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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죽음

  • 등록일
    2004/11/02 09:18
  • 수정일
    2004/11/02 09:18

아름다운 우리말 '아름다운'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아름다운 동행, 아름다운 만남 아시아나, 아름다운 시절, 등등 최근들어 '아름답다'라는 형용사의 지나친 사용이 오히려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그 뜻을 새롭게 되새기는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죽음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지난 토요일(6월 13일) 오후 3호선 독립문역 서대문독립공원에서는 <제10회 민족민주 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열렸습니다. 10년전인 90년 6월 10일 성균관대학교내에서 어렵게 치뤄냈던 첫번째 추모제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만해도 87년 6월 항쟁의 여력이 제법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교문 봉쇄로 일행들과 함께 담을 넘어 참석했었습니다. 추모제의 마지막 행사로 열사들의 영정을 들고 혜화동 성대에서 동대문 한울삶(유가협사무실)까지 행진하려 하자, 경찰은 최루탄을 마구 쏘아대며 행진을 무산시켰습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성대 정문앞 도로에 주저앉아 절규하던 유가협 어머님,아버님의 그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당시 90년 7월호 말지 표지에 한사람이 영정을 부여안고 쓰러진 사진이 실렸고, 올해 6월호 말지에 그 표지인물의 어제와 오늘- 47쪽에 소개가 되었습니다.)

 

그후 해마다 열사.희생자의 숫자는 우리사회의 민주화의 진전과 더불어 오히려 늘어만 갔습니다. 특히 '분신정국'이라 일컬으던 91년 봄엔 강경대의 죽음을 시작으로 김기설,박승희,김귀정등 수많은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졌습니다. 저도 그해엔 참 많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시인 김지하,서강대 박홍총장의 요설과 정원식 국무총리의 밀가루 뒤집어쓰기를 통해 군사정권은 수세국면의 정국을 돌파했었죠. 통계자료를 보니 91년 한해에만 32분이나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의 숨가쁜 근대사는 박정희 정권 19년동안 66분,전두환 정권때 78분,노태우 정권동안 110분,김영삼 정권동안 59분등 모두 318분이 조국의 민주화 제단에 목숨을 바치게 했습니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알만하다'(熟知,可知)에서 유래했다고 했을 때 세상의 진실을 '안' 양심적인 개인이 "자주.민주.통일된 조국에서 인간다운삶을 이루기 위해 지구와도 바꿀 수 없는 하나뿐인 자신의 생명과 바꾼그 분들의 삶과 죽음은 가히 '아름답다'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투쟁의 현장에서 "열사 정신 계승"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어떠한 열사들이 있었고, 어떻게 산화해 가셨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추모제 행사는 차분한 가운데 엄숙하게 치뤄졌습니다. 추모제에서는 안치환씨가 <마른잎 다시 살아나>를 추모가로 불렀고, 청주대 강혜숙교수가 <열사상생해원굿>을 하였습니다. 2부의 추모공연은 희망새,조국과 청춘,천리마등의 신나고,힘찬 노래들로 열광적인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유가족인 유가협 어머님,아버님들은 7개월째 계속하고 있는 <의문사 진상규명>과 <민주열사 명예회복과 보상에 관한 특별법>제정을 외치며 국회앞에서 천막농성중, 옷을 갈아 입고 추모제에 참석하셨습니다. 대부분 죽음을 겪은 지 10여년이 지나서인지 눈물도 마르고 의연한 모습들이었습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저자이자 계간 <당대비평>의 편집인인 조세희선생이 카메라 가방을 둘러 멘 모습이 눈에 뜨이는 등 초청인사외에도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날 모인 사람들이 제눈엔 다들 '젊은 피를 수혈하러 온 사람들'같았습니다. 밧데리가 떨어졌을 때 충전하듯 저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지친 심신을 이끌고 아름다운 죽음을 통해서 다시 힘을 얻기 위해 모여든 불나비 같아 보였습니다.

 

최근 신선생님은 박정희 기념관 건립 추진에 대응한 '민주주의 기념관건립을 위한 모임'의 민주화운동 자료수집 팜플렛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역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생환(生還)하는 것이다. 현재의 실천 속으로 생환된 역사만이 힘이 된다. 암울한 군사독재의 시절을 꿰뚫고 맥맥히 이어온 반독재 민주화투쟁도 생환되지 않으면 역사가 되지 않고 힘이 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은 각계 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 스스로 고난 속으로 뛰어든 거대한 물줄기였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역사이다. 이 거대하고 줄기찬 민주투쟁을 증거하고, 역사로 일으켜 세우고 나아가 오늘의 실천 속에 생환하는 일은 그야말로 역사적 과업이다.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우는' 참된 각성의 시작이다.

 

여러 글에서 자주 하신 말씀이지만, 새롭게 뇌리에 박힙니다. 윗글을 패러디해보면... 음... "열사를 배우기보다 열사에서 배우는 것이 참된 각성의 시작이다."라고. 조국의 산하에 힘차게 뻗어 있는 백두대간처럼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외세와 독재와 자본에 항거하다 장렬히 산하하신 열사들의 역사를 되살리는 것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저에겐 '열사'라는 호칭이 왠지 어색하지만, 그들을 생각할 때면 읊조리게 되는 노래가 두 곡 있답니다. <눈감으면>과 <동지를 위하여>라는 노래입니다. 앞의 노래는 전두화정권 당시 85년 9월 숨막히는 군사독재에 항거하여 "학원 안정법 철회와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한 경원대 법학과 2학년생인 송광영(당시 28세)동지의 어머님 이오순 여사가 쓴 글을 작곡가 김제섭님이 읽고 88년에 만든 곡이랍니다.

 

이오순어머님의 글은 "한없이 보고 싶은 광영아! 내가 어떻게 하면 너를 잊을는지- 눈만 감아도 너의 모습이 나를 찾아 오는구나.
.................

                     너의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어미는.......

 

                       

배운 것 없는 이 어미는 네가 죽었을 당시는 많은 고생으로 너를 키운 어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어미를 두고 간 네가 밉기만 하였지만 너의 장례식 때 경찰들과 싸우면서 네가 왜 죽어야 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구나. 과연 어떤 사람이 민족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
.................

사랑하는 자식의 아름다운 죽음으로 새롭게 우리시대의 어머니로 눈뜨게 되는 유가협 어머님,아버님의 변신과정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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