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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8/07
    4월 2일 연대 총파업 투쟁의 아쉬움과 발전노조 파업투쟁...
    간장 오타맨...
  2. 2004/08/06
    인천 용접공 시절 듣던 노래와 회상
    간장 오타맨...
  3. 2004/08/06
    철도 총파업투쟁 돌입이 되지 못한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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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서 얻고 잃어버리는 것들
    간장 오타맨...
  5. 2004/08/06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며....
    간장 오타맨...

4월 2일 연대 총파업 투쟁의 아쉬움과 발전노조 파업투쟁...

  • 등록일
    2004/08/07 12:10
  • 수정일
    2004/08/07 12:10

발전노조 파업은 승리를 목전에 둔 싸움이었습니다.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이라는 것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번 발전노조 파업투쟁은 새로운 노동자투쟁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들을 발견하고 그동안 침체일로에 있던 노동운동이 역동적으로 발돋움하는 자랑찬 투쟁으로 생각하고 연대와 지지 그리고 헌신적 투쟁에 감동하느라 정신이 없이 지난 1달여 기간을 가슴졸이며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어제 발전노조 관련의 언론보다 그리고 잠정합의안 작성은 정말로 생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진일보한 내용일지라도 승리를 목적에  두고 굴욕적으로 비친 발전노조 파업투쟁의 모습들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약에 있어 굴종과 오욕을 가져온 행위라 생각됩니다.


무산계급에게는 오로지 몸뚱아리 하나로 이세상을 지탱해 나가고 있는데 무엇이 두려울게 있겠습니까? 투쟁이 아름다운것은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으로 주인으로서 거듭나고 노동자계급이라는 것이 역사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기때문이 의미있는 투쟁입니다. 저에게 발전노조 투쟁은 의미있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해준 또다른 투쟁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지만 발전노조는 기대이전에 노동자의  잃어버린 자화상들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래서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20:80에서 10:90 사회로 전화해하는 한국사회의 모순을 전면으로 거부한 투쟁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4월 2일 민주노총은 3월말 대의원대회를 통해 국가기간산업 사유화(민영화) 저지를 위한 2차 연대 총파업 투쟁을 전개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총파업 투쟁 돌입 10분전 정부(산업자원부)와의 협상을 통하여 극적으로 잠정합의안이 발표되어 민주노총 제2차 연대 총파업투쟁은 유보(대기) 상태로 돌아갔다.
 
민주노총은 대정부투쟁의 부담감을 느낀 나머지 연대파업투쟁을 철회하였다.

민주노총에서 그 동안 발전노조 총파업투쟁을 위해 적극적 연대를 전개하였지만 4월 2일 대정부투쟁의 부담감으로 인하여 지도부들이 정부와의 타결을 선택한 것은 민주적으로 결성된 발전노조에 대한 묵살 행위이며,  민주노총을 위시한 전체 노동계급들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노동자 투쟁에 무엇이 두려운가? 착취와 억압의 사슬을 당당히 떨쳐 일어난 노동자투쟁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못하더라도 찬물을 끼언지 말아야하는 민주노총 지도부들은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굴욕적인 잠정합의안을  작성하였는가?


발전조합원들은 자발적으로 산개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지역에서는  자발적으로 가대위를 결성되어 지역 노동사회단체들의 투쟁들을 통하여 정부의 신자유주의 민영화(사유화) 정책에 대한 대다수 대중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현시점 민주노총은 정권과 잠정합의안 작성은 이후 국가기간산업 민영화(사유화)를 노정간의 명분화 및 사문화해준 행위이며 민주노총 60만  조합원과 1300만 노동자들에 이끌어 나갈 조직으로서의 발전을 수행을 민주노총은 임무를 왜면한 처사이다.
 
민주노총은 1998년 김대중 출범과 함께 도래한 IMF사태때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통해 합의한 정리해고가 이후 노동자들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었고 지금 비정규직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왜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가? 이후 가져올 민영화 저지 투쟁은 민주노총의 발전노조 잠정합의안 작성으로 더욱  더 어려워게 되었다.


철도노조가 2월 27일 특별교섭합의안 작성을 통하여 파업이 철회되고  조합원들의 찬/반투표를... 
 
파업투쟁이 힘차게 전개하고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해야할 4월 2일 민주노총 2차 연대파업 투쟁은 무엇을 위해 계획되었으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개최를 통한 발전노조 지지와 엄호투쟁은 민주노총 지도부는 왜 결정하였는가?
 
발전파업투쟁은 승리한 투쟁이다. 굳이 민주노총이 무리수를 던져 2차 연대 총파업투쟁을 선언하지 않더라도 기층 노동 대중들의 자발적 결의로 이루어진 발전투쟁은 매일매일 노동운동사를 새롭게 쓰고 있었다.


2월 25일 가스, 발전, 철도노조를 위시한 공공 3사의 총파업 투쟁선언은  IMF 구제금융 신청을 통한 노동자들에 대한 일방적 정리해고,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을 통한 노동현장에 대한 정부의 공세적 정세에 대한  전면전을 전개하였다. 이는 그동안 노동자들에 대한 신자유주의 일방적 정책에 대한 새로운 투쟁의 포문 형성과 노동운동의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만들었다.
 
연일 노동운동진영에서는 발전노조 장기파업 투쟁의 지속되면서 발전노조원들이 얼마동안 지속적으로 파업투쟁을 전개할 수 있을까?라는 초미의 관심과 조직적 결속력에 대하여 매일매일 놀라고 신이 났다. 학생때 전지협투쟁과 한통노조 투쟁을 지지하면서 공공노조들의 파업투쟁의 위력과 이를 통한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을 세워나가고 있음을 보면서 노동의 위기니 이념적 부재라는 허의의식들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면서 운동에 대한 열정이라는 불을 지폈다.


노동운동이 정권의 공세기에 전면전을 펼친 발전노조 파업투쟁이 지금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 어제 각 산별연맹 집회를 취재하기 위하여 나가면서  집회장의 정보과 형사들은 발전노조가 타결되었다라고 말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왜 발전노조 조합원들의 파업투쟁 찬/반투표가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들(공권력)은 파업투쟁이 끝났다고 말하고 있을까? 그건 지금 민주노조하는 지도부의 공신력때문이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발전노조 또한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의 결정이 지대하게 미치는 것이 현  노동운동 현실이다. 발전노조 조합원들이 결의가 아무리 드높다하더라도 지도부가 파업투쟁을 결의하지 못한다면 파업은 진행될 수 없다.


발전노조는 과거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한 전력노조에 있을때 2000년  11월말 12월초 전력산업 민영화 저지를 위한 총파업 투쟁 돌입시점 지도부의 극적 타결로 파업이 집행되지 못한 아픔 경험을 통하여 민주노조 건설과 민영화 저지를 결의를 드높여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를 전화한 노조이다.  


민주노총은 그때와 별반 다른 무엇을 하였는가?(민주노총 지도부들이  고심하고 또 고심하였을 것이라지만 책임질 소재가 아니었음에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 어이가 없고 안타깝다... 발전투쟁은 전사회적 투쟁이었는데 왜 민주노총은 상급단체라는 이유만으로 투쟁을 책임지고 끝내려 했는가? 민주노총은 정리해고 도입때와 같은 실수를 왜 했는가? 이후 가져올 파장력에  대한 것을 본다면 이제 민영화 싸움이 이렇게 드높게 일어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작년 대우, 울산 효성, 태광 등의 투쟁이 시간이 지나면  뭍혀지듯이 노동자들의 투쟁이 서서히 뭍혀지고 있다. 87년 노동자대투쟁만이  노동운동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투쟁이 존재할 수 있는 어려  기폭제들이 있음을 잊지말아야 한다. 발전노조 투쟁은 87년 노동자대투쟁과  마찬 가지로 노동운동활동가들이 밀레니엄시기에 새로운 투쟁의 모범으로 우뚝세워내야 한다. 그럴때만이 이후 투쟁은 존재 할 수 있고, 지속적 투쟁이 전개되어질 것이다.)
 
파업이 힘차게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업의 해결사로 나섰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발전노조 싸움은 민주노총이  책임져서도  책임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민을 대표해 민주노총이나 그 어떠한 세력들이 책임질 소재가 아니다. 또한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되거나 정치꾼들이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왜냐하면 국민의 안전권 즉,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사안이며, 국가기간산업을 사용하고 있는 수혜자들에 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문서로 사문화 될 수 있는 소재의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이에 국민들을 위시한 이땅의 진보적 세력들이 발전노조 투쟁에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결합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천명하였다. 그  어떠한 때보다 중요한 투쟁이었으며, 노동운동만이 시민사회 각계각층의 참여를 통한 연대의 모범을 보인 투쟁이었다.

파업동력이 되지 못하고 단위사업장이 결의가 되지않아 파업은 유보되고 합의안이 도출이 되어 파업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통해 노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순을 밟아야 하지만 발전은 이와 전혀다른 양산을 보인 투쟁이었다.
 
현재 민주노총 가맹 산별연맹 지도부들의 선거포스터를 보면 과거 선진노동자라고 차칭하며 자신의 단위사업장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민주노조 건설과 노동운동을 전개하였고, 지금 또한 노동운동을 헌신적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도부들이 왜 지금 시점에 결정 내렸을까.... 그만큼 연륜이 되지 않는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 노동현장에서는 이 사태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파업투쟁이 힘차게 전개되어지고 근래 보기드물게 전조합원들의 결속을 통한 장기 총파업투쟁이 허무하게 마무리되는 것이 정말 아쉽다.


발전노조는 파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기가 한풀꺽이면 다시  세우기 어렵듯 발전노조 파업 또한 이러한 힘찬 투쟁이 전개되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여론과 사회적 배경이 어제의 일로 전환국면을 맞이하고 있으니....
 
정말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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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용접공 시절 듣던 노래와 회상

  • 등록일
    2004/08/06 22:18
  • 수정일
    2004/08/06 22:18
오늘 집에서 뒤굴뒤굴 놀고 있는데 용접공 시절 야근때 자주 듣던 노래가 흘러나와 이 게시판에 글을 올려봅니다.
참고로 저는 용접 자격증을 대학때 기계공학과 동기들에게 뇌물을 받쳐가며 배웠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산업기사2급(이전 기능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여 산소용접, 아스콘(전기) 용접, 아세틸렌 용접, 아르곤 용접을 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 하였습니다.
 
야근시간 어김없이 같이 일하던 라인의 동료(병특 요원)가 클레오(Cleo) 2집 Ready for love  노래를 테잎을 전 라인에 틀어놓고 작업을 해서 가사를 외울 정도입니다. 그 노래를 오늘 들었는데 야간 용접봉을 들고 라인에서 근무하던 저의 과거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제가 근무하던 곳은 남동공단 다성이라는 대우자동차 차체 부속을 제조하던 업체로 스폿(점) 용점,  산소용접, 프레스를 주로하는 업체로 레간자, 라노스, 누비라 차체 생산라인이었습니다.
 
그 당시 주야 맞교대로 근무로 근무하면서 노동현실의 어려움을 몸소 느꼈습니다.
노조를 건설할려고 들어갔는데 중소영세사업장의 어려움만 몸으로 느끼고 나왔죠.
정확히 말해 현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1년이란 짧은 현장생활을 마감하였습니다.

 

일이 힘들어서도 아니고, 몸이 피곤해서도, 아니면 생산현장의 열악한 노동현실 때문에 퇴사를 한것은 아닙니다. 이전 구속경험이 있다보니 남동경찰서 정보과에서 나와 위장취업 심사에 걸려 짧지만 소중한 경험을 마감하여야만 했습니다.
 
지금 노동넷에서 상근하며 월 60만원이라는 상근비를 받고 있습니다. 이전 현장에서 벌었던 기본급보다 많은 돈을 받고 운동이라는 것을 지향하고 있어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경우 턱없이 부족한 박봉에 노동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현장에서는 아이엠에프로 인해 상여금이 대폭삭감되고 년차수당이 없어 졌습니다. 저는 남자라 일당 만삼천원으로 계약(정규직의 경우도 일당을 계약하고 현장에 취업해야함, 중소사업장의 경우는 부지기 수임.)하여 월(주 44시간 노동기준 기준) 39만원의 기본급에 잔업수당, 야근수당, 특근수당을 보태야 월 80만원의 봉급을 받을 수 있는 현장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이 땅의 모든 노동자의 현실이 아직 변화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대공장의 경우는 기본급과 상여급의 수준이 높이 책정되어져 있기에 높지 않은 임금이라 말하지만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는 상상을 초월하는 임금입니다.

 

상여금은 말할 것도 없고, 더욱이 문제시 되는 것은 여성노동자의 경우 저보다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저보다 숙련되고 오랜 기간 노동하던 어느 늙은 여성노동자(경력 10년)의 일당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저보다 500원이 적은 일당으로 노동을 강요받고 있더군요. 그분은 설날, 추석을 빼고(제가 1년 현장생활을 겪을 때 노동한 시간)매일 나오시는 분이었는데, 월급봉투를 보니(국민연금, 의료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갑근세 제외, 잔업 68시간- 주간 노동의 경우 매일 10시 야근과 포함한 시간 임. 여성노동자의 경우 출근시간이 오전 8시인데 수동 스폿(점) 용접기를 정비하기 위해 현장 근무를 위해서 오전 7시까지 출근해야 함.-, 특근 4일 포함)하고 72 만원을 수령하더군요. 이게 노동의 현실이라 생각하니 암울하더군요. 저야 대학이라도 나와 마음만 먹으면 공무원 시험, 고시 등 다른 방법으로 돈 벌 수단을 찾을 수 있는데, 그 분들은 이 월급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를 되돌아 보았습니다. 남아 있지 못하고 줄행낭 치듯 도망친 자로서 말할 것도 없지만, 그때를 생각하면서 저의 삶의 목적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패배자이기에 무어라 말할 자격도 없는 놈입니다. 그래도 현재 민주노총에서 4인가족 평균임금을 발표할 때면 그 당시 상황이 떠오릅니다. 많은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자신들이 현재의 위치를 이루기위해 투쟁을 하였기에 노조를 결성하지 못한 현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밎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노동운동을 지향하고 활동을 한다고 할때 미조직 사업장으로 분류되는 노동자를 조직할 의무가 있지 않은지 반문 또한 듭니다.
 
민주노총의 4인 가족의 평균임금이 210만원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딴나라에 사는 인간인 것 같은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임금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노동에 비해 상당히 적은 비용이고, 정치권과 권력층의 소비성향에 비하면 세발의 피입니다. 그러나 주관적으로 나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높은 비용이라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건 저의 미성숙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일임금 동일노동이 노무현 정권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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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총파업투쟁 돌입이 되지 못한 아쉬움

  • 등록일
    2004/08/06 22:04
  • 수정일
    2004/08/06 22:04

민주노총으로 가입하고 맞은 철도파업투쟁이 성사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부산에 내려가 철도노조 총파업투쟁을 인터넷 생중계를  지원한 후 학교때 후배들이나 만나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회나 실컷 먹고 파업투쟁이 남기 성과와 한계에 대한 고민을 해볼 요량이었으나, 참여정부가  철도노조 투쟁이 부담스러웠는지 잠정합의안을 가결로 철도노조 파업 돌입투쟁은 마무리 되었다.



 부산 투쟁에서 아쉬움이 한 둘이 아니었다.


 서울 인터넷 생중계가 인터넷 회선문제로 진행되지 못해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에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부산과 서울의 파업대기 상황은  천지차이였다. 비가와서 그런것도 있지만, 철도 서울지역본부와  부산지역본부의 대응과 집회 운영은 문제가 있었다라는 개인적 판단을 해본다.
 파업투쟁은 일정정도 지도부의 지도력과 조합원의 결의에 의해 투쟁판이 판가름된다. 그러나 부산지역본부 임원들의 소극적 대응과 집회운영  미숙으로 파업대기는 행사위주로 치뤄지고 말았다.
 
 조합원의 자발적인 분노를 집행부가 받지 못한 상황의 연출이었다. 폭우가 온다는 이유로 집회를 절반도 진행하지 못하고, 체육관으로 들어간 것도 문제이거니와 체육관에서 프로그램 없이 조합원들을 방치하여  파업대오중 일부가 만취해 싸움이 몇건이 발생한 것도 큰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문제는 조직된 대중에 대한 지도부의 투쟁대응의 미성숙과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한 책임은 이후 철도투쟁이 남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숙제로 남아있으며, 이후 잠정합의안에 대한 구체적 실물화를 위한 현장투쟁을 능동적올 펼치기 위한 문제에 있어 크나큰 손실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잠정합의안 발표때 부산의 분위기....
 서울과는 대조적으로 부산은 큰 물의없이 잠정합의안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적적 반응을 보여주었으며, 잠정합의안이 인터넷생중계로 발표되자 투쟁이 성과있게 끝났다라는 판단을 가졌다. 그리고 철도노조위원장의 지침에 따라 각 지부별 간부회의를 통해 별 무리 없이 지도부의  잠정합의안 발표를 용인해 주었다.
 
 잠정합의안을 둘러싼 긍정과 부정....
 무엇보다 잠정합의안에 대한 긍적적으로 평가하는 측은 제일먼저 정부로 부터 공식 발언으로 민영화철회가 성사되었다는데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전 태도를 본다면 과연 민영화 철회가 공식화 될 수 있을지는 이후 지켜봐야 한다. 노-정의 문제는 힘의 역관계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측에 의해 판가름 되지만 이번 파업에서 실추된 현장지도부의 집행력이 이후 잠정합의안의 구체화 시키는 투쟁에서 현장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들며, 안타깝다. 스스로 현장투쟁 동력을 동결시키는 효과가 이후 신자유주의 공세와 맞물린 민영화 공세를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파업초기부터 건설교통부장관의 철도파업투쟁과 관련한 담화문에서 파업돌입시 즉각적 공권력 투입을 공표한 터라 지도부에 있어 일정정도 부담감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판단은 들지만, 첨예산 노-정간의 대립에서 파업투쟁이 불가피하였다면 파업투쟁은 돌입하고, 단결된 조합원들의 힘을 응축하고, 이후 투쟁을 전술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도부는 이후 현장내 투쟁을 전제한채 파업투쟁을 노-정교섭을 통해 유보하였다.
 
잠정합의안을 통한 파업유보는 현장투쟁력을 후퇴시켰다.
잠정합의안에 있어 철도노조가 주장이 관철되는 성과가 있다는 지도부는 판단하고 있지만, 부산지역의 한조합원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해고자 복직(전제조건 일단 시험을 볼 수 있는 권한을 준다는 전제 조건이 단서조항으로 달려있는 것 같다.) 45명, 신규인력 채용 3500명, 철도민영화 철회, 새마을호 여성인력 정규직화, 역무 민영화 철회 등 사안들이 잠정합의안을 통해 공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들의 거센 항의가 이루어졌다. 이는 작년 교섭 총파업투쟁 돌입하여 잠정합의안을 하였지만, 현장에서 손배가압류가 강화되었고, 노동강도가 더욱더 강화되어 과로나 산재로 죽음을 맞는 조합원수가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문제점들이 첨예하게 들어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신규인력 채용방식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본다면 정규직 3500명 채용인지 아니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율을 포함한 3500명인지 애매모호하게 잠정합의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민영화 철회라는 것 또한 어느선까지 민영화를 철회할지 구체적이지 않다. 간헐적으로  철도 내부에서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있는 점이나, 철도 민간역사 증축등과 고속철도 내년 개통에서 어떻게 구현될 지를 판가름하면, 민영화 철회라는 것 자체는 현재 정규직으로 공무원으로 신분을 보장받고 있는  철도노조 정규조합원들에 대한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는 것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철저히 정규직 조합원들에 지분싸움을 위한 파업투쟁이라는  판단을 조심스럽게 개인적으로 판단해 본다.
 
이후 보여질 비정규직투쟁에 철도노조는 대응방안이 있는가?
새마을호 여성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신호탄으로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을 호도할 수 있겠으나 이것은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 철도노조가 대응을 잘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어부지리라는 말로 표현하면 맞을 것이다.


철도노조는 더 늦기전에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야한다. 철저히 정규직 조합원을 위한 투쟁을 진행한다면 한국통신이 지난 투쟁에서 보여준 정규직 조합원들의 밥그릇 투쟁의 전처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과오를 범할 것이다. 더 늦기전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양분화를 진척시키고자 하는 철도청의 방침을 투쟁을 통해 분쇄하여야 한다.
 
지도부는 이번 투쟁의 과오를 현장투쟁으로 만회하여야 한다.
잠정합의안의 구체적 발현형태는 현장투쟁의 성패에 달려있다. 지도부는 파업유보를 통해 갈려진 현장조직들의 분위기를 추스리고, 이후  잠정합의안 구체적 실행을 위한 현장투쟁을 조직하여야 한다. 지금 현장조합원과 현장조직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다면, 잠정합의안의 성과는  문서로 성문화된 문구이외 구체적 사항에 대해서는 성과로 이어나갈 수 없다.


부산에서 만난 한 동지(이전 SSL에서 함께한 동지)가 철도노조 파업유보는 가뜩이나 무너진 지도부의 지도력에 있어 큰 상처일 것이며,  현장조합원과 현장조직의 첨예한 대립으로 치닫을 위험성을 경고한바 있다. 분명 현장내부투쟁이 격화될 전망이라는 것은 잘 알겠으나 지도부는  지도 방침을 현장조합원의 총투표를 통해 파업여부를 가리지 못한 만큼, 지도부의 판단이 올바른지 그른지는 이후 현장투쟁을 조직하는데서 과오들을 만회하여야 한다.
 
 이런 과오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성과측면만 부각된다면 이후 철도노조의 민주노조 건설의 과정은 험난할 것이다. 더 늦기전 철도노민추로 부터 세워나갈 민주노조 기풍을 올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
 
 지도부는 스스로 성과보다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은 인식하고 이후 투쟁에 매진하여야 한다. 우리는 철도노조의 민주노조 깃발이 나부끼는 한 성과와 패배에 관계없이 지속적 연대투쟁에 투쟁의 심신을 바치고자  한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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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얻고 잃어버리는 것들

  • 등록일
    2004/08/06 21:58
  • 수정일
    2004/08/06 21:58
 나는 살면서 희망과 인생을 잃어렸다. 그래신 분노와 용기와 무모함을 얻었다. 잃은 것에 비하면 얻은 것도 많다.
 
 희망.... 난 원래 무지한 놈이라서 단/무/지(단순, 무식, 과격)한 놈이라서 대학에 들어가면 인생의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삶에 큰 떡이 내려올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갔다. 정말 무식해서 그런지 앞만보고 달려갔다.


 인생.... 난 중학교때 부터 화학을 좋아하였다. 늘 수업시간에 화학이 국영수에 비해 낮게 배정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중/고등 과정을  보냈다. 정말 화학시간만큼 재미난 공부는 없었던 것 같았다. 인생의  진로를 화학선생님으로 중학교때 정하였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화학과를 떨어져 2지망 화학공학을 붙으면서 인생이 꼬였다. 화학선생의 꿈을 포기하고 화학엔지니어로 꿈을 대학교때 변경함. 인생의 꿈을 변경한지 3주만에 향우회에 나가 술먹고 운동하면 술 잘사준다는 꼬임에 빠져 질풍노도  시기를 운동이라는 것에 빠져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음. 그렇다고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지향하는 수준에 있음.
 
 그러나 나에게 이렇게 잃은 것도 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분노와  용기 무모함을 또한 얻었다. 분노는 광주를 알았고, 4.3을 알았고, 4.19를  다른 각도에서 알아나가면서 데가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는 말임. 대학  처음 선배가 던져준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읽고 밤세워가며 술먹고 동기들에게 울면서 술꼬장 부림.... 동기들이 하는 말..."너와 다시는 술  안 먹어"... 나는 비굴하게 이 사태 이후 동기들에게... "놀아줘 하며... 꽁 무뉘를 따라다님... 대학교 2학년때 첫 구속... 남들은 다들 도망 잘쳐서 아무런 문제없었는데.... 나는 길음스트당시 버스를 탄체로 후배 6명과함께 철장신세를 짐.... 복역 3개월 15일만에 출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출소 함. 당시 회상하는 동지들은 미친놈이라는 비난을 가함. 다들 쇠파이프를 길거리나 다른 안전한 장소에 버리고 갔는데... 나의 부주 위로 후배들과 함께 쇠파이프를 들고 버스를 타서, 경찰의 검문에 걸려서 무모하게 구속이 됨.... 참 멍청한 놈이였다. 단/무/지의 전형이었음.

 

그러나 분노와 용기는 최고조에 달하던 기였음. 혹자들은 길음스트로  한명의 구속자도 없었다고 하지만 나와 후배들이 그 구속자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음. 정말 창피해서 말 못하고 다님. 모임에 다나면 왕따 당함...
 나는 굳건히 놀아줘하며 끈질기에 쫓아다님.
 
 용기도 얻었다.
 공부와 담을 쌓은 내가 사회과학서적을 접함.(대학교 들어가면 공부를 하지 않을 거라는 나와의 약속을 어김.) 그런데 사회과학서적 용어들이  넘어려웠음. 그리고 대부분의 책들이 선배들이 번역한 일어책을 교재로  삼고 있어 문맥 연결이 난해해 이해하는데 어려웠음. 지금이야 활자가 좋고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번역되어 나온 책들이 많지만... 그 당시 T.R(training Reader)은 정말 형편없는 선배들의 엉망진창의 글과 맞지않는  문맥을 해결하면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작용함.
 
 지금 생각하면서 참 잘 살고 있다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잃은것에 비해 얻은 것이 너무 많기에....
 
 그리고 앞으로도 단/무/지 정신으로 세상에 분노하며, 머리보다는 행동으로 다가서는 사람이고 잡다.
 
 운동이라는 것을 요즘 세상사를 보면서 느끼건데.... 똑똑한것보다  얼마나 바르게 오래 그리고 원칙을 지켜가며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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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며....

  • 등록일
    2004/08/06 21:45
  • 수정일
    2004/08/06 21:45
 정말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승사람이 아닌 후배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편지를 뛰우면서 죄스러움을 사하려 합니다.
 
 늘 즐거운 일이 있을때는 혼자 있어도 되는 법이지만 슬픔이나 아픔을  나누어야 하는데 선배랍시고 그렇게 하지 못해 못내 죄스럽게 생각한다. 니가 그렇게 힘들어 했을때 나는 무엇을 했던가? 운동한답시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작년 여름 너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뭐라 할 수 없는 죄스러움때문에  한동안  아무일도 못했다.


그래서 더더욱 죄스럽다. 후배 선배들에게 너가 무척 힘들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도 나는 그냥 언젠가는 만나야 겠지 그냥 그렇게 흘려보냈는데 너와  이제는 더이상 이세상에서 볼 수 없겠구나.. 아니 너는 이제 과거 추억에 묻혀 있는 사람이 되었지... 얼마전 무심하게 시리 나는 너의 음성메세지를  들었다 1년전 너의 음성이 담긴 육성의 목소리를... 생생히 형 저 **에요 하는 목소리가 선명한데 너는 없더구나 음성만 남겨져 있는 너의 목소리를 나는  밤 새 우두커니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너의 목소리를 잊지 않기 위해내  내 나의 핸드폰에서 너의 목소리를 지우지 않고 간혹 사무실에서 듣는다.


너의 생생한 목소리를...
정말 무심했다. 나만의 고민 나만의 안위를 위해 난 너가 그렇게 힘들어  할 때 내자신의 고민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인천에서 서울로 황급히 도망치듯 올라왔다. 그리고 몇해지나지 않아 들었던 너의 죽음... 죄스러움에 가보지 못했다. 그래 난 너와 함께 하지 못 했을 뿐더러 너의 마지막 길또한 같이 있어주지 못했다. 정말 미안하다.
 
그래서 인지 너가 요즘부쩍 나를 찾는것 같구나.... 그렇게 보기 힘들었는데  니가 내 꿈에 나타나서 서운하다는 말을 전하고 간이후 난 거의 밤잠을 자지 못하고 늘 사무실에 우둑커니 않아서 술로 밤을 지세운단다.


그래 선배가 미웠겠지.... 그리고 잘못했지... 보고 싶다고 전화해도 가보지 못하고 그냥 열심히 살라고 전화안부만 하면서 지세운 나날들을 보냈지... 너는 군에서 제대하고 제일먼저 나를 찾아주었는데... 그때도 나는 일이  있어 너와 술한잔 제대로 하지 못했지...  학교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늘 동아리 학생회관 학생회 실에서 너와  동고동락하며 운동을 위해 어떻게 살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담론을 주고  받으며 밤이 지는줄 모르게 술과 이야기와 노래와 뒤범벅이 되어 우리는  함께 했었지... 그러나 시간은 너와 나를 갈라놓았지... 내가 학생운동을  정리하고 사회운동을 접하면서 우리둘은 간급은 점점더 멀어졌지.... 그리고 내가 인천에 있을때 그리 만날 시간도 넉넉하지 않았고 너는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우리의 만남은 서서히 멀어져갔다. 그러나 니가 이렇게 이 세상을 접을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할일이 많았는데... 그리고 운동을 위해 니가 할 몫도 많았는데 너는 무심하게 이세상을 등졌다. 그래서 더더욱 니가 보고싶구나...하찮은 운동이라는 것을 지금 부여잡고 있다, 인천에서 내려와 서울  노동넷에서 별볼일은 없지만 사무국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활동이라는 끈을  부여잡고 있단다. 부족한 내가 과분한 위치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 모습들을 너가 보았으면 좋아했을 것 같은데.... 너에게 이러한 내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구나...그것도 영원히 보여주지 못하게 되었구나.
 
요즘 부쩍 꿈에서 너를 자주 만난다. 나의 죄스러움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강박관념이 나를 사로잡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너가 꿈에서 선배무심하다 선배 함께 있자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요즘 너에 대한 죄스러움 그리움에 사뭇혀 살아간다. 요즘 밤잠을 자지 못한다. 너의 생각으로...
 
그러나 너에 죄스러움을 사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 결의를 다짐해 본다.  다시는 보지 못할 너에게... 내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는 너는 기억되겠지... 그러나 이것도 너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만의 추억이겠지....


너와 나도 역사라는 이름으로 지워질까? 그러나 요즘 부쩍들어 관념논자들의 유신론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나약한 마음을 가져본다. 신은 없음을 잘  알면서도... 단한번이라도 너와 다시만나고 싶어하는 마음때문에....
 
보고 싶어 이렇게 끌적여 본다. 너는 이글또한 읽을 수 없겠지... 그러나 나 의 마음은 이렇다. 그래서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 내마음속에 너에게 이렇게 끌적여 봤다.


무로 돌아간 나의 후배에게...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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