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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6

사회운동 세미나를 다녀왔다.

 

처음 가 보는 사회진보연대 사무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지나치게 정리되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작업공간 치고는 깔끔한 편이었다. 꽤나 익숙한 얼굴들이 자주 보였다. 좌파 학생운동이라는 판에서 한 때 자주 만날 수 있었던 얼굴들이다. 세미나에 참석한 인원들 중에서는 나보다는 연배가 약간 낮지만 이미 사회에 진출해 있는 사람도 있었다. 졸업하고 계속해서 운동을 결의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미나를 하면서 학교에서 계획중인 세미나를 생각했다. 물론 학교에서 뻔히 잘 아는 사람들과 세미나를 진행하는 것도 좋은 일이고, 현실의 대학에서는 특히 더 필요한 일이다. 다만 캠에서 세미나를 진행할 때, 우리는 그것이 현실의 운동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씁쓸하다. 물론 처음 세미나라는 것을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모두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 어느 정도 운동을 접했고, 나름대로 자신의 고민을 풀어낼 수 있었던 사람들의 경우는 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운동을 접했고 졸업을 앞에 둔 이들은 정확히 양분된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 부류는 이론에 편향하고 한 부류는 이론과 실천 모두와 관계맺지 않는다. 이 두 부류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바로 자신들이 어쩄든 이 "학생운동" 이라는 어떤 실천과 관계맺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 관계맺음의 의미가 그 자신에게 "운동" 의 의미로써 남아있는가 이다. 운동이란 이론과 실천의 결합 속에서 존재하는 끊임없는 변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대상에 대한 각자의 의미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했던 어떤 정치적인 실천들이 존재할 때, 그것을 통해서 묶여졌던 "인간관계" 만이 과도하게 부각되어 의미로 남는 것도, 아니면 그 시간들이 자기 자신에게 무용한 시간이었다고 언젠가 평가하게 되는 것도 올바르지 않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지금, 졸업을 하고 나가야 할 사람들과 스스로에게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는 절실함을 느낀다. 특히 실천을 강제하고 실천을 과학화 시킬 수 있는 이론과,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그 이론에 맞추어 살 수 있도록 강제하는 실천 두 가지 모두. 그 이유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운동은 종교가 아니기 떄문이다. 그저 믿음만 가지고 계속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졸업한 이후에는 점점 더 책 읽기도 힘겨워 질 것이다. 또한 실천을 지속적으로 강제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저 내 조건 속에서 사는대로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내가 고민할 수 있는 범위는, 어떤 부분에서 넓어지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좁아지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실천을 강제할 수 있는, 적어도 현실을 냉철히 스스로 분석해낼 수 있는 이론의 부재는 언젠가 자신에게 남은 "학생운동" 의 의미를, 더 크게는 "운동" 이라는 것의 의미를 부차화 시킬 수 있을 위험요소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론에 편향될 경우 그저 이론에 매몰된 채 자신을 강제하는 정치적 실천에는 둔감해지면서, 충분히 골방에 틀어박힐 요소로 충분하다.

 

지금 졸업을 앞둔 나와 내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다시 한 번 자기 자신과의 투쟁을 제기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것은 내가 그들의 삶을 조직하거나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의 "운동" 의 의미를 언젠가 실천적으로 부정하게 되거나, 추억으로, 인간관계로만 환원시켰을 때 그들의 젊었던 시간은 그리고 그들과 함꼐 했던 나의 젊은 시간들이 그만큼 초라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운동의 삶에 있어서도 그만큼, 조야해지고 더욱 더 외로워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 한 명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알면서도, 알면서도 계속해서 교안을 보내고, 연락하고, 그들에게 실천을 말하는 것이고 이론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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