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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리아> 영선을 만나다

 

이 놈의 기차는 또 연착이다. 아침 9시에 도착한다던 기차가 12시가 가까워서야 카이로에 도착한다. 아무래도 바하리아로 바로 가기는 힘들 것 같다. 이집트는 카이로를 거치지 않으면 딴 도시로의 이동이 힘드니 벌써 카이로만 세 번째 들어온다. 바하리아에서 돌아오면 다시 카이로를 거쳐 다합으로 가야 하고 이집트를 떠나자면 또다시 카이로로 와야 하니 이래저래 카이로만 다섯 번을 들러야 하는 셈이다. 익숙한 숙소에 다시 짐을 풀고 바하리아로 가는 다음날 버스표를 예매해 둔다. 막상 버스표를 끊고 나니 슬며시 걱정이 된다, 무작정 오라고는 하는데 이 친구의 지금 상태가 어떤지 정보가 없다. 결혼식은 올렸는지, 짓는다던 호텔은 다 지었는지, 투어는 하는 건지 도통 아는 게 없다. 그러다가 한편으론 가보면 알겠지 그 마을에 호텔이 없을 것도 아닌데 괜한 걱정을 한다 싶기도 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바하리아행 버스를 탄다. 버스에 타보니 한국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그중 자매라는 두 친구와 인사를 하고 보니 이 친구들도 영선에게 가는 길이다. 인터넷에서 한국인이 하는 바하리아 투어가 있다는 글을 보고 미리 전화를 하고 가는 길이라고 한다. 음.. 투어를 하긴 하는구나.. 어차피 투어는 차당으로 비용을 계산하니 일행이 있는 편이 좋긴 하다. 그리고 혼자 바하리아로 가는 또다른 남자 친구와도 인사를 나눈다. 이 친구는 별다른 예약 없이 그냥 가는 길이라고 하니 같이 투어를 하기로 한다. 차는 터미널을 벗어나자마자 타이어에 문제가 생기더니 한 시간이나 수리를 하고서야 다시 바하리아를 향한다. 다시 황량한 사막을 거쳐 바하리아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가 가까운 시간이다. 터미널에는 영선의 남편인 모하메드가 나와 있다. 그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호텔이 아니라 그의 집이다. 그것도 시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집말이다.


차에서 내리니 영선이 반갑게 맞아준다.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있기는 해도 태국에서 봤던 그 얼굴이다. 그저 여행지에서 며칠을 같이 보낸 것뿐인데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마음이 든다. 영선이 차려준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직 짓고 있는 호텔이 완성이 되지 않아 잠시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면서 알고 지내던 카이로의 민박집에서 보내주는 손님 이외에 인터넷으로 연락을 받은 손님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원래 바하리아 투어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사막으로 떠나 1박을 하고 돌아오자마자 바로 떠나는 일정이 일반적인 모양인데 오늘은 버스가 연착을 했으니 투어를 가기는 늦은 시간이라며 따로 호텔을 잡느니 그냥 여기서 하루밤 자고 내일 투어를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 온다, 나야 별 상관이 없긴 하지만 어른들 다 계신데 묵어도 되나 잠시 망설여진다. 그래도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근처에 소금호수와 샌듄에 다녀오는 걸로 저녁 시간을 보낸다.

 

소금호수

 

 

영선과 그 남편 모하메드


다음날 일행들과 함께 사막투어를 다녀온다. 영선은 이 친구들만 투어를 보내고 다음에 신랑이랑 셋이서 따로 사막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 온다. 마음이야 고맙지만 그렇게 하면 이 친구들의 비용 부담이 커지는 건 그렇다 쳐도 영선과 모하메드에게 너무 폐를 끼치는 일이 된다. 내가 무슨 친정 언니도 아니고 그렇게 까지 하기는 부담스러우니 투어는 그냥 다른 사람들과 같이 다녀오겠다고 한다. 모하메드와 그의 조수인 청년 그리고 우리 넷, 이렇게 여섯이서 투어를 떠난다. 영선의 남편인 모하메드는 어렸을 때부터 삼촌 밑에서 가이드를 했다니 영선과 결혼을 하면서 독립적인 사업을 시작한 셈인데 그래서인지 그의 운전이나 가이드는 나무랄 데 없이 깔끔하다. 차는 바하리아에서 한참을 달려 흑사막에 도착한다. 흑사막은 주변 화산에서 분출돤 화산재가 오랜 바람에 침식돠면서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온통 그을린 듯한 감은 돌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검은 사막을 거친 차는 다시 크리스탈마운틴에 잠시 멈췄다가 어느새 백사막으로 들어선다. 모래 사막같은 분위기는 나지 않지만 하얀 석회석으로 이루어진 기이한 형태의 바위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 다른 행성의 어디쯤인 같다는 느낌을 준다.  

 

흑사막

 

 크리스탈 마운틴


백사막 사이를 한참이나 달리던 차는 일몰 무렵 백사막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바람막이로 차를 한켠에 세워두고 그 앞으로 시트가 깔리더니 하루밤 잠자리가 완성된다. 모닥불이 피워지고 즉석에서 저녁이 준비된다. 이런 곳에선 보통 닭고기를 숯불에 굽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서는 닭을 야채와 함께 자작하게 조려준다. 추운 날씨 탓인지 이렇게 하는 게 먹기가 훨씬 편한데 아무래도 영선의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으니 조그마한 동물이 주변을 얼씬거린다. 사막 여우란다. 여우치고는 크기가 크지는 않은데 먹을 걸 보더니 사람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닭뼈를 건네주면 한참을 망설이다가 잽싸게 뺏어들고 돌아서는 폼이 여우라기 보단 그저 애완 동물같다. 이번엔 날을 잘 잡는 듯 하늘엔 달 대신 별이 총총한데 침낭에서 맞는 밤은 그리 춥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백사막1

 

 

백사막2


투어에서 돌아와 카이로로 일행들을 보내고 하루를 더 묵기로 한다. 호텔이 완성되었다면 며칠 묵어갈 생각이었는데 신혼 부부 갈라놓고 자는 일은 하루면 족할 것 같다. 영선은 정 불편하면 근처 호텔에서라도 며칠 묵어가라고 권하지만 어차피 집밖 출입이 자유롭지 않으니 낮에 이곳에서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은 매일반인 것 같다. 짓고 있다는 호텔에 같이 다녀온다. 이제 한달반만 있으면 완공이 된다는데 제법 근사한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호텔이 완공되면 부모님 모시고 결혼식을 올린다는데-현재는 법적 절차만 밟고 아직 결혼식은 올리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완공이 조금만 빠르면 결혼식을 보고 가고 싶지만 이집트의 검뭉 올라가느느 속도를 감안해보면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종교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그것도 결혼이란 걸해서 산다는 일이 그리 쉬워보이지는 않지만 영선은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다, 그런 결정을 할 때야 본인이 가장 고민이 컸을 텐데 걱정한답시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게다가 그 친구는 충분히 좋아보인다. 이상하다. 태국에서 처음 여행자로 그를 만났을 땐 전혀 깨닫지 못했는데 혹 전생에  이집션이 아니었을까 쉽게 그는 그 동네와 그 집에 어울린다. 하긴 본인도 처음 이집트에 왔을 때 찬구들이 바가지며 거짓말에 치를 떠는데도 그냥 이집트가 좋기만 했다니 글쎄 인연이란 게 정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막의 숙소

 

사막 여우


카이로를 거쳐 다시 다합으로 다시 돌아온다. 어디를 가든 조금 쉬었다 움직일 예정이다. 1월이 지나면 유럽 쪽의 날씨가 좀 풀리지 않을까 하는 알팍한 계산도 함께다. 지금 여전히 다합이고 생각보다 길게 있었다. 그 덕분에 밀리고 밀린 여행기 정리는 끝냈지만 어디를 갈 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아마도 유럽 쪽으로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춥고 배고프면 유럽 어디에선가 한국 가는 비행기표를 끊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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