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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제목은 촛불얘기지만, 내게는 깃발얘기네요.

흐린날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어요.

이 글의 주소는 http://blog.jinbo.net/grayflag/?pid=217입니다.

 

촛불에 휩쓸려 오늘도 간다, 즐기자! 싸우자!

<미디어충청(7/23)에 쓴 글>

                       

촛불에 휩쓸려 오늘도 간다, 즐기자! 싸우자!

촛불시위를 보면서


촛불시위가 시작된 것은 이미 봄부터였다. 벌써 한 계절을 보내고 석 달째 접어든다. 서울시청은 물론이려니와 전국 곳곳에서 촛불시위가 한창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촛불분석’도 한창이다. 고명하신 비평가들과 활동가들이 너도나도 ‘촛불이란~’ 화두를 주장자처럼 들고 나섰다. 나는 사실 분석에는 젬병이다. 나는 분석은 그만두고, 그냥 촛불에 휩쓸리련다.


5월, 촛불이 모이기 시작됐다. 그러려니 했는데, 촛불은 거리로 나섰다. 난 그제야 스르륵 대열에 합류했다. 고백컨대, ‘한낱 촛불로 무슨?’이라는 과격한 운동권다운 촌스러움과 조급함, 그리고 오만함이 없었다고 말 못한다. 세종로와 을지로, 종로와 안국동에 넘쳐나는 촛불을 내 눈으로 보니, 아! 내 짐작 범위를 넘어서는 진짜 데모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매일 행진방향도 기조도 다른, 시위 참가자도 시위를 막아야 하는 경찰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가두투쟁. 나는 흥분했다.


나는 솔직히 광우병쇠고기 수입을 막아내겠다는 의지보다는, 그리고 의제를 확장해야 한다는 책임감보다는, 그 겪어보지 못한 데모질의 ‘재미’에 중독돼서 광장을 쏘다닌다. 이미 신자유주의가 다 집어삼켜버린 줄로만 알았던 한국 땅에 아직, 심지어 그토록 거대한 반동의 물결이 구비치고 있다는 ‘감동’ 때문에 광장으로 간다. 반동의 물줄기가 끊겨서는 안 되는데, 끝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내 몸뚱이 한 점 더 광장에 꽂아 넣는다.


이유는 그렇고, 광장에 가서는? 신비롭고, 재미나고 자유롭다.

촛불의 경건함이 신비롭다. ‘붉은 것만 보면 가슴이 뛰는’ 나에게 그것이 횃불이나 꽃이 아니더라도, 규모에서 밀려오는 감동 때문에 아직은 ‘촛불’이라도 좋다.

촛불들의 기발한 ‘조롱’은 너무 재미난다. ‘규탄한다!’ 정도가 최고의 규탄인 것으로 알았던 나에게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냉큼 물러가시오’라고 호통 치는 기발함이 재미있다.

자유롭다. 늘 ‘지침’을 묻고, ‘지침’대로 갔다가, ‘지침’대로 해산했던 나에게 주어지는 신선한 자유! 내가 떠난다 해도 남아있는 나를 대신할 수십만 수백만 개의 촛불이 있고, 다 떠난다 해도 떠난 촛불들을 대신해 고작 백여 명과 함께 신호등을 따라 건너면 그것이 바로 ‘투쟁’이다.

그 어떤 종류의 촛불 찬양에도 동의한다. 무조건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가끔, 아니, 자주 불편하다.

나는 왜 불편한가. 광장에서 매번 터져 나오는 ‘비폭력’을 호소하는 구호 때문에 편치 않다. 그 ‘비폭력’ 구호가 경찰병력을 향하든, 시위대를 향하든 불편하다.

대중적 저항이 폭발하는 상황에서 정권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대중에게 굴복하든가, 아니면 제압하든가. 이명박 정권은 작심하고 제압에 나섰다. 무엇으로? 폭력으로. 그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버티고자 한다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비폭력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 굴복하면 된다. 촛불시위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폭력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 제압된 뒤에 폭력은 필요 없다. ‘평화’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값싸고 질 좋은 미국에서 건너온 쇠고기를 실컷 먹으면 된다. 아이들은 눈 비비며 0교시 수업을 듣고 일류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밤새 코피 터지게 공부하면 된다. 물, 가스, 전기 다 돈 많은 자들에게 팔아치우고, 산동네에서는 등잔불을 밝히고 장작을 때면 그뿐이다. 많이 아플지라도 엄감생신 병원 따위 꿈꾸지 말고 조용히 삶을 정리하면 ‘평화’롭지 않은가.


그렇지만 나는 ‘비폭력’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없다. ‘비폭력’을 외치는 그들도 역시 나에게는 촛불을 들고 나온 ‘광장에서의 동지’ 들이다. 다만, ‘비폭력’을 강요하지 말라. 비폭력과 폭력의 공존! 그것 역시 촛불시위의 매력 아닌가. 우리가 휘두르지 않아도 충분히 이명박은 ‘폭력’을 휘두르고 있으니까.


양쪽 다 폭력을 쓰지 말라고? 그건 반칙이다. 운동경기에도 규칙이 있고, 화투판에도 룰은 있다. 제각기 곤봉과 방패, 사진기, 소화기로 무장하고, 집단적으로는 물대포와 우리를 경찰서로 실어갈 닭장차까지 갖추고 나온 저들과 달랑 촛불 하나 들고 나선 우리. 양쪽에 똑같이 ‘비폭력’을 요구하는 것은 애당초 반칙이다. 저들이 소화기를 뿌려댄다면 우리에게는 분말을 걸러줄 마스크 정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마스크로는 소화기 분말의 0.1%도 걸러지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도 소화기 분말로 되갚아야 한다. 방패와 곤봉으로 찍어댄다면 우리 몸을 보호할 각목 정도는 있어야 한다. 물론 쇠파이프가 더 안전하지만. 저들이 물대포를, 그것도 색소와 최루액까지 섞어서 뿌려댄다면, 우리는 소화전이라도 뽑아 들어야 맞다. 저들에게 지휘체계가 있다면 우리에겐 ‘신념과 의리로 뭉친 죽음도 함께하는 동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차바퀴에다 고작 밧줄 한 가닥 묶은 것을 보고 ‘위험하다’고 오버하지 말자. 저들이 와이어철근으로 버스 뒤쪽을 단단히 묶어둔 것을 다 보지 않았나. 그 밧줄은 폭력이 아니라 우리를 흩어지지 않게 얽어주는 연대의 끈이다. 경찰차 유리창 조금 부셨다고 ‘하지 말라’고 고함치지 말자. 저들은 우리의 머리통도 박살내지 않던가. 그 유리를 깨뜨린 망치는 이명박 정권의 방자함을 깨뜨릴 민중의 주먹이다.

그 답답한 차벽, 뚫고 청와대로 달려가 이명박에게 한껏 되갚아주고 싶은 심정, 모두 알지 않은가. 똑같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정말 없어져야 할 폭력은 따로 있다.

연행된 사람들을 되찾겠노라고 경찰병력을 밀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폭력’을 들이대며 뜯어말리는 폭력, 울분을 참을 수 없지만 용기가 없어서 쓴 소주 한잔 마신 뒤에야 차벽에 올라가 고함 한 번 쳐보는 사람에게 ‘내려와’를 외치는 폭력, 명박산성을 조롱하며 스티로폼 위로 올라서는 사람들에게 위험하니 지켜주겠노라고 끌어내리는 예비군의 폭력, 청와대로 가는 대열을 향해 ‘동대문으로 가자’고 선동하는 마이크의 폭력, 살수가 시작되자마자 물대포의 사정거리 밖으로 한참 벗어나 안전지대에서 깃발을 휘날리는 민주노총과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지도부의 폭력,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촛불을 들고 나왔다는 어른들이 되레 아이들에게 ‘밤이 늦었으니 돌아가라’고 타이르는 폭력, 대치상황에서 위험하니 여자들은 뒤로 빠지라고 고함치는 폭력, 남자들이 뭐하는 거냐며 빨리 나와서 몸싸움을 하라고 다그치는 폭력.


노동자들을 때려잡는 데는 애써 외면하던 우리가 왜 갑자기 ‘평화주의자’가 됐는가.

코스콤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그들은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며 일하던 회사가 있는 증권거래소 앞에 천막을 쳤다. 여섯 달을 넘기던 지난 3월11일 새벽, 경찰병력과 용역깡패 수백 명이 천막을 부수고, 농성 중이던 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며 몰아냈다. 천막을 지키려고 쇠사슬을 묶고 저항하는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폭력적인가?

버스도 지하철도 택시도 자유롭게 탈 수 없고, 그나마 맘먹고 길을 나서려면 따가운 눈총 아니면 측은해하는 동정을 받아내야 하는 중증장애인들, 장애인의 날 하루라도 그런 사정을 널리 알리겠다며 강변북로를 점거한 장애인들은 폭력적인가?

깨끗한 서울을 만들겠다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엎어버리고 깨버린 좌판을 다시 추슬러서 거리에 나와 밥값을 벌겠다는 노점상들은 몹쓸 폭력배인가.

그들이 폭력적이라고 한다면, 나는 차라리 촛불을 끄겠다고 쏘아대는 물대포와 촛불을 향해 휘두르는 방패가 ‘평화’라고 말하겠다.


그러나 나는 내가 촛불시위에 참가하면서 느끼는 이런 불편함을 대중에게 호소할 생각은 없다. 왜? 나 같은 부류 때문에 불편할 사람들이 역시 있을 테니까. 나의 불편함 때문에 그 촛불시위를 그만두고 싶지 않으니까. 난 나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촛불시위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니까. 언제까지? 이 사회를 말아먹은 정권을 말아먹을 때까지.


난 믿는다. ‘비폭력’을 외치는 나의 동지들이, 나 같은 자에게는 한 움큼 폭력성을 쥐어줬노라고. 모두의 생각이 같을 수도 없고, 같을 필요도 없다. 요구와 전술이 모두 같을 수도 없고 같을 필요도 없다. 한 가지만 같으면 우리는 광장에서 만날 수 있다. 비폭력이라고? 그럼 비폭력으로 하라! 나는 폭력적으로 하겠다. 그러나 나를 ‘평화’의 길로 인도하지 말라. 동지의 비폭력과 나의 폭력이 광장에서 만나 이명박 정권을 깨뜨릴 것이다.


아, 내가 촛불에 미쳐버린 이유를 하나 빼놓았다. 내가 역사 속에 있다. 내일이면 역사가 될 ‘오늘’ 촛불시위에 내가 있다. 내가 드디어 역사 속에 제대로 풍덩 빠져버렸다. 흘러내린 촛농이 쌓이고 쌓여 내 몸뚱이를 광장에 굳혀 버렸다.

오늘도 간다. 즐기자!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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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 시월 문닫다

지난 7월 12일 문화연구 시월이 운영위원회를 열러

공간해소를 결정하였습니다.

최근 그간의 연구활동의 성과를 모아

'문화.현장.방법론'과 '사라진 정치의 장소들'이란

두권의 단행본을 내고

향후 진로를 고민해 왔는데

그간의 성과를 가지고 연구소 성원들이

좀더 다른 공간에서 좀더 자유롭게

활동을 펼쳐나가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에서

해소를 결정한 것입니다.

그안에 복잡한 사정이야 있지만,

어쨋든 2000년 4월에 망원연구모임에서 시작되어

만 8년을 노동자문화와 문화정치를 고민해왔는데

이번에 해소를 했네요.

연구소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을

서노정연으로부터 본다면 이후 한노정연의 활동으로 이어졌었는데

한노정연도 해소했고

이제 시월까지 해소함으로서

한단락이 지어진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연구소에서 노동자문화 연구를 하셨던 분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 분들이 갑자기 노동자문화연구를 접을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앞으로 노동자문화, 문화정치의 고민을 누구와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

막막한 느낌도 듭니다.

이렇게 한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는 거겠지요.

새로운 문화정치는 과거 양식과 단절할때 가능하겠지요.

 

박준성님이 즐겨쓰는 말처럼

'흔들리며 나아가'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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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술통

 

술통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 줘.

운이 좋으면

밑둥이 샐지도 몰라.


모리야 센안(일본 선승, 7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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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는게 궁금한 날

 예나 지금이나 술 얘기 나오는 시는  맘도 눈도 땡기네요.

 

 

사는 게 궁금한 날



김시천



사는 게 궁금한 날


술 한 잔 어떠신가


봄날엔 해묵은 산벚나무 아래 앉아


술 잔에 꽃잎 띄워 쓰다만 시 벗하여 마시고


여름엔 매미 소리 울창한 숲 속 계곡에 벌거숭이로 들어앉아


벗들 함께 별 하나 나 하나 산 놓으며 마시고


가을엔 저녁 예불 소리 들리는 절 밑 주막에 들러


발 밑에 뒹구는 낙엽따라 진양조로 마시고


겨울엔 눈이 쌓인 외딴 마을 타는 장작불 같이


눈밭에 엎드려 통곡으로 마시고


사는 게 못내 궁금한 날


술 한 잔 어떠신가




아니면 그저 차나 한 잔 하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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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하나 더 -&quot;술잔을 들고&quot;

국운은 이제 다했는가 에 이어 한시 하나 더 올립니다.

요즘 정세에 비추어 뜬금없다는 생각도 드네요.

 

 

술잔을 들고


                                                         장선


[가화군 소졸로 있을때 병으로 부회에 참석치 못하고]


수조가 노랫가락

술잔 들고 듣는데

취한 낮술 이제 깨었으나

시름은 아직 깨지 않는구나

봄은 가는데 언제 돌아오나

저녁 거울 앞에 앉아

흐르는 세월 한탄하며

지난날을 부질없이 회상한다


모래밭에는 비둘기들 정답고

연못에 땅거미 지는데

구름 사이로 달이 뜨자

미풍에 꽃그림자 어른거린다

겹겹이 주렴으로 등불을 가려

바람은 설레이나 인적은 고요하구나

내일 아침이면

떨어진 꽃잎이 길에 가득하겠지


장선. 990~1078

절강성 사람으로 악부에 능했으며 만년에 향리에 은거에 항상 편주를 띄우고 낚시를 낙으로 살았다.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었다.


96년 가을 그때 나는 ‘국운이 다했는가’가 절절했다면

당시를 함께 살아냈던 그 선배는 이 ‘술잔을 들고’가 절절했었다.

마지막 구절 ‘내일 아침이면 떨어진 꽃잎이 길에 가득 하겠지’ 하던

그 목소리,

표정,

눈빛,

길게 내뿜는 탄식, 탄식, 탄식.

아 어떻게 그 암담함을, 그 암울함을, 그 절망을 잊울수 있으랴.

이제 8, 9년의 세월이 흘러

그 때의 그 사람이

다시 대중앞에서

9년의 세월을 건너 다시 마이크를 잡고서

평등사회 건설과, 노동해방 쟁취를

목메어 외치니

그동안의 회한을 어찌 다 말할수 있겠는가.

죽은 종배형 생각이 더욱 간절하달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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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운은 이제 다했는가

신영복선생이 징역 살때

중국한시도 공부하셨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한시말고도

민중시라 할만한 좋은 시가 많았더랍니다.

후에 출감해서 기세춘선생과 함께

한시를 번역하는 작업을 하셨는데

그 과정에 중국의 한시 대학교재를

보게 되었는데 신선생과 기선생이 고른 시와

대개가 겹치더랍니다.

작업을 계속하셔서

중국역대시가선집 이라는 이름으로

700쪽이 넘는 책, 4권으로 냈습니다.

번역도 직역이 아니라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운율을 잘 살리면서

시 내용에 담긴 뜻을 잘 담아냈습니다.

96년 민주금속연맹이 부산 있던 시절 몇개의 한시를 골라 읽은 적이 있는데

그중 두 편을 다른 사람 블로그에 올린적이 있습니다.

그 올렸던 시를 다시 올려봅니다.

시편 뒤에 그 시를 올릴때 함께 썼던 글도

그 때의 느낌과 생각을 기억할 겸 함께 올려봅니다.

 

국운은 이제 다했는가


장효상


멀리 시선 끝 회수를 바라보니

옛 요새는 쓸쓸히 잡초에 묻혔는데

흙먼지 하늘을 뒤덮고

매서운 서릿바람에

호가소리 구슬프다

하늘이 무너진 듯 암담한 마음

그때의 패전을 생각하면

국운이 다하여

인력으로 될 일이 아니었나


공맹의 중원 땅

거문고소리 노랫가락 들리던 곳에

또다시 오랑캐의 양고기 노린내 진동하네

강 건너는 여진족의 천막이 들어서

석양에 소떼 양떼 내려오고

척후병의 참호만이 널려 있구나

이름난 금나라 추장의 밤사냥을 보노라니

기마병의 횃불이 한가닥 강물인 듯

피리소리 북소리 비명같이

사람을 두렵게 하는구나


생각하면

허리에 찬 화살통과

칼집에 든 칼날은

헛되이 녹이 스는데

필경 어디다 쓰려는가

기회를 쉽게 놓치고

마음만 부질없이 비분강개할 뿐

벌써 해가 바뀌어 낙엽 지는데

적의 수중에 떨어진 서울은 아득하구나


예와 악으로 오랑캐를 귀복시킨다고

봉화대는 고요하고

병화는 그쳤으나

화의를 구걸하는 사신들이

분주히 오리걸음 치는데

정말 어쩌자는 것인가

들으니 중원에 버려진 인민들은

남쪽을 바라보며 해방군을 기다리건만

투항파의 사신을 보니

울분과 충정으로 가슴이 미어져

흐르는 눈물 억장이 무너지네



장효상. 1132~1169

안휘성 사람으로 진사에 장원했으나 투항파 두목 진회의 비위를 거슬려 옥살이를 했다. 후에 관직에 있으면서 인민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했다. 남송의 유명한 애국시인.


96년 가을.

그 암울한 시절을 부산에 있으면서

동료들과 한시를 읽으며, 술을 마시며 보냈었다.

그 때 읽은 시중 가장 맘에 절절했던 시.

전노협의 해산을 생각하며 읽고, 읽고, 또 읽으며

눈물반, 술반으로 지냈었다.

남송이 원의 침략을 받을때

우자는 주전파와 협상하자는 주화파로 나뉘었었다.

전노협이 해산당할 당시,

또 그 이후 계속 사회적합의주의에 휘둘리는 우리 현실을

900여년전에 노래했을 줄 어이 알았으랴.

자,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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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촛불집회에 관심을 가지면서,

촛불집회에 참석하면서 떠올렸던 글이다.

[고전으로 배우는 노동조합운동의 전략과 전술]이라는 책 중의 한 부분인데,

이 책은 맑스, 엥겔스, 레닌의 저작들 중에서

노동조합운동과 관련한 부분을 모아 엮은 책이다.

뒷부분에 파업전술에 대한 부분이 있고,

다시 그 한 부분이 "군사과학에서 배우는 파업전술"이다.

그중 핵심적인 부분만 옮겨본다.

파업을 촛불시위로

적은 2MB로 하는 식으로 읽으면

도움이 될듯하다.

전문을 옮길수도 있지만

결국 이 글의 핵심을 이해하는 사람은 요점만 봐도 이해할 것이고

이해가 안되는 사람은 길게 옮겨도 이해 안될것이다.

 

19세기 초반의 독일의 위대한 군사전문가인 클라우제비츠가 쓴 [전쟁론]을 가지고

로조프스키라는 사람이 파업전술의 과학화를 위해 [파업전술]이라는 책을 썼다.

로조프스키는 우선 클라우제비츠의 네가지 원칙을 언급한다.

제1원칙-'우선, 첫째로 모든 현존 세력을 극도로 긴장시킨다.' 바꾸어 말하자면 만약 당신이 전쟁을 하는 경우에는 당신의 모든 현존세력이 전쟁을 통해 승리하도록 준비시킨다. '둘째로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목적의 달성을 늦추는 것이다. 성공이 상당히 확실한 경우일지라도 확실한 성공을 획득하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어떠한 노력이든 이러한 노력은 불리한 결과로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2원칙-'결정적인 타격을 가해야 할 장소에 가능한 한 모든 세력을 집중한다. 중요한 지점에서 승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중요하지 않은 점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

제3원칙-'때를 놓치지 마라. 적의 방침은 신속하게 그 싹을 잘라버려라. 여론을 자기 편으로 만들라.'

제4원칙-'획득된 어떠한 성공도 최대의 정력을 투자하여 다음의  성공을 위한 밑거름으로 이용하라.'

 

이러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초보적인 상식이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중략

'아마도, 여러분은 모두가 그것(4가지원칙)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 이러한 원칙을 실제로 체득해야만 할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원칙을 추상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라면 우리는 아직도 불충분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일거일동에서 즉 여러분이 거대한 대중과 접촉하고 이 대중을 조직하며 그들을 하나의 부대로 건설해야만 할 경우에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을 위해 제기하고 있는 바의 얼핏보면 초보적이지만 실제로는 최고로 중요한 이 원칙을 체득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조프스키는 클라우제비츠의 네 가지 원칙을 '공격은 최대의 방어이다'라는 유명한 말로 집약하고 있다.

'원칙은 확고히, 전술은 유연하게'라는 원칙은 이 '공격은 최대의 방어이다'라는 철칙을 먼저 고민한 후에 그 정신이 살려져야 할 것이다.

 

파업투쟁의 지도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로조프스키는 파업을 지도할때의 불가결한 원칙으로서 다음의 사항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로, 전쟁에서도 투쟁에서도 지켜져야 할 주요 원리는 '공격전의 승리'라는 것이다. 독일의 군사전문가 몰트케는 '항상 방어적인 입장에 서 있는 전쟁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은 파업전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왜냐하면 이 공격전술만이 주도권을  쥘 수 있게 하기 때문이고, 이 공격전술만이, 상대를 불의에 습격하고 타격의 순간을 선택하며 충돌의 형태및 성질을 규정할 가능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방어전만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가장 중요한 전략전술의 규칙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둘째로, '매우 중요한 규칙은 우리 세력을 끊임없이 공고화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이미 서술했지만 '우리의 군대는 자발성에 입각해 있다는 것, 또 새로운 세력을 진지에 가세시키고 파업투쟁을 새로운 부문 및 영역으로 확대하며 또한 예비군을 끌어들여 두는 것이 승리의 가장 중요한 전제라는 것을 우리는 고려해야만 한다.'

세째로, '대중의 활동성및 참여도를 높이는 것이다. 파업투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파업자의 활동정지, 즉 파업자가 집에 꾹 참고 있어 사건의 형편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상태이다......대중의 투쟁의지는 지지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어야 한다. 대중의 활동성 및 참여도를 높이는 것과 새로운 신선한 세력을 투쟁에 끌어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임무이며, 투쟁이 성공으로 끝나는가 아닌가는 이 임무를 완수하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네째로, '투쟁본부와 모든 지부 사이에 끊임없는 부단한 연락기관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투쟁에서는 지도기관이 투쟁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이 특히 위험하다.'

다섯째로, '파업에 적대하는 세력의 분쇄를 위해 활동한다.'

여섯째로, '성공을 약속하는 모든 수단을 갖고 투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로조프스키는 이밖에도

'투쟁에서 모든 슬로건과 요구는 최소한으로 그 수가 제한되어야 한다.'

'적의 임기응변에 혼란에 빠지는 것은 투쟁에서 가장 위험하다.'

'신문의 임기응변에 대한 투쟁에는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자기의 세력을 정확히 알 뿐만 아니라 적의 세력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특히 파업투쟁에서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더욱 위험하다.'

 

예전에는 이런 글도 읽고 토론도 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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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조혜영의 시 - 애수의 소야곡

전노협시절, 민주노조 활동도 함께 했던

조혜영이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여러모로 좋지만

시도 역시 좋다.

그 시중 애수의 소야곡이라는 시가 있는데

자꾸 울 아부지, 중풍으로 누워계신 아부지가 생각날때

이 시를 읽는다.

이 시를 읽으면 또 울 아부지가 생각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 시가 생각나고 울 아부지가 생각난다.

 

애수의 소야곡


                                조혜영


노래방에 가면 나는 애수의 소야곡을 부른다


어릴 적

면에서 나온 구호품 밀가루로

묽은 수제비국 끓여 먹고

마당 밀집방석에 누워

외양간 두엄 냄새 맡으며

아버지는 노래를 부르셨지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엄마는 울타리 밑에 앉아 풋콩을 까다

아버지의 청승에 눈만 흘기셨지


아버지의 소야곡은 메들리로 이어져

부산항에서 헤어진 여인을 생각하시는지

묵이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찾으시고

두만강아 대동강아 편지 한 장

전할길이 이다지도 없을쏘냐 구슬픈데

해조곡에서 굳세어라 금순아로 넘어간다


모깃불은 사위어 가고

차라리 잊으리라 맹세하건만

애타는 숨결마저 싸늘하구나

아버지의 숨소리는 심하게 잠겨오고


노래 부르실 때마다 팔베개 배어 주신 아버지


노래방에 가면 나는 애수의 소야곡을 18번으로 부른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

간드러지게 목청을 가다듬어도

채워지지 않는 간절함에 목이 메이고

무엇이 사랑이고 청춘이던고

내 가슴은 자꾸 타오른다

나의 소야곡은 아주 조금씩

사랑가가 되고

나의 목울대는 심하게 간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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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도'의 글-만세 한번 부르겠습니다.

 내겐 언제나 '김지도'인 김진숙님(전 전노협 부양노련 지도위원)의 글입니다.

늘 상식이 무엇인지 깨우쳐주고,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만세 한번 부르겠습니다. .

                                   김진숙


시간을 827일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827일동안 네가 가야할 길이 해고와 연행과 천막농성과 단식과 1인시위라고 누군가 일러 주었더라면, 그래도 난 이 길에 선뜻 들어설 수 있었을까요.

검은 비단처럼 빛나는 네 머릿결이 우악스런 손길에 수도없이 휘어잡히고,검은 진주처럼 빛나는 네 눈빛이 눈물의 저수지가 될지도 모른단다.누군가 귀뜸이라도 해주었더러면 그래도 난 이 길을 주저없이 갔을까요.

827일.

인체의 70%를 차지한다는 수분이 모조리 눈물로 빠져나가 살아있는 인간이 버석거리는 낙엽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

꿈이 무너지고 희망이 부서지고 윤택하던 사랑마저 사막처럼 피폐해지는데 필요한 시간 827일.

아무리 단단한 인간이라도 수십 번 바스라져내릴 시간 827일.

흩어진 것들이 다시 모이고 부서진 것들마저 다시 뭉치고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 그렇게 827일을 버텨오면서,연락이 끊어진 친구도,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진 동지도,이제 그만하라는 말도 못하고 애달프게 바라보기만 하는 엄마도 이젠 다 견딜 수 있는데 나 없이 달리는 저 KTX는 아직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등을 보이며 돌아서던 변심한 연인을 보는 심정이 이럴까요.

시속 300km로 달리는 저 배신의 질주를 가로막고 누워 내 살점이 벚꽃처럼 흩날리는 꿈을 몇번이나 꾸었는지 모릅니다.

827일을 뒹굴었음에도 잠이 깨는 새벽마다 여긴 어딜까.그리고 이내 가슴이 서늘해지던 막막함.

언젠가 다시 이 옷을 입게 되리라.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곤 했던 회색유니폼이 빨간색으로 바뀐 어느날.가까운 지인의 부음처럼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옷은 우리에겐 깃발이었습니다.

홀로이 바람에 맞서던 깃발.지금은 접혀져 있으나 언젠가는 반드시 당당하게 휘날려야 할 깃발.

그렇게 827일을 살았습니다.

그 827일에는 송별식도 못한 채 떠나버린 친구들이 있었고,어디가서 무슨 일을 하고 살더라도 다시는 비정규직이 되지 말라는 인사도 못 건넨 채 가버린 동지들이 있었고,그리고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울어야 했던 엄마 아빠의 눈물이 있습니다.

일터가 아니라 농성장으로 향하는 딸내미의 주머니에 밥은 굶지 말라며 용돈을 찔러주시던 부모님께 죄인이 되어야 했던 시간들.

그리고 서울역에 한 발짝도 들어설 수 없었던 금단의 시간들.

친구를 만나서 영화를 보는 일도,가족들과 나들이 가는 일도,새구두를 사고 새옷을 사는 일도,마음놓고 웃는 일도 유예된 시간들.

이랜드뉴코아 동지들은 코스콤 동지들을 보면서 버티고,코스콤 동지들은 KTX새마을 동지들을 보면서 버티고,그 동지들은 기륭전자 동지들을 보면서 버티고 기륭동지들은 20년 청춘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걸 눈 뜨고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한국합섬 동지들을 보면서 버텨왔던 시간들.

그리고 오늘.어린 아이들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순 없다며 철탑에 올라 간 윤종희 동지와 구자현 동지의 촛불을 대신들고 우린 촛불의 광장으로 갑니다.

역사는 하루아침에 기적처럼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죽는 것 빼고는 다해 본 사람들과,죽는 것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열사들이 온몸으로 써내려가는 최후진술서입니다.

신새벽 뒷골목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남몰래 쓰던 민주주의는 6월항쟁을 거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외침으로 광장에서 합창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유예한 채 저항해온 사람들이 없었다면 오늘 교복을 입고 광장에 나온 아이의 등뒤에는 5월 광주처럼 총알이 박혔을 겁니다.

오늘 촛불이 범람하는 광장이 있기까진 서서 노래부를 한뼘의 공간을 위해 보도블록이 짱돌이 되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고,광주에서 죽어간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밤을 새워가며 마셨던 절망의 증거들이 낮이면 꽃병으로 환생하는 용기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맞서야 했던 건 수천명을 학살했던 살인정권이었고,그때 짱돌과 꽃병은 총을 들고 그 총끝에 대검을 꽂았던 저들에 맞서는 최소한의 위안이자 두려움을 숨길 수 있었던 유일한 도구였습니다.

이심전심이란 말처럼 이명박과 전두환은 하나입니다.

지금 소화기나 물대포를 폭력이라 부르기 까진 최루탄을 눈처럼 덮어쓴 채 창자까지 쏟아질 듯하던 구역질과 그 최루탄에 맞아죽은 이한열과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죽어간 박종철과 쇠파이프에 맞아죽은 강경대와 군홧발에 밟혀죽은 김귀정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은하수처럼 뿌려진 젊은 생명들을 딛고 온 민주주의는 이제 광장에 촛불로 섰습니다.

지금은 메아리가 되지 못하는 그래서 외롭고 쓸쓸한 우리들의 목소리도 언젠가는 세상을 뒤흔드는 비정규직 철폐의 함성이 될 겁니다.

어른들이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 아파트값만 올라갈 거라는 불순한 욕망에 부풀어 있을 때 사심없어 눈이 밝은 아이들은 촛불을 켜들었습니다.

노동자들 머리가 길다고 가차없이 쪼인트를 까던 현대재벌의 자본가였다는 걸 노동자들 마저 잊었는데 아이들은 그를 향해 쥐박이는 꺼지랍니다.

어른들은 조중동의 자전거와 선풍기에 군침을 흘리는데 조중동이 언론이면 야동은 다큐멘타리다. 외치는 아이들은 얼마나 통렬합니까.

물대포가 안전하다니까 물대포를 청와대에 비데로 놓아주자는 아이들은 얼마나 상큼합니까.

이명박이 소통을 말하니까 이명박은 소하고만 통하는 인간이랍니다.

소망교회 좋아하니까 소로 망하는 거랍니다.

저 아이들을 비정규직이 되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의 투쟁이 저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동지들께 제안합니다. 우리는 이미 수백일을 단련된 전사들입니다.

이제 단사의 틀을 뛰어넘어 KTX새마을 동지들은 공공부분에,이랜드뉴코아 동지들은 서비스업종에,코스콤 동지들은 사무금융에,기륭동지들은 금속에,이렇게 각 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해내는 조직활동가가 됩시다.

비정규직은 나날이 늘어나는데 그들 스스로 일어서긴 힘이 부치고,정규직 노조들 바라보다가는 전봇대에 싹나게 생겼습니다.

그들이 못하는 일을 우리가 해냅시다.우리 스스로가 자본가 정권을 불태우는 촛불이 됩시다.

끝으로 만세한번 부르겠습니다.이건 제가 한 10년 전에 했던 건데 해보면 재미있습니다.

우리 똑똑한 노동자들과 국민들은 광우병 쇠고기도 막아내고 비정규직도 없애고 오래오래 살 거니까

대한민국 민중들 만세 만세 만만세!

이명박이가 이번에 미국가서 쇠고기 먹고왔는데 광우병 잠복기간이 10년 정도라니까 명박이도 10년은 안살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각하.십세 십세 십십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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