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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 서명 멋있습니다. 나도 뜨거운 눈물 흘리고파..

  • 등록일
    2004/09/18 15:09
  • 수정일
    2004/09/18 15:09

주인장 서명이 10월 들어 두번 바뀌었군요. 이 중에 최근 바뀐 서명 "언제쯤 뜨거운 눈물을 흘릴수 있을까" 정말 멋있는 말입니다.

 

살면서 눈물을 안흘려 본 사람은 없지만, 뜨거운 눈물을 흘린 적은 몇 차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눈물이 뜨겁다는 것은 아니죠... 희열의 정점에 다다른 눈물을 흘린 적 과거엔 몇번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눈물 흘린 겨를도 그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계기도 그런 눈물에 기대어 나를 추스릴 수 있는 용기도 그런 눈물을 흘릴 자신도 그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주인장이 표현한 것을 곡해/확장 해석 할 수 있으나 내가 느낀 바 그런 눈물을 비유한다면 딱 5번 그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은 91년 강경대 열사 투쟁시기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앞에서 전경과 대치하면서 보름을 신촌바닥에서 노숙투쟁으로 시위를 하던 시기이고, 두번째는 김귀정열사 투쟁때 백병원에서 였고, 세번째는 처음으로 들어간 신내동 철거투쟁때 철거대책위원회(철대위)가 내분으로 해체될때 였고, 네번째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였고, 다섯번째는 내가 아끼던 후배의 죽음이였습니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번 운다라는 말(태어나서 울고, 부모님이 돌아가실때 운다 정도)에 전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울음 그 자체는 인간만의 전유물도 아니고, 더더욱 남자의 전유물일 수 없기 때문이며, 인식을 갖고 있는 모든 만물이 다 가지고 있는 특성입니다. 전 우리집 소 누렁이가 자식이 팔려갈때 서글피 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울음을 비유해서 표현한다면 닭똥같은 눈물이라 하겠지요. 앞으로 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라는 의문 또한 듭니다.

 

내 삶에서 과연 과거처럼(잘 몰랐지만 열정이라는 미숙함과 무모함이라는 용기가 있었던 시절.... 잘 몰랐기에 이런저런 일도 할 수 있었고, 그러하기에 힘들하고 아파하고 그런 과정속에 미숙함이 조금은 성숙함으로 변하던 시절) 그런 일상적 삶을 지탱할 수 있을지 잘 판단되지 않고, 솔직히 말해 그런 용기가 없기에 자신 또한 없어지더군요.

 

그러나 저에게 이런 계기(과거의 눈물처럼 슬프도록 복바쳐오는 눈물은 흘려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그런 감성까지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용기와 자신감을 전당포에서 찾고 싶은 개인적 바램이겠죠.)가 도래한다면 흐느껴 울고 싶습니다.

 

"엄마가 휴가나온다면"의 싯구절 후미에 쓰인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 바치고 엉엉 울겠다"라는 싯구절 처럼...(정채봉선생님 시가 저의 가슴을 때리더군요.... 애니메이션 오세암 후미에 나온 시가 좋아서 외웠거든요.)

 

아마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수 있을까라는 말은 나와 너 너를 넘은 우리가 세상에 찌들어져 혼탁해져 있는가에 대한 메아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아마도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게 아니라 세상에 찌들어간다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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