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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5/08
    <장무가는길> 간체-시가체-사카-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장무(14)
    제이리
  2. 2006/05/08
    <남쵸> 남쵸에서의 0.5박(4)
    제이리
  3. 2006/05/08
    <라싸> 공짜로 사원 들어가는 법(3)
    제이리
  4. 2006/04/25
    <청두2> 이건 서비스 버전이다^^(12)
    제이리
  5. 2006/04/12
    <송판> 결국 싸우고 헤어진다(9)
    제이리
  6. 2006/04/12
    <구채구> 물빛이 장난이 아니다(5)
    제이리
  7. 2006/04/12
    <청두> 다시 봄날이다(5)
    제이리
  8. 2006/04/03
    <캉딩>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10)
    제이리
  9. 2006/04/03
    <리탕> 샹청을 지나 리탕까지(7)
    제이리
  10. 2006/04/03
    <중덴> 론리 너무하다!!!(6)
    제이리

<장무가는길> 간체-시가체-사카-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장무

 

결국 라싸에서 열흘 정도를 머물고 나니 이제 떠나야 할 날짜가 다가온다. 라싸에 있는 여행자들의 대부분이 네팔로 넘어가는 일정인데 그간 네팔 상황이 좋지 않아 시간을 두고 관망하고 있던 사람들이 네팔 정국이 조금씩 안정되어 간다는 소식에 슬슬 떠날 준비들을 시작하는 것이다. 네팔로 가기 위해서는 중국 측 국경인 장무에서 네팔측 국경인 코다리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티벳은 라싸와 시가체를 제외한 다른 지역이 공식적으로 여행허가가 필요한 곳이라 대부분은 랜드크루저를 빌려-이 경우 허가증은 여행사가 대행해준다- 가고 싶은 도시를 들러 국경으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그냥 허가증 없이 개인적으로 가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고 그냥 육로로 이동하는 여행자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 마지막까지 그냥 이동할 생각을 해본다.


돈 아낄려고 점심도 굶는다는 짠돌이 남학생과 인도에 봉사하러 가기 위해 빨리 네팔에 들어가야 한다는 여학생 하나가 다른 도시를 들리지 않고 국경으로 직행하는 버스를 타고 떠나는 것을 시작으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명도 의견이 분분해진다. 나랑 사진작가 친구는 처음부터 육로, 육로 했기 때문에 랜드크루저 승차 인원에서 제외되어 있었는데 나머지 다섯명 중 세명이 남쵸를 다녀 온 밤에 전격적으로 서티벳 행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나머지 두명이 애매한 처지에 놓인다. 그즈음 우리 역시 육로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을 거란 생각과 결국 비용도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랜드크루저로 떠날 생각을 한다. 랜드크루저를 탄다면 어차피 들리고 싶은 도시도 다 들르는데다 육로로는 갈 수 없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갈 수 있다는 것도 매력으로 작용한다, 결국 며칠 뒤 떠나는 서티벳팀을 뒤로 하고 네 명이 랜드크루저를 타기로 한다.


티벳을 가기 위해 다시 들어온 중국에서 정작 티벳에서 보낸 시간은 불과 두주일 남짓이고 나머지 두달은 운남과 사천에서 빈둥거린 셈이니 어쩐지 좀 이상한 일이다 싶긴 하지만 라싸에 별다른 미련도 없다. 그저 여느 도시처럼 생각하면 되는 것을 괜한 의미를 애써 부여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여행이란 그저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지 정도로 생각해 두기로 한다. 여튼 사진작가 친구와 나, 그리고 부실한 대구 청년과 글 써서 먹고 산다는 황작가 이렇게 네 명이 한팀이 되어 라싸를 떠난다. 라싸를 출발해 간체에서 하루자고 다시 시가체를 거쳐 사카에서 다시 하루밤 그리고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하루밤을 더 지낸 뒤 국경까지 가는 총 3박 4일의 여정이다. 장무까지 가는 길은 고산지대답게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황량한 산들이 이어진다. 이 풍경은 4일 내내 거의 바뀌지 않는데 이렇게 척박한 땅에 삶을 일구고 사는 사람들에게 새삼스런 경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첫날은 암드록쵸 호수를 거쳐 간체로 향하는 일정이다. 암드록쵸는 남쵸보다 규모는 작지만 물빛이 유난히 예쁘다는 호수로 차로 산을 굽이굽이 올라가 거의 정상에 이를 무렵 그 모습을 드러내 감탄을 자아낸다. 얌드록쵸를 지나자 끝없는 산들과 황량한 벌판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간체가는 길에 보여주는 티벳의 황량한 아름다움은 마치 이 곳이 지구가 아니라 다른 별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차는 오후가 훌쩍 지나서야 간체에 들어선다. 서둘러 짐을 풀고 간체 시내에 나가본다. 1904년과 5년 영국군이 침공해 왔을 때 영국군을 상대로 두달 이상 버티었다는 간체성을 지나 펠코르 체데라는 사원까지 걸어가 본다. 이곳도 역시 입장료의 압박이 만만치 않다. 이제 돈 내고는 입장하지 않는 습성이 몸에 배어버린 탓이지 모두들 입구에서 그냥 돌아선다. 티베탄 마을 사이에 서 있는 작은 언덕에 올라 사원도, 마을도 내려다보며 여기서도 다 보이는데 뭐 하며 시시덕거리다 내려온다. 확실히 라싸를 벗어나니 전형적인 티벳탄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얌드록쵸 호수


간체 가는 길


간체 마을에 있는 간체성, 물론 올라가지는 않았다.


다음날도 아침 일찍 랜드크루저를 타고 시가체로 출발한다. 시가체는 라싸 다음으로 큰 티벳 제2의 도시인데 달라이라마에 이은 제2의 실권자인 판첸 라마가 사는 타쉬룬포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 시가체에 있는 판첸라마는 중국이 세운 허수아비로 티벳인들은 그를 판첸라마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그들이 진짜라고 믿고 있는 판첸라마는 북경에 억류되어 있는데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한다. 둘째날은 가는 길이 멀어 시가체에서는 그저 삼사십분 타쉬룬포사만 둘러보기로 한다. 그러나 습관이 어디 가랴..이번에도 매표소 앞에서 이제 티벳 사원은 지겹다.. 진짜 판첸라마도 아니라는데 하며 일제히 돌아선다. 정말 이젠 아쉽지도 않은 것이 고만고만한 티벳 사원들이 더 이상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가체에서 떠나 라체에서 점심을 먹고 사카로 향한다. 라체에서 사카까지의 길은 장난이 아니다. 일단 비포장인데다 길 전체가 공사 중이라 도무지 창문조차 열 수 없는 상황이다. 두어 시간을 차 속에서 흔들리다 사카에 도착하니 기진맥진이다. 이젠 사카에 있다는 사카사원 입구에 가보자는 소리조차 아무도 꺼내지 않는다. 그저 숙소 식당에서 맥주나 마시며 노닥거린다.


 시가체에 있는 타쉬룬포사

 


사카 가는 길

 


티벳의 아이들


셋째날은 이 여정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난이도가 높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구간이다.  이 구간의 난이도가 높은 이유는 베이스캠프까지 이동하는 길도 만마치 않지만 밤에 몹시 춥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다녀온 사람들의 한결같은 증언이 추워서 죽을 뻔 했다이니 아무래도 만만한 곳은 아닌 것 같다. 결국 라싸를 떠나면 버리려고 했던 겨울옷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바리바리 싸오긴 햇지만 남쵸애서의 악몽이 슬며시 되살아난다. 사카에서 베이스캠프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라 공원 입구에서 타고 온 랜드크루즈는 세워둔 채 다시 돈을 내고 공원에서 운영하는 버스로 갈아타고 한 시간 남짓 올라가야 하는데 이곳 또한 베이스캠프는 아니고 베이스캠프 아래에 있는 롱복 사원까지만 데려다 준다. 이는 좋게 해석하면 자연 보호를 위한 행위라 생각되지만 개인당 65원의 입장료를 받는데다 그것도 모자라 차 한대당 405원의 입장료를 또 징수하고도 다시 차비로 80원을 더 받는 행위로 미루어 보건데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닌가 일말의 의심을 지우기가 어렵다. 여튼 베이스캠프는 다시 여기서 걸어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데 걸어갈 수도 있고 얼마간의 돈을 내고 마차를 타고 갈 수도 있게 되어 있다.


 에베레스트베이스 캠프 가는 길


 에베레스트베이스 캠프에서, 뒤에 보이는 것이 에베레스트이다


오갈 때는 마차를 탄다. 대략 일행들과 마차를 탔다는 건 살짝 숨기기로 약속했건만..    다들 비밀입니다^^


숙소 역시 롱복 사원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거나 아예 베이스캠프까지 가서 그곳에 있는 천막에서 잘 수도 있다는데 남쵸에서 질린 우리 일행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게스트하우스 방을 먼저 잡아둔다. 그리고 마차를 타고 베이스캠프로 향한다. -사실 에베레스트를 말타고 갔다는게 좀 그렇잖아 해가며 이 부분은 깨끗이 편집해 버리기로 약속을 했는데 쩝-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네팔 쪽에 하나, 티벳 쪽에 하나가 있다는데 네팔 쪽 사정이야 어떤지 모르겠으나 티벳 쪽은 거의 관광지가 다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마차에서 내리면 주욱 늘어선 천막들이 찻집 겸 숙소인데 그 호객 행위가 어느 관광지 저리 가라이다. 춥기도 추운데다 멀리 에베레스트 봉우리가 보이기는 하나 더 걸어가 봐야 그 풍경이 그 풍경이라 한시간 뒤에 돌아간다는 마차가 왜 이리 늦게 오나 싶은 지경이다. 다시 마차를 타고 돌아와 추위에 떨며 하루밤을 보낸다. 이 추위가 당분간은 마지막이다 생각하며 꾹 참는다. 하루만 지나면 고도는 낮고 온도는 높은 곳에 있을 거란 생각이 그 마지막 밤을 견디게 해 준다. 결국 담날 일출이고 뭐고 공원입구로 내려가는 제일 빠른 버스를 수소문해 타고 내려온다.


 장무 가는 길1, 설산을 하나 넘고서야


 장무 가는 길2, 드디어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3박 4일을 함께 달린 일행들-왼쪽부터 사진작가, 글쓰는 작가, 부실한 대구청년 나, 티벳탄 드라이버- 그리고 일제도요타 랜드크루저 4500


마지막날은 국경도시 장무로 가는 길이다. 기사야 저녁까지 장무에 데려다 주면 되지만 우리는 당일로 카투만두까지 갈 생각이라 맘이 바쁘다. 다행히 네팔은 중국보디 2시간 15분이나 늦어 하루가 26시간 15분인 셈이니 당일로 넘어가는 일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오전 내내 길이라 할 수 없는 갈을 달리다 점심을 먹고 마지막으로 설산을 넘어 나니 고도가 조금 낮아지는지 푸른빛의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국경도시 장무에 도착한 시간은 5시가 조금 넘어있다. 중국측 국경이 6시에 닫힌다니 시간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게 웬일.. 국경도시답게 오가던 화물차들 덕분에 도로가 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결국 배낭을 메고 이미그레이션까지 걸어기서 간신히 수속을 마친다. 여기서 네팔 국경까진 다시 8km나 되는 산길이다. 그냥 봉고차 하나를 잡아타고 산을 넘어 네팔 국경을 통과한다. 당연히 카트만두를 가는 버스는 없을테니 호객하는 택시를 잡아 보자며 넘은 국경엔 이게 웬일 그 흔한 삐끼 하나가 안 붙는다. 이런 결국 물어물어 만만치 않은 가격에 택시하나를 빌려 카트만두로 향한다.


국경도시에서 카트만두까지는 버스로 5시간이 걸린다는데 이 택시 총알택시도 아닌 것이 굽이굽이 산길을 거의 80km로 내달린다. 보다못한 일행 하나가 천천히 가자고 하니 산아래에 6시까지 도착을 못하면 산을 나갈 수가 없다고 한다. 아.. 아건 또 언제 생긴 법이란 말이냐.. 그저 손잡이만 꼭 붙들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검문소를 정확히 6시에 빠져 나간다. 그후로 좀 천천히 가나 했더니 이번엔 폭우가 쏟아진다. 결국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을 헤드라이트에 의지한 채 가다가 급기야 타이어도 한 번 갈아주고도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 3시간 만에 카트만두에 들어온다. 일행 중 두명이 네팔에 수차례^^ 다녀간 경험이 있어 손쉽게 숙소를 잡는다. 늦었지만 씻고 저녁을 먹으니 비로소 네팔에 온 기분이 든다. 드디어 중국을 벗어난 것이다. 네팔, 어딘지 모르게 동남아 분위기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문화권으로 넘어온다는 건 여러모로 마음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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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쵸> 남쵸에서의 0.5박

 

라싸에서 약 195km 떨어진 남쵸 호수는 한국에서는 하늘 호수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라는 책 덕분에 엄청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뭐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보고 인도로 갔다는 가슴 아픈 후일담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라싸에 온 한국인은 대부분 이 호수를 다녀오는 것이 기본 일정에 속한다. 가는 길이 험하고 대중교통수단이 없는 이곳은 대략 여행사를 통해 랜드크루저를 빌려 다녀오게 되는데-뭐 가끔 대중교통수단이 있는 곳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트럭 등을 히치해가는 씩씩한 여행자도 있기는 하다- 이 경우 차 한대당으로 가격이 정해지니 대략 4-5명의 동행을 모아야 하는데 보통 게스트하우스 게시판에는 남쵸 뿐 아니라 동티벳이나 서티벳 또는 네팔로 가는 일행을 구하는 메모가 빽빽하게 붙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숙소에 있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희망자만 모아도 무려 8명이나 된다.


첨엔 일인당 150원에 미니버스를 한 대 빌렸다가 떠나기로 한 날 내린 폭설로 하루가 연기되면서 눈 때문에 미니버스는 못 갈 수도 있다는 여행사 직원의 말에 따라 일인당 200원씩 내고 랜드크루저 2대를 빌려 남쵸 호수를 향해 길을 떠난다. 해발 4600m에 이르는 호수는 다녀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해발이 높아 고산증의 위험도 심각한데다 숙소도 천막에 침상이 전부라 추위 또한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터라 침낭이며 겨울옷을 바리바리 챙겨 떠난다. 일부는 휴대용 산소통도 두어 개 준비해 나선다. 라싸에서도 며칠 보냈으니 이제 고산증은 괜찮겠지 싶기는 한데 그래도 맘을 놓을 일은 아니다 싶다. 라싸를 떠난 랜드크루저는 꼬박 5시간을 달려 해발 5000m가 넘는 고개를 넘어 남쵸에 우리를 내려준다. 오면서 쨍하게 맑던 하늘은 어느새 눈발이 날린다. 미리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천막을 보니 오늘 밤을 보낼 일이 막막하다.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뭐 이것도 천막이긴 하다-에서 삼삼오오 눈발이 그치기를 기다리니 잠시 후 거짓말처럼 다시 해가 뜬다. 날씨 한 번 변덕스럽다.


남쵸 가는길


호수 앞에 있는 천막 숙소, 그래도 입구에는 호텔이라고 써 있다.


반쯤 얼어있는 호수를 따라 걸어본다. 길이가 30km에 이르는 이 호수를 한 바퀴 돌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한두 시간쯤 호수를 따라 걷다가 다시 걸어간 길을 되짚어 돌아오니 천막 안에는 조금 허탈한 분위기가 감돈다.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먹으려고 사간 사과며 바나나 등의 과일을 어떤 짐승이 천막에 들어와서 죄 먹어버렸다는 데 그 범인 찾기가 한창이다. 개다, 말이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결국 산양이 범인으로 밝혀진다. 그래 문 안 잠근 우리가 잘못이지 니가 뭘 알겠냐 하면서도 모두들 한번씩 산양을 째려 봐 준다^^ 부실한 저녁을 먹고 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천막 식당은 가격은 비싸고 맛은 전혀 없는 관광지 식당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다- 해가 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쵸호수, 염수호라는데도 아직 얼어있다.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이 호수는 얼핏보면 바다같기도 하다.


그놈의 북경 표준시 때문에-전에도 한 번 언급했지만 중국은 전국이 단일 시간이라 티벳 정도면 두시간 정도 시차가 나야 정상인데도 그냥 북경과 동일한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 도무지 9시가 가까워져도 해가 지지 않는다-  해지기를 기다리는 일도 고역이다. 더구나 오늘은 날도 흐려 일몰이 보일 것 같지도 않다. 그나마 야크똥으로 피워주는 난로라도 있는 식당에서 해지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역시.. 해는 어디로 넘어갔는지 알 수도 없는데 어느새 어둠이 찾아온다. 그리고는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하는데 그나마 맑았던 날씨는 오간데 없고 거짓말 조금 보태 화장실-사실 화장실이라야 그냥 허허벌판이지만- 가다가 날려갈 지경이다. 이 고산지대에서 술을 마시는 것도 자살 행위라 그냥 자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겠다 싶어 천막 숙소로 돌아간다. 그간 각종 트레킹들마다 밤이 심하게 추웠던 기억은 있지만 이곳이 제일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천막으로 들어가 보니 이미 두 명의 환자가 발생해 있다. 하나는 라싸에서도 고산증으로 이삼일 고생했다는 대구 청년인데 고산증이 재발했는지 침낭에 이불을 두어 개 덮고도 바들바들 떨고 있다. 다른 하나는 내 일행인 사진작가 친구인데 도착하자마자 카메라를 들고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결국 탈이 난 모양이다. 본인은 체한 것 같다는데 내가 보기엔 그것도 고산증의 일종인 듯 하다. 고산증도 고산증이지만 해가 지고 나니 추위도 장난이 아니다. 내 여분의 옷에다 침낭까지 둘러쓰고도 추위에 떠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천막 펄럭이는 소리에다 그나마 발전기로 돌리던 전기까지 나가고나니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이렇게 두 명의 환자와 방안에 있는데 밖에서 오늘 그냥 내려가자는 말이 들린다. 아마 나머지 사람들끼리 의논이 된 모양이다. 일출도 봐야 하고 무엇보다 내려가는 길에 온천도 들려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설핏 스쳤지만 앞에 있는 환자들을 보니 내려가는 것이 최선일 듯도 싶다. 무엇보다 나 역시 여기서 하루밤을 지낼 일이 막막하다.


남쵸에서의 0.5박 동지들


결국 밤 열시에 다시 차를 몰고 라싸로 돌아온다. 모두들 천막에서 하루밤을 보내지 않아도 되어서인지 내려오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은 없어 보인다. 사진작가 친구는 결국 차를 세워 오바이트를 하고서야 조금 진정이 된다. 차에서 히터가 나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어둠을 헤치고 차가 라싸에 도착한 새벽 두시, 그나마 돌아와서 방이 없을까봐 그날 방값을 미리 지불하고 간 것이 다행이다 싶다. 그렇게 춥게 느껴지던 라싸의 밤이 이렇게 따뜻할 줄이야.. 결국 남쵸에서의 1박은 0.5박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다행히 두 명의 환자는 다음날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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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 공짜로 사원 들어가는 법

 

비행기가 새벽의 여명을 뚫고 날아오르자 저 멀리 구름 아래로 설산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도대체 이 척박한 설산들 어디쯤에 티벳이 숨어있는 것인지 라싸로 가는 두 시간 내내 산들의 행렬은 계속된다. 육로로 간다면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걸린다는 길을 비행기를 타니 그저 두시간만에 도착한다. 고도가 4천을 넘나드는 도시인 리탕이며 캉딩을 넘어오긴 했지만 성도에서 두주 이상을 빈둥거렸으니 새롭게 고산 증세가 나타나는 건 아닌가 잠시 걱정이 된다. 다행히 아래배가 조금 빵빵해지는 느낌을 제외하곤 별다른 증세는 없다. 북경에서 성도로 바로 넘어온 사진작가 친구도 다행히 별다른 증세는 없는 모양이다. 공항버스를 타고 라싸에서 내려 야크호텔을 찾아간다. 야크호텔은 성수기에는 거의 방을 구할 수 없다는 라싸에서는 가장 유명한 여행자 숙소인데 아직은 비수기인 탓인지 도미토리에 자리가 있다.


비행기에서 본 산들, 두시간 내내 눈덮인 설산이 이어진다


포탈라궁 앞의 도로, 그저 중국의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다.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이삼일 먼저 온 루미라는 일본인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사진작가 친구가 일본말이 가능한 관계로 수다가 가능하다는^^- 셋이서 함께 한국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간다. 열심히 밥 잘 먹던 사진작가 친구가 갑자기 일어나길래 그저 화장실에 가나 했더니 느닷없이 이층 난간을 잡고 푹 주저앉는 게 아닌가.. 으으.. 말로만 듣던 고산증세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보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다행히 그날 하루를 잘 쉬고 나니 다시 생생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첫날은 그저 조심조심 하루를 보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야크호텔에 묵고 있는 한국인이 거의 10여 명이 넘는다. 우리 옆방은 침대 6개중 5명이 한국인이니 아주 한국인 방이다. 거기에 묵고 있던 스페인애 하나는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못 견디고 방을 옮겼으며 마지막까지 중국애 하나를 제외하고는 하루 이상 머문 외국인이 없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제외하고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라싸는 더 이상 티벳이 아니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은 탓에 큰 기대를 안 하고 있어서 인지 나에게는 오히려 기대보다는 더 많이 티벳 분위기가 난다. 물론 들은 대로 조캉 주변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이미 한족의 상권이 자리 잡고 있어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 다를 바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공항에서 라싸로 오는 길에 펼쳐진 황량한 산들이며 조캉 사원 주변으로 여전히 보이는 티벳식 건물이며 거리를 오가는 티베탄들이 여기가 티벳임을 말해 주고 있다. 다만 너무 오래 돌아와서인지 여기를 오자고 그렇게 시간을 들였던가 조금 허탈해지는 맘도 숨길 수는 없다. 여튼 다시 쌀쌀해진 날씨에 몸을 추스르며 고산 적응에 -뭐 다른 건 아니고 담배 덜 피고, 술 안마시고 정도 되겠다- 하루 이틀을 보내다가 한두 군데 사원들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라싸에서의 최대 화제는 단연 <나는 어떻게 공짜로 사원에 들어갔는가>이다. 라싸의 최대이자 유일한 볼거리는 티벳 사원들인데 이 사원들의 입장료가 누가 중국 아니랄까봐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게다가 그 입장료가 티베탄들에게 가는 게 아니라 중국 정부로 들어간다는 소문이고 보면 그저 입장료를 안내는 것 뿐 아니라 약간의 정의감까지 더해져 공짜로 사원 들어가기가 거의 죄책감 없이 성행한다. 라싸의 사원은 티베탄 최대 성지인 조캉 사원과 그 주변의 바코르 길을 돌아보는 것을 시작으로 이미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라마 14세가 살던 포탈라궁, 그리고 그의 여름 궁전이었다는 노블링카, 티벳 3대 사원으로 알려진 드레풍사, 간덴사, 세라사 마지막으로 라싸 외곽에 있는 사뮈에사 정도가 있다. 물론 가이드북에는 나와 있지 않은 조그마한 사원들은 수도 없이 많다. 여튼 앞에 나열한 사원들만 돈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해도 거의 500원(6만원 정도) 돈이 된다. 어지간한 입장료는 내고 다니자는 나로써도 우선은 금액에서 질리는 동시에 내고 들어가면 바보가 되는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공짜로 들어가기를 시도하게 된다.


최대 성지인 조캉사원,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탄들을 언제나 볼 있는 곳이다


포탈라궁, 밖에서 볼 땐 화려한 데 정작 입장료를 내면 뒤로 돌아들어가 건물의 일부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바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일단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나 공짜로 들어갈 수 있다는 조캉사원부터 시도해 본다. 팁은 아.침.일.찍.이다. 아직 매표소 직원들이 자리 잡기도 전에 무료로 들어가는 티베탄 참배객들에게 묻혀 슬쩍 들어가는 건데 거의 100% 성공률을 자랑한단다. 물론 나도 바보는 아닌고로 무료로 입장에 성공한다. 하지만 티벳 불교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보기엔 뭐 사원은 그저 그만그만하고 주변에 있는 순례길인 바코르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탄 순례객을 보는 일이 더 흥미진진하다. 다음엔 포탈라궁인데 가끔 무료입장에 성공했다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두 번의 통과 의례를 거치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 대부분 울며겨자먹기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는 곳이다. 더구나 100원이라는 거금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볼 거 하나도 없어요>이고 보면 들어갈까 말까 무척 고민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도 포탈라궁인데.. 하는 맘에 그냥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뭐 볼 게 하나도 없지는 않지만 개방하는 곳이 워낙 일부인데다 정해진 곳 이외에는 한발자국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 본전 생각이 조금 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 거대한 궁이자 사원의 일부나마 몸소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 조금 위로가 될 듯도 하다. 그 다음 아무도 공짜로 들어간 적이 없다는 노블링카는 과감히^^ 포기한다.


간덴사 순례길에서 기도 종이를 날리는 티베탄 아저씨. 이때 후어이! 하는 괴성을 질러줘야 한다^^


드레풍사에서 바라본 라싸 시내, 마침 눈이 내려 시내가 온통 눈으로 덮여있다


세라사의 유명한 교리문답장면, 손바닥을 내리쳐 가며 일대일의 교리문답을 진행하는데 처음에 어땠는지 몰라도 이제는 관광객용으로 변질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다음은 라싸 외곽에 있는 간덴 사원의 경우로 입장료를 징수하는 라마승과의 협상이 필요한 곳이다. 누구는 산을 빙 돌아 들어가기도 했다지만 해발 4200m가 넘는 곳에서 산을 한바퀴 도는 일은 건강과도 직결된 바 권장 사항은 아니라 사료된다. 우리의 경우 이십여분의 걸친 실랑이 끝에 두 사람이 한 사람 표만 내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으니 -물론 탁월한 협상가가 따로 있긴 했지만- 반은 성공한 셈이다. 그래도 그 덕분에 스님들 거처에서 티베탄의 주식인 짬파에 차까지 얻어먹었으니 본전은 뽑은 셈이다. 또한 여행 7개월여 만에 입장료 깍기는 처음이니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도 괜찮을 듯 하다^^. 눈이 내리는 날 찾아간 드레풍사는 사원에 이르는 길이 너무 예뻐 내처 걷다가 정작 사원 앞에서는 그냥 넣어줘도 못 들어가겠다며 돌아섰으며 스님들의 교리문답으로 유명한 세라사원은 담치기 할 각오로 나섰다가 열려 있는 뒷문을 통해 정정당당히 입장했으니 대략 입장료를 제대로 낸 곳은 포탈라궁 하나 정도인 듯 하다.


우리가 날마다 들렀던 짜이집, 그래도 티벳에는 여전히 티베탄들이 존재한다.


쓰고 나서 보니 티벳의 역사라든가 현실 혹은 종교적 경건함에 관한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순 공짜 입장이야기가 다인 듯 하여 이렇게 장난처럼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라싸에 있는 동안 나는 그저 여행자였으며 상당히 많은 한국 사람들과 수다나 떨고 싸구려 만두나 죽 따위를 먹으러 다닌 게 생활의 전부였으니 여기서 티벳의 현실 운운 한다는 것도 조금 우스운 일이 될 것 같다. 다만 북경의 천안문-본인은 정작 자금성의 관문이라고 우기기는 하지만-에 이어 포탈라궁을 찍으러 라싸에 온 사진작가 친구의 말에 따르면 포탈라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한족들-티베탄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경우는 거의 없다-의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는 이야기 정도만 전할까 한다. 그들에게 포탈라궁은 천안문과는 달리 그저 관광지에 다름 아니라는 건데 뭐 그게 현재 티벳을 바라보는 외부인들의 시선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가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티벳의 현실에 분개하는 한국인 여행자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글쎄 나에게 티벳은 그 황량한 자연 환경을 제외하곤 그저 다른 여행지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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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2> 이건 서비스 버전이다^^

심스코지 게스트하우스, 이미 말한 바 있듯이 여행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한 곳인바 게스트하우스 내에 있는 인터넷 방에서 노트북 연결이 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비수기인 지금은 비용도 받지 않는다. 그 결과 티벳 가는 비행기를 끊어놓은 날 저녁 남는 시간을 주체 못해 메신져로 수다를 떨기 전에 생전하지 않던 짓을 했으니 다음카페 중국여행동호회에 질문이란 걸 올렸던 것이다. 이만저만해서 성도에서 비자연장을 안하고 라싸에서 연장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라는 것이 요지였는데... 메신져로 수다를 한참이나 떨고 다시 들어가 보니 요새 라싸에서 비자연장 안되는데요. 라는 요지의 답변이 올라와 있더라는 말이다. 허걱 일주일도 연장을 안 해 준다니 이건 또 뭔 소리래.. 부랴부랴 컴퓨터를 끄고 역시 게스트하우스 내에 있는 여행사로 가 본다. 저 요새 라싸에서 비자연장이 안되나요? 그랬더니 잘 모른단다. 그때 마침 담날 라싸에 들어가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 중 한 분이 옆에 계시다가 티벳 가이드에게 전화를 해보시겠단다. 전화 결과는 마찬가지, 요즘 라싸에서는 비자 연장이 안 된단다. 간신히 항공권을 연기하긴 했는데 도무지 일주일을 뭐 하고 지내야 할지 막막하기 그지없다.   

 

쓰레기통에 버렸던 가이드북을 다시 찾아들고 갈 만한 곳을 찾아본다. 성도에서 이제 갈만 한 곳은 러산과 아미산 뿐이다. 산은 싫은데.. 하면서 곰곰 읽어보니 아미산은 산이 맞는데 러산은 댑다 큰 불상이 있는 곳으로 산은 아닌 듯 하다. 가기 싫지만 달리 방법도 없어 주말에는 거기나 다녀오기로 한다. 담날 비자 연장을 신청해 두고 저녁에 숙소 스탭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한국어를 독학으로 공부한 친군데 한국말을 곧잘 한다. 내가 할 일이 없어 고민이라니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기에 그러기로 미리 약속을 해 둔 터다- 옆에서 누가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 다행히도 아저씨는 아니다^^ 한국어 공부를 마치고 같이 저녁을 먹는다. 맥주 한잔 하실래요?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맥주좋죠 라는 대답이 날아온다. 앗싸.. 술 싫어하는 친구는 아니고.. 같이 밥을 먹어보니 말이 많은 친구도 아니다. 됐고.. 게다가 이 친구도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다음 일정이 티벳가는 거란다. .. 그동안 군인 아저씨 땜시 고생했다고 하늘이 보너스를 주시는 상황인 듯 하다. 


 

비록 하루지만-담날부터 밤근무라 시간이 없었다는^^-나의 한국어 제자 두상

 

그 다음 일주일은 거의 같은 패턴으로 지나간다. 아침에 거의 10시까지 늦잠을 자 준다. 느즈막이 일어나 게스트하우스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서 국수 내지는 만두국을 한그릇 먹어준다. 그 다음 동네 마트에 가거나 공짜 인터넷을 즐기다가 심심하면 맥주나 한잔 한다. 가끔은 마트에서 산 한국산 사발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음악을 듣거나 탁구를 친다. 그러다가 저녁을 먹고 노트북으로 영화를 한편 본 다음 다시 맥주를 마시다 잔다. 이 친구 노트북에 저장된 한국 영화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기로 했던 러산도 포기하고 대략 이런 패턴으로 일주일을 보내니 드디어 우리 도미토리 최고참인 미국남자 제프가 한마디 한다. 너 중국에 와서 한국남자친구 찾은 거니? 아냐! 우린 그냥 친구야 라는 대답에 몹시 의아한 표정이다. 니들하고 달라서 우리는 국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도 잘 논다니까 참 못 믿네 짜식.. 해주고 싶은데 뭐 영어도 짧은데다 어차피 이해도 못할 거 그냥 참기로 한다. 


신라면 사러 간 마트에서 발견한 한국어^^ 김치, 결국 못먹고 버렸다.


이따위로 술을 마신다.

 

결국 어찌 보내나 했던 기간이 훌쩍 지나고 예약해 둔 날짜가 모레로 다가와 있다. 일주일을 언제 보내나 했던 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왠지 성도를 떠나는 게 아쉬운 마음도 든다. 이래서 한곳에 너무 오래 있으면 결국 못 떠난다는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이 친구도 나보다 하루 늦게 라싸에 올 예정이니 아예 같이 떠날까 싶어 비행기를 하루 연기할까 하는 생각으로 여행사에 가보니 이미 퍼밋이 나온 상태라 연기는 곤란하단다. 뭐 할 수 없지 하고 담날 비록 하루 상관이지만 간단하게 이별주나 하자며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여행사 직원이 연기가 가능하니 비행기를 연기하겠냐고 묻는다. 우씨 빨래도 다 해놓고 짐도 대충 싸놨는데 이제 와서리.. 그래도 그냥 연기하겠다고 한다. 결국 간단한 이별주나 하자는 자리는 밤 12시 가까이 되어서야 끝이 난다. 이날은 혼자 여행 온 20대 한국 여학생-정확하게 말하면 졸업한지 1년 된 취업재수생-도 함께다.


, 취업재수생 혜원 그리고 사진작가 종길

 

결국 심스코지 게스트하우스에서만 꼬박 10일을 머물고 나서야 성도를 떠난다. 비행기 일정을 하도 조정해서인지 아님 아무 것도 않고 게스트하우스 죽순이로 있어서 인지 전날 비행기 티켓을 수령하러 여행사에 들르니 이집 안주인이 내일 라싸가는 비행기를 탄다니까 파이널리? 하고 웃는다. 같이 웃어준다. 그래 파이널리 티벳에 가는 모양이다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이거 낼 안개 심하게 끼거니 바람 오지게 불어 비행기 안 뜨는 거 아냐 싶은 생각도 든다. 여튼 마지막날은 그저 조신하게 훠궈나 먹으러 다니며 하루를 보내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이 친구 직업이 사진작가라 라싸에는 사진찍으로 가는 길이라 같이 이곳저곳을 둘러볼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여튼 낯선 곳에서는 혼자 보다야 둘이 나은 법이니 라싸로 가는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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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판> 결국 싸우고 헤어진다

 

송판으로 떠나는 버스는 아침에 한번 밖에 없어 열한시경에 택시를 탄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주자이거우나 한나절 더 보고 오후에나 떠나면 되는 건데 이래저래 처음부터 일이 꼬인다. 주자이거우에서 송판까지는 대략 2시간, 택시에서 내내 이 군인아저씨 떠난 사람들 욕이다. 하루 밤이지만 내가 보기엔 고사리 아저씨, 그리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해도 나로서는 군인 아저씨의 일방적인 얘기가 그리 신빙성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건성건성 예예 하기도 참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 아저씨도 변함없이 말이 많다. 정말이지 이제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은 지긋지긋하다. 이건 뭐 아줌마들 반상회도 아니고 도무지 남의 말이라곤 듣지를 않으니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외로워서 그런 건지 내가 만나는 인간들만 그런 건지 모를 일이지만 이 인간들 실컷 자기 얘기만 해놓고 미안한지 끝에는 꼭 한마디 한다. 참 과묵하시네요.. (내가 과묵한 인간이라니 소가 웃을 일이다^^)


송판에는 다행히도 한국식당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 당근 론리에는 나오지 않는데 언젠가 다른 여행자들에게서 얼핏 들어본 기억이 있어 물어물어 찾아간다. 이야기를 들을 당시에는 송판에 갈 생각이 없어서 염두에 두지는 않았지만 <나쁜 삼촌>이라는 식당이름이 인상적이라 다행히 기억이 난다. 중국 간판은 호숙숙 뭐 대략 좋은 아저씨쯤 되는데 뭐 한국어로 된 간판에도 나쁜 삼촌이라고 되어 있다^^. 송판에 내려 그곳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있는데 나쁜 삼촌이 나타난다. 다행히 상태가 괜찮아 보인다. 식당만으로는 운영이 힘들어 다음날이면 돈벌러 몇 달간 심천에 간다는데 하루 먼저 오길 다행이다 싶다. 술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이 양반이 담궈 놓은 각종 희귀주들을 마시며 간만에 맘 편하게 술을 마신다. 나중에 족보를 따져보니 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학번은 거의 10년 차이가 나지만 중간 중간에 아는 이들도 있어 군인아저씨가 사이사이 놓는 삑사리를 이리저리 피해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담날 일찍 나쁜 삼촌은 심천으로 떠나고 우리는 말트레킹을 떠난다. 전날 밤에 이미 1박 2일로 예약을 해 둔 터다. 말트레킹은 1박2일짜리부터 일주일짜리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2박3일 코스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양한(?) 트레킹 경험에 의해 모든 트레킹은 밤이 매우 춥고 긴 관계로 일행이 마땅치 않을 경우 상당히 힘든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나로써는 이 아저씨와 2박 3일은 결코 가고 싶은 맘이 없다. 1박 2일 코스도 쉬운 코스와 힘든 코스 두 가지가 있는 모양인데 쉬운 코스는 반나절 가량 말을 타고 가서 오후에는 국립공원 하나를 돌아보고 담날 돌아오는 코스인데 비해 힘든 코스는 반나절 말을 타고 산을 하나 넘은 뒤 점심을 먹고 다시 산을 하나 더 넘어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라고 한다. 그 무섭다는 말을 하루종일 탈 자신은 없어 또 쉬운 코스를 택한다.   


트레킹 코스 중에 있는 산의 정상, 이 길부터는 걸어 내려가다 아스팔트가 나오면 다시 말을 탄다.


군인 아저씨의 권유로 털모자도 샀다. 따뜻은 하더라만 모양새는 영^^ 글구 전날 술 먹다 카메라 배터리 충전하는 걸 깜빡해 말트레킹 사진은 거의 못 찍었다는ㅠㅠ 

 

 아침에 약속 장소로 나가보니 트레킹을 떠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수기라 마부 하나에 우리 둘 달랑 세 명만 떠나는 길이다. 말이 생각보다 무섭다는 말은 많이 들어 제법 긴장이 된다. 처음 30분은 이걸 왜 하겠다고 했나 싶게 무섭더니 조금씩 나아진다. 산위로 올라가니 주변으로는 채 녹지 않은 눈들이 나뭇가지를 하얗게 덮고 있고 멀리 설산이 보이는 것이 조금씩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길 주변이 낭떠러지라 아찔하기는 하지만 조금씩 재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군인아저씨 잠시도 입을 그만두지 않는데 입만 열었다 하면 지난 일행들 욕 아니면 자기 자랑이다. 듣기 좋은 소리도 여러 번 들으면 듣기 싫은 법인데 욕 아니면 자랑이니 아주 듣기 싫어 돌아버릴 지경이 된다. 자랑의 수준도 어찌나 유치 찬란인지 자기가 한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빵을 먹으며 여유 있게 말을 탔다는 자랑을 그날 하루 종일 스무번쯤한다. 네네 잘 타시네요를 하다하다 그 담엔 아예 못 들은 척 한다.   



모닝구라는 이름의 풍경구(우리로 치면 국립공원쯤 되지 싶은데 아직 채 녹지 않은 눈이 쌓여있다)



구채구를 안봤으면 모를까 그냥 그만그만하다


서너시간 말을 타고 모닝구라는 호수 공원에 도착한다. 어려운 코스를 택하면 산을 하나 더 넘어야 한다는데 쉬운 코스를 택하니 오후에는 공원 구경이나 하며 보낸다. 인터넷에서 본 트레킹 정보에 의하면 초원에서 천막을 치고 잔다는데 잠자리도 공원 내에 있는 쓰지 않는 건물에 마련된다. 아무래도 이곳이 덜 춥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운치는 좀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은 수제비로 저녁은 감자와 양고기 볶음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술을 가져가긴 했지만 그 전날 숙취도 숙취려니와 도무지 이 아저씨랑 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결국 아침은 오고 6시부터 들락이던 이 아저씨 결국 10시에 떠난다는 마부에게 부득부득 9시에 떠나자고 해서 일찌감치 길을 나선다. 참 피곤한 양반이다.



점심에 먹은 수제비, 우리나라 수제비랑 거의 같은 맛이다.


송판에 돌아오는 길에는 또 나쁜 삼촌 욕이다. 그전에도 이런저런 소리를 하는 걸 못 들은 척 했는데 결국 내가 못 참고 싫은 소리를 한다. 나는 그전 일행에 대해서도 나쁜 삼촌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이 안 드니 제발 그렇게 생각하시더라도 나한테 동의는 구하지 말아달라고 일침을 놓는다. 도대체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은 다 나쁜 사람이니 나랑 헤어지고 또 나는 얼마나 나쁜 년이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랬더니 삐졌는지 내려오자마자 이번엔 비행기를 타고 가겠다고 한다. 원래 청두까지는 같이 가지고 한 길이었지만 차라리 잘됐다 싶다. 하지만 운도 지지리 없는 것이 이번엔 비행기가 없다는 거다. 어차피 청두까지는 같이 가야 하나 보다 싶다.


그럭저럭 외면 수습은 하고 저녁을 먹다 -사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만 참자 다짐하면서 먹은 저녁이었는데- 결국 내가 폭발한다. 만나고 나서부터 자기가 젊어 보인다느니, 잘 생겼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열 번쯤은 했는데 이번엔 식당에서 일하는 어린 중국 여자친구들에게 자기가 몇 살쯤 되어 보이느냐고 묻는다. 뭐 대략 사십 후반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아마 오십 초반의 나이인 것 같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가관이다. 쟤들이 저렇게 대답하는 건 나쁜 삼촌이 자기 나이를 이야기해서이고 모든 중국 사람들은 자기를 삼십대 후반으로 본단다. 그러면서 중국 친구들에게 자기 근육을 만져보라고 난리다. 더는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오십대로 보이시거든요 그리고 그만하세요 한두 번도 아니고. 입만 열면 자기 자랑 아니면 남 욕이니 참 같이 다니기 힘든 분이시네요. 해 버린다. 결국 저녁 먹는 분위기는 썰렁해지고 담날 새벽에 버스를 타러 나가니 이 아저씨 사람을 본 척도 않는다. 에구 차라리 잘됐다 싶은 게 청두까지 대략 8시간 동안 그 수다를 듣느니 그냥 모른 척 해주는 게 고마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버스에서도, 버스를 내려서도 데면데면 헤어진다. 맘이 불편한 건 아닌데 그래도 여행 다니면서 이렇게 헤어지는 사람도 있구나 싶은 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래도 이쯤에서 놓여났으니 한편으론 발걸음이 가볍다.


이번에 청두에 도착해서는 바이러스의 동생이 강력 추천하는 심스코지 게스트하우스에 묵는다. 바이러스 동생이 <궁극의 게스트하우스>라고 극찬한 이곳은 여행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생각해 운영되는 곳인 듯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많은데다 교통빈관보다 거의 모든 가격이 저렴하다. 게다가 인터넷은 랜선만 이용할 경우는 무료이고 주위에 대형마트와 공안국도 있어 필요한 것은 거의 걸어가서 해결할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티벳행 비행기 가격이 교통빈관의 여행사보다 250원이나 싸서 완전히 본전을 뽑는 느낌이다. 일단 도착해 샤워를 마친 후 빨래를 돌려놓고 저녁을 먹으니 다시 마음이 상쾌해진다.


심스코지 게스트하우스 입구


심스코지 게스트하우스 식당


다음날 비자 연장하러 공안국으로 간다. 흑 그러나 비자를 연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휴일 빼고 5일이나 걸린다는 소리에 막막해진다. 여기서 비자를 연장하려면 오늘이 수요일이니 무려 일주일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다른 여행기에서 읽은 바로는 징홍이나 캉딩에서는 하루 만에 연장이 된다고 해서 여기서도 그런 줄 알았더니 생각지도 못한 복병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어쩔까 고민하다 그냥 티벳행 비행기표를 예약한다. 아직 비자 기간은 일주일쯤 남아 있고 라싸에서 일주일 정도 연기가 가능하다니 티벳은 2주 만에 빠져 나오는 수 밖에 없다. 정 안되면 비행기로 카트만두까지 가거나 여행사를 통하면 기간을 조금 더 연장할 수도 있다고 하니 라싸에 도착하자마자 비자 문제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여튼 내일 떠나는 비행기를 예약해 두었으니 우여곡절 끝에 티벳 가는 길로 접어드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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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채구> 물빛이 장난이 아니다

 

결국 구채구를 간다. 청두에서 10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이긴 하지만 어차피 청두에서 갈 수 밖에 없는 곳인데다 그 고질병..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가겠어 하는 맘이 결국 구채구로 가는 버스를 타게 만든다. 가는 길에 아주 송판까지 들렀다 올 예정이다. 송판은 말트레킹으로 유명한 곳인데 대체 어찌된 일인지 중국 여행 석달 동안 말을 한 번도 못 탄데다 앞으로 갈 티벳도 말 탈일은 없어 보여 한번은 타 보자 하는 맘이다. 코끼리는 태국에서, 말은 중국에서, 낙타는 인도에서^^ 그래도 한번씩은 타봐야 하지 않겠냐 말이다. 무엇보다 애매한 건 비자인데 라오스에서 받은 두달짜리 비자가 어느덧 만료 기간이 두 주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리장에서 너무 놀았다니^^- 바로 티벳으로 떠나면 두주 안에 티벳을 떠나야 한다. 티벳에서는 비자 연장이 짧으면 삼일, 길어야 일주일이라는데 네팔의 정치 상황도 불안정하다는데 비자까지 빠듯하면 맘이 더 조급해질 것 같고 청두에서 연장하자니 만료 기간이 일주일 정도 남아야 비자 연장이 가능하다니 비자를 연장하자면 일주일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이래저래 티벳 가는 길은 참 멀기도 하다.


구채구 가는 길도 절대 만만한 길은 아니다. 게다가 이제 진이 다 빠졌는지 10시간 버스 타는 일이 곤혹스럽기만 하다. 창 밖도 보는 둥 마는 둥 꾸벅꾸벅 졸다가 깨다가 구채구 입구에서 내린다. 요금은 4월 1일부로 성수기 체계로 바뀌었다는 데 저녁 무렵이라 그런지 숙소로 가득한 구채구 입구는 한산하기 짝이 없다. 날씨도 청두보다는 훨씬 더 추운 것 같다. 결국 버스 내리는 데서 삐끼를 따라 60원짜리 호텔에 들어간다. 썰렁하긴 해도 뭐 호텔은 호텔인 듯 시설은 그럭저럭 봐 줄 만한데 시간제로 나온다는 온수가 영 시원찮다. 결국 처음엔 더운물이다 중간에는 미지근한 물로 바뀌어버린 온수 앞에서 샤워를 하다 말고 대략 난감해진다. 역시 삐끼는 따라오는 게 아닌데 방 돌아보는 것이 귀찮아 따라나선 것이 결국 이 모양이다. 그래봐야 하루 밤이긴 하지만 방도 왠지 썰렁한 것이 영 춥다.


다음날 구채구 내에서 하루밤 묵을 요량으로 짐을 모두 들고 숙소를 나선다 -원래 청두에 짐을 맡겨 놓고 작은 배낭 하나만 지고 오긴 했지만 이것도 무게가 꽤 나간다- 입장료 비싸기로 유명한 중국 중에서도 구채구는 거의 최고의 입장료를 자랑하는데 공원 내의 교통비를 포함해 무려 310원(4만원 정도다)이나 한다. 가짜 학생증을 내미니 50원이 할인된다.^^ 이 표로 이틀을 볼 수 있는데 다음날도 보겠다고 미리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쓰지 못하도록 입장권에 디카로 찍은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인쇄해서 준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니 공원 입구에 버스가 대기해 있다. 공원은 한 길로 쭉 이어지다가 중간쯤 되는 지점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진다는데 이 버스가 어느 쪽으로 가는지는 모르니 그저 운에 맡기기로 한다. 버스는 원래 하루를 묵으려고 했던 중간지점을 지나 동쪽으로 들어선다. 그러더니 한참을 달려 동쪽 끝 호수 입구에서 사람들을 내려준다. 멀리 설산이 보이고 산 아래 예의 그 쪽빛 호수가 펼쳐져 있다. 사진에서 본 그 물빛 그대로다.


동쪽 끝의 호수인 장해


오색 연못, 비수기긴 해도 사람은 여전히 많은 것 같은데 성수기엔 발디딜 틈도 없단다.

 

호수를 따라 이어진 길을 걸어 또 다른 호수를 둘러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중간 지점으로 내려온다. 이쯤에서 숙소를 정하고 배낭이나 맡길까 하고 중간 지점 근처에 있는 장족 마을 근처를 둘러본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침대 하나당 20원 정도면 된다는데 마을 안은 여전히 비수기인 듯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아서라.. 여기도 해지면 많이 우울하겠다 싶어 그냥 공원 앞에서 하루 더 묵기로 맘을 바꿔먹는다. 중간 지점에서 33원짜리 뷔페로 점심을 먹고 이번엔 서쪽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서쪽 길이 볼거리가 더 많다는데 과연 올라가는 길 주변이 온통 푸른빛의 호수다. 끝까지 가서 천천히 걸어 내려와야겠다 생각하고 올라간 꼭대기 호수에서 한국 남자 둘을 만난다. 한국사람 없는 동네에선 인사만 해도 무척 반가워한다. 이 둘도 조합은 좀 이상한 조합인데 여튼 숙소에 방도 남는다며 잘데 없으면 재워준다고도 하고 다음날 신선지라는 현지인들만 아는 근사한 장소에도 같이 가자고 뜻밖의 호의를 보인다. 안 그래도 내일 그냥 송판으로 갈까 어쩔까 생각하던 참이라 신선지나 따라갈까 싶다. 여튼 그 양반들이 동쪽을 안 봤다고 해서 저녁 무렵에 공원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서쪽 길에 있는 호수 중 하나, 물에다 무슨 짓을 했길래 빛깔이 저런지 모르겠다^^


여기도 마찬가지.. 사진보다 직접 보는 게 더 이쁘다.


접니다요^^


원래 이틀을 보려고 설렁설렁 다니던 발걸음이 바빠진다. 서쪽 호수 끝에서 걸어 내려오니 시간이 꽤 걸리는데 아직 중간지점에서 입구에 이르는 길도 못 가봤는데 벌써 약속시간이 다 되어간다. 괜한 약속을 했나 싶기도 해서 중간에 내려 호수와 폭포를 하나 더 보고 약속시간을 제법 넘겨 입구에 도착한다. 갔으면 그만이다 싶은데 어라 이게 웬일인지 기다리고 있다. 결국 그 양반들이 묵고 있다는 호텔까지 같이 간다. 현지에서 고사리를 수거해서 한국에서 파는 아저씨와 퇴역군인 -이 둘은 중국으로 오는 배에서 만났단다- 그리고 고사리 아저씨의 중국 운전기사 셋이 일행이다. 원래 방을 셋 잡았는데 하나를 비워준다. 어지간하면 그냥 돈내고 따로 방을 잡을까도 싶었지만 그 호텔 방값이 200원이나 한다기에 그럴 엄두도 나지 않아 못 이기는 척하고 그냥 그러기로 한다.


그때부터 일이 복잡해진다. 뭐 처음 사연이야 내 알바 아니지만 중국으로 오는 배에서 만나 이런저런 사유로 일주일가량 일을 겸해 같이 다닌 이들은 이미 서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있는 상태다. 고사리 아저씨는 어차피 일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상태라 퇴역 군인 아저씨가 송판 간다는 내게 신선지에 들렀다가 같이 송판으로 가자는데 싫다고 할 수도 없어 그러자고 한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전날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신선지에 들렀다 가는 일정도 이미 어긋나 있고 고사리 아저씨는 제 갈 길로 가고 군인아저씨는 바로 송판으로 가자고 한다. 좀 황당하지만 어차피 가는 길이니 큰 문제는 아니다 싶어 그러기로 한다. 결국 끝이 좋지 않다, 거의 싸우다시피 헤어지는 일행을 보니 이 군인아저씨랑 같이 다닐 일이 걱정이 된다. 에구.. 그래도 말트레킹 하려면 일행이 있는 게 낫겠다 싶어 일단은 같이 송판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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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 다시 봄날이다

 

다행히도 청두 가는 버스는 꽤 여러 대가 있는 모양이다. 숙소에서 물어보니 8시 차가 있다고 해서 간만에 여유 있게 길을 나선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길을 게다가 추위에 떨면서 나서는 일은 당분간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캉딩의 아침은 여전히 춥지만 다행히 터미널은 코앞에 있다. 버스가 떠나자 이번에는 사뭇 다른 풍경이 이어진다. 늘 어느 산으론가 올라가기만 하던 버스가 이번에는 산과 산 사이로 이어진 계곡을 따라 달린다. 좁은 계곡을 끼고 형성된 마을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해발이 높지 않아서일까.. 주변은 온통 유채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신혼여행지의 대명사인 유채꽃이 여기서는 당당히 밭작물의 하나다. 어린 순은 볶아 먹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주 목적은 기름을 짜는데 있는 것 같다. 하루 사이에 겨울과 봄을 넘나들고 있다.



청두 가는 길에 만난 유채밭, 봄빛이 완연하다.


버스는 이제 고속도로에 접어들더니 드디어 커다란 빌딩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대도시로 들어선다. 드디어 청두에 도착한 것이다. 대도시에서 내리면 항상 숙소를 찾는 일이 고민인데-대부분 그냥 택시를 타긴 하지만 택시 기사도 숙소를 잘 찾는 편은 아니다- 여기서는 고민할 새도 없이 내려보니 그 유명한 교통빈관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잠깐이지만 온통 봄날인 길을 혼자 겨울옷을 바리바리 입고 숙소에 들어선다. 다행히 교통빈관은 그 유명세답게 도미토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나 운영의 수준이 거의 호텔을 방불케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도미토리가 있는 호텔인 셈이다. 먼저 더운물로 샤워를 하고 그간 입었던 겨울옷들을 세탁기에 돌려 널고 나니 비로소 한숨이 돌려진다. 호텔 앞 여행자 식당에 들러 간만에 맥주도 한잔 마시고 인터넷도 접속해본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도시에 와야 맘이 편해진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다음날은 그냥 청두 시내를 돌아다닌다. 살 물건이라고 해야 매번 샴푸니 치약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쇼핑센터나 백화점에서 이것저것 고르는 일은 나름 재미가 있다. 이번에는 로션과 스킨이다. 여행 떠날 때 그 큰 걸 들고 간다고 구박구박을 받으면서도 들고 왔는데 어느새 새로 살 때가 된 것이다. 로션은 샴푸랑은 달라서 한번 사면 꽤 오래 써야 하는데다 피부에도 맞아야 해서 좀 비싸더라도 익숙한 외국제품을 사야 하나 백화점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늘 쓰던 한국 제품 매장이 백화점에 있는 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들러 보니 한국 제품은 그대로 다 있다. 문제는 물건값이 한국이랑 거의 같다는 건데 한국에선 별 생각 없이 쓰던 물건이 여기 가격으로 환산되어 있으니 왜 그리 비싸게 느껴지는지 살까 말까 잠시 망설여진다. 결국 로션과 스킨 두 개를 508원(6만5천원 정도)을 주고 산다. 손이 떨린다.^^게다가 여기는 샘플 화장품 하나, 화장솜 하나도 더 얹어 주는 게 없다ㅠㅠ.


청두 시내. 시내 한가운데 모택동의 동상이 서 있다.


그 다음날은 가이드북을 뒤져 시내 여기저기 가볼 만한 곳을 찍는다. 참 오랜만에 해 보는 일이다. 가고 싶은 몇 곳을 버스 노선과 동선을 고려해 정한 뒤 숙소를 나선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청두에서 가장 크고 보존이 잘된 절이라는 문수원이다. 절을 한 바퀴 둘러본 뒤 경내에 있는 찻집에 앉아 봄볕을 즐긴다. 그저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흐른다. 천천히 절을 빠져 나와 버스를 타고 청양궁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번에는 도교 사원이다. 뭐 그만그만하다. 다시 걸어서 두보초당으로 옮겨 본다. 다들 두보는 아실 것이다. 당나라때의 시인인 그는 20세 때 세상을 보기 위해 고향을 떠나 천하를 유람하다가 반란군을 피해 청두에서 4년간 살면서 200수가 넘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말이 당나라 때지 우리나라로 치면 고구려쯤인데 그가 살았던 흔적이야 있을 리 만무하고 그저 잘 꾸며 놓은 정원에 복원해 놓은 초당이며 두보의 흔적을 모아 놓은 전시실이 군데군데 있는 곳이다. 간만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니 여행 초반 죽어라고 돌아다니던 기억이 새로워진다.


문수원 내의 찻집


청양사내의 탑, 단 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탑으로 도교 철학의 건축적 성과를 보여 준다는데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이 양반이 두보다. 중국 동상들은 근엄하지 않아서 좋다 -모택동 동상은 빼고^^-.


하루는 판다를 보러 간다. 중국의 동물 대사라는 판다는 청두 근처에 있는 판다 번식 연구센터라는 곳에서 연구와 서식을 함께 하고 있는데 일반 동물원과는 달리 제법 자유롭게 판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단 판다의 습성상 아침 일찍 가야 하는데다 -아침을 먹고 나면 주된 소일거리인 잠을 자러 우리로 돌아가 버린단다- 대중 교통편도 없어서 여행사의 투어를 이용해야 하는데 갈까 말까 고민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실제로 판다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결국 반나절 투어를 신청한다. 아침 7시에 떠나 시내를 한바퀴 돌아 오늘의 투어 시청자를 죄다 싣고 공원에 도착하니 8시가 조금 지나 있다. 몇 개의 우리들을 둘러보며 판다를 구경한다. 생각했던 것 보다 조금 크긴 하지만 하는 짓이 제법 귀여워 한참을 우리 주변에서 서성이다 센터 내에서 보여주는 판다의 일생쯤 되는 영화도 한편보고 돌아오니 여전히 오전이다.



판다들, 무지 먹는다


누워서도 먹고..


아님 늘어져 자고..


이제 청두에서 할일은 거의 마친 셈인데 바로 티벳으로 가야할지 아니면 그 유명하다는 구채구와 송판을 들렀다 가야할지 여전히 고민이다. 특히 구채구는 한번 가보고 싶긴 한데 가는 길도 만만치 않은데다 여전히 춥다는 소문에 계속 망설여진다. 대체 움직이기 전날까지도 일정을 결정하지 못하다니 여행이 계속될수록 점점 더 고민만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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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딩>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벽에 눈을 떠 창밖을 살펴보니 캄캄한 거리 너머로 하얗게 쌓인 눈이 보인다. 망했다. 밤새 눈이 더 내린 모양이다. 일단 버스정류장으로 나가 보기로 한다. 버스가 안 다니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다닌다면 다닐만 하니까 다니겠지.. 이 동네 눈 한 두 번 오는 것도 아닐 텐데.. 생각하기로 한다. 대체 이 동네는 버스들이 왜들 이리 꼭두새벽에 떠나는지 중덴에선 7시 30분, 샹청에선 7시 그리고 리탕에서 6시 30분 출발이란다. 게다가 중국은 전역이 베이징 표준시에 맞춰져 있어 해가 늦게 지는 대신 대략 7시가 넘어야 조금 밝아지는 정도라 6시면 거의 꼭두새벽인 셈이다. 배낭을 메고 나서니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에 눈이 뽀얗게 쌓여 있다. 그새 얼었는지 밟으니 미끌한다. 랜턴을 꺼내들고 눈길을 걸어 터미널로 향한다.


다행히 버스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표를 팔고 있다. 잠시 고민하다 표를 끊는다. 뭐 내일이라고 더 낫겠어.. 그새 눈이 녹을 것도 아니고.. 다 운이야 운.. 그런 생각이다. 버스를 타니 온기가 느껴진다. 히터를 튼 모양이다. 아니 중국 버스가 난방이 안 되는 게 아니었잖아.. 에이 진작 좀 틀어주지 싶으면서도 따뜻하니까 당장 기분이 좋아진다. 터미널앞 식당에서 얻어 온 더운 물로 커피를 타고 혹시 몰라서 비상식량으로 사놓은 빵이며 과자들을 꺼내 먹으며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린다. 이렇게 눈이 오는데도 버스는 사람들로 거의 찬다. 눈탓인지 해가 얼핏 밝아진 7시가 넘어서야 버스는 터미널을 떠난다.


캉딩가는 버스


세상이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있다


같은 버스에 탄 할머니


리탕을 벗어나자 마자 버스는 다시 눈덮인 산길을 달린다. 처음엔 그나마 마을이며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더니 한시간쯤 지나자 그저 하얗게 눈덮인 산들뿐이다. 어느 지점에선가 체인을 감은 버스는 내 걱정과는 달리 서너 시간을 별 문제 없이 달려 준다. 이러다가 제시간에 도착하는 거 아닌가 하는 야무진 생각이 날 무렵 결국 버스가 멈춰 선다. 반대편 도로에서 차 한대가 도로를 대각선으로 가로 막고 멈춰서 있다. 체인없이 올라오다 미끄러진 모양인데 그래도 도로에 멈춰서길 다행이다 싶다. 다행히 차가 고장난 건 아니라 한시간 여를 체인을 감고 수선을 피우더니 다시 도로가 열린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버스는 눈쌓인 협곡을 굽이굽이 달려 저녁 7시쯤 캉딩에 무사히 도착한다. 정확히 12시간 걸린 셈이다.



 캉딩 가는 길1


캉딩 가는 길2


그 와중에 사진도 찍고^^


캉딩 역시 제법 높은 산들 사이에 형성된 도시인데 내 바램과는 달리 리탕 못지않게 춥다. 게다가 눈이 내리는 건지 산위의 눈이 날리는 건지 여튼 아직까지 눈발이 분분하다. 이젠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숙소를 찾을 힘도 없어 그냥 삐끼를 따라 터미널 앞에 있는 숙소에 들어간다. 그만그만한 방이다. 밥 먹으러 나가기도 귀찮아 나머지 비상식량을 저녁삼아 털어먹고 일찌감치 자리에 눕는다. 며칠 샤워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았는데 더운물이 나온다는 이 숙소에서도 씻을 엄두는 나질 않는다. 캉딩 구경이고 뭐고 내일 아침에 그냥 성도로 떠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추운 게 사람을 이리도 무기력하게 만들다니.. 앞으로 티벳이며 네팔 트레킹은 어찌해야 할지 아득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제 하루만 더 지나면 성도에 도착이니 일단 티벳 가는 길의 반은 온 셈이다. 결국 예정과는 3박 4일을 거의 버스만 타고 달려 온 셈이지만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본 여정이기도 하다. 하루 평균 9시간 정도 버스를 탔지만 지루하거나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리탕에서 5시간 반 만에 내릴 땐 왠지 좀 아쉽기도 했는데.. 여튼 버스 안에서 많이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한 번이면 충분하다. 다음부턴 어지간하면 비행기 타고 다니고 싶은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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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탕> 샹청을 지나 리탕까지

 

일반적으로 중덴을 윈난의 마지막 도시라고들 한다. 더 위로 올라가면 신장성 즉 티벳땅인데 현재 외국인이 이곳을 육로로 가는 것은 매우 비싸거나 불법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가끔 불법을 무릅쓰고 육로로 라싸에 갔네 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오긴 하지만 그것도 간뎅이가 부은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고 나처럼 소심하기 그지없는 인간은 그저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로 한다. 티벳땅을 눈앞에 두고도 다시 오른쪽으로 살짝 꺾어 사천성 성도까지 가는 기을 택한 이유는 합법적인 루트 중 성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티벳으로 가는 것이 가장 싸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요, 성도까지 가는 들르는 사천성 서부의 도시들이 이전 티벳 땅이었던 고로 현재 한족들이 점령하다시피 한 라사보다 훨씬 더 티벳스럽다는 소문이 두 번째 이유되겠다. 중덴을 지나 샹청-리탕-캉딩을 찍어야 성도로 갈 수 있는 이 길 역시 만만치 않은데 3월까지는 시도 때도 없이 눈이 내린다는 고로 무지 춥거니와 눈 때문에 길이 막혀 한없이 발이 묶일 수도 있다는 게 첫 번째 난관이요, 해발이 높아-특히 리탕의 경우 해발이 4,680m에 이른다- 고산병의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이 두번째 난관이다.


중덴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 새벽에 짐을 꾸려 터미널로 나선다. 그리 따뜻하지도 않은 잠자리를 떨치고 일어나기는 왜 그리 힘든지..  간만에 느끼는 새벽 추위다.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어렴풋이 해가 밝아오기 시작한다. 이놈의 나라는 한겨울에 영하 20도까지 내려간다는 도시에도 도무지 난방이라는 게 없다. 버스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버스 안이나 밖이나 온도는 비슷하다. 버스는 터미널을 떠난 지 100m를 못가고 고장이다. 기사가 내려가서 몇 분을 뚝닥거리더니 이번엔 정비소로 향한다. 한 시간이나 차를 고치고 나서야 다시 출발이다. 그나마 산길에서 고장 안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중덴을 벗어나자 마자 굽이굽이 산길이 이어진다. 아직 햇살이 채 퍼지지도 않은 길은 끝도 없는 산길로 이어진다. 높은 해발 탓이지 채 자라지도 못한 관목숲 사이를 두어시간 달리더니 이젠 까막득한 협곡을 아래에 두고 눈도 채 녹지 않은 산길로 이어진다. 눈앞에 설산이 펼쳐진다. 장관이긴 한데 여기서 덜컥 고장이라도 나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


샹청 가는 길1


샹청 가는 길2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자 딱 그만한 거리에 산장이라고 쓰여진 건물이 한 채 보이고 거기서 모두들 밥을 먹는다. 별로 식욕은 없지만 그래도 먹어둬야지 하는 맘에 푸슬거리는 밥위에 기름기 가득한 고기볶음을 덮어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아.. 체하지나 말아야 할 텐데.. 점심을 먹고 좀 더 달리니 슬슬 산 아래로 티벳식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족의 집들은 기와 비슷한 것을 얹어서 익숙한 느낌이 드는데 비해 티벳식 집은 지붕이 따로 없고 진흙으로 만든 네모반듯한 건물이다. 단순한 구조에 비해 창문 주변을 화려하게 치장한 것이 인상적이다. 다시 산길을 내려서니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티벳식 마을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한차례 검문을 거치고 나니 사천성이다. 드디어 한달 만에 운남성을 벗어난 것이다.


12시간 걸린다고 했으니 아직 두어 시간은 더 가야 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멀리 협곡 사이로 제법 큰 마을이 보인다. 이런 데 저렇게 큰 마을이 있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여기가 샹청이라고 내리라고 한다. 길이 그새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9시간 만에 샹청에 도착한 것이다. 어차피 리탕까지 하루 만에 갈 수는 없는 길이라 이곳에서 하루를 자야 한다. 터미널에 내리니 게스트하우스 안내판을 든 언니가 반겨 준다. 가리키는 쪽을 보니 전형적인 티벳탄 스타일의 집이다. 터미널에서도 멀지 않아 안성맞춤이다. 어차피 그저 하루 묵고 낼 새벽에는 떠나야 할 곳이 아니던가. 짐을 풀고 잠시 동네를 둘러본다. 다행히 생각보다 날씨가 춥지 않다. 아마 이곳은 해발이 그리 높지 않은 곳인지도 모르겠다. 여튼 산과 산 사이에 이만한 마을을 이루고 사는 것도 보통일을 아니지 싶은데 마을 전체가 공사 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통 새 건물을 올리느라고 정신이 없다. 전형적인 티벳탄식의 건물들도 마을 뒤쪽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 큰길가는 온통 국적을 알 수 없는 현대식 건물이다.


샹청 메인거리


샹청에서 묵었던 티벳식 숙소


그 숙소의 방.. 알록달록 나름 예쁘다^^.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새벽에 다시 리탕행 버스를 탄다. 어제는 산길의 연속이더니 이제는 눈 덮인 고원이 이어진다. 버스를 타는 거야 시시각각 변하는 창 밖 풍경 덕에 그리 힘들지 않은데 리탕의 고도가 슬며시 걱정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산병이라도 나면 내려가기도 쉽지 않은데 어쩌나 싶다. 일행을 만들어서 왔어야 하나 생각해 봐도 없는 일행을 만들어 낼 재주야 없지 않은가 말이다^^. 어제의 일을 교훈삼아 리탕까지 10시간 걸린다고 했으니 한 7시간쯤이면 도착하겠다 생각하고 있었더니 이번엔 5시간 30분만에 리탕터미널에 도착한다. 아침 7시에 떠났으니 12시 30분에 터미널에 내린 셈이다. 그래도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이 그거 밖에 없으니 다시 론리 숙소편 첫줄에 있는 센허빈관을 찾아간다. 여기도 손님은 나 혼자다. 몇 날을 팔자에 없는 싱글룸 신세다. 여기도 전기장판 하나가 위로가 될 뿐 추워서 방에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리탕, 눈이 내린다.


리탕의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


리탕에 이틀쯤 머물 생각이었지만 오후에 두어 시간을 둘러보고 나니 딱히 갈 데도 없다. 다행히 고도가 꽤 높다는 데도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에이.. 괜히 걱정했잖아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이곳은 전형적인 티벳탄 마을인 듯 전통적인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주황색 장삼을 입은 라마 승려들이 많이 보인다. 조금 덜 추우면 그저 길에서 사람들만 바라봐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도무지 추워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나마 유일하게 난로가 보이는 티벳식 찻집에 앉아 버터티를 홀짝인다. 버터를 더운 물에 녹여 소금 잔뜩 탄 것 같은 이 버터티는 티벳 지역의 대표적 차라는데 입에 맞을려면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두어 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으니 창밖으로 눈이 내린다. 어.. 눈이다. 올해는 눈 못 보는 줄 알았는데.. 하다가 생각해보니 내일 캉딩으로 갈 수나 있을런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에 돌아와 삼인실 도미토리 가득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 TV를 켜놓고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눈은 점점 더 많이 내리는데 내일 버스가 안 다니면 여기서 뭘 하며 보낼까 한숨만 나온다. 하우아시아가 캉딩가는 버스에서 하루밤을 보냈다고 했던가.. 만일 버스가 다녀도 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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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덴> 론리 너무하다!!!

 

리장에서 퍼진 이유야 그저 쉬고 싶었다는 것이 가장 크겠지만 다음 일정이 엄두가 안 났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추위와 더불어 고도와의 힘겨운 싸움 역시 조금 뒤로 미루거나 아님 피해갈 방법이 없을까 하는 맘도 컸었는데 결국 여러 가지 고민 끝에 그냥 원래 일정대로 움직이기로 한다. 나란 인간도 꽤 융통성이 없는 것이 매번 고민은 하지만 나중에 보면 꼭 원래 루트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여튼 중덴은 무지하게 춥다는 여러 여행자들의 조언에 따라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두꺼운 것들은 죄다 꺼내 입고 버스를 탄다. -다행히 겨울옷은 징홍에서 태국으로 내려간 세아이 엄마에게 미리 얻어둔 게 있었다는- 리장에서 중덴까지는 4시간.. 두시간 정도는 제법 봄 들녘이 이어지더니 호도협 입구인 처우터우를 지나자마자 황량한 겨울 풍경이 이어진다.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중덴의 티벳식 사원식 송찬림사(송짠린쓰)


티벳식 기도 깃발인 타르초가 보이기 시작한다


송짠린쓰 가는 길에 만난 할머니, 점심 공양하러 가신단다.


버스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괜히 왔나 싶은 게 풍경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도무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중에 봄빛은 하나도 감지되지 않는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자 버스는 여지없이 중덴 터미널에 도착한다. 듣던대로 중덴의 날씨는 꽤 쌀쌀하다. 그래도 한참 추울 때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기도 하고 3월 중순까지 눈이 내린다는 소문에 비하면 견딜만한 정도다. 일단 다음 행선지인 샹청 가는 버스를 알아보니 아침 7시 반에 한대 있단다. 론리에는 삼사일에 한대씩 있다고 되어 있는데 그새 변했는지 매일 있는 모양이다. 배낭을 메고 택시를 세워 론리 숙소편 젤 앞줄에 나와 있는 친절하고 깨끗하다는 티벳 호텔로 가자고 한다. 말이 호텔이지 저가의 도미토리도 있는 곳이다. 다행히 기사가 그 곳을 알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택시를 내리고 보니 황당 그 자체다. 호텔에 들어서니 방은 거의 삼사십 개는 되어 보이고 식당이며 카페 간판은 보이는데 도무지 사람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리셉션에도 아무도 없다. 뭐 여행자 거리도 아닌 것 같은데 나가서 다시 택시를 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 핼로우 하고 인사를 한다.


다행히 영업은 하는 모양인데 이렇게 손님이 없다니.. 그새 사람이 그리워진 나로서는 우울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4인실 도미토리에 짐을 풀어도 손님은 달랑 나 하나다. 저녁이라도 먹으려고 식당을 기웃거려 보니 아까 인사하던 그 친구가 식당은 영업을 안하니 나가서 먹으란다. 다행히 근처에 가격은 좀 비싸지만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눈에 뛴다. 조금 더 나가볼까 했지만 썰렁한 거리 풍경에 질려 그저 밥만 먹고 돌아온다. 론리에는 공용 욕실이 깔끔하고 저녁 8시 이후엔 더운물도 나온다고 되어 있는데 게스트하우스 사상 처음 보는 문 없는 화장실에, 수도 꼭지하나 덜렁 있는 샤워실에, 더운물은 밤 10시 이후에나 나온다고 하니 도무지 씻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간신히 이만 닦고 방에 들어오니 그나마 전기장판이 위안이 된다. 생각 같아서는 내일 당장 중덴을 뜨고 싶지만 담부터 가야 하는 곳이 거의 이 수준이거나 이것보다 나쁠 것이 뻔한데 싶어 하루 더 머물기로 한다.


뭐 모든 여행기에 나와 있듯이 중덴은 중국 정부가 <샹그릴라> -뭐 이상향, 그런 뜻인데 제임스 힐튼이라는 작가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배경이 된 곳이라고 우기는 모양이다- 라고 개명하고 대대적으로 관광객 유치에 힘쓰는 곳이라는데 샹그릴라는 커녕 을씨년스럽기가 무슨 유령의 도시 같다. 옥룡설산에서 만났던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티벳의 험준한 여러 도시들을 거쳐 중덴에 도착하면 마침내 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그때야 비로소 샹그릴라로서의 중덴의 참맛을 알 수 있다는데 티벳의 험준한 도시는 커녕 따리와 리장의 아기자기한 고성을 거쳐 온 나로서는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는 이야기이다. 


중덴에도 규모는 작지만 고성이 있긴 하다


누구말대로 할머니들이 관광 자원이다. 고성 앞 광장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민속춤을 추시는 할머니들


담날도 거의 씻지도 못한 채로 시내로 나선다. 이 동네 아저씨들 머리가 떡져 있다고 은근 흉봤더니 남의 일도 아니다. 아시다시피 내 머리 하루만 안감아 주면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데다 날도 추워 이불 속에서 비비고 잤더니 뭐 거의 이 동네 아저씨 머리와 별다를 바가 없다. 에고..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더니.. 앞으로 남 흉보지 말아야겠다 싶다. 중덴에서 유일한 볼거리인 티벳식 사찰인 송찬림사에 들렀다가.. 중덴 시내를 걸어서 한 바퀴 돌고.. 아직 남아 있다는 구시가지를 돌아보니 얼추 하루가 간다. 다음 행선지인 샹청도, 리탕도 여기 보다 환경이 나쁘면 나빴지 좋을 리는 없는데 그렇담 머리는 언제까지 떡져서 다녀야 하나 고민이 된다. 그렇다고 얼음짱같이 찬물에 머리 감을 엄두는 전혀 나질 않는다. 물론 더운물이 나온다는 밤 10시 이후까지 기다릴 생각은 더더욱 안난다.


고민하고 있는데 미용실이 눈에 뛴다. 그래,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으면 되는구나 생각하다가 내친 김에 아마추어의 손길이 완연한 머리를 나름 프로에게 맡겨보기로 한다. 일단 말이 안 통하니 손짓으로 감고 자르려고 한다 했더니 알아듣는다. 일단 머리를 감겨 주는데 샴푸를 머리에 바르더니 머리 밑을 확실히 손톱으로 문질러준다. 그것도 매우 여러 번 꼼꼼히.. 손톱으로 머리 밑을 문지르면 피부가 죄다 상한다는데.. 그래도 시원은 하다만 우리나라 미용계 인사가 알면 기절할 일이다. 그 다음 커트에 들어가는데 이 꽃미남 되다만 남자 미용사 조금만 잘라달라는 사인을 조금만 남기고 다 잘라달라는 소리로 알아들었는지 성큼성큼 가위질이다. 후회가 몰려온다. 그냥 감기만 할 걸 어쩌자고 이 시골 프로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단 말인가^^ 그래도 이 친구 이 가위 저 가위 심지어 이 면도기 저 칼까지 동원해 공을 들인다. 원래 머리 자를 때는 안경을 벗는 법이라 내 머리 몰골이 어찌 되어 가는지 과정은 보이지 않는데 여튼 이 친구가 이리 공을 들이니 맘에 안 들어도 웃어줘야지 굳게 다짐한다. 막상 안경을 쓰니 헉!! 이건 완전히 <영구업따>다. 그러나 어쩌랴 머리야 자라는 거고.. 억지로 웃어준다. 머리감고 깍은 값이 6원, 우리 돈으로 780원이다. 에구 가격대비 화낼 계제도 아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뭐 어제와 그대로 아무도 없다. 그리고 여전히 춥다. 론리 숙소편 첫줄에 있으면서도 도무지 손님이 안 드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여전히 도미토리는 내 싱글룸이다^^ 앞으로 여정이 만만치 않으니 일찍 자두어야 할 텐데 잠은 오지 않고 밤만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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