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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 천불...

1. 공화국

 

대한민국이 삼성공화국이라고 하는데,

사실, 대한민국 재벌들은 저마다 공화국을 가지고 있다.

전생에 무슨 선업을 지어서 복을 타고 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일제가 물러나자 갑자기 소유가 불분명해진 땅이며, 공장들을

꿀꺽 삼키더니 졸지에 덩치가 뻥튀기된 재벌들!!

경제개발 5개년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온 땅에서 허벌나게 삽질이 시작될 때,

또 무슨 천지신명의 도움인지 도시 하나씩을 꿀꺽 삼켜,

저마다 공화국 하나씩을 세웠다.

 

여기 이 도시에도 아름다운(?) 공화국이 있다.

한 도시의 5개의 구중에 2개 구의 땅과 바다를 완전히 점령한 공화국은

또 다른 하나의 구마저, 공화국을 위해 존재하도록 설계해 놓았으며,

이 도시안에 있는 꼴랑 두개의 대학교를 모두 세우셨고,

고등학교,중학교도 몇개씩 건사하고 계신다.

백화점 2개(이 도시에는 백화점이 3개 있다)

5개 구마다  아파트 몇 단지씩 ,문화회관(복지회관 포함)  4~5개.

창업자의 뜻을 기려 '아산로'라 이름지어진 해안도로는

이 도시의 자랑이다. 공화국의 백미다.

 

공화국의 공장에서 일하며,

공화국 아파트에 살면서,

공화국 차를 몰고 다니면서

공화국 백화점에서 소비를 하고,

공화국의 문화센터에서 수영이며 헬스를 하고,

공화국의 예술회관에서 인간다운 삶을 향유하며,

공화국의 학교에 아이들을 맡긴다.

정말 만만세다.

 

 

2.  황제 납시는 날...슬픈 공화국 풍경

 

2월 15일은 이 도시에 두개밖에 없는 대학교의 졸업식이 있던 날이었다.

대학교 이사장님이 공화국 황제시라  대학교 졸업식을 2부제로 실시했다.

오전, 오후로 나누어서.

오후에 졸업식을 하기로 한 '00과학대학교'에서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불자동차가 뜨고, 경찰이 깔리고...

동네 사람들은 졸업식장에서 뭔 난리가 났는지 구경할 거라고

예년보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학교로 몰려왔다는 후문이 있다.

 

오후 2시부터 졸업식이 거행될 예정이라고 했다.

사람많은 자리에서 억울한 백성들이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졸업식이 거행될 학교는

지어진지 얼마되지 않는 깔끔하고도 거대한 건물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 건물의 뽀다구를 유지하기 위해

'미화원'이라는 이름의 전문직(?) 아줌마들을 두었는데,

그녀들이 하필이면, 그날, 황제가 납시는 날

빨간조끼를 입고 식장을 누비겠다는 소식이 나돌면서

그 동네 경찰과 학교 행정당국에서 비상이 걸렸다.

아름다운 황제의 얼굴에 계란이나 밀가루를 투척,분사할까봐...

 

경찰들은 그 공화국의 파수꾼이다.

얼굴도 곱게 생긴 정보과 경찰이

그녀들에게 와서 부탁인지, 설득인지, 협박인지 모를 소리들을 했다고 한다.

' 계란이나 밀가루 같은 거 뿌리지 마라. 그러면, 사법처리 할 것이다'

그녀들은 혈기만 왕성한 젊은 남성들이 아니어서

'그런 행동을 하겠능교? 우리는 그냥, 피켓들고 유인물이나 좀 뿌릴 낌니더'

라고 고분고분 약속을 했다고 한다.

 

앗! 그런데,

12시에 정문에서 만나기로 한 붉은조끼 아줌마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녀들의 억울한 심정을 조금은 아는 사람이기에

홍보물 한장이라도 돌려주려고 그 자리에 갔던 사람이다.

연락을 해보니, 지하 탈의실앞에서 감금당해 있다고 한다.

아니, 무슨 군사정권 시절도 아니고,

아무리 식칼테러를 일삼던 공화국이지만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나 싶어,

달려갔더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분노 전에 놀라움과 서글픔이 차례로 밀려온다.

 

건물복도에 경찰들이 즐비하고

사람들이 꽉 몰려있다.

학교에서 동원한 구사대 140명이라고 한다.

 

지하에서 1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경찰도 아니고, 관리자들도 아니고

여학생들이 하얀 장갑을 끼고서

계단을 꽉 메우고 앉아 있다.

계단아래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빨깐조끼 입은 아줌마들의 쉰소리가 들린다.

'이봐라, 학생들. 너그. 이라면 안된다. 이기 무슨 짓인지 아나?'

'보소, 어른들이 이기 무슨 짓인교? 비겁하게 학생들한테 이런 짓을 시키고!'

학생들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머리를 땅으로 쳐박고, 눈을 흐린다.

 

어른들이라는 자들은 학교교직원노조의 '위원장''부위원장'이란다.

'이봐! 너그가 노조야? 왜 학생들을 이런 데 동원하고 그래?'

그들의 눈은 공포에 절은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있고

입에서는 느물거리는 비웃음과 욕설이 나오고

팔은 수시때때로 휘둘러지고 있다.

아수라장이다.

'어이! 남학생들, 여학생들하고 자리 바꿔!'

지시가 떨어지자, 남학생들이 우루루 몰려내려 와서, 자리를 대신한다.

 

기가 막혀서, 여기 저기서 목놓아 소리친다.

'이 봐라. 학생들. 너그 이라면 안되는 거다. 저 아줌마들,

7년 동안 이 학교에서 청소했다. 한달에 70만원 받고 일한다.

가족들도 부양해야 되는데, 그런 사람들이 해고된다고!!

너희들이 돈을 받고 여기 왔는지 어떤 지는 몰라도

이게 무슨 짓인지는 알고 해야지. 이게 뭐냐고?!'

 

그때, 계단아래에서 쉰소리를 지르다가 지르다가

붉은 조끼 아줌마중 한명이 까무러친다.

숨을 쉬지 못한다. 구토를 하고, 신음한다.

학생들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여전히, 슬픈 눈동자를 허공에 응시한 채...아무 대답이 없다. 숨소리도 없다.

 

그럴때,  학생회 간부급인지,

제법 나머지 학생들을 줄세워가며

'비키세요.그만하세요'라며

신경질을 내기도 한다.

전경대의 고참들처럼...

 

한 사람이 쓰러지고, 119를 부르고

구급차가 오는 소리가 나자,

학교당국 어른들이 학생들을 뺀다.

 

곧이어, 구급대가 왔다.

'가스 폭발아니네!'라고 한다.

신고한 사람은  '지하실에 사람이 쓰러졌다'고 했는데

그걸 가스폭발이라고 듣고 열대도 넘는 소방차가 출동을 했다.

온 동네에 싸이렌 소리를 울리면서...

 

병원으로 실려가고,

나머지는 피켓을 들고 졸업식장으로 나선다.

어설픈 글씨로 쓴 절절한 사연을 담은 홍보물을 들고서...

 

식이 시작되고, 아름다운 축하곡들이 울려퍼지고 황제가 납신다.

찬란한 황금빛 휘장을 칭칭 두르시고,

 이 도시의 시장을 비롯한 대신들을 거느리시고...

 

어느새 붉은 조끼 아줌마들과 그녀들을 지원하려고 달려온 사람들이

저마다 피켓 하나씩을 들고서 높은 언덕이나 난간위에 늘어섰다.

황제께서 잘 보이시라고...

 

황제는 쾡한 눈을 허공에서 이리 저리 굴리며

맥아리 없는 축하문을 '낭독'한다.

 

보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알지 못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날의 풍경에 대해서...

 

그리고, 아주 아주 못된 탄압이 되어 다시 올 것이다.

지금까지, 황제의 공장에서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죽은 자든, 살아 남아 아픈 자든,

노동자라는 노동자, 노동조합이라는 노동조합은

다 싸그리, 응징해온 그 자랑스런 공화국의 역사를 지켜온 자, 황제이므로..

그들은 그들의 역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프다.

학생들이 구사대로 활용될 수있는 시대가 지랄맞아 미치겠고,

앞으로 이 8명의 붉은 조끼의 아줌마들에게 닥쳐올

칼바람이 눈에 보여 아프다.

 

그러나, 언니들은 나보다 강하다.

그들은, 50넘어 처음으로

'내게도 인격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인간취급도 안하더니, 경찰이고 학교고 우리를 무서워 한다'

며, 그걸 지키겠다고 입술을 앙다물고 있다.

여려 보이지만, 나보다 강하다.

그들을 믿기에 그들에게 기댄다.

거칠고 힘센 것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살아갈 희망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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