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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왕가의 계곡을 가다

카이로에서 저녁을 먹고 밤기차를 탄다. 이집트의 침대 기차는 무지 비싸지만-가격이 60불이다- 굳이 침대 기차가 아니라도 기차는 충분히 쾌적하다. 특히 일등석은 우리나라 우등고속버스처럼 한 줄에 좌석이 3개 밖에 없으니 좌석도 그만큼 넓은데다 뉴질랜드 총각들 덕분에 두 좌석을 모두 차지하고 가니 간만에 편하게 밤차를 탄다. 룩소르에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간다. 문 연지 일년이 조금 넘었다는 이 게스트하우스 쥔장의 나이는 고작 스물여섯 살인데 그래서인지 게스트하우스의 분위기도 그저 친구집에 놀러 온 것 같이 편안하다.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한잠자고 일어나보니 숙소에는 아무도 없다. 짧게 여행하는 친구들은 밤차를 타고와도 절대로 쉬는 법 없이 부지런히 무언가를 보러 다니는데 나야 이제 밤차라도 한번 타고나면 담날은 하루 종일 쉬어줘야 한다^^.


나일강의 중류에 자리잡은 룩소르는 고대에는 테베라고 불리던 곳으로 고대 이집트 중왕국과 신왕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이집트의 보물로도 불리는 이곳은 국립박물관의 유적 대부분이 여기서 발굴되었을 만큼 파라오의 신전들과 유적들이 즐비한 곳이다. 이곳은 나일강을 기준으로 동안과 서안으로 나눠지는데 이 두 곳을 하루에 다 돌아보는 열혈 여행자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까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이 있는 동안과 왕가의 계곡이 있는 서안을 하루씩 나누어 돌아본다. 동안이 천천히 걸어서 다녀도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데 반해 서안의 경우는 택시를 대절해 왕가의 계곡, 하셉수트 신전, 람세스3세 장제전 그리고 아가멤논의 거상만 보고 돌아와도 꼬박 하루가 걸린다. 물론 룩소르의 외곽에도 유적지들이 있어 신전에 관심이 지대하거나 시간이 남아도는 여행자들은 인근 도시에 있는 덴데라 신전과 아비도스 신전을 묶어서 투어를 다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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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본 풍경, 차가 룩소르에 가까워질수록 들판은 푸른빛이 돌기 시작한다

 나일강, 강 건너 보이는 것이 왕가의 계곡이 있는 서안이다

 

하루를 쉬고 나일강을 따라 까르낙 신전으로 향한다. 이집트 최대의 신전이라는 까르낙신전은 그 명성에 걸맞게 입구부터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상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무엇보다 볼거리는 134개의 기둥으로 떠받쳐진 신전의 대열주홀인데 ‘그 중 큰 것은 작경이 2미터, 높이가 20미터를 넘는다고 한다. 이 기둥들마다 각종 부조와 상형문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는데 그 의미야 알 수 없지만 그 조각의 정교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이런 부조들은 이 기둥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신전의 벽면 하나하나마다 빠지지 않고 새겨져 있는데 이집트의 신화와 역사에 관련된 것들이라고 한다. 까르낙 신전을 나와 이번에는 룩소르 박물관으로 향한다. 룩소르 박물관은 그리 규모는 크지 않지만 깔끔하게 전시가 되어있어 카이로의 국립박물관보다 더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박물관을 나와 이번에는 룩소르 신전으로 향한다. 나일강변에 세워진 이 신전은 그냥 길거리에서 봐도 내부기 훤히 들여다보이니 굳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어차피 신전은 앞으로도 지겨울 만큼 보게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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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낙 신전 입구,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양쪽으로 20개씩 놓여있다

열주들, 규모가 너무 커서 카메라에 잘 담기질 않는다 핫셉수트 신전


다음날은 직장에서 휴가를 받아 왔다는 여자 친구와 함께 서안을 돌아본다. 서안 최대의 볼거리는 역대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왕가의 계곡이다. 보통 이집트 왕들의 무덤이라면 피라미드를 떠올리기가 쉬운데 사실 피라미드는 고왕국 초기에 잠시 조성되었을 뿐 아니라 무덤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 역시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으니 60여개의 크고 작은 무덤이 있다는 이곳 왕가의 계곡이야말로 파라오의 안식처라 할 수 있다. 왕가의 계곡 앞에서 입장권을 끊으면 이들 무덤 중 세 곳을 돌아볼 수 있는 티켓을 준다. 어차피 무덤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를 따라 한참을 걸어 내려가면 화려한 부조가 있는 방들이 나오고 그 방들이 지나치면 더 깊숙한 방이 나오는데 이곳이 파라오의 안치실이다. 물론 현재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대부분의 유물들은 도굴되었고 그 나머지도 박물관으로 옮겨진 지 오래다.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 황량한 돌산의 계곡마다 깊숙이 묘를 파기는 했으니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무덤은 그 유명한 투탄카문의 무덤 정도였다니 결국 도굴꾼의 손길을 벗어나지는 못한 셈이다.

 

왕가의 계곡, 중앙에 보이는 입구가 왕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핫셉수트 왕의 신전 


이곳 서안에는 왕가의 계곡 말고도 왕비의 묘들이 모여 있는 왕비의 계곡이니 귀족이나 장인들의 묘가 있는 크고 작은 계곡들이 퍼져 있지만 그걸 다 둘러보려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입장료도 엄청 들여야 할 판이다. 내가 뭐 고고학자도 아닌 방에야 굳이 그걸 다 둘러볼 이유도 없다. 무덤은 왕가의 계곡에서 둘러본 파라오의 무덤 세 곳만으로 충분하다. 다시 택시를 타고 핫셉수트 여왕의 신전과 람세스 3세의 신전을 돌아본다. 이집트의 신전들은 그 하나하나의 규모가 엄청나다. 지금이 겨울이긴 하지만 나무하나 없는 황무지에 세워진 신전들을 둘러보자면 내리쬐는 햇살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으니 신전들 한두 곳 둘러보는 것도 힘에 부친다. 게다가 신전 곳곳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자칭 가이드들이 한마디라도 들어주면 박시시를 달라고 손을 내미니 이들을 뿌리치는 일도 보통 피곤한 일은 아니다. 신전들을 둘러보고 멤논의 거상에 잠시 들렀다 다시 보트를 타고 동안으로 돌아온다.

 

람세스 3세전의 부조

람세스 3세전의 부조

 

 

멤논의 거상, 동행자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전형적인 관광지 포즈가 나온다.


하루는 덴데라 신전을 다녀온다. 투어로 가고 싶지는 않으니 쥔장에게 개인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본다. 기차를 타고 어디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어떻게 하면서 한참 설명에 열을 올리던 쥔장은 덴데라 안 가본지도 오래 되었다면서 아예 자기랑 같이 가잔다. 영국 유학생 한 명과 계란까지 삶아 들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덴데라 신전은 룩소르에서 한시간쯤 떨어진 예니라는 도시에 있다. 이집트의 기차는 이상하게도 외국인이 탈 수 있는 기차가 따로 있다는데 마침 우리가 기차역에 도착하니 그 기차는 이미 떠나고 없다. 쥔장 왈 다음 기차는 외국인에게는 표를 팔지 않는다며 그냥 올라타자고 한다. 차안에서 벌금을 포함한 기차요금을 물고 다시 예니역에서 내려 덴데라 가는 택시를 대절한다. 이곳에서 언젠가 외국인 여행자가 살해된 적이 있다는데 그래서인지 멀지 않은 거리를 가는데도 검문을 서너 번이나 당한다.


덴데라 신전은 사랑의 여신인 하토르에게 바쳐진 신전이라는대 그래서인지 신전의 기둥마다 여인의 두상이 조각되어 있다-아쉽게도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다^^- 이집트 고대왕조 최후의 건축물이라는 이곳은 그래서인지 보존 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다. 다른 신전들과는 달리 지붕이 남아 있어 옥상에 올라갈 수도 있고 지하실의 납골당까지 내려가 볼 수도 있다. 옥상을 둘러보고 지하계단이 있다는 문 앞에 도착하니 내려가지 말라는 푯말이 서 있다. 이전에 내려가 본 작이 있다는 쥔장이 지하로 향하는 슬쩍 당겨 보니 스르르 열린다. 관리인의 눈을 피해 지하로 내려가 본다. 후레쉬를 들고 있기는 사방은 깜깜하기만 하다. 후레쉬에 비친 부조들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서둘러 다시 올라온다. 다행히 들키지는 않은 것 같다. 덴데라 신전을 불러보고 다시 기차를 단다. 이번에는 완행열차를 탄다. 창밖으로는 온통 푸른 채소밭이 펼쳐져 있고 기차는 느릿느릿 풍경 속을 달린다. 이곳에서는 푸른빛이라곤 좀처럼 볼 수 없으니 한국에서 늘 보던 모습인데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냥 봄날 오후같이 나른하다. 하루 동안 봄나들이라도 나온 것 같다.

 

 덴데라 신전의 기둥


이제 아스완으로 갈 시간이다. 룩소르에서 아스완까지는 세 시간 거리이다. 아침 일찍 기차역에 나가서 기차를 기다린다. 쥔장 말에 따르면 아스완 가는 아홉시 기차는 거의 변함없이 열한시가 넘어야 온다지만 그렇다고 아홉시 기차를 타러 열한시에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시 그날도 예외는 아니어서 시간 맞춰 기차역에 나가 꼬박 두 시간을 기다리다 기차를 탄다. 햇살에 따뜻하다, 창밖을 보다 어느새 졸았나 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기차는 어느새 아스완역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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