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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없는 것들

한동안 영화를 보지 않았다.

한때, 한달에 한두번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서

묘한 포만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가까운 지인들, 그러니까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영화를 보고 뒷풀이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사는 재미였을 때도 있었다.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내안에 있는 개똥철학들과 내가 느끼는 표현기법들을 엮어서

구슬을 꿰듯 이야기 하곤 했다.

내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언젠가부터 여럿이 함께 영화보기가 싫어졌다.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는 과정도 귀챦고

영화보고 이야기하는 일도 심드렁해졌다.

웬지 낭비같은 ...

그러다가,

혼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좋았을 때가 있었다.

혼자 영화관에, 혹은 DVD관에 가서

영화보는 행위를 하는 내가 괜시리 마음에 들었다.

느긋한 자유...그리고, 용기?

 

그런데, 그마저 시들해졌다.

비디오를 빌려 보는 것도 시들하고

다운받아 보는 영화도 시들해진 거다.

아마도, 그동안 내 영화보기 습관에 대해

내가 지겨워하고 있는 것 같다.

또, 영화보다 영화같은 삶

현실의 겨움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모든 영화에 대한

내 저항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함께 영화보면서

세상에 대한 태도와 감정을 공감하고 나누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날, 전혀 다른 가치태도와 정서체계를 느끼며

지독한 우물에 빠지다 보니

함께 영화를 본다, 이야기를 한다...하는 행위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도 같다.

집에서 비디오를 보고 있는 문화도 싫어진 거다.

나는 그 시간 다른 것들을 더 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화가 삶속에 어떤 작용도 하지 않은 채

현실을 방치하고, 영화속에 몰입되어 있는 상황이 싫은 지도 모른다.

아마 나는, 현실에 대해 더 치열하게

일상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은가 보다.

 

그러던 내가,

간만에 마음을 열어(?) 영화 한편 봤다.

지인의 강추로...

영화관가기 보다 비디오로 보는 건 더 싫지만.

간만에 실로 간만에...

 

예의없는 것들...

몰입하지 않으면서 배시시 웃음을 흘려가며 보다가

마지막으로 가면서 완전 몰입되어 울어버렸다.

인생 전반이 지지리 궁상스러운 인간군상들이

통째로 떠올라서...

그리고, 그 인간들이 만나고 싶은 그 놈의 사랑.

누구나 그렇게 사랑을 만나고 싶어하는데,

이 세상은

그들에게, 아니 어떤 이들에게 그 간단한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세상속에 담겨버린 인간들은

제 스스로 만들어가고 싶으면서도

또 제 스스로 허락하지 않고, 빗장을 걸기도 하는...

그 놈의 사랑이라는 것,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사랑, 생명에 대한 생명의 사랑...그리고 무수한 사랑들...

연애만이 아니라...

 

평생, 제 스스로를 외롭게 할 것 같은

내 속의 깊은 병이 느껴져서 인지...

예의없는 것들을 제거하려는

못난(?) 인간의 사랑이,

죽음앞에서야 비로소 사랑을 확인하고 행복감이라는 걸 느끼게 되는

그 못한 인간들의 운명이,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사면초가의 조건을 만나고 사는,

내가 알고, 내가 시선두는

숱한 존재들이 떠올라서

그냥, 영화보다가 울었다.

그러다가, 술한잔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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