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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8/02
    간장 오타맨이 살아가는 공간(5)
    간장 오타맨...

인천에서의 가장 기뻣던 추억....

  • 등록일
    2004/08/07 16:15
  • 수정일
    2004/08/07 16:15
인천을 떠나온지도 언 1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아직도 내가 왜 인천에서 서울로 황급히 떠나왔을까라는 생각만 하면 가슴한 구석에 웬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 옵니다. 나는 과연 운동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지도 요즘 헤깔리고 있는 지금 제가 인천에서 제일 행복했던 일들을 써 놓았던 글을 올려 봅니다.
 
그리고 제가 인천에 있을때 제일 도움을 많이 받았던 형의 편지또한 올려봅니다.
떠난다는 생각이외에는 하지 못했는데.... 정말 이 죄스러움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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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와서야 승만씨가 인천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배노릇을 못했다는 미안함이 앞섭니다. 그래도 형이라고 찾아주고 했던 사람인데..
가슴이 조금은 아프기도 합니다.
무엇이 이렇게 사람을 떠나게 하는지... 그리고 승만씨는 왜 그렇게 연락도  없이 떠나야 했는지 궁금 하기도 합니다.
 
경험이 일천한 저로서는 한가지만 하기도 벅찹니다.
어떨때는 멀리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면서도 그것이 잘 안됩니다.
조만간에 또 만남이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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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뻣던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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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정보화사업단 인천지부 여름 수련회 추억을 떠올리며
 
지난 7월 31- 8월 2일까지 강화도 석모도에서 2박 3일이라는 기간동안  진행하였습니다.
 
전체 참석인원은 총 7인정도 참석하여 이런저런 이야기와 술자리를 가지며  휴가를 겸비한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좀 아쉬운것은 원래 계획를 수정하여 진행하였다는 것인데 수정을 불가피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자연적 요소가 많아 아쉬움을 남기면서 돌아왔습니다.
 
 1. 석모도 도착 하루
그날따라 그동안 내리지 않았던 비가 내리면서 출발부터 수련회가 잘 진행되어질 까라는 의구심을 가지면서 출발을 감행하였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더니 갑자기 강화터미널에 도착하면서 부터 비는 장대비로 바뀌어 수련회가는 우리들을 불안케 하였다.. 그러나 강화도와 석모도간의  배편은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우리가 표를 끊고 석모도에 들어오자 마자 비는 비가 아니었다. 하늘에서 소방 호수로 물을 뿜어내듯이 비는 그칠줄 모르게 좔좔하늘에서 내리는게 아닌가.

그리고 우리가 배로 도착한후 강화도와 석모도간의 배편이 운행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정말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좀 늦게 도착하였다면 우린 아마도 석모도에 들어오지 못하고 그냥 강화도 이름모를 어느곳에서 수련회를 보냈을 것이다.
 
비가 좀처럼 그치질 않았다. 비가 계속해서 내려 우리 일행들이 비로 인해 온 몸이 젖어 버릴 지경이 었다. 그러나 어느 자상한 석모도 유원지 식당겸 횟집을 하시는 아주머니 한분이 비를 피해 들어오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일행은 잠시 머뭇거리고 있다가 비를 피해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그집에 들어가서 비를 잠시 피하기로 하였다.
 
시장기가 감돌고 있던 일행들은 김밥을 안주삼아 소주를 먹기로 하였다. 비도 좔좔 하늘에서 내리고 시장기는 감돌고 요기차 몇잔의 소주를 먹기로 하였다.


그러나 소주와 김밥만 먹기에는 너무나 미안하였다. 그래서 일행중 비상금을  가지고 있었던 여러명의 사람들이 새우와 쑥 튀김과 인삼대추막걸리를 시켰다.  소주는 우리가 가져온 米ZOZU(경월에서 나온 미색소주.   월-마트에 있던 상점원의 꼬임에 빠져 술보다는 경품을 많이 준다기에 米ZOZU를 구입하였다.  경품은 무려 소주값과 같았다. 한박스를 구입했는데 구입한 가격과 경품가격이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미색소주 20병 한box 1만5백원. 경품 1만원 상당 히히^^)를 먹기 시작하였다. 우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비를 피해 있기로 하였으나  일정은 여기서 부터 수정되어지기 시작하였다.
 
아주머니의 자상함과 하늘에서 내린 소방 호수 같은 장대 비에 의해 우린  계획을 수정하였다. 도저히 2박 3일간 이 폭우속에서 텐트를 치고 수련회를 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의해....


원래 계획은 석모도 민머루해수욕장에 들어가 텐트를 치고 2박3일 음주가무를 감행하려 하였으나 비의 상태와 아주머니의 자상함에 우린 계획을 수정하고 민박집을 잡고 석모도를 차근차근 둘러보기로 계획을 수정하였다.


그리고 지부장님의 민박집 가격흥정.... 유원지의 상인들은 고단수라는 것을  새삼 석모도에서 느낄수 있었다. 비도오고 민박집 구하기도 힘들다는 핑계호  우리 일행들에게 더이상 가격을 내려 받을 수 없다는 민박집 주인의 단호한 태도에 우리 일행들은 그냥 2박 3일 6만원에 흥정을 마치고 민박집을 구했다.


그리고 민박집으로의 출발.....

내평생 이런 집에서 민박하기는 처음이다.(너무 환상적인 집이다. 전통가옥을 개조해 겉과 속이 전혀 딴판의 집이었다.) 6만원에 별장을 빌려 쓰는 기분이  들었다. 방 두개와 거실 그리고 주방이 딸린 집이었다.  독채를 우리가 6만원에 빌렸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너무나 좋은 집에었다. 그리고 모든 주방기기가 갖추어져 있는 집이었다. 먹을 것만가져가면 모든것이 해결될수 있다.   우린 인천에서 강화도 석모도 까지 무거운 주방기기와 그리고 잠동사니를  가져왔는데 하나로 이집에서는 필요치 않았다. 오로지 먹을 것과 음주가무를 할 수 있는  술만 있으면 된다. 전기밥통, 가스레인지, 그릇, 퐁퐁 등 다 가추고 있었다.  한 가지 없는 것은 수저와 젖가락이었다.
 
민박집에서 석모도에 새로난 농수로로 출발....

주인집 아저씨는 물고기를 잡기위해 그물을 치러 간다고 하였다. 우린  아저씨와 함께 그물을 쳐주는 대신 물고기 몇마리를 매운탕 끌여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무조건 아저씨를 따라가서 그물 치는 것을 도와주었다.
 
바다의 짠기운이 감도는 바람을 가르면 우린 검은 하늘에도 굴하지 않고  그물을 쳤다. 서해 바다이지만 정말로 바람의 시원함은 지금도 잊기 못하게 느껴지고 있다. 더위를 날려 버릴 바다의 거센바람들 정말로 생각만해도 시원하다...

그물을 다치고 다시 민박집으로 들어와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나서 우린  본격적으로 술먹기에 들어갔다. 술을 먹고 있는 도중 민박 주인집 할머니가 찾아와  직접 수확한 토마토를 우리에게 건내면서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우린 직접  수확한 토마토와 숫불에 익혀지는 삽겹살에 술을 물먹듯 위장으로 집어 넣었다.  공기의 상쾌함과 술의 알딸딸함에 취해 우린 석모도 하루를 술과 함께 보냈다....
 
담배가 없어 진석이와 난(간장 오타맨) 폭우를 속에 석모도 시내를 비를 쫄딱 맞아가며 담배를 사러갔다. 정말 비가 많이 내려 앞이 보이질 않을 정도의  폭우였다. 그러나 진석이와 나는 담배를 피워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푹우를 해치면서 담배를 사왔다. 그러나 담배를 사오라는 사람들은 다 잠을 자고 우린 비에 젖은 옷을 벗고 샤워실에서 샤워를 한후 옷을 갈아입고 담배를 피려는 순간 오면서 뜯어 놓은 담배가 비에 젖어 거의 회생불능 상태가 되어있었다.   어찌 구한 담배인데 식당에 한개 남아 있다는 담배를 애걸복걸하면서 사온 담배인데 제대로 필수  있는 담배가 없다니... 오호통제라.........
 
이에 우 린 이와중에도 담배를 피워야 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중 양호한 담배들을 골라 가스랜지에 구워 놓고 담배를 피웠다....  담배 피는 사람의 고충이 이리도 서러울 줄이야...... 흐흐 T.T

 
석모도 이틀째.....
비가 많이 내렸는지 텔레비젼에서는 수재상황이 특보와 속보로 나오고 있었다. 석모도를 둘러봐도 비 피해상황은 확인할 길이 없었는데, 경기도 북부의 비 피해가 아주 심각함을 느낄수 있었다. 우린 이런 와중 한 누군가가 우린 수련회(야유회)온게 아니라 피난 왔다라는 말을 하면서 비피해 상황을 예의 주시하였다.


그리고 아침식사 겸 점심 식사........ 곰돌이는 전문 요리사였다. 정말로  요리 솜씨가 가공할 정도로 굉장하였다. 장인의 정신을 엿보이듯 도마에 야채를  넣고 정성스럽게 썰고 있는 모습이 정말로 일류 요리가 저리가라 였다.  우린  맛있게 진석이가 요리한 카레와 여러가지 반찬을 가지고 아침겸 점심식사를 마쳤다.  정말로 맛있는 카레였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진석(곰돌이)  요리강연회를 열어야 겠다. 히히^^
 
비피해가 좀 몸으로 느껴 지기 시작하였다. 할머니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지이시면서 밤새 비로인해 떨어진 고추들을 손질하고 쓰러진 고추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으셨다. 지부장님 친구이신 박동호형이 할머니를 도와 우리가 쉬고 있는  동안 고추밭 일을 도와주고 오셨다. 그리고 양손에 탐스러운 만큼 먹음직스러운  수박 2개를 앉고 오시면서 할머니를 도와주었더니  수박을 주셨다고 하시면서  수박을 먹자고 하였다. 우린 해장술을 겸해 수박에 소주한잔을 곁들어 먹었다.
 
그리고 민박집 주인아저씨는 어제 쳐놓은 그물 하나를 걷어오셨다.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정말로 고기들이 많았다... 메기, 잉어, 붕어, 강 준치 등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그물에 엉켜 있었다. 우린 아저씨와 함께 그물에 걸려있는  고기들을 하나하나 끌어내서 고르고 있었다. 반은 죽었고 반은 살아서 꿈뻑꿈뻑 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물을 다 겉어내고 난후 아저씨가 가져간 물고기를   골라서  우린 죽어있는 강 준치를 4마리 정도를 골라 매운탕을 끌여 먹었다. 난 알레르기가 있어 매운탕을 못먹어 맛있다는 강 준치 매운탕을 먹지 못하였다. 그러나 먹은  사람들의 이구동성은 정말로 맛있다는 찬사를 어끼지 않았다. 흐흐 난  민물고기를 못먹는게 한탄스럽기 까지 했다.(민박주인집 아저씨는 정말로 야속하게도 메기 한 마리도 우리에게 남겨주지 않았다. 민물고기를 잘 먹는다는 사람들이 대부분  메기매운탕이 맛있다고 하는데 우린 메기매운탕 대신 붕어와 준치매운탕으로  물고기 맛을 달래야 했다....
 
 그리고 휴식과 비피해상황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휴식을 하였다.
 휴식을 마치고 난 후 우린 석모도 시내로 다시 나가기로 하였다.  석모도에 들어와서 어찌 조개구이를 먹지 않고 그냥 갈 수 있으랴... 우린 조개를 사러 석모도 시내로 나가보았지만 석모도 시내에서는 오로지 새우젓과 여러종의 젓갈만을  팔고 있을뿐, 조개는 구경할 수 없었다. 이런 와중 사람들은 조개를 갯벌에서 케자고 하였으나 지역주민들이 지형을 모르면서  조개를 케는 것은 의험하다고  말해 우린 배타고 나가기로 하였다. 강화도 선착장에 가면 조개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을 가지고 강화도로 나가보았지만 정말로 조개를 찾기가 영 힘들었다.  여러번 주변을 돌와보았지만 강화도 외포리에는 조개가 없었다. 그런데 배를  타고 다시 석모도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선착장에서 작게 식당을 하시는 아주머니가 주변을 잘 둘러보면 있을것이라고 말을 하였다. 그래서 다시금 우린 조개 찾기에  나섰다.. 그런데 정말로 조개가 있었다... 여러 종의 조개는 아니었지만 두 종류의 조개가 있었다. 요즘 병균이 심해 조개를 잘 팔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조개를 왜 먹냐고 하기에 우린 조개 구워 먹을 려고 한다고 말을 하면서  조개구이를 할 조개를 2kg, 만원 어치를 사서 들어왔다....
 
그리고 저녁식사후 최후의 만찬....
번개탄에 조개를 지글지글 구우면서 우린 조개구이의 맛에 다시금 감탄사를 연발 하면서 술을 먹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조개구이를 먹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하였다.. 가져온 소주 20병이 금새 바닥이 나서 우린 다시금  술찾기에 나섰다. 술을 사러갈 사람들을 정해 술을 사러 시내로 나가려고 하는데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차를 몰고 오셨다.(술이 만취한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고 나타 나시더니 술이 있다면서 얼마나 필요하냐고 우리에게 물으셨다. 그래 우린 한 4병 정도의 술이 필요하다고 말한 후 술을 받아왔다. 그리고 4병의 술과 함께  우리의 기억은 가물가물 사라지기 시작하면 석모도의 이틀을 보냈다.
 
석모도의 마지막 날.....
정말로 비피해가 장난아니었다. 상당히 심각한 모양이다 사상자도 많이 났고  재산 피해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하였다. 강화도 석모도에는 비만 많이 왔다.  그리고 그렇게 비 피해가 심하다는 생각을 못하였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난후 우린 낮잠과 휴식을 취한 후 오후 2시경에 짐을 다챙기고 석모도 시내로 나왔다.(민박집 주인 아저씨의 자가용을 타왔다.) 배를타고 나와 외포리에서 강화도 터미널에 나와 인천 송림동에 가는 직행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오는데 김포 일대의 논과 밭들이 비에 잠겨 있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우린 이제서야 비가 장난아니게 많이 내렸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무실에 도착 간단히 식사를 하고 난후 노정단 인천지부 야유회는  막을 내렸다....
 
작년 여름의 석모도 햇볕은 쨍쨍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멋있는 섬 풍경과   좋은 술과 많은 이야기들속에서 여름의 추억들을 만들어 내지 않았나 생각이 되어  이글을 뛰어 본다.. 정말 멋있는 한여름을 보냈다... 이 겨울 정말 외롭고  쓸쓸한 지금 여름날이 었다... 여름날의 더움을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며 이 글을 다시금 편집하여 올려 보았음....
 
내년도 여름엔 멋있는 여행그리고 수련회를 기획하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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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고우를 만나다.

  • 등록일
    2004/08/04 10:05
  • 수정일
    2004/08/04 10:05

어제 어릴적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만났다.

내 친구와 이전엔 자주 만났는데, 대학이후 나의 무관심으로 만나지 못하였다.

내 친구는 전교조 1세대(고등학생운동 1세대를 통침함.)이다. 고등학교때부터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틈만나면 나에게 이 사회의 모순 그리고 전교조 선생님들의 노조결성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해왔다. 

 



대학에 들어간후 난 일명 좌파 동아리(전국민주주의학생연맹, 약칭 민학련 또는 DSL)와 과가 좌파적 성향을 갖고 있는 선배들이 포진해 있어 난 과와 동아리의 기류에 편승해 좌파(NDR론을 주장하는 조직임. 일명 ND)라는 성향을 갖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내 친구는 NLPDR(민족해방운동론)을 갖고 고등학생운동을 하였기에 종종 술자리에서 말싸움을 자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만남 또한 소원해지기 시작하더니 언젠가 부터는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이런 시간이 정처없이 흘러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7년만의 만남.... 어색했지만 그래도 친구는 친구인가 보다 어색함은 술잔의 횟수가 반복될 수록 사그라들고 서서히 어린시절 그 친구와 보냈던 추억들을 하나둘씩 늘어놓았다.

 

술이 얼큰히 취한 친구와 나는 내 집에 와서 그동안 이야기하지 못한 회포를 풀어놓았다.

 

친구는 간만에 민중가요를 듣고 싶다고 나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곡 내일이 오면(꽃다지 1집)을 틀어달라고 해서 난 내가 자주가는 음악사이트( 렛츠뮤직)에서 그 노래를 틀어놓았다. 친구는 그 노래가 흘러나오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치열하게 운동을 하고자 하였지만 돈과 집안문제로 그 친구는 대학을 포기하고, 사회에 진출하였다. 공부에 대한 열망과 운동에 대한 열정을 집문제로 포기한 그 친구는 늘 운동의 주변에 맴돌았다고 말하면서, 자꾸 사회와 타협하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했다.

 

난 할말이 없었다. 그저 내 친구의 이야기만 들어줄뿐.....

나는 머리 속으로 생각하였다. 운동이라는 것을 지향하고 있지만, 난 과연 지향하고 있을까? 향유하고 있지는 않은지.... 행복한 고민이다. 내가 지금 이 위치에 있다는데 만족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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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오면

 

되돌아본 지난 날 항상 기쁜 만은 아니지만
후회없이 살아온 날 자랑스런 기억들
내일이 오면 우리 웃으며 돌아보겠지
그때까지 놓지 말자 우리 굳게 잡은 손

*결코 쉽지는 않겠지
때론 외로움에 때론 슬픔에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시련 속에서 확인되는 것
이 어둠이 걷히고 내일이 오면
햇살처럼 큰 웃음으로 다시 만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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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반대! 전쟁반대!] 붉은돼지가 그립습니다.

  • 등록일
    2004/08/03 10:48
  • 수정일
    2004/08/03 10:48

파시스트가 되느니 차라리 돼지가 되겠다던 붉은돼지의 포르코가 자이툰 부대의 파병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하고 난후 생각이 나더군요.

전쟁은 전쟁을 부를뿐 어떤 것도 없습니다.

제국주의자와 파시스트들 그리고 이 세기가 오기까지 무수한 전쟁은 권력을 가진자의 욕망에 위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전장에서 무수한 생명들이 죽어갔습니다.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진 역사에선 전쟁에서 이긴쪽이 승자라고 말하며 역사적를 빗대어 전쟁을 미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자라는 것이 있을까요....

땅과 재물은 많이 얻을 수 있으나 전쟁에 참전하여 죽어간 이들은 어찌하란 말입니까? 그들앞에 훈장이 하나 달린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겠습니까? 이렇듯 현대까지 이어져 오는 전쟁은 참 치욕과 많은 이들의 죽음으로 이끌어왔습니다.

이러한 전쟁에 참전을 결정한 한국정부의 굴욕적 친미주의를 보면서 치가 떨립니다.

이라크 재건이라는 명분과 국익이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합니까? 사람의 목숨으로 한국정부가 부를 창출한다고 한들 이 부는 누구에게 돌아가겠습니까? 고스란히 자본가와 정권의 호주머니속으로 돈은 들어가고 노동자 민중들은 죽은이들의 부여않고 한 없는 눈물만 흘리겠죠.

이 전쟁에 왜 참전합니까? 전지구인들이 그토록 반대하는 전쟁.... 그리고 철군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마당에 참전이 웬소리입니까????????????????????????

이라크 전쟁은 전지구인에 대한 학살입니다.

파병반대 전쟁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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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오타맨이 살아가는 공간

  • 등록일
    2004/08/02 20:00
  • 수정일
    2004/08/02 20:00

이 공간은 간장 오타맨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삶으로서 채화시키기 위한 공간으로 마련하였습니다.

남들이 뭐라해도 우직하게 다른이들의 공간에서 기생하면서 생명력을 유지하였는데.... 여의치 않더군요. 그리고 진보넷에서 블로그 개통하여 본격적 블로그 시대가 도래하여 쌍방향 소통수단이 가능성을 가늠해볼까?(과연 가늠할 수 있을까... 그래도 내 집이니까 더 열심히 뻘소리는 해대겠지...)라는 기류에 편승하여 간장 오타맨 또한 덩달아 이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살면서 느끼고 생각나는 것들을 이 공간에서 써내려가 보고자 합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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