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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봄 나들이를 갔다오다

  • 등록일
    2008/11/15 23:35
  • 수정일
    2008/11/15 23:35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어제 전북 부안의 바닷가로 소풍을 갔다.
전북 부안의 체석강에서 바닷내음과 기간 한국에서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주해온 이주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또한 지역을 전전긍긍하는 이주민으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의 삶을 잊고, 함께 어울리며, 기간 힘들었던 일상을 일탈하기 위한 소풍을 갔다 왔다.

토요일 때아닌 비가 내려서 소풍을 갈 수 있을까? 걱정도 하였고, 이주노동자들이 과연 몇명이나 올까? 내심 불안함도 들었지만 이주노동자들이 하나둘 모이더니 출발할때는 버스 한대를 꽉 채워 출발하였다.

작년 여름캠프에 간 서해 궁평리 해수욕장이 워낙 생각했던 것보다 좋지 않아 여행을 떠난 다는 것이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멀리 전라북도 부안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치악산을 갈 계획이었으나 이주노동자들이 걷기를 싫어하고, 산을 타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의 고국에 없는 색다른 체험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터라 부안으로 여행지를 변경하였다.

부안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약간 시간의 문제 때문에 걱정을 하게 되었다. 왔다 갔다하는 시간이 하루 여행치고는 너무 짧아서 친구들이 여행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놀면서 소풍을 잘 치룰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왕 벌어진 일 이판사판으로 달라 붙어서 그냥 추진하였다. 시간이 안되면 안되는데로.... 버스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면 될 것이라는 기대반 근심반 우려를 갖고 소풍을 가기로 내심 마음을 다잡아 보았다.

스리랑카 해러드, 인도네시아 아셈, 방글라데시 미아는 형 몇시에 오면 되요! 물어본다. 10시까지 와야 한다고 어름장을 놓고 시간을 어기면 안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이주노동자에게 미안한 생각을 한편 들었다. 한달에 두번 정도 쉬는 날인데, 휴식 커녕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나오게 하는 것이 영 미안한 일이다. 그래도 어쩌랴.... 짧은 즐거움이라도 함께 누려야 하거늘...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제촉하며 이주노동자들에게 아침 일찍 오지 않으면 그냥 출발해 버린다고 했다. 시간개념이 약간은 없어서 약속 시간을 어기기를 밥먹듯 빈번히 벌어진다.^^)

회비 1만원... 먹을 것은 인쇄 거래하는 우리동네사람들에게 후원을 요청하여 김밥 값을 후원받았고, 오산지역에 있는 이주노동자 상점에서 각 나라별 과자와 음식 그리고 음료수를 한 보따리 준비하였다. 다솜공부방에서는 과일을 후원해 주어 먹을 것 걱정없이 소풍을 준비하였다.

일요일 아침 10시 소풍을 가기 위해 함꼐 쉼터에서 잔 사람들 이외에는 이주노동자들이 보이질 않는다. 얼마나 올까? 과연 차는 다 채울 수 있냐며, 걱정반 우려반으로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그래도 평상심을 유지해야지 하며, 이주노동자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10시 30분이 되어서야 한 무리가 왔다. 센터 인근에서 방을 얻어서 사는 이주노동자들은 아침을 먹지 않아.... 아침을 먹지 않아서 라면을 먹고 나간다고 네팔 라이는 부시시한 옷차림으로 이야기를 한다. 해러드는 덕절리 친구들이 아직 오지 않아 기달려 달라고 말하고, 인도네시아 아쎔은 언제가요, 한글교실 선생님은 출발을 언제하나요. 걱정어린 말을 건넨다. 해러드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빨리 오라고 하였다.

해러드가 온 시각은 오전 11시 10분 친구들을 막 태우고 출발을 하였다. 기사 아저씨는 기름을 주유해야 한다며 주유소에 들려 10분을 까먹고, 11시 20분이 되어서야 부안으로 출발하였다. 앞이 캄캄하였다. 길이 막히면 어쩌나.... 그리고 도착해서 부안 격포의 운치나 보고 올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그런 내마음도 모르고 이주노동자들은 형 우리 배고파요. 먹을 꺼 달라고 이야기를 한다. 참으로 울화통이 터지지만 좋은 날 좋은 일만 있을 수 있으랴.... 준비한 과자를 한보따리 풀고... 각 나라별 소개를 하면서 출발하였다. 해러드는 나에게 살짝 와서 형 술사줘요.... 친구들이 술먹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다. 한글교실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였을때는 술은 절대 안된다고 어름장을 나에게 놓은 터라.... 술은 안된다고 하고, 부안 격포 체석강에 도착하면 술을 사주마 달랬다.(사실 나도 술을 좋아하는데,,, 센터에서 내가 인솔자로 와서 술을 먹을 수 없는 이 참담한 마음을 누가 알아주랴....^^)

서해대교 입구에서 주변에 펼쳐진 평택항과 서해대교를 건너면서 보는 서해의 모습에 친구들은 마냥 흐뭇해 한다. 그리고 서로온 친구들과 자신들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며, 웃음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 참 기분좋게 보였다. 일요일마다 자신의 말로 자신의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즐거움으로 생각하고 있던 이주노동자들이 웃는 모습이 참 정겹게 다가왔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친구들이 있어 들린 휴게소에서는 전날 비가와서 그런지 많은 여행객은 없었다. 다만, 주변 경치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차가 전부였다.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도 그리고 서해고속도로에 펼쳐진 풍경이 참 여유롭게 다가오고, 한국의 지역을 보여줄 수 있었다.

바닷가에 펼쳐진 뭉게구름..... 참 간만에 보는 구름이였다. 학교다니거나 이맘때면 어김없이 하늘에 뭉게구름이 솜사탕 처럼 바람에 실려 다니는 모습을 하늘을 쳐다보면 느낄 수 있었는데.... 이런 유년에 보았던 구름이 하늘에 펼쳐졌다. 내심 비가와서 걱정하였던 것들이 그 하늘에 펼쳐진 뭉게구름과 새파란 하늘로 위안을 삼아보았다.

차창밖에 펼쳐진 모습을 보면서 내가 오고 싶어했던 지역에 데리고 가고 있다는 사실을 미쳐 깨닫지 못하였는데... 여행이라는 핑계로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있다는 생각을 들어 피식 웃음을 지어보았다. 참 여유롭게 다가오는 풍경에서 그간 힘들었던 일들을 하나둘 날려보냈다.

오후 2시.... 서해 부안톨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격포에 위치한 체석강으로 향하였다. 핵폐기장 저지를 위한 부안지역민들의 상징인 핵반대 깃발은 사라졌지만 부안에 내려왔을때의 느낌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의 그 때 집회를 했던 장소를 지나.... 부안의 들녘.... 깃발은 사라졌지만 그때의 그 민심과 지역의 모습은 다름 형태로 변경되었을 것이라 생각을 품었다. 그리고 들녘을 달렸는데.... 언론에서 보도된 새만금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언론에서 보도된 새만금 갯벌.... 그 자리에 장승들이 놓인 해안가에서 새만금의 위용과 갯벌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방파제를 보면서.... 다시금 부안의 핵폐기장 투쟁의 그 힘이 다시금 되살아나기를.... 삼보일배를 했던 문규현, 수경, 삼도일도를 했던 이휘영 목사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렇게 새만금과 인사를 하고 다시금 채석강으로 갔다. 새만금을 지나니 변산반도의 해안가와 해변이 나왔다. 한적에게 사람들이 별로 없지만 드문드문 방문한 이들이 해변가를 걷고 있는 모습을 지나쳤다.

오후 2시 30분이 되서야 체석강에 도착하였다.
내리고 전체 사진 한장을 찍었다.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또 쳐서 가져온 김밥에 음료수를 먹으면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였다.
채석강에 도착하니 만조라서 채석강을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해변가를 거닐면서 암초가 있는 곳으로 향하며, 사진을 하나둘씩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해변가로 갔다. 날씨도 좋았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 이주노동자들이 기분이 업되었다. 그래서 인지 때이른 해변가에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사진을 찍었다. 조금만 벗어나면 이렇게 여유를 찾을 수 있는데.... 이런 여유를 찾을 시간이 이주노동자 그/녀들에게는 잘 주어지지 않는다.

어제의 하루.... 한국에서 잊지 못할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과 바램을 가져본다. 방글라데시 분은 사장님과 회사 나들이를 했는데 전라남도 순천, 구례, 담양 등을 갔었다고 자랑을 하면서 자주 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시간이 되면 이런 야유회를 자주 갖자고 했다. 이동을 할 수 없는 아픔과 비애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비자가 종료되어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고, 작업장의 끝없는 일거리로 인해 마음편히 쉴 여유.... 그리고 돌아다닐 시간이 없는 이주노동자 그/녀들이 어제 하루 처럼 한국의 들녘... 이주노동자 각 나라보다는 못하지만 여유를 갖고 자유롭게 이동하고 산하를 누렸으면 한다.

바다에서 멋드러지게 찍은 사진들을 감상해 보시기를.....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자리.... 오후 5시가 다 되어서 해변가에서 노닐던 일을 마치고 귀경준비를 하였다.

차안에서 다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술한잔 한 기분에 노래방 기계를 틀고 노래를 부르면서 중고등학생때의 댄스파티가 벌어졌다. 중고등학교때 수학여행을 갈때 버스에서 갖가지 이상한 몸짓을 하면서 추었던 춤들을 연상케 노래를 틀면서 몸을 흔들어 대던 시절을 떠올리게 이주노동자들이 노래에 맞춰서 댄스파티를 자그맣게 벌였다.

술한잔 한 기분에 서로가 몸을 흔들고, 필리핀 이주여성은 프리마돈나처럼 노래를 멋드러지게 팝송을 해대면 일제히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네팔 이주노동자 그/녀들이 화답을 하면서 박수도 치고, 노래에 맞춰 몸도 흔들어 대면서 여행의 아쉬움을 달랬다. 그 차안에서 20년전의 시절을 떠올리며 행복이라는 단어를 끄집어 내보았다.

행복은 작은 것인데.... 행복을 큰 것으로만 착각한 나머지 주위에 온 행복을 미쳐 발견하지 못하는 우리의 우매함을 느끼는 대목이었다. 언젠가 들었던 책 이름 "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 주세요."라는 독일의 창작동화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우리내 행복이라는 것이 소소한 일상의 작은 즐거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년전의 모습... 그리고 지금의 함께하는 이주노동자 그/녀들이 있어 나에게도 행복이 찾아왔나 보다. 그렇게 미소 머금고 힘든 일박의 여행을 마무리 하였다. 아쉽지만 다음 달에도 같이 작은 여행을 떠나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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