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캉딩>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벽에 눈을 떠 창밖을 살펴보니 캄캄한 거리 너머로 하얗게 쌓인 눈이 보인다. 망했다. 밤새 눈이 더 내린 모양이다. 일단 버스정류장으로 나가 보기로 한다. 버스가 안 다니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다닌다면 다닐만 하니까 다니겠지.. 이 동네 눈 한 두 번 오는 것도 아닐 텐데.. 생각하기로 한다. 대체 이 동네는 버스들이 왜들 이리 꼭두새벽에 떠나는지 중덴에선 7시 30분, 샹청에선 7시 그리고 리탕에서 6시 30분 출발이란다. 게다가 중국은 전역이 베이징 표준시에 맞춰져 있어 해가 늦게 지는 대신 대략 7시가 넘어야 조금 밝아지는 정도라 6시면 거의 꼭두새벽인 셈이다. 배낭을 메고 나서니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에 눈이 뽀얗게 쌓여 있다. 그새 얼었는지 밟으니 미끌한다. 랜턴을 꺼내들고 눈길을 걸어 터미널로 향한다.


다행히 버스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표를 팔고 있다. 잠시 고민하다 표를 끊는다. 뭐 내일이라고 더 낫겠어.. 그새 눈이 녹을 것도 아니고.. 다 운이야 운.. 그런 생각이다. 버스를 타니 온기가 느껴진다. 히터를 튼 모양이다. 아니 중국 버스가 난방이 안 되는 게 아니었잖아.. 에이 진작 좀 틀어주지 싶으면서도 따뜻하니까 당장 기분이 좋아진다. 터미널앞 식당에서 얻어 온 더운 물로 커피를 타고 혹시 몰라서 비상식량으로 사놓은 빵이며 과자들을 꺼내 먹으며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린다. 이렇게 눈이 오는데도 버스는 사람들로 거의 찬다. 눈탓인지 해가 얼핏 밝아진 7시가 넘어서야 버스는 터미널을 떠난다.


캉딩가는 버스


세상이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있다


같은 버스에 탄 할머니


리탕을 벗어나자 마자 버스는 다시 눈덮인 산길을 달린다. 처음엔 그나마 마을이며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더니 한시간쯤 지나자 그저 하얗게 눈덮인 산들뿐이다. 어느 지점에선가 체인을 감은 버스는 내 걱정과는 달리 서너 시간을 별 문제 없이 달려 준다. 이러다가 제시간에 도착하는 거 아닌가 하는 야무진 생각이 날 무렵 결국 버스가 멈춰 선다. 반대편 도로에서 차 한대가 도로를 대각선으로 가로 막고 멈춰서 있다. 체인없이 올라오다 미끄러진 모양인데 그래도 도로에 멈춰서길 다행이다 싶다. 다행히 차가 고장난 건 아니라 한시간 여를 체인을 감고 수선을 피우더니 다시 도로가 열린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버스는 눈쌓인 협곡을 굽이굽이 달려 저녁 7시쯤 캉딩에 무사히 도착한다. 정확히 12시간 걸린 셈이다.



 캉딩 가는 길1


캉딩 가는 길2


그 와중에 사진도 찍고^^


캉딩 역시 제법 높은 산들 사이에 형성된 도시인데 내 바램과는 달리 리탕 못지않게 춥다. 게다가 눈이 내리는 건지 산위의 눈이 날리는 건지 여튼 아직까지 눈발이 분분하다. 이젠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숙소를 찾을 힘도 없어 그냥 삐끼를 따라 터미널 앞에 있는 숙소에 들어간다. 그만그만한 방이다. 밥 먹으러 나가기도 귀찮아 나머지 비상식량을 저녁삼아 털어먹고 일찌감치 자리에 눕는다. 며칠 샤워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았는데 더운물이 나온다는 이 숙소에서도 씻을 엄두는 나질 않는다. 캉딩 구경이고 뭐고 내일 아침에 그냥 성도로 떠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추운 게 사람을 이리도 무기력하게 만들다니.. 앞으로 티벳이며 네팔 트레킹은 어찌해야 할지 아득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제 하루만 더 지나면 성도에 도착이니 일단 티벳 가는 길의 반은 온 셈이다. 결국 예정과는 3박 4일을 거의 버스만 타고 달려 온 셈이지만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본 여정이기도 하다. 하루 평균 9시간 정도 버스를 탔지만 지루하거나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리탕에서 5시간 반 만에 내릴 땐 왠지 좀 아쉽기도 했는데.. 여튼 버스 안에서 많이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한 번이면 충분하다. 다음부턴 어지간하면 비행기 타고 다니고 싶은 길이기도 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