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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쳅차오웬> 하얗고 파란 마을

버스가 페스를 벗어나면서 기분이 다시 좋아지기 시작한다. 날씨는 다시 화창해지고 주위는 초록이 한창이다. 제법 봄꽃을 피워 올린 나무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버스는 산길을 돌아간다. 얼마 만에 보는 나무 있는 산이더냐..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만 아니면 그저 시외버스라도 타고 있는 것 같다. 산길을 한참이나 달리던 버스는 산중턱에 온통 하얀 건물들로 가득한 마을에 내려 준다. 이곳이 모로코 북부의 휴양지인 쳅차오웬이다. 터미널에서 내려 찾아간 마을은 온통 하얀색과 파란색으로 이루어진 건물들로 가득하다. 이건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인데.. 그래 그리스의 산토리니랑 비슷한 느낌이다. 숙소도 온통 하얀색과 파란색으로 되어 있고 심지어 방도 벽은 하얗고 침대며 가구, 창틀은 푸른색이다. 산토리니에서도 하얗고 파란 방은 비싸서 묵지도 못했건만 아싸.. 여기서 묵어보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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쳅차오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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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바라본 풍경

 

여기서도 싸고 깨끗하다는 숙소는 여전히 풀이지만 그 옆의 다른 숙소도 그럭저럭 싸고 깨끗하다. 날씨도 생각보다 따뜻하고 무엇보다 습도가 낮아 살만하긴 한데 감기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차라리 확 아파 버리면 하루 이틀 끙끙 앓고 일어나면 개운할텐데 그저 몸만 무겁고 미열이 있는 증상만 며칠째 계속된다. 아무래도 일교차가 너무 심한 게 이 감기의 원인이지 싶다. 스페인으로 올라가면 일정도 빠듯해지고 물가도 비싸질테니 여기서 이삼 일 푹 쉬었다 가야 할 것 같다. 다행히 숙소도 맘에 들고 동네도 편안한 분위기라 쉬기에는 딱 좋은 동네이다. 페스의 숙소는 더운물이 나오질 않아 씻지도 못했는데 오자마자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밝고 환한 방안에 누워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역시 숙소는 깨끗하고 볼 일이다^^.

 

그래도 굶을 수는 없으니 밥도 먹을 겸 동네로 나가 본다. 누가 모로코 아니랄까봐 이 좁은 동네도 온통 하얀색과 파란색의 페인트를 뒤짚어 쓴 골목들이 무성한 나무 가지처럼 뻗어 있다. 골목에 다시는 들어가지 말아야지 했던 다짐도 어느새 잊고 어느새 푸른색의 골목으로 빨려 들어간다. 산 밑에 있는 동네라 골목은 온통 좁은 계단으로 이어져 있어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계단의 끝은 막다른 골목이거나 또다른 계단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골목만 미로 같은 게 아니라 집구조도 미로 같은 모로코의 집들은 작은 나무 문밖에서는 거의 아무 것도 볼 수 없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면 제법 큰 집안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아주 신기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 동네도 여느 동네들처럼 상점이 밀집된 골목만 벗어나면 어디서나 아이들이 뛰어 놀고 어른들은 문 앞에 나와 앉아 한낮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그저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평범한 동네다. 그나마 동네가 그리 크지 않아 두어 시간이면 대략 골목이 파악된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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쳅차오웬의 상점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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쳅차오웬의 상점들2

 

동네는 손바닥만하고 별달리 할 일도 없으니 카페에 앉아서 엽서를 쓴다. 사실 엽서란 게 참 애매한 분량이다. 간단한 안부만 묻기엔 좀 길고 긴 사연을 쓰기엔 좀 짧고... 게다가 이젠 볼펜으로 뭔가 쓴다는 일이 익숙치가 않아져서인지 안 그래도 못 쓰는 글씨는 거의 날아갈 지경이니 살 때는 그래도 볼만했던 엽서가 글을 써 놓으면 왠지 후줄그레해지는 게 영 맘에 들질 않는다. 이럴 땐 잽싸게 부치는 상책이니 우체국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막상 우체국에 가보니 이 동네 우편 요금이 장난이 아니다. 아무리 국제 우편이라도 엽서는 어느 나라할 거 없이 몇백원 수준이었는데 웬걸 한 장에 거의 이천원 돈이다. .. 그냥 찢어버릴까^^ 잠시 갈등이 된다. 참 돈 만원에 인간 많이 쪼잔해졌다 싶지만 만원이면 하루치 방값이요, 이틀치 밥값이다. 그래도 어쩌랴.. 그냥 우표를 산다. 비싸면 우표라도 좀 이쁘면 좋을 텐데 하나도 안 잘생긴 이 나라 국왕께서 전체 우표를 도배하고 계시다. 자기 얼굴을 생각해서 지폐 정도로 만족하시고 우표는 풍경에게 양보해도 좋으련만 참 대책이 안서는 아저씨다

 

다음날도 그저 동네 카페에 앉아서 논다, 두번만 가면 단골이 되는 동네 카페는 관광객들 뿐 아니라 동네 아저씨들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카페 죽돌이 아저씨 하나가 예의 질문 레파토리를 쏟아내더니 종이 하나를 들고 다가오신다, 싸인 해달라는 건 아닐테고 뭘까 유심히 바라봤더니 허걱 로또 번호를 적는 종이다. 로또를 아느냐고 물어보더니 숫자 여섯 개씩을 두 군데다 찍어 달라신다. 웃으면서 사양을 하는데도 이 아저씨 거의 막무가내인데다 옆에서 카페 주인아저씨까지 거드는 통에 더 이상 사양하기도 쉽지 않다. .. 부담스럽다. 내 생전 로또라고는 이전에 김박사의 감언이설에 속아 산 한 번이 전분데-그걸 내 돈으로 샀는지도 아리까리하지만 김박사가 사줬을 리는 없으니 내가 산 게 맞긴 맞을 거다^^- 이 아저씨의 기대에 찬 눈빛을 한 눈에 받으며 번호를 골라내자니 손이 다 떨릴 지경이다. 대충 12개의 번호를 골라서 건네준다. .. 100디르함짜리 하나라도 맞았으면 좋겠는데 결과야 하느님만이 아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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쳅차오웬의 골목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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쳅차오웬의 골목길2

 

나머지 시간은 인터넷을 뒤지며 보낸다. 모로코에서 한국여행자 하나라도 만나면 스페인 가이드북 정도야 얻어 볼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내일이면 모로코를 떠나는 오늘 이 시간까지 한국인 여행자는 하나도 못 만났으니 자력갱생하는 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열흘 남짓 있을 나라를 위해 가이드북을 살 수는 없으니 인터넷만이 살길이다. 대충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축으로 갈만한 도시를 끼워 넣으니 대략 론다-그라나다-세비야-똘레도-마드리드-바르셀로나 정도의 루트가 나온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제외하고는 거의 하루씩 보고 이동하는 내가 상당히 싫어라 하는 일정이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갈 곳은 유럽이고 유럽의 하루 체제비는 대략 이때까지 내가 다녔던 나라들의 사나흘 체제비에 해당하니 싫어도 이렇게 움직일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이런 이동을 내 나른해진 몸이 견뎌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 행복 끝 고생 시작의 빡센 일정으로 접어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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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 페스가 싫다

여덟 시간의 기차 여행 끝에 페스에 도착한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메디나의 입구는 거대한 공동묘지다. 썰렁한 광장을 지나 시장 입구에 도착하니 숙소가 한두 개 보이기 시작한다. 가이드북에서 미리 찍어 둔 숙소를 찾아간다. 어두운 입구를 지나 음침한 방을 보니 우울함이 확 밀려온다. 고개를 설래설래 젓고 나쨈?/span>. 다음 숙소에 들어간다. 아까 숙소보다 더 우울하다. 세 번째 숙소도 별로 다르지 않다. 배낭은 점점 무거워져 오고 삐끼들은 점점 더 극성을 떠는데 아무래도 이 동네 숙소는 죄 이 수준인 거 같다. 그나마 처음 본 방이 쬐끔 낫다 싶어 다시 그 숙소로 돌아간다. 이틀만 묵겠다고 돈을 주고 방에 들어서는 순간 전기콘센트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망했다. 이틀밤을 뭘 하면서 보낼지 앞이 깜깜하다.

 

밥 먹으러 나가는데 호텔 리셉션에 있던 총각이 뒤에서 열심히 부른다. 안 그래도 우울한데 왜 하고 돌아보니 어디 가냔다. 남이사.. 밥 먹으러 간다니까 뒤에 있는 식당을 가리키며 이 식당이랑 그 호텔이랑 같은 집이란다. 싸고, 깨끗하고 어쩌고저쩌고 정신없이 떠들어 대길래 그래 하루쯤은 여기서 먹어주자 싶어 자리를 잡는다. 메뉴판을 보니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전 메뉴 40디르함 즉 5천원 균일이다. 비싸다고 일어설까 하다가 어차피 자리를 잡은데다 다른 가게의 음식값도 싸지는 않을 테니 바가지를 써도 천원 정도일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음식을 시켰는데 황당하게도 다른 집에 가서 음식을 사가지고 온다. 완전히 당했다는 느낌이 든다. 페스에서 보낼 이틀이 끔찍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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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나안의 광장, 앉아 있는 사람들마저 우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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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나안의 시장, 그나마 가장 생기가 넘치는 곳이다

 

다음날 페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가죽염색공장을 찾아 나선다. 이 가죽염색공장 역시 메디나의 골목길 속에 있다. 사실 페스의 골목길은 마라케쉬보다 한 수 위다. 메디나 자체가 마라케쉬보다 작으니 골목길도 좁고 경사도 상당한데 그 좁은 가파른 골목이 무려 9천개나 된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미로라 불리는 이 골목으로 잘못 들어갔다간 일주일이 지나도 못 나오는 수가 있다는데 일주일은 몰라도 당일날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제 더 이상 골목이란 이유로 메디나를 헤매는 모험은 하고 싶지 않다. 사실 이제 골목들도 그 골목에 있는 가게들도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골목을 헤매지 않는 법은 간단하다. 단체관광객 뒤를 졸졸 따라가면 최단거리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유럽 관광객 한 팀을 찍어서 뒤를 따라가니 30분도 패 안 되어 가죽염색공장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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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건물로 둘러싸인 가죽염색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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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을 당기면 이렇다

 

가죽염색공장은 말이 공장이지 거대한 노천에 여러 색깔의 염료를 담은 통을 늘어 넣고 거기에서 사람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근처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게 전부다. 온통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는 그곳은 가까이 접근할 수도 없고 그저 테라스에서 잠시 사진을 찍고 나오는 게 전부인데 그나마 그 테라스를 빌려준 가게에서는 일괄적으로 20디르함씩의 비공식 입장료를 요구한다. 동물의 가죽에서 나는 냄새와 염료 냄새가 뒤엉킨 지독한 냄새를 맡으며 사진 두어 장을 찍고 돌아오니 여전히 오전이다. 이 길고 긴 시간 동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방이 음침하니 방에서 쉬고 싶은 생각도 안 들고 인터넷을 하자니 가격이 다른 도시의 두 배고 저 골목 속으로는 더 이상 들어가고 싶지 않고.. .. 난 정말 페스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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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의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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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의 전경, 위와 같은 골목이 무려 9천개나 있단다

 

남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 페스의 전경이 펼쳐진다는 누군가의 무덤이 있다는 곳을 가보기로 한다. 론리에는 혼자서는 가지 말라고 되어 있건만 알게 뭐냐.. 그냥 간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옆길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니 페스의 전경이 한 눈에 펼쳐진다. 그런데 날이 흐리다. 사실 모로코의 날씨란 게 낮에는 햇볕이 쨍하다가도 해만 지면 초겨울 날씨로 변해 약간의 감기 가운이 늘 따라다녔는데 패스에서는 그나마 낮에도 날씨가 흐리니 몸이 영 좋지를 않다. 게다가 모로코에 오면서부터 계속 높은 습도 탓인지 축축한 기운이 몸에서 떠나질 않는다. 사진 몇 장을 찍고 서둘러 내려온다. 이럴 땐 그냥 자는 게 상책이다. 일찌감치 감기약을 털어 먹고 잠자리에 든다. 하루 밤만 자면 페스 탈출이다. 이 약이 감기약이 아니라 수면제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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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케쉬> 미로 속을 헤매다

이번에는 그리 멀지 않다. 에싸웨라에서 버스로 세 시간쯤 달리니 어느새 마라케쉬다. 이제 세 시간쯤 이동하는 일은 그저 옆동네에 가는 것 같다^^. 여행자 숙소가 몰려 있는 자말엘프나 광장까지는 택시나 버스를 타야 하는데 이번엔 버스를 탄다. 아직 택시비가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대부분 미터기를 이용하는 모로코 택시는 선뜻 타기가 꺼려진다. 흥정하는 택시보다 미터택시가 더 경제적일 것 같지만 말도 안 통하고 길도 모르는데 돌아가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는 게 또 이 미터 택시다. 그나마 유명한 곳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버스를 타는 편이 몸은 좀 고되도 맘이 더 편하다. 다행히 터미널 근처에 있는 유스호스텔에 묵고 있다는 독일 아저씨를 만나 헤매지 않고 광장까지 무사히 도착한다. 그러나 맘에 두고 찾아간 호텔은 또 방이 없다. 이 놈이 유럽 여행객들은 도대체 언제가 비수기란 말이냐... 결국 몇 집을 더 헤매다 적당한 호텔에 짐을 푼다

 

모로코에서 4번째로 큰 도시라는 마라케쉬는 지금부터 천년전 알모나데 왕조의 수도였던 역사적인 도시로 온통 붉은 색의 건물들과 미로 같은 골목들로 이어진 메디나로 유명한 곳이다. 이 메디나의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자말엘프나 광장은 마라케쉬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데 낮에는 약장사를 비롯해 뱀장사, 점쟁이, 헤나 아줌마, 오렌지쥬스나 달팽이 등을 파는 온갖 잡상인들로 가득하다가 밤이 되면 거대한 노천 식당으로 변하는 굉장히 시끄럽고 분주한 곳이다. 낮에 이곳을 다니고 있으면 80년대 청량리 역전을 방불케 하는 각종 쇼가 벌어지는데 어디서나 사람들의 기술을 뻔한 건지 말은 많고 핵심은 보여줄 듯 보여줄 듯 안 보여주는 게 우리나라 약쟝수와 별 다를 바가 없는데도 여기저기 둥그렇게 둘러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로 무리를 이루고 있다. 사진이라도 찍을라치면 귀신같이 돈 달라고 달려오는 통에 그저 설렁설렁 어깨 너머로 구경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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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말엘프나광장, 카메라만 들이대면 돈 달라는 통에 디테일한 건 찍을 엄두도 못 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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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광장은 거대한 노천식당으로 변한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밤이 되어 다시 광장으로 나가본다. 광장은 낮과는 다르게 거대한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고 케밥 굽는 연기 사이로 전통 공연을 하는지 음악소리가 요란하다. 이렇게 관광지 가득 들어찬 노천 음식점들치고 맛있는 곳 못 보긴 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한자리 끼어서 음식을 주문한다. 이때까지 목사님이 싸주신 도시락 말고 먹은 거라곤 숙소에서 주는 빵이나 길거리 샌드위치가 고작이었으니 모로코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인 따진과 꾸스꾸스를 하루씩 먹어 본다. 따진은 고기와 야채를 넣고 노란 커리같은 향신료와 함께 푹 삶은 듯한 요리인데 생각보다 향이 강하지 않아 비교적 입맛에 맞는데 비해 꾸스꾸스는 역시 고기와 야채를 향신료와 삶았다는 점에선 공통적이지만 약간 쉰듯한 맛이 나고 좁쌀을 삶은 듯한 하얀 곡류와 같이 나오는데 이 곡류도 그다지 입맛에 맞지는 않는다. 하루 식사란 게 아침엔 잼바른 삐따빵, 점심엔 삐따빵 샌드위치 저녁엔 따진이나 꾸스꾸스와 삐따빵 뭐 대략 이런 조합이니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밥 생각이 간절하다

이건 비프따진, 옆에 건 곁들이로 나오는 올리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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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꾸스꾸스, 옆에 얼핏 보이는 게 삐따빵이다

다음날은 메디나를 돌아본다. 메디나는 이 자말엘프나 광장을 둘러싸고 긴 수크가 이어지고 수크 너머에는 사람들이 사는 집들로 가득차 있다. 그래도 유서 깊은 도시라는데 어디를 가볼까 론리 복사본을 뒤적거려 본다. 먼저 꾸뚭비아모스크, 저건 광장에서도 뻔히 보이는 저 첨탑 건물인데.. .. 무슬림이 아니면 못 들어가는군 다음! 알리벤유세프모스크.. 이것도 무슬림이 아니면 못 들어가는군.. 안간다 안가.. 그럼 어딜 가라는 말이냐.. 알리벤유세프메데레사 여긴 또 뭐냐.. 대략 모스크 부설 회교 학교쯤 되는 것 같은데 여기나 가볼까.. 하고 나선 것이 실수였던 것이다. 대략 방향을 잡아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자 온통 갈림길로 가득한 골목이 나온다. 표지판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길을 물어봐도 손가락으로 가르쳐주는 방향만큼 가다보면 어느새 또 갈림길이니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지도를 보면 그리 멀어보이지도 않은 길인데 두어 시간을 뺑뺑이를 돌아도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오기가 생긴다. 메데레사인가 뭔가는 이제 안중에도 없다. 그저 가볼까 나섰던 길이었던 거지 꼭 볼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되는대로 걸어 다닌다. 지가 헤매봤자 성안이지 싶은데 한 시간쯤 걸으니 동쪽에 있는 문이 나왔다가 다시 두 시간쯤 걸으니 이제는 북쪽에 있는 문이 나온다. 그리 넓은 곳도 아닌데 도대체 골목은 시작도 끝도 보이질 않는다. 온통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길도 한골목만 안으로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기만 하고 더 안쪽 골목은 들어갈 엄두도 나질 않는다. 한때 골목은 시장과 더불어 여행의 로망이었는데 여섯 시간을 내쳐 걷고 나니 이제 골목의 갈림길만 봐도 이가 갈린다. 도대체 이 인간들은 어쩌자고 이런 길에 집을 만들고 산단 말이더냐.. 황당해하며 골목에 주저앉아 있는데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배달하며 다니는 게 보인다. .. 어디나 고수는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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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그래도 시작은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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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엔 거의 이런 골목길을 돌아다녔다는ㅠㅠ

 

결국 메디나의 골목길에 두손두발 다들고 숙소로 돌아온다. 다음날은 30초에 한번씩 길을 물어가며 나란히 붙어 있는 궁전 두개와 어느 왕조의 묘지 하나를 둘러보고 잽싸게 숙소로 돌아와 그저 숙소 근처에서 논다. 더 이상 미로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아는 길을 뱅뱅 돌며 즉석에서 갈아주는 오렌지 쥬스를 마시고, 이쑤시개로 달팽이도 뽑아먹고, 서른한 가지는 까지는 안 되도 스무 가지쯤 되는 아이스크림을 골라먹으면서  돌아다니는 사이에 어느새 밤이 오고 광장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음악소리는 어제와 다름없이 요란한데 이상하게도 이곳은 단 하루만에 익숙하면서도 낡은 풍경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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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싸웨라> 항구와 해변이 있는 마을

카사블랑카에서 에싸웨라까지는 모로코의 공영버스인 CTM버스를 타고 간다. 별도의 전용터미널이 있고 짐도 비행기처럼 별도로 부치는 창구가 있는 나름 고급버스다. 차가 넓고 편안하지만 차편이 그리 많지는 않아서 에싸웨라행 버스 역시 아침 일곱 시와 저녁 다섯 시 달랑 두 대뿐이다. 어딘가에 일반버스 터미널도 있으련만 찾기가 쉽질 않다. 아침 일곱 시 차는 출발이 너무 이르고 저녁 다섯 시 차는 도착이 너무 늦어 고민하다가 밤늦게 도착하는 거 보다야 낫지 싶어 아침 차를 탄다. 에싸웨라로 가는 길은 온통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여느 중동 지방처럼 이곳도 도시만 벗어나면 황무지려니 했던 생각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다. 오랜만에 보는 초록빛이 너무 예뻐 창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한국에서 늘 보던 풍경이었는데 나무와 풀들이 이렇게 새삼스럽게 느껴지다니 중동에 오래 있긴 한 모양이다.

 

에씨웨라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삐끼 아주머니 몇몇이 말을 건네 온다. 스카프 쓴 삐끼는 또 처음이다^^. 바닷가에 있는 집이라는데 가격도 아주 싸다. 지금부터 짐을 들고 지도도 없이 호텔을 찾아야 하는 신세를 생각하면 그냥 따라가고 싶은 유혹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 경우 숙소가 시내와 많이 떨어져 있거나 호텔이 아닌 일반 가정집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잠깐 편하자고 이삼일의 불편을 감수할 순 없으니 과감히 뿌리치고 일단 시내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대략 메디나 안에 숙소촌이 있다고 들었으니 물어물어 메디나 입구까지 찾아가긴 했지만 이곳의 메디나 역시 미로 같은 골목길이 버티고 있다. 론리 첫줄의 숙소를 물으니 대략 방향을 알려 준다. 물어물어 찾아간 숙소는 이미 풀이다. 여튼 론리에 나온 숙소치고 풀 아닌 데가 없다. 결국 근처에 있는 다른 숙소를 찾는다.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깨끗하고 조용하다. 마음에 드는 방을 얻고 나니 갑자기 동네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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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전통가옥을 개조한 호텔, 가운데 커다란 공간이 뚫려 있고 그 주변으로 방들이 둘러싸고 있다. 고로 창문은 전부 복도로 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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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과 욕실은 공용이지만 방안에는 세면대가 있어 편리하다

 

에싸웨라는 유럽인들도 많이 오지만 모로코 현지인들에게도 유명한 관광지라고 한다. 모로코의 여느 도시들처럼 구시가지인 메디나가 있고 메디나를 벗어나면 항구와 해변이 한 눈에 보이는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이다. 도시도 그리 크지 않아 메디나와 항구와 해변을 몽땅 돌아다녀도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는다. 어딜 가나 그림엽서 같은 작고 아담한 마을이지만 전형적인 관광지답게 메디나의 골목마다 온통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어딜 가나 유럽인 관광객을 가득 채운 버스들이 줄을 서 있다. 이집트나 모로코처럼 유럽에서 가까우면서도 기후가 온화하고 물가가 싼 나라들이 관광지로는 가장 만만한지 어딜 가나 유럽 노인네들 천지다. 여행 초기엔 노부부가 나란히 손잡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더러 감동도 하곤 했는데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이제 집에서 좀 쉬시지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하긴 그나마 중동에서 유럽 노인네와 현지 처녀애 커플은 안 봐도 되니 그나마 좀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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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나안의 카펫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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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나안의 도자기 가게

 

모로코의 특산물인 카펫과 도자기 그릇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한 메디나 주변을 돌아다니다 발걸음을 항구로 옮긴다. 항구에는 고기잡이배들이 가득하고 그 주위로 잡아 온 물고기들을 실어가거나 즉석에서 판매하는 장이 펼쳐진다. 또 한켠에는 동네 아저씨들이 물고기를 손질하느라 한창이고 주변은 온통 비릿한 삶의 냄새로 가득하다. 관광객들만 없다면 전형적인 어촌이라 할 만한 풍경이다. 질퍽한 삶의 현장을 빠져 나와 이번에는 해변으로 향한다. 모래사장이 10Km나 이어져 있다는 이곳 해변에는 축구하는 애들이며 데이트하는 커플, 함께 나들이 나온 가족들로 북적거린다. 모래사장에 잠시 앉아 있으려니 외국인이 아니 동양인이 마냥 신기한 동네 청춘들이 한시도 사람을 가만두지 앉는다. 어디서 왔냐, 이름은 뭐냐, 모로코는 좋냐, 교과서에 외국인용 표준 질문이라도 실렸는지 한 치도 틀리질 않는다. 유럽으로 올라가면 쳐다보지도 않는다니 그때가 되면 이들의 대책 없는 관심도 그리워지려나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고만 좀 내버려뒀으면 하는 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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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는 고기잡이배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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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나의 성벽 너머로 해가 진다

 

딱히 볼거리는 많지 않지만 에싸웨라는 메디니와 바다 그리고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 곳이다. 사실 특별한 관광지가 없다는 게 여행기를 쓰기는 괴롭지만 여행하기엔 더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저 숙소에서 나와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지치면 카페에서 커피나 한잔 마시며 사람 구경이나 하고 누군가가 말을 건네 오면 쓰잘데기 없는 수다나 떨다가 다시 걷고 그도 지겨우면 숙소로 돌아 와 한잠 자고 저녁 무렵 바닷가에 앉아 일몰을 본 것이 에싸웨라에서 한 일의 전부다. 사실 여행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이런 거였는데 막상 해보면 좀 심심하기도 하다^^. 이렇게 이틀을 머물고 마라케쉬로 떠난다. 마라케쉬도 앞으로 가게 될 페스나 쳅차오웬도 별다른 관광지는 없는 곳이라니 그저 모로코는 사람들 구경이나 하며 천천히, 쉬엄쉬엄 움직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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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이번엔 목사님이다

카이로로 돌아와 여행사를 돌아다니며 항공권을 알아본다. 인터넷에서 유럽으로 가는 저가항공권을 알아보았지만 대부분 영국이나 독일행이고 그나마 편도는 발권이 되질 않으니 비싸지만 여행사를 통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어차피 유럽으로 가는 저가항공권을 끊을 수 없다면 모로코를 거쳐 스페인, 이태리로 이동할 생각으로 카사블랑카행 항공권을 알아본다. 여행사마다 다녀 봐도 카사블랑카행은 이집트에어 단 한 종류뿐인데다 항공권 가격 또한 큰 차이가 없다. 우리 돈으로 대략 30만원 정도인데 문제는 출발 시간이 저녁 일곱시 단 한 번뿐이다. 모로코까지 비행시간이 대략 여섯 시간이니 저녁 일곱 시에 출발하면 두 시간의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대략 밤 열한시에 도착하게 되니 택시로 시내까지 이동한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호텔은 리셉션이 닫힐 시간이다. 에구.. 아무래도 공항에서 노숙을 해야 할 것 같다.

 

부랴부랴 서점을 뒤져도 모로코 가이드북은 통 뵈지를 않더니 우연히 숙소에서 론리 지중해편 한권이 눈에 뛴다. 아쉬운 대로 한 귀퉁이에 있는 모로코 정보를 복사를 해 둔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깡만 느는지 오로지 론리 복사본 24장만 믿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비행기를 탄다. 같은 비행기에 배낭 여행자가 있으면 같이 숙소까지라도 갈까 했더니 웬걸 크지도 않은 비행기엔 온통 모로칸들 뿐이다. 아무래도 노숙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주는 밥 먹고 주는 간식 먹고 꾸벅꾸벅 졸다가 보니 어느새 카사블랑카 공항이다. 입국 절차를 마치고 공항에서 연결되는 기차역으로 내려가 보니 카사블랑카행 기차는 이미 끊어지고 아침 6 50분에 다닌다는 표지만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혹시나 싶어 공항 밖으로 나가보니 택시만 두어 대 보일 뿐 삐끼하나 없이 조용하기만 하고 심지어 비까지 추적추적 내린다. 다시 배낭을 메고 공항으로 들어온다. 공항 이곳저곳을 뒤져 그나마 사람이 덜 다니는 대합실 한 켠에 누울 자리를 마련하고 잠을 청한다.

 

어느새 잠이 들었나 했는데 으스스한 한기에 눈을 뜨니 5시가 조금 넘어 있다. 잠이 들 땐 그리 춥지 않았는데 더 이상은 잠을 청할 수 없을 만큼 추위가 느껴진다. 하는 수 없이 침낭을 뒤집어쓰고 흡연실로 들어간다. 새벽이라 담배 피는 사람은 거의 없고 사방이 막힌 탓인지 대합실보다는 한결 따뜻하다. 잠시 몸을 녹이고 공항에 있는 ATM에서 모로코 돈을 찾아 기차역으로 내려간다. 6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주위는 아직 깜깜하다. 유스호스텔이 있는 카사포트역까지 가는 기차표를 끊고 잠시 기다리니 기차가 온다. 차량 하나에 마주 보고 가는 4인식 좌석이 대여섯 개 가량 되는 미니 기차다. 중간에 기차를 갈아타고 카사포트역에 도착하니 주위가 조금 밝아 온다. 기차역에서 표지를 따라 유스호스텔을 찾아간다. 유스호스텔은 생각보다 싸고 깨끗하다. 휴우... 이번엔 안 헤매고 제대로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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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시내, 유럽풍의 건물 사진은 왜 없는거냐구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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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가지에서 바라본 메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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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잠 자고 일어나보니 문제 발생이다. 겉은 멀쩡하기만 한 이 놈의 유스호스텔은 어찌된 일인지 더운 물이 나오질 않는다. 어쩐지 싸더라니... 공항에서 자느라고 상태는 말이 아니지만 이 날씨에 찬물로 샤워를 하다간 감기 걸리기 딱 좋게 생겼으니 그냥 모자 하나 눌러 쓰고 시내로 나가본다. 일단 신시가지나 둘러보며 동네 분위기나 익혀둘 생각이다. 카사블랑카 시내는 유럽풍의 건물들 사이로 아랍인들이 오가는 조금은 기묘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모로코와 모나코를 헷갈리지 마시라. 같은 왕국이지만 모로코는 아프리카 서북부에 있는 아랍 국가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인사를 건네고 저팬이냐 차이나냐 묻는 건 여느 아랍 국가랑 다를 바가 없는데 여자들의 옷차림이며 거리의 모습은 여느 아랍 국가와는 또 느낌이 다르다. 대략 난감인건 이들의 공용어가 아랍어와 불어라는 건데 그래서인지 길가는 사람마다 불어로 인사를 건네고 뭔가 물어도 불어로 대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으.. 영어 이렇게 안 통하는 나라는 중국 이래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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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나안의 사람들, 아마 공동으로 수돗물을 길어가는 곳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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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나안의 사람들, 고깔모자의 전통복장은 왜 또 뒷모습밖에 없는거냐구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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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날은 구시가지인 메디나와 핫산Ⅱ모스크에 다녀온다. 카사블랑카의 메디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골목에 시장인 수크와 주거지인 카스바가 함께 공존하는 구시가지이다. 미로 같은 골목들로 이루어진 메디나 안은 현대적인 느낌의 시내와 달리 전형적인 아랍 서민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 좁은 골목에 집들이 있고, 시장이 있고, 모스크가 있고 또한 모로코 사람들이 있다. 모로코인들의 전통적인 의상은 뾰족한 모자가 달린 긴 겉옷인데 이 옷을 입고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동화 속 나라의 마법사들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복잡한 메디나의 골목을 지나 핫산Ⅱ모스크로 향한다. 바닷가에 세워진 이 현대적인 모스크는 모스크 자체뿐 아니라 바닷가에 놀러 온 현지인들로 가득하다, 여름에는 수영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는 해변은 추운 날씨 탓인지 낚시하는 사람들만 눈에 뛸 뿐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방파제로 막힌 파도가 높은 바닷가를 거닐기도 하고 모스크에 앉아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모스크 옆으로 방파제가 주욱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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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산Ⅱ모스크, 멀리서보면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다음 도시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러 터미널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낯익은 한국말이 들린다. 가끔 아랍어가 한국어로도 들리는 증상이 있어 왔기에 설마하고 뒤돌아보니 한국 아주머니 한 분이 양손에 짐을 들고 막 택시에서 내리는 중이다. 얼결에 인사를 하고 짐을 들어드리면서 어디 가시냐고 물었더니 터미널에 짐 부치러 나온 길이라고 하신다. 알고 보니 이 곳 카사블랑카에서 선교를 하고 계신 목사님이다. 내 상태를 가만히 보시던 이 분.. 도저히 안 되겠는지 당장 짐에 가서 씻고 밥이나 먹고 가라며 잡으신다. 씻을 수만 있다면 어디라도 따라 가고 싶은 마음인데 마침 여자 목사님이신데다 혼자 사신다니 조금 미안하지만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선다. 카사블랑카 시내에서 택시로 목사님집까지 이동한다. 간만에 욕조에서 때도 밀고 푸짐한 저녁까지 얻어먹고 돌아온다. 아예 자고 가라시는 걸 다음날 짐을 가지고 다시 오기로 하고 일단 호텔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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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예배가 끝날 무렵 교회로 짐을 들고 찾아간. 목사님 집에 짐을 풀어 두고 코이카에서 파견 나왔다는 신자 하나와 셋이서 근교 해변으로 나간다. 이번엔 방파제로 막힌 바다가 아니라 탁 트인 바다다. 어차피 인위적인 구분이긴 하지만 이 바다는 대서양이라니 새삼 신기한 마음이 든다. 목사님이 사주시는 양고기 구이를 점심으로 먹고 돌아와 밀린 빨래를 돌리고 나니 그간의 묵은 때가 확 가시는 것 같다. 다음날은 슈퍼에서 장도 보고 오후에는 벼룩시장도 다녀오고 편안하게 이틀을 보낸다. 게다가 끼니마다 한국 음식에 한국 텔레비젼까지 나오는 집에서 뒹굴거리니 모로코가 아니라 한국 어디쯤엔가 있는 것도 같다. 목사님은 또한 양말이며 로션 같은 이런저런 소모품을 챙겨가라고 내주신다. 괜찮다고 사양을 하는데도 자꾸 이것저것 챙겨주시니 죄송하기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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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근교의 해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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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모를 해변에서... 나다

 

며칠 더 머물고 싶지만 바르셀로나에서 로마로 가는 저가 항공권을 이미 끊어 둔 터라 모로코 일정은 조금 빠듯한 편이니 아쉬운 마음으로 목사님댁을 나선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집트에서 너무 퍼지는 통에 조금 빨리 움직여야 하는 형편이기도 하다. 한국 사람은 거의 못 볼 거라 생각했던 모로코 여행의 첫 도시부터 고마운 분을 만나고 보니 뭐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하느님에게 감사라도 드려야 할 것 같다^^. 다음 도시는 카사블랑카에서 남쪽으로 여섯 시간정도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 에싸웨라다. 24장짜리 론리 복사본에는 그저 잠잘 곳과 먹을 곳만 표시되어 있을 뿐 이곳의 지도 하나 나와 있지 않은데 그저 유스호스텔 주인의 추천만 믿고 길을 나선다. 푹 쉰 뒤에 떠나는 길이라 그런지 정보가 없어도 발걸음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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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리아> 영선을 만나다

 

이 놈의 기차는 또 연착이다. 아침 9시에 도착한다던 기차가 12시가 가까워서야 카이로에 도착한다. 아무래도 바하리아로 바로 가기는 힘들 것 같다. 이집트는 카이로를 거치지 않으면 딴 도시로의 이동이 힘드니 벌써 카이로만 세 번째 들어온다. 바하리아에서 돌아오면 다시 카이로를 거쳐 다합으로 가야 하고 이집트를 떠나자면 또다시 카이로로 와야 하니 이래저래 카이로만 다섯 번을 들러야 하는 셈이다. 익숙한 숙소에 다시 짐을 풀고 바하리아로 가는 다음날 버스표를 예매해 둔다. 막상 버스표를 끊고 나니 슬며시 걱정이 된다, 무작정 오라고는 하는데 이 친구의 지금 상태가 어떤지 정보가 없다. 결혼식은 올렸는지, 짓는다던 호텔은 다 지었는지, 투어는 하는 건지 도통 아는 게 없다. 그러다가 한편으론 가보면 알겠지 그 마을에 호텔이 없을 것도 아닌데 괜한 걱정을 한다 싶기도 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바하리아행 버스를 탄다. 버스에 타보니 한국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그중 자매라는 두 친구와 인사를 하고 보니 이 친구들도 영선에게 가는 길이다. 인터넷에서 한국인이 하는 바하리아 투어가 있다는 글을 보고 미리 전화를 하고 가는 길이라고 한다. 음.. 투어를 하긴 하는구나.. 어차피 투어는 차당으로 비용을 계산하니 일행이 있는 편이 좋긴 하다. 그리고 혼자 바하리아로 가는 또다른 남자 친구와도 인사를 나눈다. 이 친구는 별다른 예약 없이 그냥 가는 길이라고 하니 같이 투어를 하기로 한다. 차는 터미널을 벗어나자마자 타이어에 문제가 생기더니 한 시간이나 수리를 하고서야 다시 바하리아를 향한다. 다시 황량한 사막을 거쳐 바하리아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가 가까운 시간이다. 터미널에는 영선의 남편인 모하메드가 나와 있다. 그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호텔이 아니라 그의 집이다. 그것도 시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집말이다.


차에서 내리니 영선이 반갑게 맞아준다.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있기는 해도 태국에서 봤던 그 얼굴이다. 그저 여행지에서 며칠을 같이 보낸 것뿐인데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마음이 든다. 영선이 차려준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직 짓고 있는 호텔이 완성이 되지 않아 잠시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면서 알고 지내던 카이로의 민박집에서 보내주는 손님 이외에 인터넷으로 연락을 받은 손님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원래 바하리아 투어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사막으로 떠나 1박을 하고 돌아오자마자 바로 떠나는 일정이 일반적인 모양인데 오늘은 버스가 연착을 했으니 투어를 가기는 늦은 시간이라며 따로 호텔을 잡느니 그냥 여기서 하루밤 자고 내일 투어를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 온다, 나야 별 상관이 없긴 하지만 어른들 다 계신데 묵어도 되나 잠시 망설여진다. 그래도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근처에 소금호수와 샌듄에 다녀오는 걸로 저녁 시간을 보낸다.

 

소금호수

 

 

영선과 그 남편 모하메드


다음날 일행들과 함께 사막투어를 다녀온다. 영선은 이 친구들만 투어를 보내고 다음에 신랑이랑 셋이서 따로 사막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 온다. 마음이야 고맙지만 그렇게 하면 이 친구들의 비용 부담이 커지는 건 그렇다 쳐도 영선과 모하메드에게 너무 폐를 끼치는 일이 된다. 내가 무슨 친정 언니도 아니고 그렇게 까지 하기는 부담스러우니 투어는 그냥 다른 사람들과 같이 다녀오겠다고 한다. 모하메드와 그의 조수인 청년 그리고 우리 넷, 이렇게 여섯이서 투어를 떠난다. 영선의 남편인 모하메드는 어렸을 때부터 삼촌 밑에서 가이드를 했다니 영선과 결혼을 하면서 독립적인 사업을 시작한 셈인데 그래서인지 그의 운전이나 가이드는 나무랄 데 없이 깔끔하다. 차는 바하리아에서 한참을 달려 흑사막에 도착한다. 흑사막은 주변 화산에서 분출돤 화산재가 오랜 바람에 침식돠면서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온통 그을린 듯한 감은 돌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검은 사막을 거친 차는 다시 크리스탈마운틴에 잠시 멈췄다가 어느새 백사막으로 들어선다. 모래 사막같은 분위기는 나지 않지만 하얀 석회석으로 이루어진 기이한 형태의 바위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 다른 행성의 어디쯤인 같다는 느낌을 준다.  

 

흑사막

 

 크리스탈 마운틴


백사막 사이를 한참이나 달리던 차는 일몰 무렵 백사막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바람막이로 차를 한켠에 세워두고 그 앞으로 시트가 깔리더니 하루밤 잠자리가 완성된다. 모닥불이 피워지고 즉석에서 저녁이 준비된다. 이런 곳에선 보통 닭고기를 숯불에 굽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서는 닭을 야채와 함께 자작하게 조려준다. 추운 날씨 탓인지 이렇게 하는 게 먹기가 훨씬 편한데 아무래도 영선의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으니 조그마한 동물이 주변을 얼씬거린다. 사막 여우란다. 여우치고는 크기가 크지는 않은데 먹을 걸 보더니 사람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닭뼈를 건네주면 한참을 망설이다가 잽싸게 뺏어들고 돌아서는 폼이 여우라기 보단 그저 애완 동물같다. 이번엔 날을 잘 잡는 듯 하늘엔 달 대신 별이 총총한데 침낭에서 맞는 밤은 그리 춥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백사막1

 

 

백사막2


투어에서 돌아와 카이로로 일행들을 보내고 하루를 더 묵기로 한다. 호텔이 완성되었다면 며칠 묵어갈 생각이었는데 신혼 부부 갈라놓고 자는 일은 하루면 족할 것 같다. 영선은 정 불편하면 근처 호텔에서라도 며칠 묵어가라고 권하지만 어차피 집밖 출입이 자유롭지 않으니 낮에 이곳에서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은 매일반인 것 같다. 짓고 있다는 호텔에 같이 다녀온다. 이제 한달반만 있으면 완공이 된다는데 제법 근사한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호텔이 완공되면 부모님 모시고 결혼식을 올린다는데-현재는 법적 절차만 밟고 아직 결혼식은 올리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완공이 조금만 빠르면 결혼식을 보고 가고 싶지만 이집트의 검뭉 올라가느느 속도를 감안해보면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종교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그것도 결혼이란 걸해서 산다는 일이 그리 쉬워보이지는 않지만 영선은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다, 그런 결정을 할 때야 본인이 가장 고민이 컸을 텐데 걱정한답시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게다가 그 친구는 충분히 좋아보인다. 이상하다. 태국에서 처음 여행자로 그를 만났을 땐 전혀 깨닫지 못했는데 혹 전생에  이집션이 아니었을까 쉽게 그는 그 동네와 그 집에 어울린다. 하긴 본인도 처음 이집트에 왔을 때 찬구들이 바가지며 거짓말에 치를 떠는데도 그냥 이집트가 좋기만 했다니 글쎄 인연이란 게 정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막의 숙소

 

사막 여우


카이로를 거쳐 다시 다합으로 다시 돌아온다. 어디를 가든 조금 쉬었다 움직일 예정이다. 1월이 지나면 유럽 쪽의 날씨가 좀 풀리지 않을까 하는 알팍한 계산도 함께다. 지금 여전히 다합이고 생각보다 길게 있었다. 그 덕분에 밀리고 밀린 여행기 정리는 끝냈지만 어디를 갈 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아마도 유럽 쪽으로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춥고 배고프면 유럽 어디에선가 한국 가는 비행기표를 끊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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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완> 펠루카를 타다

 

아스완은 이집트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는 관광도시이다. 하지만 관광도시라고 해서 아스완시내에 볼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고 인근의 필레 신전이나 남쪽으로 320Km 떨어져 있는 아부심벨 신전을 보기 위해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펠루카를 타러 오는 사람들도 많은데 펠루카는 고대 이집트의 전통적인 돛단배로 모터를 사용하지 않고 바람의 힘으로만 항해하는 배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일강가에 나가본다.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에 속해 있지만 중동 국가같은 느낌이 더 많았는데 이곳에 오니 흑인들이 제법 눈에 뛴다. 한때 이곳은 고대 누비아의 땅이었다는 데 그래서인지 수단 민족인 누비안들도 많고 곳곳에 누비안 마을도 눈에 뛴다. 엘레판틴섬에는 누비안 마을이 있다니 해지기 전에 마을이나 둘러 볼 샐각에 로컬 페리를 타고 섬으로 건너간다. 조용한 마을일거라는 기대는 강을 넘어서자마자 무너진다. 마을 입구부터 낙타 몰이꾼이 줄을 서 있고 마을에도 온통 박시시를 외치며 따라다니는 아이들뿐이다.


숙소로 돌아와 아부심벨 롱투어와 펠루카 1박 2일 투어를 신청한다. 아부심벨 투어는 말 그대로 버스로 아부심벨을 다녀오는 투어이고 펠루카 투어는 펠루카를 타고 나일강을 항해하는 투어이다. 그런데 신청을 하다보니 일정이 살짝 꼬인다. 아부심벨 투어는 아부심벨만 보고 돌아오는 숏투어와 아부심벨을 돌아보고 오는 길에 아스완하이댐, 필레신전, 미완성 오벨리스크까지 들르는 롱투어로 나뉘는데 롱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세 시인데 비해 펠루카가 떠나는 오후 한 시이다. 그저 아부심벨만 보고 돌아오던지 아님 아스완에서 하루를 더 자고 담날 펠루카를 타든지 해야 할 판이다. 숏투어를 하자니 딴 건 몰라도 필레 신전은 봐야 할 것 같고 담날 펠루카를 타자니 숙소 상태가 하루 더 묵고 싶은 맘을 가시게 한다. 어찌할까 고민을 하고 있으니 숙소 주인이 대안을 제시한다. 롱투어 마치고 돌아와서 미리 떠난 펠루카를 따라잡으면  된다며 세 시에 숙소로 픽업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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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에 떠 있는 펠루카

 

 페리에서 만난 누비안 소녀들


아부심벨 투어는 롱투어, 숏투어를 가리지 않고 픽업 시간이 새벽 3시란다. 안자면 모를까 자다 일어나기 가장 황당한 시간이지만 별달리 방법이 없다. 숙소 주인이 깨워준다고는 했으나 알람까지 맞춰두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보지만 잠이 올 리가 만무하다. 결국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잠깐 잠들었는가 싶더니 어느새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보나 정확히 세시다. 버스는 삼십분 가까이 사람들을 픽업하러 다니더니 일곱 시가 가까워서 아부심벨 신전에 도착한다. 아부심벨은 람세스 2세가 그의 즉위 30주년을 맞아 자신의 업적을 기리고자 만든 신전인데 이 신전은 인류가 구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별칭도 함께 가지고 있다. 1960년대 중반 나일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강의 상류에 아스완 하이댐이 건설되자 수몰위기에 처한 이 유적을 조각조각 내어 지금의 위치로 옮겨 왔다고 한다. 유네스코가 세계 50개국의 지원을 받아 인류역사상 최대 규모의 문화재 이전 작업을 실시했던 것이다.


매표소를 지나니 바다를 방불케 히는 호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댐건설과 함께 생긴 인공호수인 낫세르 호수다. 낫세르 호수를 끼고 오른쪽 모래 언덕을 돌아서면 아부심벨 대신전이 눈에 들어온다. 암굴 신전인 대신전은 신전 정면에 있는 4개의 거대한 람세스상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신전의 내부에도 람세스왕의 다양한 업적을 기린 부조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대신전 옆에는 역시 암굴 신전인 소신전이 있는데 이는 왕비 네파르타리를 위한 신전이라고 한다. 신전을 돌아보고 신전 앞 공터에서 아침을 먹는다. 사람들이 투어에 아침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도시락을 차에서 나눠주는 게 아니라 아침에 숙소 주인이 건네주는 걸로 봐서는 호텔의 서비스 같기도 하다. 도시락이라야 빵이랑 과자 몇 개가 고작이지만 그래도 먹고 나니 제법 속이 든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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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부심벨 대신전

 

 아부심벨 소신전


다시 차에 타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한참을 달리던 차는 아스완 근교에서 다시 롱투어팀과 숏투어팀으로 나누더니 이내 아스완하이댐에 도착한다. 어차피 댐까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고 싶지는 않으니 밖에서 그냥 밖에서 기다리다 필레 신전으로 향한다. 원래 나일강의 필레섬에 있던 필레 신전 역시 수몰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을 지금의 섬으로 옮겼다고 한다. 필레 신전은 섬에 위치해 있으니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투어에 배타는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재주껏 흥정해서 들어가야 한다, 어차피 배는 한대당 가격이니 일행은 많을수록 유리하다. 재빨리 주변을 둘러본다. 투어를 함께한 한국인이 4명이니 한팀만 더 잡으면 된다. 마침 중국 관광객 6명이 눈에 뛴다. 이들과 같이 배를 타고 필레 신전으로 들어간다. 이제 신전은 거의 비슷비슷해 보이기 시작하지만 필레 신전은 섬이라 그런지 신전에 앉아 강물만 바라보고 있어도 분위기가 그만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아스완 시내로 들어선다, 마지막 행선지는 미완성오벨리스크다. 오벨리스크란 문자가 새겨진 거대한 비석을 말하는데 결함이 발견되어 버려진 미완성의 오벨리스크를 보러가는 것이다, 이걸 보면 고대인들이 어떻게 거대한 암석을 매끄럽게 잘라냈는지 알 수 있다지만-돌에 홈을 만들어 그 홈에 쐐기를 박아 넣고 쐐기에 물을 계속 적셔주면 돌의 내부가 팽창하여 돌이 갈라진단다- 이것 역시 입장료씩이나 내고 보고싶은 맘은 들지 않는다. 이런 맘은 모두다 마찬가지였는지 막상 입구에서 아무도 차에서 내리지 않자 그곳을 그대로 지나간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겨 펠루카를 타러 간다. 두 시간이나 먼저 간 배를 따라 잡으려면 차를 타고도 한참이나 가야겠구나 생각했더니 이게 웬일.. 픽업이라며 나온 아저씨는 두발로 뚜벅뚜벅 앞장 서 걷더니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착장에서 펠루카를 태워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펠루카는 이동이 목적인 배가 아니라서 그런지 이동 시간에 비해 이동 거리는 그다지 길지 않다.

 

페리에서 본 필레신전

 

필레 신전 입구


덴데라 신전을 같이 다녀 온 영국 유학생 친구와 펠루카에 오르니 먼저 탄 일행들이 인사를 건네 온다. 세 명의 벨기에 처자들과 한 명의 영국 총각이다. 비록 어학연수생이긴 하지만 그래도 영국 유학생이 있으니 영어 고문은 안 당해도 되겠다 싶다^^. 우리를 기다리느라 정박이 길었던지 배는 우리가 타자마자 나일강을 미끄러지듯이 흘러간다. 배 위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어 제각기 앉거나 눕거나 제 편한대로 자세를 잡고 있다. 펠루카는 일몰 무렵에 타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데 과연 강 건너편으로 노을이 붉어지면서 물빛은 온통 황금빟으로 보인다. 강 위로 떠다니는 페리들이 불빛을 밝히는가 싶더니 어느새 주변이 어두워진다.

 

펠루카 위

 

나일강에 해가 진다


배는 강변에 정박하더니 하루밤을 보낼 준비를 한다. 배 주변으로 천이 둘러쳐지고 촛불이 켜진다. 배에서 만든 요리로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예정대로라면 내일 아침 일찍 이곳으로 픽업 오는 차를 타고 룩소르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펠루카를 탄 시간은 고작 세 시간 남짓인데 왠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영국 유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은 2박 3일 일정이라니 하루를 더 타는 것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성 싶다. 다음날 아침 영국 유학생은 룩소르로 돌아가고 나는 펠루카를 하루 더 타기로 한다. 잠자리는 불편해도 배 위에서 하루쯤 더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펠루카에 누워 주는 밥이나 먹으며 그저 자다 깨다 하루를 보낸다. 책이라도 한 권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이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섬에 잠시 정박 중인 펠루카

 

누워서 본 펠루카의 돛


펠루카에서 이틀을 자고 다시 룩소르로 향한다. 아스완에서 콤옴보까지 왔으니 이틀 동안 이동한 거리는 고작 40킬로 남짓이다. 어쩐지 펠루카가 똑바로 안가고 강을 지그재그로 가로지르더라니.. 돌아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속셈이 아닐까 싶긴 하지만 그 속사정이야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콤옴보에서 룩소르까지는 버스로 이동을 하는데 중간에 콤옴보와 에드푸의 신전을 한 곳씩 들러 간다. 이미 필레 신전부터 비슷비슷해지기 시작한 신전들은 이제 정말 그 차이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똑같아 보이기 시작한다. 고작 열 개도 안 되는 신전을 봤을 뿐인데 벌써 이 지경이니 몰아서 본 게 죈지 무식이 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튼 어찌어찌 다시 룩소르로 돌아온다.


다시 룩소르로 돌아와 며칠을 더 보낸다. 이제 바하리아 사막에 들렀다가 다합으로 돌아가면 된다. 바하리아를 마지막으로 여행지로 남겨둔 건 만나볼 사람이 있어서이다. 언잰가 태국 여행에서 만난 여자 친구가 여행 중에 이집트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지금 바하리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또다른 친구에게서 메일로 받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본다. 여보세요.. 한국말이다. 전화로 긴 얘기는 할 수 없으니 바하리아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는다. 룩소르에서 바하리아는 지도상으로 보면 바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지만 도로가 좋지 않아 카이로를 거쳐서 가는 편이 더 빠르다고 한다. 별 수 없이 다시 카이로로 가는 밤차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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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왕가의 계곡을 가다

카이로에서 저녁을 먹고 밤기차를 탄다. 이집트의 침대 기차는 무지 비싸지만-가격이 60불이다- 굳이 침대 기차가 아니라도 기차는 충분히 쾌적하다. 특히 일등석은 우리나라 우등고속버스처럼 한 줄에 좌석이 3개 밖에 없으니 좌석도 그만큼 넓은데다 뉴질랜드 총각들 덕분에 두 좌석을 모두 차지하고 가니 간만에 편하게 밤차를 탄다. 룩소르에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간다. 문 연지 일년이 조금 넘었다는 이 게스트하우스 쥔장의 나이는 고작 스물여섯 살인데 그래서인지 게스트하우스의 분위기도 그저 친구집에 놀러 온 것 같이 편안하다.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한잠자고 일어나보니 숙소에는 아무도 없다. 짧게 여행하는 친구들은 밤차를 타고와도 절대로 쉬는 법 없이 부지런히 무언가를 보러 다니는데 나야 이제 밤차라도 한번 타고나면 담날은 하루 종일 쉬어줘야 한다^^.


나일강의 중류에 자리잡은 룩소르는 고대에는 테베라고 불리던 곳으로 고대 이집트 중왕국과 신왕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이집트의 보물로도 불리는 이곳은 국립박물관의 유적 대부분이 여기서 발굴되었을 만큼 파라오의 신전들과 유적들이 즐비한 곳이다. 이곳은 나일강을 기준으로 동안과 서안으로 나눠지는데 이 두 곳을 하루에 다 돌아보는 열혈 여행자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까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이 있는 동안과 왕가의 계곡이 있는 서안을 하루씩 나누어 돌아본다. 동안이 천천히 걸어서 다녀도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데 반해 서안의 경우는 택시를 대절해 왕가의 계곡, 하셉수트 신전, 람세스3세 장제전 그리고 아가멤논의 거상만 보고 돌아와도 꼬박 하루가 걸린다. 물론 룩소르의 외곽에도 유적지들이 있어 신전에 관심이 지대하거나 시간이 남아도는 여행자들은 인근 도시에 있는 덴데라 신전과 아비도스 신전을 묶어서 투어를 다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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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본 풍경, 차가 룩소르에 가까워질수록 들판은 푸른빛이 돌기 시작한다

 나일강, 강 건너 보이는 것이 왕가의 계곡이 있는 서안이다

 

하루를 쉬고 나일강을 따라 까르낙 신전으로 향한다. 이집트 최대의 신전이라는 까르낙신전은 그 명성에 걸맞게 입구부터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상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무엇보다 볼거리는 134개의 기둥으로 떠받쳐진 신전의 대열주홀인데 ‘그 중 큰 것은 작경이 2미터, 높이가 20미터를 넘는다고 한다. 이 기둥들마다 각종 부조와 상형문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는데 그 의미야 알 수 없지만 그 조각의 정교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이런 부조들은 이 기둥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신전의 벽면 하나하나마다 빠지지 않고 새겨져 있는데 이집트의 신화와 역사에 관련된 것들이라고 한다. 까르낙 신전을 나와 이번에는 룩소르 박물관으로 향한다. 룩소르 박물관은 그리 규모는 크지 않지만 깔끔하게 전시가 되어있어 카이로의 국립박물관보다 더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박물관을 나와 이번에는 룩소르 신전으로 향한다. 나일강변에 세워진 이 신전은 그냥 길거리에서 봐도 내부기 훤히 들여다보이니 굳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어차피 신전은 앞으로도 지겨울 만큼 보게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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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낙 신전 입구,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양쪽으로 20개씩 놓여있다

열주들, 규모가 너무 커서 카메라에 잘 담기질 않는다 핫셉수트 신전


다음날은 직장에서 휴가를 받아 왔다는 여자 친구와 함께 서안을 돌아본다. 서안 최대의 볼거리는 역대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왕가의 계곡이다. 보통 이집트 왕들의 무덤이라면 피라미드를 떠올리기가 쉬운데 사실 피라미드는 고왕국 초기에 잠시 조성되었을 뿐 아니라 무덤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 역시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으니 60여개의 크고 작은 무덤이 있다는 이곳 왕가의 계곡이야말로 파라오의 안식처라 할 수 있다. 왕가의 계곡 앞에서 입장권을 끊으면 이들 무덤 중 세 곳을 돌아볼 수 있는 티켓을 준다. 어차피 무덤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를 따라 한참을 걸어 내려가면 화려한 부조가 있는 방들이 나오고 그 방들이 지나치면 더 깊숙한 방이 나오는데 이곳이 파라오의 안치실이다. 물론 현재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대부분의 유물들은 도굴되었고 그 나머지도 박물관으로 옮겨진 지 오래다.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 황량한 돌산의 계곡마다 깊숙이 묘를 파기는 했으니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무덤은 그 유명한 투탄카문의 무덤 정도였다니 결국 도굴꾼의 손길을 벗어나지는 못한 셈이다.

 

왕가의 계곡, 중앙에 보이는 입구가 왕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핫셉수트 왕의 신전 


이곳 서안에는 왕가의 계곡 말고도 왕비의 묘들이 모여 있는 왕비의 계곡이니 귀족이나 장인들의 묘가 있는 크고 작은 계곡들이 퍼져 있지만 그걸 다 둘러보려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입장료도 엄청 들여야 할 판이다. 내가 뭐 고고학자도 아닌 방에야 굳이 그걸 다 둘러볼 이유도 없다. 무덤은 왕가의 계곡에서 둘러본 파라오의 무덤 세 곳만으로 충분하다. 다시 택시를 타고 핫셉수트 여왕의 신전과 람세스 3세의 신전을 돌아본다. 이집트의 신전들은 그 하나하나의 규모가 엄청나다. 지금이 겨울이긴 하지만 나무하나 없는 황무지에 세워진 신전들을 둘러보자면 내리쬐는 햇살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으니 신전들 한두 곳 둘러보는 것도 힘에 부친다. 게다가 신전 곳곳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자칭 가이드들이 한마디라도 들어주면 박시시를 달라고 손을 내미니 이들을 뿌리치는 일도 보통 피곤한 일은 아니다. 신전들을 둘러보고 멤논의 거상에 잠시 들렀다 다시 보트를 타고 동안으로 돌아온다.

 

람세스 3세전의 부조

람세스 3세전의 부조

 

 

멤논의 거상, 동행자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전형적인 관광지 포즈가 나온다.


하루는 덴데라 신전을 다녀온다. 투어로 가고 싶지는 않으니 쥔장에게 개인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본다. 기차를 타고 어디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어떻게 하면서 한참 설명에 열을 올리던 쥔장은 덴데라 안 가본지도 오래 되었다면서 아예 자기랑 같이 가잔다. 영국 유학생 한 명과 계란까지 삶아 들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덴데라 신전은 룩소르에서 한시간쯤 떨어진 예니라는 도시에 있다. 이집트의 기차는 이상하게도 외국인이 탈 수 있는 기차가 따로 있다는데 마침 우리가 기차역에 도착하니 그 기차는 이미 떠나고 없다. 쥔장 왈 다음 기차는 외국인에게는 표를 팔지 않는다며 그냥 올라타자고 한다. 차안에서 벌금을 포함한 기차요금을 물고 다시 예니역에서 내려 덴데라 가는 택시를 대절한다. 이곳에서 언젠가 외국인 여행자가 살해된 적이 있다는데 그래서인지 멀지 않은 거리를 가는데도 검문을 서너 번이나 당한다.


덴데라 신전은 사랑의 여신인 하토르에게 바쳐진 신전이라는대 그래서인지 신전의 기둥마다 여인의 두상이 조각되어 있다-아쉽게도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다^^- 이집트 고대왕조 최후의 건축물이라는 이곳은 그래서인지 보존 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다. 다른 신전들과는 달리 지붕이 남아 있어 옥상에 올라갈 수도 있고 지하실의 납골당까지 내려가 볼 수도 있다. 옥상을 둘러보고 지하계단이 있다는 문 앞에 도착하니 내려가지 말라는 푯말이 서 있다. 이전에 내려가 본 작이 있다는 쥔장이 지하로 향하는 슬쩍 당겨 보니 스르르 열린다. 관리인의 눈을 피해 지하로 내려가 본다. 후레쉬를 들고 있기는 사방은 깜깜하기만 하다. 후레쉬에 비친 부조들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서둘러 다시 올라온다. 다행히 들키지는 않은 것 같다. 덴데라 신전을 불러보고 다시 기차를 단다. 이번에는 완행열차를 탄다. 창밖으로는 온통 푸른 채소밭이 펼쳐져 있고 기차는 느릿느릿 풍경 속을 달린다. 이곳에서는 푸른빛이라곤 좀처럼 볼 수 없으니 한국에서 늘 보던 모습인데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냥 봄날 오후같이 나른하다. 하루 동안 봄나들이라도 나온 것 같다.

 

 덴데라 신전의 기둥


이제 아스완으로 갈 시간이다. 룩소르에서 아스완까지는 세 시간 거리이다. 아침 일찍 기차역에 나가서 기차를 기다린다. 쥔장 말에 따르면 아스완 가는 아홉시 기차는 거의 변함없이 열한시가 넘어야 온다지만 그렇다고 아홉시 기차를 타러 열한시에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시 그날도 예외는 아니어서 시간 맞춰 기차역에 나가 꼬박 두 시간을 기다리다 기차를 탄다. 햇살에 따뜻하다, 창밖을 보다 어느새 졸았나 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기차는 어느새 아스완역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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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드디어 사막이다. 그런데...

 시와 가는 길은 멀다. 멀어도 너무 멀다. 게다가 한 번에 가는 차도 없다. 중간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나 마르사마투르에서 차를 갈아타야 타고도 거의 열두시간이 꼬박 걸린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마르사마투르행 버스를 탄다, 알렉산드리아는 오는 길에 들릴 예정이니 오는 길과 가는 길을 다르게 하자는 생각이었지만 그 도시에 묵는 게 아니라면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어차피 버스는 알렉산드리아를 지나 마르사마투르를 거쳐 시와로 간다^^. 버스는 카이로를 벗어나 한동안 바닷가를 끼고 달리는가 싶더니 곧 나무 하나 없는 황량한 사막으로 접어들어 여덟 시간 만에 마르사마투르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다시 시와행 버스를 갈아타고 네 시간여를 달려 시와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밤 9시가 가까운 시간이다. 꼬박 하루를 버스에서 보낸 셈이다. 시와에서 며칠 머물 생각이라면 모를까 사막 하루 보자고 오기에는 좀 멀다 싶은 생각이 든다. 게다가 돌아갈 길도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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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집트에서 갈 수 있는 사막은 꽤 여러 곳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흔히 가는 곳은 시와 사막과 바하리아 사막인데 이 두 곳은 같은 사막이라도 차이가 있다. 시와 사막이 모래로 이루어진 비해 바하리아 사막은 화산의 폭발로 만들어진 검은 돌산이 있는 흑사막과 바람의 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백색의 석회석 바위가 있는 백사막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야 순전히 개인의 취향에 따른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사막하면 떠올리는 곳은 이곳 시와가 좀더 가까울 것 같다. 일반적으로 투어는 지프를 타고 사막을 돌아본 뒤 사막에서 하루밤을 자고 나오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차피 밤늦게 도착했으니 숙소에서 투어를 신청해 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투어의 출발 시간이 두시다. 하긴 하루 종일 사막에서 무슨 할 일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다섯 시면 해가 지는 이곳에서 두시 출발이라면 왠지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다른 투어도 별 차이는 없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자전거를 빌려 시와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본다. 사람들은 이곳을 흔히 시와 오아시스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오아시스는 사막 가운데 야자수가 몇 그루 있고 가운데에서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나는 지극히 동화적인 곳이긴 하지만 주변이 온통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이 마을을 오아시스라 부르는 게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시와 오어사스는 자전거로 돌아보기 적당한 크기다. 야자수가 늘어져 있는 흙길을 달리다 보면 언젠가 만들어졌다가 이제는 무너진 흙으로 만든 성도 나오고 제법 고대의 유적들도 눈에 뛴다. 또 어디쯤엔가 클레오파트라가 목욕을 했다는 온천이 불쑥 나오기 하고 마을 근처엔 한때 이곳이 바다였다는 사실을 증명이나 하듯 제법 큰 소금 호수가 보이기도 한다. 호수 근처엔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갈대들이 늘어서 있다. 굳이 사막 투어를 하지 않더라도 며칠 묵어가기에 좋은 마을인 듯싶은데 이미 룩소르로 내려가는 기차표를 예매해 둔 터라 그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시와 오아시스

 

 

클레오파트라 온천(이라기보단 거의 수영장이다)


오후에 지프를 타고 사막으로 향한다. 어차피 시와 오아시스는 큰 마을이 아니니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눈앞에 황량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몇 군데 구경거리를 거쳐 차는 모래사막으로 들어선다. 사막에서 한 일이라곤 사륜구동지프로 보여주는 각종 묘기-사구를 빠른 속도로 올랐다 급경사를 내려오는 등의-를 보는 일과 미리 차 지붕에 매달고 갔던 샌드보드를 탄 게 전부다. 그나마 샌드보드를 타고 모래 언덕을 한번 내려갔다 온 사람들은 다시 올라오는 일이 장난이 아니라며 아무도 두 번은 타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런데도 시간은 빠듯하기 그지없어 어디서든 내려준 지 십 분이 채 못 지나 다시 차에 타라고 성화다. 투어라는 게 다 그렇지 싶다가도 괜히 엄한데 끌고 다니지 말고 그냥 사막에서 조금 더 있게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결국 출발한 지 세 시간이 조금 지나 일몰 포인트에 도착한 차는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숙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시와 사막, 멀리 소금 호수인 시와호수가 보인다

 

시와 사막, 접니다요.


그래도 사막에서의 하루밤이 남아 있으니 하고 위안을 삼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차는 다시 모래사막을 빠져 나오더니 마을 근처로 돌아온다. 마을 근처엔 제법 큰 캠프장이 보이고 텐트가 이미 설치되어 있다. 멀리 마을의 불빛이 훤하게 보이는 곳이다. 대충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말로는 사막 보호를 위해 더 이상은 사막에서 야영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사막 투어의 묘미는 사막에서 별을 보며 하루밤을 보내는 데 있다. 그렇지 않을 바에야 멀쩡한 호텔을 두고 춥고 더러운 텐트에서 고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투어를 하는 쪽에서야 이렇게 하는 편이 여러모로 간편하고 일손도 더는 일이겠지만 이럴 거면 굳이 1박 2일 투어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미리 준비해준 저녁을 주더니 가이드는 혼자서 마을로 내려가 버린다. 그래도 마을보다는 별이 잘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하필이면 보름이라 별은커녕 사방이 온통 대낮같이 환하다. 그저 캠프 마당에 이게 뭐냐며 불평이나 늘어놓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고 만다.

 

시와 사막의 사구

 

시와 사막의 일몰, 지평선으로 해가 진다


차가 아침 일찍 우리를 다시 마을에 데려다 주는 것으로 사막투어는 끝이 난다. 뉴질랜드 총각 중 하나가 물갈이성 설사를 하느라 간밤에 열 번도 넘게 화장실-은 없었지만서두-을 들락거렸다는데 아침에 보니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다. 저녁까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려면 아침 열시 차를 타고 이곳을 나가야 하는데 이 친구들의 상태를 보니 떠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숙소에서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뉴질랜드 총각 둘을 남겨두고 세 명만 먼저 알렉산드리아로 떠난다. 이 친구들은 쉬었다 밤차로 오기로 한다. 다시 여덟 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하루를 쉬고 다음날에는 카이로로 이동해 룩소르로 가는 밤차를 타야 한다. 뉴질랜드 총각들과 같이 내려가기로 하고 시와로 떠나기 전에 이미 기차표까지 예약을 해 둔 상태다. 알렉산드리아는 카이로와는 달리 도시가 번화하면서도 제법 한가롭다. 저녁 늦게까지 바닷가도 걷다가 찻집도 들렀다가 하면서 도시 분위기를 만끽한다. 고작 삼일 만에 돌아왔는데도 도시가 새삼 신기하다.


다음날 아침 밤차를 타고 온 뉴질랜드 총각들과 합류를 한다. 그런데 이 친구들 여전히 상태가 말이 아니다. 이래 갖고 밤차를 탈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아닌게 아니라 더는 이집트 여행이 하고 싶지 않다며 한국에 전화해서 비행기 날짜를 빠른 걸로 변경했다고 한다. 또다른 뉴질랜드 총각은 여행 경비로 뉴질랜드 달러를 들고 와서 뒤늦게 집에서 송금을 받는다 어쩐다 법석을 떨더니 결국 여행 온지 일주일을 조금 넘기고 다시 한국으로 간단다. 오죽하면 그럴까 싶다가도 한편으론 어이가 없다. 결국 이 친구들 예매해 둔 룩소르 가는 일등석표-나야 이등석표를 샀다-를 내게 건네준다. 여튼 나만 팔자에 없는 기차표가 두 장 아니 내 표까지 세 장이 생겼으니 누워가도 될 판이다. 룩소르 가는 기차는 밤 열시에 떠나니 알렉산드리아에서 어슬렁거리다 오후 늦게 카이로행 기차를 탄다. 저녁이나 먹고 다시 밤기차로 갈아타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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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이 정도면 양호하다

 

일행들이 죄다 카이로로 떠나고 나 역시 이삼일 뒤에 카이로 가는 밤차를 탄다. 원래는 다합에서 네 시간 가량 걸린다는 도시에서 비자를 연장하고 한동안 더 머물다 12월 중순 경에나 다합을 뜰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겨울방학 기간에 여행을 다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게 된다. 겨울방학 기간이 다가오면 몰려드는 한국 관광객들 때문에 숙소며 교통편도 문제가 될 것이 뻔하다. 어차피 1월 중순에 이집트를 빠져 나갈 계획이라면 다합에서 계속 지내기보다는 비자 연장을 카이로에서 한 뒤 이집트를 한바퀴 둘러보고 다시 다합으로 되돌아 와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 더 현명할 것 같아 맘을 바꾼 것이다. 다합에서 밤 10시에 출발한 버스는 서너 번의 검문으로 끊임없이 밤잠을 깨우더니 아침 일곱 시가 되어서야 카이로에 도착한다. 같이 타고 온 한국인 커플과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한다. 흔히 카이로를 무질서와 혼돈의 도시라고들 하는데 새벽이라서 그런지 카이로는 매연이 조금 심할 뿐 그다지 무질서하지도 혼돈스럽지도 않다.


도착한 날 바로 비자를 연장하러 간다. 이집트 비자는 국경에서 한달짜리를 받았는데 어느새 비자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다행히 비자 연장하는 곳은 숙소에서 빤히 보이는 건물이다. 비자 연장 창구가 복잡하기는 하지만 연장 절차는 그리 까다롭지 않다, 여권의 사진면과 비자면을 복사해서 작성한 서류와 함께 내니 두 시간 만에 연장 비자를 내 준다. 서류를 작성할 때 원하는 비자연장 기간을 체크하는 난이 있어 3개월을 신청했는데 막상 여권을 받아드니 연장된 기간은 6개월이다. 뭐 일은 못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긴 하지만 여기서 일해 봐야 한달에 5만원 받으면 잘 받는 거라니 앓느니 죽는 게 낫다^^. 어쨌든 비자를 연장하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아무래도 이집트는 좀 오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매번 비자 연장하는 것도 일이라면 일인데 이제 비자 문제는 잊어버려도 될 것 같다. 이렇게 쉽게 연장해 줄 거면 처음부터 한 삼개월 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은 들지만 말이다.    


담날은 천천히 카이로 시내를 둘러본다. 카이로에서 가장 악명 높은 게 신호를 전혀 지키지 않는 차들인데 처음엔 잠시 멍하다 이내 적응이 된다, 내가 다닌 나라들 치고 사람이건 차건 신호 지키는 나라는 한군데도 없었다. 아마 한국에 가면 나도 모르게 무단 횡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좀 딴소리긴 하지만 무단 황단과 더불어 또 하나 걱정되는 건 옆에 사람이 있건 말건 아무 말이나 해대는 버릇이다. 대략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니 생긴 습관인데 눈앞에 대놓고 별말을 다하는 거다. 쟤 머리 좀 봐라.. 되게 시끄럽네.. 등등 물론 표정은 웃고 있어야 한다. 이런 증상은 한국인 일행이라도 생기면 좀더 심해지는데 쟤가 쟤 여자친구냐 여자가 아깝다.. 쟤는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인다 등등 무궁무진해진다. 가끔 한국 게스트 하우스에서도 이 증상이 한번씩 나오는 걸 보면 한국 가서도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도 그러면 맞아 죽을 텐데 이제부터라도 자제를 해야 할 것 같다.

 

시타델 내에 있는 무하마드 알리 모스크

 

모스크 첨탑에서 본 카이로


카이로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국립박물관이다. 언제부턴가 박물관 가는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지만 이집트 박물관이라니 구미가 당긴다. 이집트 유적은 대영박물관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지만 그래도 이곳에는 그 유명한 투탄카문의 유물을 비롯해 다양한 유적들이 전시되어 아니 쌓여 있다. 이집트 국립 박물관은 유물의 양에 비해 박물관의 크기가 작은 듯 유물들은 전시되어 있다기보다 쌓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집트만의 독특한 유물들은 아직 이집트의 다른 유적들을 보지 않아서인지 하나하나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이집트 신화와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결국 그게 그것처럼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다합에서 그래도 이집트 관련 역사책을 두어 권을 읽었음에도 누가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나마 역대 이집트왕들은 그렇다 치고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등장해주시는 이집트의 신들은 정말 대책이 없다. 여전히 무식은 건전한 여행의 장애물이다,


박물관을 보고 나서 다시 고민에 빠진다. 어디를 갈 것인가.. 가이드북에는 카이로를 올드 카이로와 이슬라믹 카이로 그리고 모던 카이로의 세부분으로 나눠 한곳씩 다녀 올 것을 추천하고 있다. 모던 카이로야 어차피 숙소 근처의 광장과 나일강변의 신도시를 가리키는 것이니 됐다 치고 초기 콥트 기독교 교회들이 모여 있다는 올드 카이로와 성채와 모스크 그리고 시장이 있다는 이슬라믹 카이로 지구를 하루씩 돌아본다. 이제 교회도, 모스크도, 시장도 다 고만고만하다. 바가지가 심하다고 해서 걱정을 꽤 하긴 했지만 현지인 가격으로 사겠다는 터무니없는 꿈만 꾸지 않으면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바가지를 쓴다 해도 물가는 싼 편이라 택시는 카이로 시내에서는 대략 천원 안쪽으로 해결이 되는데다 몇 가지 생필품은 가격만 알고 있으면 그 가격대로 주고 나오면 그만이다. 음식점도 흥정이 필요하긴 하지만 알아서 깍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무리한 박시시 요구는 대충 무시하면 된다. 그저 필요한 건 잔돈이다. 도무지 이놈의 나라는 잔돈을 제대로 거슬러 주는 법이 없다^^

 

카프레왕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카이로에서의 마지막 날은 피라미드를 다녀온다. 이집트에 피라미드가 한두 개는 아니겠지만 피라미드하면 카이로 근처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를 보고 오는 게 일반적이다. 이곳에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를 비롯해 카프레왕과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 등 세 개의 피라미드가 나란히 서 있다. 이 피라미드가 서 있는 곳은 사막이니 아침 일찍 다녀오라는 조언이 일반적이지만 요즈음은 날씨가 그리 덥지 않으니 일몰이나 보고 오자는 맘으로 오후가 되어서 출발한다. 아침에는 그곳으로 가는 미니버스도 많다던데 어찌된 일인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긴 미니버스라는 게 출발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다 차야 출발하는 버스이니 손님이 없을 땐 다니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냥 일반 버스를 타란다. 30분이나 기다려 탄 버스는 정류장마다 서더니 한 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피라미드 앞에 도착한다. 버스 내린 곳에서 빤히 보이는 피라미드까지의 거리도 만만치 않다. 골목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드디어 매표소가 보인다.


매표소부터 낙타 호객꾼들이 기승을 부리긴 하지만 어차피 피라미드는 생각보다 넓지도 않은데다 낙타는 이미 시나이산에서도 타 봤으니 굳이 타야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이 피라미드 안에 낙타 몰이꾼들은 바가지와 거짓말로 이집트에서도 그 악명이 높으니 괜히 잘못 탔다가 기분만 상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슬슬 걸어 다니면서 피라미드 주변을 돌아본다. 오후라서 그런지 관광객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피라미드를 보고 온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작아요, 볼 거 없어요 하는 통에 기대를 낮춘 탓인지 피라미드는 생각보다 볼 만하다. 피라미드마다 한바퀴씩 돌고 세 개의 피라미드가 한꺼번에 보인다는 뷰포인트까지 갔다 오니 어느새 저녁이다. 버스 내린 곳에서 꼬박 한 시간을 기다리고서야 다시 버스를 탄다. 다시 카이로로 돌아오니 어느새 주변이 어두워져 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달랑 1파운드로 피라미드를 다녀온 셈이다.

 

피라미드와 낙타몰이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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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것이 카프레왕, 뒤에 것이 쿠푸왕의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까지 둘러 봤으니 이제 사막으로 떠날 시간이다.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모래사막인 시와를 돌아보기 위해서 숙소에서 미리 일행을 모은다. 어차피 사막 투어는 차로 떠나기 때문에 일행이 없으면 비싸거나 기다리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다행히 이곳 숙소 역시 한국인 여행자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 어렵지 않게 일행이 모인다. 카이로에서 다시 만난 반장과 유럽 거쳐 남미로 갈 예정이라는 처자 그리고 뉴질랜드 유학생 총각 둘 모두 다섯 명이 함께 시와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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