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아베 총리는 적극적 평화주의의 선장이 될 수 있을까?

[20141103_아베 총리는 적극적 평화주의의 선장이 될 수 있을까.hwp (29.50 KB) 다운받기]

 

------

 

아베 총리는 적극적 평화주의의 선장이 될 수 있을까?
- 고 박지영 씨 등을 세월호의 선장이라 명명하며
dolmin98@hanmail.net
돌민


1. 다른 사람은 배와 함께 가라앉게 하고 자신은 배에서 탈출한 세월호 선장을 두고 뉴욕 타임즈는 선장의 의무에 대한 국제적인 전통이 깨졌다고 전했다(The New York Times, Breaking Proud Tradition, Captains Flee and Let Others Go Down With Ship, 2014년 4월 19일, http://www.nytimes.com/2014/04/20/world/asia/in-sad-twist-on-proud-tradition-captains-let-others-go-down-with-ship.html?hp&_r=1). 그런데 나는 세월호의 선장은, 진짜 선장은 따로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선장보다 더 선장다웠던 그들은 바로 고 박지영 씨 등을 비롯한 몇몇 의인들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 박지영 씨는 사고 당시 현장에서 “선원들은 제일 마지막이다. 친구들 다 구해주고 난 나중에 나갈게”라며 다른 사람의 탈출을 도왔다고 전해진다.

2.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집단자위권을 행사하겠다며 “적극적 평화주의”를 주장한다. 아베 총리는 군사력을 확대해 모든 위험을 적극적으로 예방한다는 뜻으로 평화주의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지금 일본이 행사하려고 하는 소위 집단자위권은 유엔헌장 51조가 보장하는 집단자위권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훼손하는 미일동맹에 의거한 집단방위다.”(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일본 집단 자위권 행사 각의결정에 즈음한 기자회견문, 2014년 6월 30일, http://spark946.org/renew/prog/bbs/board.php?bo_table=kuj&wr_id=579&page=3) 더구나 적극적 평화주의란 전쟁에 대한 반대로 평화주의를 정의하는 소극적 평화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개념으로서, 전쟁을 포함한 폭력 전반에 대한 반대로 평화주의를 적극적으로 정의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집단자위권이야말로 사실상의 집단방위로서, 위험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폭력 전반을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 평화주의를 어기는 일이다. 즉 적극적 평화주의에 대한 국제적인 전통이 깨졌다고도 할 수 있겠다.
 적극적 평화주의의 선장은, 진짜 선장은 누구일까?

3. “In Japan’s post-nuclear disaster society, the national death drive has manifested itself in three main forms: (1) working class suicide due to “Abenomics” (the economic policies of the current prime minister, Shinzō Abe); (2) antagonism toward other Asian countries; and (3) the project to reconstruct Fukushima and support the local economy by willingly consuming irradiated food.”(Sabu Kohso, Mutation of the
Triad: Totalitarianism, Fascism, and Nationalism in Japan, e-flux, 46호, 2014년 6월, 6쪽, http://www.e-flux.com/journal/mutation-of-the-triad-totalitarianism-fascism-and-nationalism-in-japan/)

 위에 인용한 문단에서 사부 코소가 지적하고 있는 세 가지 (1) 아베노믹스, (2)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의 적대, (3) 후쿠시마 방사능에 쪼인 음식을 먹는 프로젝트는 각각 1 2008년 금융위기, 2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3 3·11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일본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일본의 민족주의는 미국의 세계군사패권전략의 일부가 된다. 미·일동맹, 한·미·일삼각군사동맹, 그리고 나토의 글로벌파트너십(GP)이라는 사실상의 나토의 동진(東進)을 통해서 말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중국포위를 위해 동북아에서 서남아에 이르는 이른바 “불”안정한 활꼴 모양의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은 이에 맞서 유사시 중국의 1차 해양방위 경계선인 오키나와∼대만∼남중국해로 연결되는 제도련 즉 섬사슬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나아가 2020년에는 제2도련 사이판∼괌∼인도네시아까지 제해권을 확보한다는 그래서 지역전쟁에서 완승할 수 있는 군사력을 건설한다는 군사전략(「2011년도 평통사 워크숍 “올해는 출발부터 조짐이 보여”」, 『평화누리 통일누리』 제101호, 2011년 1월호, 19쪽.)을 밝히고 있다.
 잠시, 이러한 2010년대를 테러와의 전쟁의 2000년대와 비교해 보자.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그 비대칭적 전쟁 자체가 바로 테러였던 것이 2000년대라면 그런 테러들이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라는 이름으로 전 지구화되는 것이 2010년대인 것은 아닐까? 만약, 적극적 평화주의가 아직 대안일 수 없는 것이 2010년대라면 테러들이 이미 대안일 수 없었던 것이 2000년대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 2000년대의 테러와의 전쟁은 이미 패배했기 때문에 2010년대인 오늘 아시아로의 회귀라는 이름에,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이름에 기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4. 올해 2014년은 갑오농민전쟁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더 멀리는 2010~11년 아랍의 봄과 월스트리트 점거시위, 1968년 68혁명, 그리고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있다. 더 오래는 노비 만적의 난이 있다. 더 멀리는, 더 오래는 스파르타쿠스 반란이 있다.
 물론 고 박지영 씨는 “선원들은 제일 마지막이다”라며 자신을 선장이 아닌 선원이라고 명명했지만, 나는 고 박지영 씨 등을 마지막 선원·영원한 첫 선장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왜냐하면 어쩌면 우리들은 처음부터 선장이 아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980년에 광주민중항쟁에서도, 1987년에 6월 민주항쟁에서도, 그리고 언젠가에 적극적 평화주의에서도 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