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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31
    (펌글)제목은 촛불얘기지만, 내게는 깃발얘기네요.(1)
    쟁이

(펌글)제목은 촛불얘기지만, 내게는 깃발얘기네요.

흐린날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어요.

이 글의 주소는 http://blog.jinbo.net/grayflag/?pid=217입니다.

 

촛불에 휩쓸려 오늘도 간다, 즐기자! 싸우자!

<미디어충청(7/23)에 쓴 글>

                       

촛불에 휩쓸려 오늘도 간다, 즐기자! 싸우자!

촛불시위를 보면서


촛불시위가 시작된 것은 이미 봄부터였다. 벌써 한 계절을 보내고 석 달째 접어든다. 서울시청은 물론이려니와 전국 곳곳에서 촛불시위가 한창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촛불분석’도 한창이다. 고명하신 비평가들과 활동가들이 너도나도 ‘촛불이란~’ 화두를 주장자처럼 들고 나섰다. 나는 사실 분석에는 젬병이다. 나는 분석은 그만두고, 그냥 촛불에 휩쓸리련다.


5월, 촛불이 모이기 시작됐다. 그러려니 했는데, 촛불은 거리로 나섰다. 난 그제야 스르륵 대열에 합류했다. 고백컨대, ‘한낱 촛불로 무슨?’이라는 과격한 운동권다운 촌스러움과 조급함, 그리고 오만함이 없었다고 말 못한다. 세종로와 을지로, 종로와 안국동에 넘쳐나는 촛불을 내 눈으로 보니, 아! 내 짐작 범위를 넘어서는 진짜 데모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매일 행진방향도 기조도 다른, 시위 참가자도 시위를 막아야 하는 경찰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가두투쟁. 나는 흥분했다.


나는 솔직히 광우병쇠고기 수입을 막아내겠다는 의지보다는, 그리고 의제를 확장해야 한다는 책임감보다는, 그 겪어보지 못한 데모질의 ‘재미’에 중독돼서 광장을 쏘다닌다. 이미 신자유주의가 다 집어삼켜버린 줄로만 알았던 한국 땅에 아직, 심지어 그토록 거대한 반동의 물결이 구비치고 있다는 ‘감동’ 때문에 광장으로 간다. 반동의 물줄기가 끊겨서는 안 되는데, 끝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내 몸뚱이 한 점 더 광장에 꽂아 넣는다.


이유는 그렇고, 광장에 가서는? 신비롭고, 재미나고 자유롭다.

촛불의 경건함이 신비롭다. ‘붉은 것만 보면 가슴이 뛰는’ 나에게 그것이 횃불이나 꽃이 아니더라도, 규모에서 밀려오는 감동 때문에 아직은 ‘촛불’이라도 좋다.

촛불들의 기발한 ‘조롱’은 너무 재미난다. ‘규탄한다!’ 정도가 최고의 규탄인 것으로 알았던 나에게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냉큼 물러가시오’라고 호통 치는 기발함이 재미있다.

자유롭다. 늘 ‘지침’을 묻고, ‘지침’대로 갔다가, ‘지침’대로 해산했던 나에게 주어지는 신선한 자유! 내가 떠난다 해도 남아있는 나를 대신할 수십만 수백만 개의 촛불이 있고, 다 떠난다 해도 떠난 촛불들을 대신해 고작 백여 명과 함께 신호등을 따라 건너면 그것이 바로 ‘투쟁’이다.

그 어떤 종류의 촛불 찬양에도 동의한다. 무조건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가끔, 아니, 자주 불편하다.

나는 왜 불편한가. 광장에서 매번 터져 나오는 ‘비폭력’을 호소하는 구호 때문에 편치 않다. 그 ‘비폭력’ 구호가 경찰병력을 향하든, 시위대를 향하든 불편하다.

대중적 저항이 폭발하는 상황에서 정권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대중에게 굴복하든가, 아니면 제압하든가. 이명박 정권은 작심하고 제압에 나섰다. 무엇으로? 폭력으로. 그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버티고자 한다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비폭력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 굴복하면 된다. 촛불시위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폭력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 제압된 뒤에 폭력은 필요 없다. ‘평화’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값싸고 질 좋은 미국에서 건너온 쇠고기를 실컷 먹으면 된다. 아이들은 눈 비비며 0교시 수업을 듣고 일류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밤새 코피 터지게 공부하면 된다. 물, 가스, 전기 다 돈 많은 자들에게 팔아치우고, 산동네에서는 등잔불을 밝히고 장작을 때면 그뿐이다. 많이 아플지라도 엄감생신 병원 따위 꿈꾸지 말고 조용히 삶을 정리하면 ‘평화’롭지 않은가.


그렇지만 나는 ‘비폭력’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없다. ‘비폭력’을 외치는 그들도 역시 나에게는 촛불을 들고 나온 ‘광장에서의 동지’ 들이다. 다만, ‘비폭력’을 강요하지 말라. 비폭력과 폭력의 공존! 그것 역시 촛불시위의 매력 아닌가. 우리가 휘두르지 않아도 충분히 이명박은 ‘폭력’을 휘두르고 있으니까.


양쪽 다 폭력을 쓰지 말라고? 그건 반칙이다. 운동경기에도 규칙이 있고, 화투판에도 룰은 있다. 제각기 곤봉과 방패, 사진기, 소화기로 무장하고, 집단적으로는 물대포와 우리를 경찰서로 실어갈 닭장차까지 갖추고 나온 저들과 달랑 촛불 하나 들고 나선 우리. 양쪽에 똑같이 ‘비폭력’을 요구하는 것은 애당초 반칙이다. 저들이 소화기를 뿌려댄다면 우리에게는 분말을 걸러줄 마스크 정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마스크로는 소화기 분말의 0.1%도 걸러지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도 소화기 분말로 되갚아야 한다. 방패와 곤봉으로 찍어댄다면 우리 몸을 보호할 각목 정도는 있어야 한다. 물론 쇠파이프가 더 안전하지만. 저들이 물대포를, 그것도 색소와 최루액까지 섞어서 뿌려댄다면, 우리는 소화전이라도 뽑아 들어야 맞다. 저들에게 지휘체계가 있다면 우리에겐 ‘신념과 의리로 뭉친 죽음도 함께하는 동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차바퀴에다 고작 밧줄 한 가닥 묶은 것을 보고 ‘위험하다’고 오버하지 말자. 저들이 와이어철근으로 버스 뒤쪽을 단단히 묶어둔 것을 다 보지 않았나. 그 밧줄은 폭력이 아니라 우리를 흩어지지 않게 얽어주는 연대의 끈이다. 경찰차 유리창 조금 부셨다고 ‘하지 말라’고 고함치지 말자. 저들은 우리의 머리통도 박살내지 않던가. 그 유리를 깨뜨린 망치는 이명박 정권의 방자함을 깨뜨릴 민중의 주먹이다.

그 답답한 차벽, 뚫고 청와대로 달려가 이명박에게 한껏 되갚아주고 싶은 심정, 모두 알지 않은가. 똑같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정말 없어져야 할 폭력은 따로 있다.

연행된 사람들을 되찾겠노라고 경찰병력을 밀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폭력’을 들이대며 뜯어말리는 폭력, 울분을 참을 수 없지만 용기가 없어서 쓴 소주 한잔 마신 뒤에야 차벽에 올라가 고함 한 번 쳐보는 사람에게 ‘내려와’를 외치는 폭력, 명박산성을 조롱하며 스티로폼 위로 올라서는 사람들에게 위험하니 지켜주겠노라고 끌어내리는 예비군의 폭력, 청와대로 가는 대열을 향해 ‘동대문으로 가자’고 선동하는 마이크의 폭력, 살수가 시작되자마자 물대포의 사정거리 밖으로 한참 벗어나 안전지대에서 깃발을 휘날리는 민주노총과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지도부의 폭력,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촛불을 들고 나왔다는 어른들이 되레 아이들에게 ‘밤이 늦었으니 돌아가라’고 타이르는 폭력, 대치상황에서 위험하니 여자들은 뒤로 빠지라고 고함치는 폭력, 남자들이 뭐하는 거냐며 빨리 나와서 몸싸움을 하라고 다그치는 폭력.


노동자들을 때려잡는 데는 애써 외면하던 우리가 왜 갑자기 ‘평화주의자’가 됐는가.

코스콤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그들은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며 일하던 회사가 있는 증권거래소 앞에 천막을 쳤다. 여섯 달을 넘기던 지난 3월11일 새벽, 경찰병력과 용역깡패 수백 명이 천막을 부수고, 농성 중이던 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며 몰아냈다. 천막을 지키려고 쇠사슬을 묶고 저항하는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폭력적인가?

버스도 지하철도 택시도 자유롭게 탈 수 없고, 그나마 맘먹고 길을 나서려면 따가운 눈총 아니면 측은해하는 동정을 받아내야 하는 중증장애인들, 장애인의 날 하루라도 그런 사정을 널리 알리겠다며 강변북로를 점거한 장애인들은 폭력적인가?

깨끗한 서울을 만들겠다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엎어버리고 깨버린 좌판을 다시 추슬러서 거리에 나와 밥값을 벌겠다는 노점상들은 몹쓸 폭력배인가.

그들이 폭력적이라고 한다면, 나는 차라리 촛불을 끄겠다고 쏘아대는 물대포와 촛불을 향해 휘두르는 방패가 ‘평화’라고 말하겠다.


그러나 나는 내가 촛불시위에 참가하면서 느끼는 이런 불편함을 대중에게 호소할 생각은 없다. 왜? 나 같은 부류 때문에 불편할 사람들이 역시 있을 테니까. 나의 불편함 때문에 그 촛불시위를 그만두고 싶지 않으니까. 난 나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촛불시위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니까. 언제까지? 이 사회를 말아먹은 정권을 말아먹을 때까지.


난 믿는다. ‘비폭력’을 외치는 나의 동지들이, 나 같은 자에게는 한 움큼 폭력성을 쥐어줬노라고. 모두의 생각이 같을 수도 없고, 같을 필요도 없다. 요구와 전술이 모두 같을 수도 없고 같을 필요도 없다. 한 가지만 같으면 우리는 광장에서 만날 수 있다. 비폭력이라고? 그럼 비폭력으로 하라! 나는 폭력적으로 하겠다. 그러나 나를 ‘평화’의 길로 인도하지 말라. 동지의 비폭력과 나의 폭력이 광장에서 만나 이명박 정권을 깨뜨릴 것이다.


아, 내가 촛불에 미쳐버린 이유를 하나 빼놓았다. 내가 역사 속에 있다. 내일이면 역사가 될 ‘오늘’ 촛불시위에 내가 있다. 내가 드디어 역사 속에 제대로 풍덩 빠져버렸다. 흘러내린 촛농이 쌓이고 쌓여 내 몸뚱이를 광장에 굳혀 버렸다.

오늘도 간다. 즐기자!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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