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간장의 삶

25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8/17
    추억도 잃어버렸다.
    간장 오타맨...
  2. 2004/08/16
    다이어리를 잃어버렸다.(3)
    간장 오타맨...
  3. 2004/08/16
    타자에 대해서....
    간장 오타맨...
  4. 2004/08/15
    부안에 다녀와서 드는 잡념
    간장 오타맨...
  5. 2004/08/11
    밤의 독백
    간장 오타맨...

집이 주는 즐거움

  • 등록일
    2004/08/20 01:47
  • 수정일
    2004/08/20 01:47

집이 주는 즐거움은 휴식과 재충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일은 하지 않지만, 사무실 공간과 집이 갖는 차별성은 분명이 있습니다.

집은 나만의 공간이며,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모든일을 관장할 수 있는 공간(가사노동이 주는 버거움과 먹거리를 직접 만들어야 하는 괴로움은 있지만, 요즘 달걀 간장조림을 해놔서 매일 달걀을 3에 밥 먹는 즐거움도 꽤 좋구요)이며, 하루의 1/4를 차지하는 하루일과를 구분하는 잠을 청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다른분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집에 들어오면 나른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나른하고 포근한 기분이 드는 나만의 공간인 나의 집이 좋답니다. 창밖으로 불어오는 산바람이 온몸을 때리며 시원하게 내몸을 감싸는 기분도 좋답니다.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내집을 난 무지무지 좋아한답니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요. 그래서 집이 주는 즐거움에 전 늘 밤의 유희를 즐긴답니다. 돈이 약간은 들어가지만.... 다음달 걱정이다. 상근비 받으면 이번달 쓴 카드값 메꾸기 버겁겠구나.... 그래보았자 한달에 술값 10만원 안팍이니까.... 마트에서 술을 사다놓으니 술집 갈 필요도 없어 좋습니다. 다른 구멍가게 보다 싸니까. 돈만 있다면 구멍가게에 가서 술과 반찬거리를 사고 싶지만 한달간 살다보면 마트보다 구멍가게 이용하였을 경우 대략 같은 품목을 산다면 4-5만원 차이가 납니다. 재래시장은 인간냄새가 그리워 좋종 가지만 그것도 마트보다 물가가 비싸서 그냥 돌아서곤 합니다. 자본의 독점적 종속화에 저도 길들여져 가나 봅니다.



비오는 날 음악을 크게 켜놓고 흘러나오는 노래소리와 비 소리를 섞어들면서 술(술을 많이 퍼마셔보았지만 술맛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다만 독한것은 향이 좋고, 소주는 알코올의 부드러움 정도 빼놓고는 술맛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난 철저히 안주발때문에 술을 즐겨먹습니다. 안주가 부실하면 술 맛이 나지 않음.)한잔을 하고 얼큰히 취하여 기분을 내는가 하면, 그냥 날씨 좋은 날은 불광천 산책로를 자전거로 달려 한강변에 가거나 걸어서 월드컵경기장에 찾아가 사람 구경을 합니다. 가족단위로 나오는 이.... 연인들.... 그리고 불량스러운 녀석들.... 그런데 예전엔 불량스러운 녀석들이 멋있었는데.... 요즘들어 불량스러운 아이들이 너무 어려보이더군요. 멋있어 보이기 보다는 요즘은 안스러워 죽겠습니다. 찾아가서 말이나 해줄까 해보지만 말 잘못했다 맞을까봐 근처에 가는 것 조차 두렵더군요... 무시무시해서 말도 못붙인 답니다. 나도 나이가 먹어가는 증거인가요....

이렇듯 집이 주는 즐거움은 내 공간을 벗어나 집 반경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퇴근하는... 정말 간만이다, 비가 몰아쳐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요새 하지 못하였는데.... . 날씨가 바람가 시원하고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한강변에 웬 연인들이 그렇게 많더군요.... 아우~~~~ 이럴땐 정말 결혼하고 싶다는 충동이 듭니다. 그러나 어쩌랴 결혼은 미친 짖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는 내가 곤조 하나와 독수공방이 주는 경제적 도음 그리고 결혼이라는 족쇄가 주는 부담감때문에 여기까지 버터왔는데... 그 부러움으로 나의 신조와 신념이 무너져서야.... 그런데 늑대의 본성은 속이지 못하나 봅니다. 이글거리는 피의 뜨거움.... 마냥 그 남자녀석이 부럽다. 여자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알퐁스 도테의 별에서 목동이 스테파네트를 보고 한말처럼,,,, 일반적인 남성(정확히 말해서 이성애자) 느끼는 감정은 어쩔 수 없더라구요.... 안 느껴지면 이상하겠죠...@.@

 

이렇듯이 내가 이동하는 경로는 집이라는 곳이 규정해 주기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좋아합니다. 비록 허름하고 낡은 집이지만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왕궁입니다, 세상 그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궁전에서 전 오늘도 불로그 질도 하고 담배도 꼬나물고 술한잔 옆에 놓고 음악들어가면서 하나도 영양가 없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이놈의 술잔만 들으면 왜 블로그에 들어와서 글을 쓰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 

 

오타를 방지하기 위해서 술 먹고 글을 쓰지 않겠노라 다짐해 보았지만, 안되는군요. 충동에 대한 절제가 필요한데 잘 안됩니다. 뭐 맨정신으로 글을 써도 오타가 나와 글을 읽다가 내가 당황스러울때가 많은데,,,,,, 그까짖 술먹고 쓴다고 대수겠습니까.... 가뜩이나 손가락이 두꺼운데 노트북 키보드로 이글을 쓸라니 허걱입니다.... 나의 오타의 끝은 어디일까,... 나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오타가 많은 세상에 살고싶습니다. 법을 하나 만들까요 모든 글에 오타가 있도록요... 그건 나만의 상상이겠지만요....

 

집은 나에게 안식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모든 일을 나혼자 할 수 있고, 간섭과 중압감이 없는곳 그곳이 나만의 공간입니다. 간혹 반찬거리 만들고, 집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이 있어서 그렇지만 혼자 지낸말 하답니다. 혼자 사는데 따르는 가사노동은 집이 주는 즐거움에 비해 그리 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청소하는 것도 좋아하고, 음식하는 것도 좋아하고, 빨래하는 것도 좋아한답니다. 단 나를 위한 일을 하였을 경우에만.... 말입니다.

 

오늘도 술한잔에 힘을 빌어서 또 하나도 영양가 없는 잡소리를 지껄여 보았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집이 나만의 공간이 듯이 이 블로그도 사이버상의 나만의 공간이니까요...집에 있을땐 누군가에게 들킬 일이 없지만 여기는 좀 들키지만 뭐 어떻습니까... 내가 사는 이야기 틀킬라고 이공간 만들었는데.... 하나도 사람이 않찮으면 뭐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공간으로도 전 좋구요.... 나를 돌아보는 공간으로 이 공간 만들어 볼려구요....왜냐구요 예전 통신공간에 올렸던 글을 지금 읽으면 그때 그랬구나 하는 나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에 이 짖거리 본격적으로 할려구 그럽니다. 이전에는 남의 공간에 기생하였지만, 이제 내집이 만들어졌으니까..... 집으로 따지면 집 임대했으니까 잘 살아볼렵니다.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간장 오타맨도 잘살아 보세.....

 

간장 오타맨이....

 

술이 받는 군요.... 술이나 본격적으로 먹어 볼랍니다. 그리고 요즘 코어스 노래를 듣는데 참 좋더군요.... 특히 Summur Sunshine 함 들어보셔요.... 전 술이나 먹고 잠 청할랍니다.

안녕 내 블로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교도소의 추억...

  • 등록일
    2004/08/19 02:20
  • 수정일
    2004/08/19 02:20

교도소를 들어가본 사람이라면 그곳이 갖고 있는 폐쇄성과 그 곳이 갖고 있는 고립에 대한 경험을 하였을 것입니다.

 

잡범이 아니라 정치사범으로 들어간 이들에겐 그나마 그 공간이 자신을 가꾸거나 신심을 쌓은 공간이 었을 것입니다.

 

교도소도 군대와 마찬가지로 매우 춥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선 사람내음이 간절합니다. 매주 누군가의 면회를 기다리며 하루하루의 삶을 지탱하는 것 또한 도통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누군가 왔다면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고, 세상사를 알수 있어 짧은 만남이지만 매우 유의미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교도소에 수복을 입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말이 갖는 의미는 다른 사람이 갖는 의미와 사뭇 다릅니다. 늘 기대되는 날입니다.



 

후배들이 면회를 오면 학교소식을 접할 수 있고, 가족들이 오면 그동안 가족들에게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해 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것이지만 교도소에서 수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그 자연스러운 것이 그리움으로 점철 될 때가 많습니다. 그리움에 목마르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어 미치도록 사뭇칩니다.

 

문자를 잊지 않기 위해서 책을 보는 것인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책을 보는 것인지 그 의미는 서로 다르지만 그곳의 시간은 군대에서 말하는 시계가 꺼꾸로 돌아간다는 것 처럼 하루하루 시간이 쏜쌀같이 흐르지 않습니다.

 

저마다 죄목은 다르지만 서로 아픔을 가지고 이곳에 온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곳도 자본주의에 맞닿아 있는 곳이라 돈이 있는 놈들은 호의호식하고 돈 없는 사람들은 궁핍하게 연연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유가 박탕당할 것도 억울한데...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천대받는 것은 사회나 교도소나 다름 없습니다.

 

면회를 자주오는 이들은 당연히 영치금이 많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한가닥 한이들... 조폭이나 정치관료들은 교도소장이 특별대우를 해줍니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가 그대로 들어나는 곳 그곳이 교도소입니다.

 

법앞에 만인은 평등하다지만 정녕 돈없고 뺵없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는 통용되는 단어가 아니며, 통용되는 사회도 아닙니다. 돈이 없다는 것으로 멸시받아 분을 삭이지 못해 범죄를 저지른 이가 부지기 수 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을 이 곳에서 절실히 느낍니다. 그러나 이곳 수의를 입고 함께 생활하는 이들은 사회가 규정한 범죄라는 행위로 인해 법 집행을 통해 형집행을 받고 있으나 형 집행은 돈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갈라놓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도 돈 있는 사람들에게 빌어붙는 간신배와 같은 존재들이 부지기 수입니다.

 

저는 교도소에서 청소반장,,,, 요직입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소장의 특별배려로 맡아서 진행하였습니다. 청소반장은 다른 사람들보다 교도소내 이동이 조금은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운동할 시간도 다른사람들보다 조금 많고, 종종 교도관이 버린 담배 꽁초를 가지고 피워가면서 담배가 주는 희노애락에 농락당하기도 하지만... 자유에 갈망은 끝이질 않더군요.

 

저는 1년하고 조금 넘는 기간을 교도소에서 생활을 하였는데... 이곳에서 몇년 아니 반평생을 지닌 사람들을 보면 참 가슴이 뭉클합니다.

 

저는 진주교도소와 대전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였기에 많은 분들은 아니지만 그곳에 계신 장기수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청소반장의 위력이 여기서 나타나죠..... 히히^^

 

저는 무례하기 짝이 없게도 그분들에게 왜 이곳에 남아있냐고 싸가지 없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분들은 말이 없다 한참 고민하면서 말한마디를 저에게 던지더군요, 자네.... 옆에서 죽어간 동지를 본적 있는가... 그 것도 총탄이 빗발치고 포탄이 날아오는 곳에서.... 수십번의 전쟁에서 함께 동고동락하고 서로에 대한 모를게 없는 그런 친구가 죽어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 보았는가? 그말은 저의 머리를 망치로 때린 것과 같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저는 물론 어르신이 말한 것은 볼 수 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어르신은 그런 다음 말을 이어가더군요.

 

난 사상을 갖고는 여기까지 지키지 못하였을 것이야.... 그러나 수많은 전쟁에서 함께 죽음을 이겨낸 동지들과 우정을 쌓았고, 그 우정은 혁명이라는 이념으로 이어졌고, 무수한 전쟁에서 우린 인민해방전선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는 전사로 거듭났던 거야.... 사람이 태어날 때 부터 자신이 무엇을 선택할지 이야기 하지 못하듯 우린 전쟁과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겠다는 신념에서 이론을 습득한 거야... 이론은 버릴수도 있었어.... 그러나 죽어간 동지의 모습 그리고 그와의 약속은 참아 버리지 못하겠더군... 고문 그까짓 거야 순간에 참으면 되지 힘에 부치면 죽음으로 불사하고.... 그러나 살아남았다는게 죄스럽다는 것 느껴봤어... 살아남은 자체가 죄인으로 취급되는게 우리야.... 그리고 동지와의 약속.... 몇번을 고문으로 힘들어 전향서 쓸라그랬지 그런데 동지들의 모습이 떠올라 참아 이 짖거리만은 못하겠더군....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난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 시대의 치열함 그리고 그 시대가 갖고 있었던 아픔에 대해 책 귀절 역사서 몇 구절에서 찾아 볼 수는 있지만 그들의 생에서 이룩한 고귀한 업적에 대해서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분들이 나에게 이야기해주더군,,,, 장난으로 운동이라는 짖거리 할 거면 때려치라고....

그분들은 시국사안이 있으면 일체 단식, 그리고 일체 죽음을 각오한 고행을 1평도 되지 않는 자신의 독방에서 진행한다.

 

시국사안이 벌어지면 교도소는 비상이다. 어르신들이 혹시 이상이 있지 않을까... 그나마 교도관이 좋은 곳에 있어서 교도관은 그분들에게 설명을 하면서 설득을 해보지만 그분들이 수십년 쌓은 내공은 꺽지 못한다. 안타깝다....

 

그리고 시국사건이 터진면 늘 나오는 전대협 소속 구속자 현재는 한총련이겠지... 신문 몇구절에 나온 기사를 자신이 밤새 각색하여 아침 식사시간에 선전선동을 한다. 우리 무엇을 하자고 장기수 어르신들은 이를 믿고 그대로 실행한다. 그러나 누구도 그 분들의 실천에 대하여 말리지 못한다, 이에 난 분노한다. 자신의 투쟁으로 실천할 것이지.... 이 세상 모든 풍화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버겁지만 이겨내는 늙은 혁명가들의 생을 결코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 무엇하는가??????

 

삶의 운동에 대하여 장기수 어르신들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무엇이라고 규정은 해주지 않았지만...... 그래서 늙은 혁명가의 주름이 더욱더 안타깝게 보인다.

 

그러나 누구도 그분들을 돌보지 않는다. 이제 우리사회가 그리고 운동권이라는 지칭하는 단위 시민사회라고 지칭하는 단위가 그분들을 위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이념의 피해자 그리고 탄압의 피해자인 그들에게 우리는 세상의 희망이 무엇인지 가르쳐 줘야 한다.

 

남들은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 진보하지 않았냐고 되려 반문한다. 난 무슨 진보가 이루어졌나고 반발한다. 노무현이 이룩한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김대중정권의 국정운영이 도움이 되 었고, 노무현은 막가파식 국정운영을 하고 있다. 이게 대한민국이다.

 

독립투사들이 탄압받는다... 왜 여기에 이념운동을 통하여 남한을 일본 제국주의로 부터 지키고자 했던 인물은 빠지는가? 그들이 빨갱이라서,,,, 아니다. 미연에 이러한 분위기의 싹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이지 않을까???

 

간장 오타맨이,,,,, 늦은 밤에,,,, 술한잔 거하게 먹고 난후 끌적여 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공짜 밥을 얻어먹었다.

  • 등록일
    2004/08/17 16:11
  • 수정일
    2004/08/17 16:11

오늘 공짜 밥을 얻어먹었다.

얼마만인가 누구에게 밥을 얻어먹는다는 것이.... 그동안 회의나가면 밥값(사무실에서 식비청구는 하지만)을 내고 먹다가 오늘 꽁짜로 그것도 잡채밥을 얻어먹었더니 배가 든든하다.

 

밥을 얻어먹게 된 것은 오늘 회의에 늦은 사람들이 밥값을 쏘라고 이야기 하였는데... 정말로 밥값을 냈다. 그래서 안면몰수하고 난 중국집(일명 짱깨집)에서 조금 비싼 편에 속하는 잡채밥을 시켰다. 계속되는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잡채밥을 시켰다.



돈을 내는 사람들은 비용을 줄이려는 처사인지 자장면이 좋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자장면 곱배기와 보통을 시켜 먹었다.

 

오늘의 밥 얻어먹게된 이유는 다른아닌 회의시간을 늦게 도착하여 벌어졌다.

운동사회내에서도 오늘 같은 일이 널리확산되기를 바램해 본다.

다들 단체일로 바쁘다 보니 회의시간을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 운동사회내 연대회의에서 종종 벌어진다. 오늘도 마찬가지 였다. 한사람은 회의인지 까먹었고, 한사람은 단체일로 인하여 시간에 맞추지 못했다.

이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늦었으니 밥을 사라고 말을 꺼내 밥을 사게 되었다. 다음에도 늦으면 밥을 사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이후 회의가 정시에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활동가 모두가 일에 치이고 바쁜 일정을 쪼개면서 사용하고 있다는데 대한 심정적 이해는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심정적 이해는 심정적 이해일뿐 활동가들이 정한 시간을 최소한 지키는 것도 운동이 아닐까 개인적 생각을 가져본다. 사견으로 난 웬만하면 회의시간을 지키기 위해 회의시간 10분전에는 장소에 도착한다. 최소한 회의를 진행하기 위한 예의이며 회의진행에 있어서 비록 10분이지만 준비시간을 갖기 위한 나름데로 노력을 하고자 한다, 잘지켜지지는 않지만 그리고 회의가 늦을 것 같으면 최소한 양해를 구한다. 어디쯤인데 몇시경에 회의장소에 도착한다는... 그리고 모여 있으면 내가 없더라도 회의를 진행해달라는 말과 더불어... 왜냐하면 활동가과 함께 잡은 시간을 지키지 못한 나의 불처저함이다. 이에 회의가 진행되었을 때 참여하지 않은 이들의 의결권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의결권 때문에 기다리기 보다는 의결을 진행하고 보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판단 든다. 

 

운동사회내 회의시간은 활동가들의 민주적(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지만) 절차와 합의를 통해 결정된 시간이다. 시간을 맞추는 사람은 늘 그 시간대에 온다. 그들은 시간이 널널해서 오는 것은 아니다. 난 배려의 문제라 생각한다. 우스개소리로 코리안 타임 이야기 하지만 친구간의 약속 그리고 회의 그리고 중요한 일이 있을때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이 되려 바보취급되는 현실인것 같아 어안이 벙벙할 때가 많다. 나도 의례 회의시간보다 조금 늦게 나갈려는 버릇이 생기지만 혹시 혹시하는 생각에 되도록 시간을 맞춘다.

 

내가 어리석은 것인지 회의시간을 잘못 잡은 것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다들 바쁜데 이런 사소하고 소소한 일에서부터 힘은 빼지 말았으면 한다. 활동가들 다 같이 어려운 시간 쪼개어 바쁘디 바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연장노동은 기본이고 불철주야 주경야독으로 문건 만드랴 활동하랴 다들 분주하다. 주일은 있지만 못쉬는 활동가들 또한 부지기 수 있다. 다들 정말 정신없이 사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든다. 조금만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다들 화이팅...

 

만약 불가능하다면 회의시간을 지킬 수 있는 시간대로 잡으면 된다. 습관이 잘못 되었다면 습관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운동권 타임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램에 글을 써보았다.

 

공짜밥을 얻어먹었지만 그건 나의 활동시간에 대한 보상은 아니었을까.... 그냥 이런저런 잡생각이 납니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추억도 잃어버렸다.

  • 등록일
    2004/08/17 01:24
  • 수정일
    2004/08/17 01:24

다이어리를 어제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 다이어리는 다이어리 이상의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 다이어리는 죽은 군의문사로 죽은 후배가 군에 가기전에 자신은 필요없으니 선배 쓰라고 준 소중한 물건이다. 그 다이어리는 그와의 추억 그리고 그 다이어리를 볼때만다 후배를 떠올릴 수 있는 나에게 있어 과거, 현재를 잊는 소중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고 현재는 미래와의 대화라는 말을 하였듯 다이어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거울이었다. 그 소중한 것을 정신팔아먹으면서 잃어버린 것에 정말 죄스럽기까지 하다.

 

다이어리를 통해 후배와의 대화를 난 가끔 독백을 통해 이야기 한다. 나만의 대화 나만의 독배 그안엔 그 후배가 늘 살아있었다.



후배와의 만남 대학교 5학년(학기로 5학년 난 학기로 7학년까지 다님... 15학기 코스모스 수료 내가 생각해도 돈 무진장 대학에 퍼다날랐다....)때 과 선전부장이던 나의 후배를 동아리연합회(이하 동연)에서 만났다. 그는 좌파라고 자임하던 녀석들의 학내모임 선전부장 회의에 나타나서 나의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는 선전부장이 었으나 정작 글씨는 갈김체이기에 거의 선전물을 만들지는 않았다. 다만 과에서 선전부장이라는 직함을 통해 운동이라는 것을 지향하고자 하였던 이였다.

 

93년 그 뜨거웠던 여름.... 우린 농활을 통해 서로를 알아나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후배는 누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 후배의 누나는 숙대를 다니고 있었고, 숙대에서 한가닥하던 운동권의 주동자였었다. 그의 집은 늘 누나의 학생운동으로 불안초조 그리고 경찰이 불시에 들이닥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고 한다. 그의 누나는 몇번의 조직사건으로 투옥이 되었고, 이를 통해 운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등학교때 부터 누나의 타고난 조직화에 후배는 쁘락션되고 말았다. 부모님을 생각한 후배는 운동에 전면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92년 당시 강경대 1주기 추모식에서 어느정도 운동을 지향해야 겠다는 결의를 하였다고 한다.

 

그 친구와 동아리연합회 노숙방에서 진한 술잔과 노래하나... 늘 후배는 내가 귀거하는 동아리연합회 노숙방에 찾아와 선배 술한잔 하죠... 하면서 술을 매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그 후배와의 대화에서 난 그에게 진솔하지 않았다. 후배는 자신이 살아왔던 과정 운동을 머뭇거리게 된 배경 그리고 집안에 대해 나에게 가슴속 깊은 이야기까지 하였다. 난 그렇지 못하고 그의 이야기만 들어줬다. 정작 나의 이야기를 그에게 하지 않았다.

 

내가 무엇하러 운동이라는 것을 지향하게 되었는지.... 나는 어떻게 대학 오기까지 살아왔는지... 다른 동지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만이 숨기고 싶은 비밀 그리고 알리고 싶지 않은 나의 가족사가 있었기에 난 그들의 가슴에 담은 이야기를 정작들으면서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한심한 일이다. 누구나 받아주고 감싸줄 수 있는 이야기를 난 나의 쪽팔림과 나의 존심이라는 것을 내세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어느 노래가사처럼 그런 입으로 난 동지라 지껄였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고민을 떨어놓았던 그들에게 지금 생각하면 얼굴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게 느껴진다. 나를 믿고, 나를 따르고,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준 동지와 후배들에게 난 정작 무엇을 해주었던가.... 후배가 떠나고서야 아쉬움이 남는다. 버스는 이미 떠났다.

 

후배는 참 맑은 녀석이었다. 늘 힘들어도 웃도 열받아도 웃고 술이 떡이 되도 웃었다. 늘 힘들다고 털어놓을 때 빼놓고는 그 후배는 웃음과 미소를 잃지 않았다. 늘 밝은 그.... 그가 군대간다고 형 저 군대가요 술한잔 건하게 사줄께요 형 내가 복학하면 형 졸업하겠죠... 그래서 미리 술한잔 대접하는 겁니다하고 술한잔 건하게 사주고 입대한 그가 7개월 후 뼈가루가 되어 돌아왔다. 사인은 군대에서 자살하였다고 한다. 그 맑던 후배가 이렇게 갈 줄 알았으면 후배가 형 면회와요 할때 면회하도 갈것을 그리고 형 편지보냅니다. 편지 받았을때 편지라도 붙여줄걸 왜 이리 귀찮은지 지금 후회가 막심하다. 이도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와의 생활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가 준 다이어리.... 맑은 그를 다이어리속에서 발견하곤 하였는데... 그걸 잃어버리다니.... 난 내 학교시간 그 후배와 소중한 추억을 잊어버린 것과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술한잔 하고 난 후 이글을 쓰면서 조금은 진정되었지만.... 오후내내 일손은 커녕 화딱질이나서 혼자 씩씩대고 있었다. 참 미련한 놈 같으니라구.... 난 참 미련한 놈이다....

 

끝나지 않은 군의문사.... 난 운동이라는 것을 접하고 동지 3인 그리고 선배 3명 후배 1명을 군과 길거리에서 의문사로 보냈다. 그들의 장례식도 가보지 못하고 보냈다. 그들의 장례식은 군과 경찰에서 화장을 한 후 통보하였고, 죽어있는 현장사진을 보면서 오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과의 그 소중한 추억은 그 현장사진 한장에 더이상 만날 수 더이상 술먹을 수도 더이상 내가 이야기를 받아줄수도 내가 하지 못한 말들을 그들에게 전달 할 수 없다는 것에,,,, 난 미치도록 서글프다. 내 마음속 이야기 하나도 그들에게 하지 못했건만 난 그들의 이야기만 받아 담았을 뿐.... 오늘 술한잔 하고 나니 서글프다....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젠장할....

 

후배와 동아리에 관한 추억.... 후배와 난 동아리 하나를 만들었다. 세미나와 학습을 하기 위한 동아리 내가 동아리연합회장이었을때 가동아리로 인준을 받았다. 그리고 2년만에 편법으로 중앙동아리로 인준을 받았다. 후배들에게 운동은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던 동아리 그리고 조직활동을 위한 안정적 공간확보를 위해 동아리를 만들었다. 무수히 후배와 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다른 이들에게 부탁하면서 채워나갔다. 중앙동아리로 인준 받고 그와 난 동아리방에 찾았다. 감격이 었다. 우린 둘이 얼싸않고 엉엉 울었다. 우리가 해냈어 하면서.... 참 포부도 있었도 운동이 꼬이지만 원칙만 건실하면 잘 될것이라는 믿음으로 같이 만들었던 동아리.... 난 집에서 붙여주는 돈을 모아 헌책방에서 책을 구입하고 후배는 자신의 집에서 필요한 물건을 몰래 훔쳐가지고 와서 동아리방에 하나둘 기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우린 종종 함께 술한잔 하면서 밤을 지세웠다. 비록 우리는 소수이지만 나중엔 창대하리라.... 학교를 제대로 바꿔보자고 포부도 열정도 가능성도 우리 앞에는 그 당시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와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한번은 술을 얼마까지 먹을 수 있을까... 학교앞 당골집 전부다 돌자고 결의하고 한달 생활비를 털어 우린 무작정 술집을 돌았다... 내 생전 이렇게 하루에 술집을 많이 돌아보기는 처음이다. 무려 8차까지 갔다. 그 결과는 참담하였지만... 후배는 병원에 실려가고 난 동아리방에서 1주일을 칩거하여야 했다. 동기와 선배들이 병원에 가라는 것도 마다하고 동아리방에서 쓰린 배를 잡고 1주일간 구토와 설사와의 사투.... 무모하지만 기억이 남는다. 그리고 후배와 몸이 쾌유된 후 만나서 서로가 10차까지 도전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다음 행동을 준비하자는 말만 남겼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무모한 행동은 더이상 하지 않았다.

 

후배가 단과대 학생회장 당선되었을 때.... 정말 뛸 듯이 좋았다. 우리도 단과대 하나를 잡았다는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도 운동을 위한 대중적 발판 마련... 늘 양지를 지향하지만 음지에서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고충이라하면 다들 알 것이다. 우리도 양지바른 곳에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후배의 당선 소감을 듣는데... 이놈의 눈에서는 이슬이 처음엔 맺히더니 나중엔 소나기가 되어 퍼붙는 것이다. 주체할 수 없이 기쁜 환희의 소나기.... 감격 그자체였다. 후배가 대견하였다. 처음으로 단과대를 잡았던 그 희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한총련 사태로 전국대학이 온통 한총련 탈퇴를 감행할 때 후배는 조용히 동아리로 찾아와 나에게 물었다. 형 우리 한총련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나는 왜 그러나고 물었다. 형 한총련의 노선을 비판받아 마땅하나 한총련 자체는 우리의 역사적 성과물 아니냐고, 한총련 자체는 학생운동이 이루어놓은 결정물이 아니냐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 외면하고 이에 대한 한총련 개혁, 한총련 강화에서 우린 무엇을 하였냐고,,,, 한총련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지면 다음차례는 우리가 아니겠냐고.... 학원민주화 투쟁은 더이상 공염불이 되지 않겠냐고 말하며 자신은 한총련 대의원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한 자신의 결의와 다짐을 나에게 협박 비스무리하게 주장하였다.

 

후배와 짧지만 소중한 6개월의 동아리 동거생활.... 동아리는 내가 먹고자고 살아가는 생활공간겸 우리 진영 회의장소 였다. 후배는 수배가 떨어진 후 나와 함께 이공간에서 같이 살아갔다. 군대 끌려가기 전까지.... 후배와 애틀란타 올림픽도 같이 보았고, 그래서 술먹고 종종 둘이 레슬링 흉내고 냈다.... 후배의 별명을 타이거 마스크 대 난 그대로 간장 오타맨... 타이틀 매치도 하고, 비오는 날 팬티만 입고 술이 턱이되 학교 정문에서 동아리방까지 뜀박질도 해보고 갖은 꼴통 짖은 죄다 해보았다. 그 당시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생각만 하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후배와 나는 참 인연이 질겼다. 6개월 동안 참 좋은 시간이 었다.

 

후배는 나에게 한가질 부탁하였다, 형.... 난 사람을 만날때 자신의 마음을 조금은 빛춰줘여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동지라는게 별건가요 서로 전부는 아니지만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누굴 만나든지 남을 알려고 하기전에 자신을 먼저 보여주라고... 꼭 꼭 당부하였다. 난 후배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하지만 말처럼 쉽게 되질 않았다. 그래서 최소한 노력하고자 한다. 동지라 신심을 같이하는 이들에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도 그가 없기에 더 말하기 신명나질 않는다.

난 다이어리 분실.... 나의 추억도 송두리채 앗아간것 같다. 꼭 찾아야겠다. 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뭇히고 내 후배의 손때가 묻힌 그 다이어리를....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후배가 슬퍼스 우지짖나.... 나 그대 안 잊었다. 그대 잊는날 그날은 내가 그대곁에 다가가는 날이리라.... 미안타 니 소중한 다이어리 지키지 못해서...

 

술한잔 하니 참 이상타.... 술이나 더 먹고 그냥 오늘 자야 겠다... 내일 회의 늦지않게 조금만 먹어야지.... 지금 한 두병을 먹었으니 한 두명 더 먹고 푹 자야 겠다. 아무생각없이...

 

간장 오타맨이....

 

비야 제발 서글프게 우짖지 말라..... 내 후배 눈물 같아 보기 힘들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다이어리를 잃어버렸다.

  • 등록일
    2004/08/16 15:16
  • 수정일
    2004/08/16 15:16

흐흐 몇년 동안 사용한 다이어리를 잃어버렸다.

오늘 삼성노동자감시공대위 1인 시위가 있어서 시청에 갔다. 1인 시위를 진행할 노동넷 운영위원장님에게 연락을 하고자 다이어리를 꺼냈는데.... 다이어리를 미처 챙기지 못했나 보다.

정신을 챙기지 못해서 빚어진 불상사... 1인 시위 좀 늦게 시작하면 되는데.... 뭐 그리 분주했는지 흐흐....

 

다이어리에 돈 6만원과 할인카드 몇장이 들어있었다. 이런 낭패가....

1인 시위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다이어리 챙기는 것을 잊어버리다니.... 사무실에 있을 줄 알았는데... 정신을 챙기고 보니 운영위원장님에게 전화한 기억이 난다.

 

돈 6만원은 전기세 수돗세 오물세 그리고 통신비를 내기 위해 다이어리에 넣어둔 돈인데... 1인 시위 장소를 찾느랴 시간에 맞춰 운영위원장님이 오시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만 챙기지 않고 그자리에 놓고 왔나 보다.

 

1인 시위를 하기 위해 액땜하였다 생각 안할려고 해도 자꾸만 아까운 돈생각이 난다. 이번달 또 어떻게 살아갈런지.... 큰아버님 암 투병으로 빚진 병원비 대출금 내고(4000만원중 500만원 갚았으니 3500만원 남아있음. 달달이 70만원 내는 것도 버겁다. 그나마 용접과 과외 알바로 70만원 정도 벌으니 생계에는 지장이 없다.), 카드 비용 매꾸고 나니 이번달 돈 3만원 남았는데 어떻게 이번달 살아갈지 막막하다.... 카드로 연명해야 하나... 웬만하면 카드 빛 탕감한 후 잘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다음달 상근비 받을때 까지 카드로 연명해야 겠다.

 

우씨 아까운 내돈과 다이어리....

소중한 연락처가 담겨있는 다이어리만이라도 누군가 보내주었으면.....

 

좋은 일 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다가오는지.... 흐흐 ㅠ.ㅠ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