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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협> 결국 가긴 갔다

 

<낭만일생>으로 다시 돌아오니 채 풀지도 않은 짐이 그대로 방에 놓여 있다. 다행히 옆 침대는 그대로 비어 있다. 잠시 침대에 누워 있는데 여주인인 승경씨가 방을 좀 옮겼으면 하고 찾아온다. 커플이 한 방에 묵을 예정이니 옆방 침대로 옮겨 달라는 부탁이다. 그러마 하고 옮겨보니 그 비구니 스님과 한 방이다. 그 사이 호도협에 다녀오셨단다. 스님과 하루밤을 묵은 뒤 스님은 루구호로 떠나시고 표준방으로 방을 옮긴다. 원래 도미토리로 지은 곳이 아니라 씻는 것이 영 불편한데다 승경씨가 가격도 조금 낮춰 줘 그냥 며칠 편하게 지내자 하는 맘으로 옮긴 것이다. 그날 저녁 게스트하우스로 한 쌍의 남녀가 찾아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둘도 그냥 어딘가에서 만난 사이일 뿐 커플은 아니다. 호도협 같이 갈 일행을 찾으러 왔다는 거다. 둘이 가면 되겠구만.. 그건 좀 그런가 싶어 새로 들어온 커플에게 물어보니 이미 다녀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밖에 없다. 하긴 나도 호도협에 가긴 갈 예정이다. 단지 언제 갈지 결정을 안했을 뿐이다^^ 언제 갈 거냐고 물었더니 내일이나 모레 아무 때나 좋단다. 그래 이 기회에 갔다오자 싶어 다음다음날 떠나기로 약속을 한다.


다음날 호도협에 같이 가기로 한 일행 중 중 남자가 숙소를 낭만일생으로 옮긴다. 혹시 숙소를 옮기게 되면 같이 방을 쓰자고 했던 여자는 그냥 원래 숙소에서 묵겠다고 한다. 방값이 조금 부담되지만 차라리 잘됐다 싶다. 간만에 혼자 방을 쓰니 그 편안함이 돈에 비길 바가 아니다. 그날 은행 관련 일처리를 부탁하려 메신져에 들어갔다가 결국 문제가 생긴다. 은행 문제를 부탁하기엔 내 후임인 명희가 제격이라 명희에게 뭔가 부탁을 하고 난 뒤 인사말로 결산은 잘했냐고 물으니 결산 서류를 좀 봐달라고 한다. 잔액이 딱 떨어지게 안 맞는다는 거다. 일단 파일을 받아 봐도 잘 모르겠다. 이 복잡한 숫자들을 이전에는 어찌 맞췄단 말인가^^ 결국 하루종일 메신져로 이야기를 해봐도 이 서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는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결산 제출을 하루 이틀 미뤄보라고 하고 다음날 다시 이야기하기로 한다. 여행하고 처음으로 밤새 액셀과 씨름을 한다. 결국 답이 나온다.


답은 나왔지만 아침에 명희와 얘기도 해야 하고 잠도 거의 못자 도저히 호도협을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7시 30분에 어디서 만나기로 한 것 외엔 묵고 있는 숙소도, 이름도 모른다. 7시 반에 약속 장소로 나가 사정을 설명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늦게 잠든 탓인지 눈을 떠보니 벌써 8시다. 그래도 다른 일행이 있으니 괜찮겠지 했는데 아침에 나가보니 웬걸 그 남자, 재철씨도 약속장소에 안 나갔단다. 둘이 서로 황당해한다. 이 친구, 일행 찾으러 일부러 한국인 게스트하우스까지 왔는데 이렇게 바람맞다니 무척 황당했겠다 싶다. 미안하지만 방법이 있나.. 그저 잘 다녀오겠거니 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다시 한나절을 메신져와 씨름을 하고 나니 겨우 그럭저럭 결산 문제는 해결이 된다. 호도협 일정이 이렇게 어긋나 버리고 나니 그저 숙소에서 빈둥거리는 것 외에 별로 할 일이 없다. 낮에는 여주인인 승경씨와 농담 따먹기나 하고 밤에는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과 술이나 마시고 그도 심심하면 방마다 설치되어 있는 DVD나 보거나 장기 체류자에게서 빌린 스피커로 음악이나 들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 모두들 궁금해 하실 장기 체류자는 그새 어떤 중국 여인네에게 낚이셨다고 하니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하기로 한다.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며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그렇게 이삼일을 보내고 나니 어느 날 저녁 승경씨가 미안한 듯이 말을 건넨다. 언니가 언제까지 있겠다는 말을 안해서 방예약을 모두 받아버렸다고.. 그래서 내일 하루는 옆집에서 묵을 수 없겠냐며 미안한 표정이다. 순간 기분이 상한다. 미리 언제까지 묵겠냐고 물어보지도 않아 놓고 묵고 있는 방을 옮기라니.. 뭐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짐 한번 싸는 건 쉬운 일인가.. 사실 그것보다 정붙이고 있던 곳에서 버림받은 것 같은 마음이 더 크다. 그냥 홧김에 내일 방 빼겠다고 말하고 방으로 올라와 버린다. 그리고 나서 짐을 싸려 하니 마음이 영 편하지가 않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어차피 내일은 방이 없다니 호도협이나 다녀오기로 한다. 호도협은 어차피 1박 2일 코스이다. 그 다음 일정은 다음에 결정하기로 하고 아침 일찍 짐을 맡기고 호도협 가는 버스를 탄다. 막상 버스표를 끊고 보니 돈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난다. 원래 일정에 없던 일을 하면 꼭 이런 일이 생긴다. 버스정류장 근처에 은행을 들러 봐도 아침이라 그런지 ATM기는 사용이 되질 않는다.


버스를 타고 처우터우 호도협 입구에서 학생증을 내미니 다행히 반액할인이 된다. 앗싸.. 그래도 가지고 있는 돈은 80원 정도 밖에 없다. 하루밤 방값이랑 세끼 식사, 리장으로 돌아가는 차비까지 그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산속이라 물가가 비쌀텐데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래도 어찌되겠지 하며 호도협으로 들어서는 산길로 접어든다. 이미 들어 왔던 대로 마부 하나가 뒤따라 붙는다. 호도협은 28밴드로 불리는 약 1시간 30분에 이르는 산길을 제외하면 비교적 평탄한 굽이길인데 이 곳에서 말을 타게 하기 위해 거의 두어 시간을 마부가 뒤따라 붙는다고 한다. 뭐 초기부터 표적이 된 모양인지 그리 많지 트레킹족들 중에 유독 내 뒤만 졸졸 따라온다. 그래 뭐 상태로 봐서 표적을 잘 찍긴 했는데 미안하다. 돈이 없다^^ 하며 그냥 걷는다. 누구는 말목에 걸린 방울소리가 거슬려 나는 스테파니야.. 저건 목동의 방울소리고.. 하는 최면을 걸기도 했다는데 아무도 없는 산길에 마부라도 따라와 주니 차라리 안심이 된다.



호도협 입구에서 본 금사강


저 말이다. 저리 앞서가다가도 어디선가 보면 옆에 다가와 있다.


점심을 먹은 곳인 나시객잔, 반대쪽에서 오면 여기서 자게 될 지도 모르겠다.


두 시간쯤 산길을 오르니 점심을 먹는 장소인 나시객잔이 나온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볶음밥 하나를 시키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탁자에 놓인 콜라 하나를 집어 든다. 아무리 산 속이지만 설마 콜라 하나에 20원이야 받겠어 하는 맘이다. 다행히 볶음밥과 콜라를 합쳐서 10원이 나온다.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서니 그때부터 28밴드가 시작된다. 나를 따라 오던 마부는 그새 중국인 관광객 4명 중 하나를 싣고 저만치 앞서간다. 이제 말을 탈래도 돈도 없고 말도 없다^^. 냅다 걷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한 삼십분을 헐떡이며 걸어가니 말을 타고 가던 일행이 쉬어 가는 곳이 보인다. 잠시 쉬었다 다시 말타는 일행보다 먼저 길을 나선다. 저만치에서 말을 타고 오는 일행이 보인다 싶더니 이내 나를 앞지른다. 말에 타고 있던 중국 아저씨 하나가 걸어가는 나를 보더니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하는 말이 니가 말보다 낫단다. 얼떨결에 쎄쎄 해놓고 가만 생각해보니 이게 말이야 말뼉다구야 싶다^^. 다시 한 시간여를 부지런히 올라가니 정상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대충 내리막길 내지는 평지다. 까마득한 협곡을 아래에 두고 부지런히 걷는다. 이제 미부도 따라오지 않고 모두들 어디에 갔는지 앞뒤를 둘러봐도 나 혼자다. 세 시간여를 걸으니 숙소로 점찍어 둔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보인다.


아래쪽으로 까마득한 협곡이 보인다.


실처럼 보이는 것이 길이다.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 이른바 중도객잔이다.


게스트하우스는 다행히 도미토리가 있는데다 가격도 10원이라는 감동적인 수준이다. 이 정도면 대충 돈이 없어서 리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낭패는 없겠다 싶다.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에 있으니 아침에 버스에서 만났던 일행들이 속속 도착한다. 그러면 그렇지 니들이 가면 어딜 가겠냐 싶은데도 이상하게 트레킹 도중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하긴 굽이굽이 산길이니 조금씩만 떨어져 있어도 인적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하프웨이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에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 티나객잔에 도착한다. 보통 이곳에서 다쥐꺼지 트레킹을 계속하면 2박 3일 일정이 된다는데 뭐 2박 3일까지는 엄두가 안나 그냥 버스를 타고 리장으로 돌아온다.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폭포. 지금은 건기라 그렇지만 우기 때는 저길 어찌 지나가나 싶다.


리장에 도착하자마자 은행에 들러 돈을 찾는다. 돈을 찾고 나니 안심이 된다. 그리고 잠시 고민에 빠진다. 짐을 맡겨 두었으니 낭만일생에 들르긴 해야 할텐데.. 오늘은 늦어서 어디 다른 도시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 일도 내키지는 않는다. 그냥 하루밤 더 묵는 수밖에.. 짐이 거기에 있으니 일단 낭만일생으로 가 본다. 승경씨도, 원래 호도협에 같이 가기로 했던 재철씨도 심지어 앤디도 보이질 않는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장기체류자에게 물어보니 어제 문씨아저씨가 내려와 모두들 술한잔하고 한밤중에 옥룡설산으로 올라갔단다. 그래.. 옥룡설산에 가도 되겠구나 싶다. 혹시나 하고 받아두었던 번호로 전화를 해보니 오늘 사람들과 함께 내려 올테니 기다리고 있으란다. 그래 그럼 옥룡설산에나 가서 며칠 쉬었다 가야겠다 맘을 바꿔 먹는다. 아직 중덴으로 올라갈 준비는 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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