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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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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오랜만에 불질. 또 정줄 놓고 논거 티 팍팍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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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된건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작업실 컴 앞에 앉아서 뭘 해야할지 떠올려봤을 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면 괜히 작업실에서 히히덕 거리며 웹툰이나 보거나 쓸데없는 웹서핑 같은거나 하고 시간이나 떼우고 올게 분명하지. 그러니 그냥 집에서 놀자 ㅇ-<-< 라는 식이 되어버려 또 그냥 공치는 나날들이다. 근데 정말 뭘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어쩌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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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아아. 떼창연습 때문에 오랜만에 옛날 화면들을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현장과 분리되는 것에 대한 불안은, 아마도 대추리에서의 삶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떤 대의나 명분에 가담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활동가'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했던 것이, 어떤 '활동'을 한다는 마음보다는 '그냥 필요한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운동을 한다'거나 '활동을 한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었다. (운동에 대한 자각도 별로 없었거니와). 마을을 나온 후에, 그리고 여태까지도 드문드문, '나는 왜 주민들과의 관계를 꾸준히 이어가지 못하나'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추리의 대의명분인 '미군기지 확장반대'는 평화운동, 인권운동의 범주(및 반미운동환경운동 등등이 함께 있었지만 어쨌뜬) 안에 있었다 하더라도, 오히려 어떤 면에서 내가 겪은 삶은 공동체운동이랄까 지역주민운동이랄까, 그런 측면도 동시적으로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그런 개념이 별로 없었을 뿐.. 이런저런 이유를 달지만 어쨌든 나를 추동하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관계'라고 정의 내렸기 때문일것이다.

 관계를 쌓고 만들어나가고 하는 것은 왜 중요해졌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주민들'하고 뭉뚱그리면 막 낭만화되고 아련아련한 이미지에 막 그러니까 마치 개개인들이 엄청나게 친하고 살갑고 서로 두텁고 행복한 그런 시간을 보냈을 것만 같지만 사실 곰곰히 짚어보면 한명 한명의 모든 주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거나 엄청나게 두터운 관계를 쌓았다고 볼 수도 없다. 그 중에 어떤 분들과 생각지도 못하게 마음을 많이 주고 받은 경우도 있고, 이러저러한 때도 있었으나, '우리'를 묶어주던 '투쟁 중'이라는 얼개가 풀렸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깊은 관계, 혹은 다른 측면의 접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이 참 오랫동안 죄스러웠다.(물론 내가 참 연락을 안하고 못하고 막 그렇긴 했다 흑흑) 투쟁 '끝' 이라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 이제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여전히 '투쟁 끝' 뒤에 무엇이 자리해야하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이런 마음에서 출발했던 것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데 묶어서 작업하자고 생각했던 것에는. 

그냥.. 그렇다고;;;;; 하도 오랫동안 작업에 대해 생각조차 안하고 있어서 잊어먹게 되는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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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연대

 

특별하고 비일상적으로 보이는 현장과 평범하고 일상적인 연대.

 

일상의 연대, 일상적인 연대라는 것은 무엇일까?

폭력이 난무할수록, 혁명이 나약할수록, 투쟁이 길어질 수록.

그래서 연대가 만연한 시절. 만연하게 연대해야만 하는 시절.

그래서 특별한 행위, 특정적인 행위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행하게 되는,

 

보통 사람들의 비일상적인 삶에의 일상적 연대.

 

나의 큰 줄기는 이것이였따!!!!!!!!!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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