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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이 정도면 양호하다

 

일행들이 죄다 카이로로 떠나고 나 역시 이삼일 뒤에 카이로 가는 밤차를 탄다. 원래는 다합에서 네 시간 가량 걸린다는 도시에서 비자를 연장하고 한동안 더 머물다 12월 중순 경에나 다합을 뜰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겨울방학 기간에 여행을 다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게 된다. 겨울방학 기간이 다가오면 몰려드는 한국 관광객들 때문에 숙소며 교통편도 문제가 될 것이 뻔하다. 어차피 1월 중순에 이집트를 빠져 나갈 계획이라면 다합에서 계속 지내기보다는 비자 연장을 카이로에서 한 뒤 이집트를 한바퀴 둘러보고 다시 다합으로 되돌아 와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 더 현명할 것 같아 맘을 바꾼 것이다. 다합에서 밤 10시에 출발한 버스는 서너 번의 검문으로 끊임없이 밤잠을 깨우더니 아침 일곱 시가 되어서야 카이로에 도착한다. 같이 타고 온 한국인 커플과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한다. 흔히 카이로를 무질서와 혼돈의 도시라고들 하는데 새벽이라서 그런지 카이로는 매연이 조금 심할 뿐 그다지 무질서하지도 혼돈스럽지도 않다.


도착한 날 바로 비자를 연장하러 간다. 이집트 비자는 국경에서 한달짜리를 받았는데 어느새 비자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다행히 비자 연장하는 곳은 숙소에서 빤히 보이는 건물이다. 비자 연장 창구가 복잡하기는 하지만 연장 절차는 그리 까다롭지 않다, 여권의 사진면과 비자면을 복사해서 작성한 서류와 함께 내니 두 시간 만에 연장 비자를 내 준다. 서류를 작성할 때 원하는 비자연장 기간을 체크하는 난이 있어 3개월을 신청했는데 막상 여권을 받아드니 연장된 기간은 6개월이다. 뭐 일은 못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긴 하지만 여기서 일해 봐야 한달에 5만원 받으면 잘 받는 거라니 앓느니 죽는 게 낫다^^. 어쨌든 비자를 연장하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아무래도 이집트는 좀 오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매번 비자 연장하는 것도 일이라면 일인데 이제 비자 문제는 잊어버려도 될 것 같다. 이렇게 쉽게 연장해 줄 거면 처음부터 한 삼개월 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은 들지만 말이다.    


담날은 천천히 카이로 시내를 둘러본다. 카이로에서 가장 악명 높은 게 신호를 전혀 지키지 않는 차들인데 처음엔 잠시 멍하다 이내 적응이 된다, 내가 다닌 나라들 치고 사람이건 차건 신호 지키는 나라는 한군데도 없었다. 아마 한국에 가면 나도 모르게 무단 횡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좀 딴소리긴 하지만 무단 황단과 더불어 또 하나 걱정되는 건 옆에 사람이 있건 말건 아무 말이나 해대는 버릇이다. 대략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니 생긴 습관인데 눈앞에 대놓고 별말을 다하는 거다. 쟤 머리 좀 봐라.. 되게 시끄럽네.. 등등 물론 표정은 웃고 있어야 한다. 이런 증상은 한국인 일행이라도 생기면 좀더 심해지는데 쟤가 쟤 여자친구냐 여자가 아깝다.. 쟤는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인다 등등 무궁무진해진다. 가끔 한국 게스트 하우스에서도 이 증상이 한번씩 나오는 걸 보면 한국 가서도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도 그러면 맞아 죽을 텐데 이제부터라도 자제를 해야 할 것 같다.

 

시타델 내에 있는 무하마드 알리 모스크

 

모스크 첨탑에서 본 카이로


카이로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국립박물관이다. 언제부턴가 박물관 가는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지만 이집트 박물관이라니 구미가 당긴다. 이집트 유적은 대영박물관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지만 그래도 이곳에는 그 유명한 투탄카문의 유물을 비롯해 다양한 유적들이 전시되어 아니 쌓여 있다. 이집트 국립 박물관은 유물의 양에 비해 박물관의 크기가 작은 듯 유물들은 전시되어 있다기보다 쌓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집트만의 독특한 유물들은 아직 이집트의 다른 유적들을 보지 않아서인지 하나하나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이집트 신화와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결국 그게 그것처럼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다합에서 그래도 이집트 관련 역사책을 두어 권을 읽었음에도 누가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나마 역대 이집트왕들은 그렇다 치고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등장해주시는 이집트의 신들은 정말 대책이 없다. 여전히 무식은 건전한 여행의 장애물이다,


박물관을 보고 나서 다시 고민에 빠진다. 어디를 갈 것인가.. 가이드북에는 카이로를 올드 카이로와 이슬라믹 카이로 그리고 모던 카이로의 세부분으로 나눠 한곳씩 다녀 올 것을 추천하고 있다. 모던 카이로야 어차피 숙소 근처의 광장과 나일강변의 신도시를 가리키는 것이니 됐다 치고 초기 콥트 기독교 교회들이 모여 있다는 올드 카이로와 성채와 모스크 그리고 시장이 있다는 이슬라믹 카이로 지구를 하루씩 돌아본다. 이제 교회도, 모스크도, 시장도 다 고만고만하다. 바가지가 심하다고 해서 걱정을 꽤 하긴 했지만 현지인 가격으로 사겠다는 터무니없는 꿈만 꾸지 않으면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바가지를 쓴다 해도 물가는 싼 편이라 택시는 카이로 시내에서는 대략 천원 안쪽으로 해결이 되는데다 몇 가지 생필품은 가격만 알고 있으면 그 가격대로 주고 나오면 그만이다. 음식점도 흥정이 필요하긴 하지만 알아서 깍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무리한 박시시 요구는 대충 무시하면 된다. 그저 필요한 건 잔돈이다. 도무지 이놈의 나라는 잔돈을 제대로 거슬러 주는 법이 없다^^

 

카프레왕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카이로에서의 마지막 날은 피라미드를 다녀온다. 이집트에 피라미드가 한두 개는 아니겠지만 피라미드하면 카이로 근처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를 보고 오는 게 일반적이다. 이곳에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를 비롯해 카프레왕과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 등 세 개의 피라미드가 나란히 서 있다. 이 피라미드가 서 있는 곳은 사막이니 아침 일찍 다녀오라는 조언이 일반적이지만 요즈음은 날씨가 그리 덥지 않으니 일몰이나 보고 오자는 맘으로 오후가 되어서 출발한다. 아침에는 그곳으로 가는 미니버스도 많다던데 어찌된 일인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긴 미니버스라는 게 출발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다 차야 출발하는 버스이니 손님이 없을 땐 다니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냥 일반 버스를 타란다. 30분이나 기다려 탄 버스는 정류장마다 서더니 한 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피라미드 앞에 도착한다. 버스 내린 곳에서 빤히 보이는 피라미드까지의 거리도 만만치 않다. 골목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드디어 매표소가 보인다.


매표소부터 낙타 호객꾼들이 기승을 부리긴 하지만 어차피 피라미드는 생각보다 넓지도 않은데다 낙타는 이미 시나이산에서도 타 봤으니 굳이 타야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이 피라미드 안에 낙타 몰이꾼들은 바가지와 거짓말로 이집트에서도 그 악명이 높으니 괜히 잘못 탔다가 기분만 상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슬슬 걸어 다니면서 피라미드 주변을 돌아본다. 오후라서 그런지 관광객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피라미드를 보고 온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작아요, 볼 거 없어요 하는 통에 기대를 낮춘 탓인지 피라미드는 생각보다 볼 만하다. 피라미드마다 한바퀴씩 돌고 세 개의 피라미드가 한꺼번에 보인다는 뷰포인트까지 갔다 오니 어느새 저녁이다. 버스 내린 곳에서 꼬박 한 시간을 기다리고서야 다시 버스를 탄다. 다시 카이로로 돌아오니 어느새 주변이 어두워져 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달랑 1파운드로 피라미드를 다녀온 셈이다.

 

피라미드와 낙타몰이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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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것이 카프레왕, 뒤에 것이 쿠푸왕의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까지 둘러 봤으니 이제 사막으로 떠날 시간이다.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모래사막인 시와를 돌아보기 위해서 숙소에서 미리 일행을 모은다. 어차피 사막 투어는 차로 떠나기 때문에 일행이 없으면 비싸거나 기다리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다행히 이곳 숙소 역시 한국인 여행자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 어렵지 않게 일행이 모인다. 카이로에서 다시 만난 반장과 유럽 거쳐 남미로 갈 예정이라는 처자 그리고 뉴질랜드 유학생 총각 둘 모두 다섯 명이 함께 시와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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