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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 신촌 세브란스 길을 홀로 걸어보며....

  • 등록일
    2004/11/02 19:48
  • 수정일
    2004/11/02 19:48

* 이 글은 간장 오타맨...님의 [아름다운 죽음]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한달간 노숙생활을 한 신촌 세브란스 병원길을 거닐었습니다.

오늘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이유 아마도 그 당시 열사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흘린 눈물이 아닐까 상상해 보았답니다.(비오는 날 일어 없어 집에 들렸다 문득 아침에 이 글을 펌하면서 꼭 연세대 세브란스 길을 걸어야 겠다는 다집으로 연세대 세브란스 흉물처럼 크게 짖고 있는 병원 건물을 보면서 그 도로변을 그냥 거닐었습니다.)

 

그 당시 참 많은 이들이 눈물을 머금고 살아갔습니다.

매일 서울 거리는 체루탄으로 자욱한 연기가 안개를 이루었고, 우리는 불을 내뿜는 화염병을 던지거나 쇠파이프 도로 벽돌을 던지며 투쟁을 전개하였죠.



 

신문지를 덥고 잠을 청하고 일어나면 길 건너편 있던 전경들과 매일 대치하며 투쟁을 하던 그 당시.... 연세대 오기전 차창밖 명지대 담벼락에 아름다운 청년 강경대라는 동판을 늘 접할 수 있었는데 오산에 내려와서는 그 광경도 이제 쉽게 볼 수 없습니다.

 

명지대에 모인 많은 학우들을 눈물로 지세우게 하였던 그 당시는 나만의 과거가 아닌 우리모두의 과거이고, 참 가슴아픈 기억입니다. 이후로도 많은 열사들이 나왔지만 그 당시 열사정국은 우리에겐 너무 힘겹고 슬픈 현실이었습니다.

 

도저히 학교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없는 부끄러운 내 자신이 무언가 해야되겠다는 그 당시 심정은 같은 동시대를 살았던 이라면 공감할 것입니다. 무언가를 부여잡아야 헀고 주체할 수 없는 적개심과 슬픔은 우리에게 투쟁이라는 당위성을 심어주었습니다. 부끄럽게 하루하루를 살았던 그 당시.... 집회는 우리들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열사를 떠내보내지 않으려는 우리들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우린 순응하듯 그 기억은 이제 다큐소재 또는 과거 회상하거나 술안주 무용담으로 변해 있음을 목도할때면 스스로 놀라곤 합니다. 망각의 동물임을 자각하면 말입니다.

 

치열했다지만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잊지 않겠다고 다짐도 해보았지만 그 다짐은 다짐일 뿐 결코 어떠한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시대가 발전했고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말합니다. 민주화기념사업회가 출범하여 민주화 보상법에 따라 민주화 운동을 하였던 사람들중에 보상을 받은 이들도 있지만 민주화는 현재진행형이지 과거진행형이 아닙니다. 지금도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민주화는 귀착이 아닌 끊임없는 여정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살이가 조금 나아진 것 가지고 너무 호들갑 떠는 우리내 부산한 삶을 반성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도하였습니다. 아 참으로 서글프지 그지 없었습니다.

이 서글픔의 기억엔 남녀가 체루탄 연기가 자욱한 복판에서 깃발을 동시에 들고 흐느끼는 걸게 그림이 떠오릅니다. 그 걸게그림을 보면서 아 참으로 찡하니 마음에 서글픈 파도가 엄습해 와 주루룩 눈물을 흘린 기억도 생생합니다.

후배녀석은 체루탄 연기때문인지 아니면 서글픔에 복받쳐서 인지 모르겠지만 눈물과 콧물을 흘려가며 울음을 주쳅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참 열정이 가득했고 순수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섰지만 그래도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자명하였던 시절입니다. 앞뒤 제지 않고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갔던 그 당시.... 참 무모했지만 용기가 넘쳐흘렸습니다. 지금 하라면 결코 할 수 없는 그 당시.... 내 마음의 서글픔의 파도와 부채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열사력을 보면서 아 참 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씩 합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데 말입니다.

 

아 남녀가 서글피 체루탄 날리는 깃발을 들고 있는 나부끼는 깃발이 오늘따라 그립습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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