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아스완> 펠루카를 타다

 

아스완은 이집트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는 관광도시이다. 하지만 관광도시라고 해서 아스완시내에 볼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고 인근의 필레 신전이나 남쪽으로 320Km 떨어져 있는 아부심벨 신전을 보기 위해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펠루카를 타러 오는 사람들도 많은데 펠루카는 고대 이집트의 전통적인 돛단배로 모터를 사용하지 않고 바람의 힘으로만 항해하는 배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일강가에 나가본다.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에 속해 있지만 중동 국가같은 느낌이 더 많았는데 이곳에 오니 흑인들이 제법 눈에 뛴다. 한때 이곳은 고대 누비아의 땅이었다는 데 그래서인지 수단 민족인 누비안들도 많고 곳곳에 누비안 마을도 눈에 뛴다. 엘레판틴섬에는 누비안 마을이 있다니 해지기 전에 마을이나 둘러 볼 샐각에 로컬 페리를 타고 섬으로 건너간다. 조용한 마을일거라는 기대는 강을 넘어서자마자 무너진다. 마을 입구부터 낙타 몰이꾼이 줄을 서 있고 마을에도 온통 박시시를 외치며 따라다니는 아이들뿐이다.


숙소로 돌아와 아부심벨 롱투어와 펠루카 1박 2일 투어를 신청한다. 아부심벨 투어는 말 그대로 버스로 아부심벨을 다녀오는 투어이고 펠루카 투어는 펠루카를 타고 나일강을 항해하는 투어이다. 그런데 신청을 하다보니 일정이 살짝 꼬인다. 아부심벨 투어는 아부심벨만 보고 돌아오는 숏투어와 아부심벨을 돌아보고 오는 길에 아스완하이댐, 필레신전, 미완성 오벨리스크까지 들르는 롱투어로 나뉘는데 롱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세 시인데 비해 펠루카가 떠나는 오후 한 시이다. 그저 아부심벨만 보고 돌아오던지 아님 아스완에서 하루를 더 자고 담날 펠루카를 타든지 해야 할 판이다. 숏투어를 하자니 딴 건 몰라도 필레 신전은 봐야 할 것 같고 담날 펠루카를 타자니 숙소 상태가 하루 더 묵고 싶은 맘을 가시게 한다. 어찌할까 고민을 하고 있으니 숙소 주인이 대안을 제시한다. 롱투어 마치고 돌아와서 미리 떠난 펠루카를 따라잡으면  된다며 세 시에 숙소로 픽업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

나일강에 떠 있는 펠루카

 

 페리에서 만난 누비안 소녀들


아부심벨 투어는 롱투어, 숏투어를 가리지 않고 픽업 시간이 새벽 3시란다. 안자면 모를까 자다 일어나기 가장 황당한 시간이지만 별달리 방법이 없다. 숙소 주인이 깨워준다고는 했으나 알람까지 맞춰두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보지만 잠이 올 리가 만무하다. 결국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잠깐 잠들었는가 싶더니 어느새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보나 정확히 세시다. 버스는 삼십분 가까이 사람들을 픽업하러 다니더니 일곱 시가 가까워서 아부심벨 신전에 도착한다. 아부심벨은 람세스 2세가 그의 즉위 30주년을 맞아 자신의 업적을 기리고자 만든 신전인데 이 신전은 인류가 구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별칭도 함께 가지고 있다. 1960년대 중반 나일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강의 상류에 아스완 하이댐이 건설되자 수몰위기에 처한 이 유적을 조각조각 내어 지금의 위치로 옮겨 왔다고 한다. 유네스코가 세계 50개국의 지원을 받아 인류역사상 최대 규모의 문화재 이전 작업을 실시했던 것이다.


매표소를 지나니 바다를 방불케 히는 호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댐건설과 함께 생긴 인공호수인 낫세르 호수다. 낫세르 호수를 끼고 오른쪽 모래 언덕을 돌아서면 아부심벨 대신전이 눈에 들어온다. 암굴 신전인 대신전은 신전 정면에 있는 4개의 거대한 람세스상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신전의 내부에도 람세스왕의 다양한 업적을 기린 부조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대신전 옆에는 역시 암굴 신전인 소신전이 있는데 이는 왕비 네파르타리를 위한 신전이라고 한다. 신전을 돌아보고 신전 앞 공터에서 아침을 먹는다. 사람들이 투어에 아침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도시락을 차에서 나눠주는 게 아니라 아침에 숙소 주인이 건네주는 걸로 봐서는 호텔의 서비스 같기도 하다. 도시락이라야 빵이랑 과자 몇 개가 고작이지만 그래도 먹고 나니 제법 속이 든든해진다.

-

 아부심벨 대신전

 

 아부심벨 소신전


다시 차에 타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한참을 달리던 차는 아스완 근교에서 다시 롱투어팀과 숏투어팀으로 나누더니 이내 아스완하이댐에 도착한다. 어차피 댐까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고 싶지는 않으니 밖에서 그냥 밖에서 기다리다 필레 신전으로 향한다. 원래 나일강의 필레섬에 있던 필레 신전 역시 수몰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을 지금의 섬으로 옮겼다고 한다. 필레 신전은 섬에 위치해 있으니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투어에 배타는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재주껏 흥정해서 들어가야 한다, 어차피 배는 한대당 가격이니 일행은 많을수록 유리하다. 재빨리 주변을 둘러본다. 투어를 함께한 한국인이 4명이니 한팀만 더 잡으면 된다. 마침 중국 관광객 6명이 눈에 뛴다. 이들과 같이 배를 타고 필레 신전으로 들어간다. 이제 신전은 거의 비슷비슷해 보이기 시작하지만 필레 신전은 섬이라 그런지 신전에 앉아 강물만 바라보고 있어도 분위기가 그만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아스완 시내로 들어선다, 마지막 행선지는 미완성오벨리스크다. 오벨리스크란 문자가 새겨진 거대한 비석을 말하는데 결함이 발견되어 버려진 미완성의 오벨리스크를 보러가는 것이다, 이걸 보면 고대인들이 어떻게 거대한 암석을 매끄럽게 잘라냈는지 알 수 있다지만-돌에 홈을 만들어 그 홈에 쐐기를 박아 넣고 쐐기에 물을 계속 적셔주면 돌의 내부가 팽창하여 돌이 갈라진단다- 이것 역시 입장료씩이나 내고 보고싶은 맘은 들지 않는다. 이런 맘은 모두다 마찬가지였는지 막상 입구에서 아무도 차에서 내리지 않자 그곳을 그대로 지나간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겨 펠루카를 타러 간다. 두 시간이나 먼저 간 배를 따라 잡으려면 차를 타고도 한참이나 가야겠구나 생각했더니 이게 웬일.. 픽업이라며 나온 아저씨는 두발로 뚜벅뚜벅 앞장 서 걷더니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착장에서 펠루카를 태워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펠루카는 이동이 목적인 배가 아니라서 그런지 이동 시간에 비해 이동 거리는 그다지 길지 않다.

 

페리에서 본 필레신전

 

필레 신전 입구


덴데라 신전을 같이 다녀 온 영국 유학생 친구와 펠루카에 오르니 먼저 탄 일행들이 인사를 건네 온다. 세 명의 벨기에 처자들과 한 명의 영국 총각이다. 비록 어학연수생이긴 하지만 그래도 영국 유학생이 있으니 영어 고문은 안 당해도 되겠다 싶다^^. 우리를 기다리느라 정박이 길었던지 배는 우리가 타자마자 나일강을 미끄러지듯이 흘러간다. 배 위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어 제각기 앉거나 눕거나 제 편한대로 자세를 잡고 있다. 펠루카는 일몰 무렵에 타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데 과연 강 건너편으로 노을이 붉어지면서 물빛은 온통 황금빟으로 보인다. 강 위로 떠다니는 페리들이 불빛을 밝히는가 싶더니 어느새 주변이 어두워진다.

 

펠루카 위

 

나일강에 해가 진다


배는 강변에 정박하더니 하루밤을 보낼 준비를 한다. 배 주변으로 천이 둘러쳐지고 촛불이 켜진다. 배에서 만든 요리로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예정대로라면 내일 아침 일찍 이곳으로 픽업 오는 차를 타고 룩소르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펠루카를 탄 시간은 고작 세 시간 남짓인데 왠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영국 유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은 2박 3일 일정이라니 하루를 더 타는 것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성 싶다. 다음날 아침 영국 유학생은 룩소르로 돌아가고 나는 펠루카를 하루 더 타기로 한다. 잠자리는 불편해도 배 위에서 하루쯤 더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펠루카에 누워 주는 밥이나 먹으며 그저 자다 깨다 하루를 보낸다. 책이라도 한 권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이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섬에 잠시 정박 중인 펠루카

 

누워서 본 펠루카의 돛


펠루카에서 이틀을 자고 다시 룩소르로 향한다. 아스완에서 콤옴보까지 왔으니 이틀 동안 이동한 거리는 고작 40킬로 남짓이다. 어쩐지 펠루카가 똑바로 안가고 강을 지그재그로 가로지르더라니.. 돌아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속셈이 아닐까 싶긴 하지만 그 속사정이야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콤옴보에서 룩소르까지는 버스로 이동을 하는데 중간에 콤옴보와 에드푸의 신전을 한 곳씩 들러 간다. 이미 필레 신전부터 비슷비슷해지기 시작한 신전들은 이제 정말 그 차이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똑같아 보이기 시작한다. 고작 열 개도 안 되는 신전을 봤을 뿐인데 벌써 이 지경이니 몰아서 본 게 죈지 무식이 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튼 어찌어찌 다시 룩소르로 돌아온다.


다시 룩소르로 돌아와 며칠을 더 보낸다. 이제 바하리아 사막에 들렀다가 다합으로 돌아가면 된다. 바하리아를 마지막으로 여행지로 남겨둔 건 만나볼 사람이 있어서이다. 언잰가 태국 여행에서 만난 여자 친구가 여행 중에 이집트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지금 바하리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또다른 친구에게서 메일로 받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본다. 여보세요.. 한국말이다. 전화로 긴 얘기는 할 수 없으니 바하리아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는다. 룩소르에서 바하리아는 지도상으로 보면 바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지만 도로가 좋지 않아 카이로를 거쳐서 가는 편이 더 빠르다고 한다. 별 수 없이 다시 카이로로 가는 밤차를 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