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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싸웨라> 항구와 해변이 있는 마을

카사블랑카에서 에싸웨라까지는 모로코의 공영버스인 CTM버스를 타고 간다. 별도의 전용터미널이 있고 짐도 비행기처럼 별도로 부치는 창구가 있는 나름 고급버스다. 차가 넓고 편안하지만 차편이 그리 많지는 않아서 에싸웨라행 버스 역시 아침 일곱 시와 저녁 다섯 시 달랑 두 대뿐이다. 어딘가에 일반버스 터미널도 있으련만 찾기가 쉽질 않다. 아침 일곱 시 차는 출발이 너무 이르고 저녁 다섯 시 차는 도착이 너무 늦어 고민하다가 밤늦게 도착하는 거 보다야 낫지 싶어 아침 차를 탄다. 에싸웨라로 가는 길은 온통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여느 중동 지방처럼 이곳도 도시만 벗어나면 황무지려니 했던 생각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다. 오랜만에 보는 초록빛이 너무 예뻐 창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한국에서 늘 보던 풍경이었는데 나무와 풀들이 이렇게 새삼스럽게 느껴지다니 중동에 오래 있긴 한 모양이다.

 

에씨웨라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삐끼 아주머니 몇몇이 말을 건네 온다. 스카프 쓴 삐끼는 또 처음이다^^. 바닷가에 있는 집이라는데 가격도 아주 싸다. 지금부터 짐을 들고 지도도 없이 호텔을 찾아야 하는 신세를 생각하면 그냥 따라가고 싶은 유혹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 경우 숙소가 시내와 많이 떨어져 있거나 호텔이 아닌 일반 가정집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잠깐 편하자고 이삼일의 불편을 감수할 순 없으니 과감히 뿌리치고 일단 시내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대략 메디나 안에 숙소촌이 있다고 들었으니 물어물어 메디나 입구까지 찾아가긴 했지만 이곳의 메디나 역시 미로 같은 골목길이 버티고 있다. 론리 첫줄의 숙소를 물으니 대략 방향을 알려 준다. 물어물어 찾아간 숙소는 이미 풀이다. 여튼 론리에 나온 숙소치고 풀 아닌 데가 없다. 결국 근처에 있는 다른 숙소를 찾는다.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깨끗하고 조용하다. 마음에 드는 방을 얻고 나니 갑자기 동네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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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전통가옥을 개조한 호텔, 가운데 커다란 공간이 뚫려 있고 그 주변으로 방들이 둘러싸고 있다. 고로 창문은 전부 복도로 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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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과 욕실은 공용이지만 방안에는 세면대가 있어 편리하다

 

에싸웨라는 유럽인들도 많이 오지만 모로코 현지인들에게도 유명한 관광지라고 한다. 모로코의 여느 도시들처럼 구시가지인 메디나가 있고 메디나를 벗어나면 항구와 해변이 한 눈에 보이는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이다. 도시도 그리 크지 않아 메디나와 항구와 해변을 몽땅 돌아다녀도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는다. 어딜 가나 그림엽서 같은 작고 아담한 마을이지만 전형적인 관광지답게 메디나의 골목마다 온통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어딜 가나 유럽인 관광객을 가득 채운 버스들이 줄을 서 있다. 이집트나 모로코처럼 유럽에서 가까우면서도 기후가 온화하고 물가가 싼 나라들이 관광지로는 가장 만만한지 어딜 가나 유럽 노인네들 천지다. 여행 초기엔 노부부가 나란히 손잡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더러 감동도 하곤 했는데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이제 집에서 좀 쉬시지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하긴 그나마 중동에서 유럽 노인네와 현지 처녀애 커플은 안 봐도 되니 그나마 좀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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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나안의 카펫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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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나안의 도자기 가게

 

모로코의 특산물인 카펫과 도자기 그릇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한 메디나 주변을 돌아다니다 발걸음을 항구로 옮긴다. 항구에는 고기잡이배들이 가득하고 그 주위로 잡아 온 물고기들을 실어가거나 즉석에서 판매하는 장이 펼쳐진다. 또 한켠에는 동네 아저씨들이 물고기를 손질하느라 한창이고 주변은 온통 비릿한 삶의 냄새로 가득하다. 관광객들만 없다면 전형적인 어촌이라 할 만한 풍경이다. 질퍽한 삶의 현장을 빠져 나와 이번에는 해변으로 향한다. 모래사장이 10Km나 이어져 있다는 이곳 해변에는 축구하는 애들이며 데이트하는 커플, 함께 나들이 나온 가족들로 북적거린다. 모래사장에 잠시 앉아 있으려니 외국인이 아니 동양인이 마냥 신기한 동네 청춘들이 한시도 사람을 가만두지 앉는다. 어디서 왔냐, 이름은 뭐냐, 모로코는 좋냐, 교과서에 외국인용 표준 질문이라도 실렸는지 한 치도 틀리질 않는다. 유럽으로 올라가면 쳐다보지도 않는다니 그때가 되면 이들의 대책 없는 관심도 그리워지려나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고만 좀 내버려뒀으면 하는 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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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는 고기잡이배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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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나의 성벽 너머로 해가 진다

 

딱히 볼거리는 많지 않지만 에싸웨라는 메디니와 바다 그리고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 곳이다. 사실 특별한 관광지가 없다는 게 여행기를 쓰기는 괴롭지만 여행하기엔 더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저 숙소에서 나와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지치면 카페에서 커피나 한잔 마시며 사람 구경이나 하고 누군가가 말을 건네 오면 쓰잘데기 없는 수다나 떨다가 다시 걷고 그도 지겨우면 숙소로 돌아 와 한잠 자고 저녁 무렵 바닷가에 앉아 일몰을 본 것이 에싸웨라에서 한 일의 전부다. 사실 여행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이런 거였는데 막상 해보면 좀 심심하기도 하다^^. 이렇게 이틀을 머물고 마라케쉬로 떠난다. 마라케쉬도 앞으로 가게 될 페스나 쳅차오웬도 별다른 관광지는 없는 곳이라니 그저 모로코는 사람들 구경이나 하며 천천히, 쉬엄쉬엄 움직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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