨은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중 누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더럽고 힘든 일들을 할 것인가? 만약 그와 같은 일을 한다면 보수는 얼마나 받을 것인가? 그리고 누가 쾌적하고 깨끗한 일을 할 것인가? 얼마의 보수로?” 더럽고 힘든 일이 천대받고 형편없이 취급되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쾌적하고 깨끗한 일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보는 사회가 있습니다. 어떤 사회가 더 좋은 사회입니까?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비정규노동자들의 권리찾기와 지원을 위해 설립된 단체입니다. 일을 시작한지 3개월이 되었지만 통장에 찍힌 월급을 보면서 항상 얼굴이 붉어집니다. 지금도 GM대우의 비정규직들은 고공농성중이고, 64만원을 받다가 문자메시지 해고를 당한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으며, 대교 학습지교사들의 부당해고 철회농성은 60일을 훌쩍 넘기고 있습니다. 수십억의 손배가압류와 벌금과 막막한 생계문제로 인한 가정파탄까지 겪으면서 장기투쟁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에게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들과 연대하는 활동가로서 내 활동의 수준을 따져보면, 100만원의 상근비는 언제나 부끄럽고 버겁습니다. 3월 급여를 아직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부끄러움의 시간이 다소 유예되고는 있지만 말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회원이 되려면 www.workingvoice.net 에서 회원가입 하심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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