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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8/07
    돈과 운동의 상관관계...
    간장 오타맨...
  2. 2004/08/07
    행동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간장 오타맨...
  3. 2004/08/07
    열정의 시대는 가고 실리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간장 오타맨...
  4. 2004/08/07
    하종강 칼럼을 보고나서
    간장 오타맨...
  5. 2004/08/07
    4.15 총선 열린우리당이란 거대권력 탄생
    간장 오타맨...

돈과 운동의 상관관계...

  • 등록일
    2004/08/07 16:48
  • 수정일
    2004/08/07 16:48
술한잔을 한 상태에서 요즘 나를 돌아보게 되더군요....(가난한 날의 행복 수필에서 "걸인의 찬 왕후의 밥"은 온데간데 없고 안위와 평안에 만족에 휩싸여 생활하고 있는 지금,..... 돈과 운동의 상관관계를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더군요... 상근비를 받는 것이 이제는 월례행사/당연지사로 여겨지면서 과거 비록 상근비는 없었지만 열정이라는 무기하나로 지탱하였던  순수성들은 운동의 지속성이라는 미명하에 사라지고....


모든 사업에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라는 궁리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게 됩니다. 여기서 저는 개인적으로 운동과 돈에서 갈등이 생기더군요. 마치 자본이 돈을 벌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착취와 억압을 노동자들에게 행하고 있듯 단체 또한 노동조합의 소중한 자산들을 운동이라는 미명하게 쉽게 도용하기 위한 고민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반문을 해봅니다. 자본주의를 살고 있기에 지극히 활동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지극한 생각은 그 단체에 처한 조건에 의해 그 단체의 주관적 해석에 의해 생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속한 단체에서 생활하면서 늘 드는 생각입니다.

운동은 분명 자기 대중을 갖고 행동을 취하고 정치를 펼치는 것인데...
민주노조운동이 사회적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면서 노동조합을 둘러싼 운동지형의 의존도는 날로 높아가고 있습니다. 서울은 그나마 중앙이라는 지역 중심성에 의해 지역단체들과는 사뭇다르게 많은 단체들이 존재하고 그 의존도는 지역과는 다른형태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저희 또한 "국경과 지역을 넘어  노동자를 이러주는 네트워크" 그 목적과 취지를 밝히고 있지만 저희 대중이라는 노동자들을 대상화로 일관되게 치부하면서 운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더군요. 특히 소중한 조합의 자산을 운동의 경험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쉽게 취하고자 하는 태도와 대공장과 민주노총이라는 부피와 상급단위 중심의 운동을 지양해야 할 저희 자신이 이를 앞세워 더욱더 부추기고 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운동인지 아직 경험과 운동의 성숙이 무르익지 않는 저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을 때가 있지만 현재 생활속에 돈이라는 것이 필요하기에 상근비에 위존하여 별 생각 없이 돈이라는 것에 의존합니다. 운동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전문성 획득이라는 미명하에 저는 편하고 쉬운 운동을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속가능한 운동을 위해 상근비는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운동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취해할 것은 단체의 자기 대중과 운동의 독립성이  아닌 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직의 자기 대중과 독립적 활동이 없이는 재정적 안정은 한 곳에 의존하거나 사업체로서의 성격에 치우친 사업으로 일관되지 않을까라는 우려스러운 걱정이 듭니다. 운동과 사업은 활동의 형태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아무리 경험과 운동의 마인드가 높다고 자부하더라도 그 현장의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운동의 경험과 마인드는 개인의 산물이거나 아니면 상품 가치로 전락할 위험성이 농후합니다. 저는 지금 제가 속한  단체에서 주요하게 생각하며 일하고 있는 것은 평조합원들이 운동의 주체에서 노동자계급으로 정치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정보공유와 노동조합 활동의 투명성 그리고 노동조합간부와 평조합원들간의 일상적 소통공간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어 정보통신이 아주 주요한 매체라 생각되어져 학생때 고민하던 활동을 접고 다른 형태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현재 노동운동의 위기이니 노동조합의 위기이니 하는 많은 위기론을 극복할 주요한 수단이라는 생각때문이었죠... 그러나 현재 인터넷은 급소하게 확산되어 노동조합 대부분이 자신의 조합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지만 제작과 운영에서 부터 활용까지는 아직 멀게만 느껴집니다. 저는 노동자들이 성숙되고 운동의 주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제가 친한 사람들과 과거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을 만나면 그토록 부정하던 맨세비키적 사고들을 많이 하고 있더군요. 그 이유는 대게 계급주체 형성이 아직 남한내에서는 멀었다.

이에 전문단체들이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하는 선진활동가들을 지도하고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전문성 있는 단체들이 정치/경제투쟁을 책임지고 노동자들에 대한 의식적으로 지도를 획득해야 한다라고 말하더군요. 주체형성이 더디기에 단체들이 노동자들이 할일을 책임지겠다는 발상과 주도권 쟁탈 양상은 대중들을 운동으로 부터 괴리시키는 현상을 발생하였던 과거의 오류들을 여과없이 일상활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닌 곳이 있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많은 수 있겠으나 현재 제가 보기에는 별반 다른게 없다고 생각되어
 지더군요. 어느 주요한 파업투쟁이나 노동조합 활동에 생생내며 자기 조직들의 공을 부추겨 세우는 모습을 보며 아직도 남한운동내 조직의 활동 성숙은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가져봅니다.)
 
열정이라는 초기 순수성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모든 사업에 돈 때문에 고민하는 활동가들을 보면서 과연 활동의 지속성을 위해 수익사업에 매몰되고 모든 활동의 초석을 민주노총 또는 노동조합에 의존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조직의 운영을 위해 회원구조를 통한 독자적 재정 기반이 있어야 하거나 전문성(연구소/정보통신단체/문화단체 등)있는 단체들이 자기내적 구조를 갖고 있지 못한 아쉬움이 듭니다.
 
오랜기간 운동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안정되고 생활이 지탱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정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이 과연 운동이라는 것을 위해 필요한 수단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아직도 많은 단체활동가들이 단체일과 과외라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나마 안정적 운동을 보장받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그렇지 못한 분들에 대한 미안함이 동시에 들더군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안위와 관성에 젖은 저를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돈을 벌기위해 운동을 한것이 아니지만 다른 활동들을 벌이면서 재정적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비용을 대체하지 않기 위해 단체들에게 돈을 빌려준 사체업자 처럼 행사하고 있는 지금 저의 모습에 제 자신이 놀라곤 합니다.(노동미디어 공동의 서버를 운영하면서 단체들에게 꿔준돈  받는 심정으로 돈을 걷는 저를 보며 광녀 노동미디어 공동의 서버라는 것은 무엇 을 위해 출자받았는지 몇 안되는 대규모 단위의 파업과 미디어 활동을 위해 분명 구축한 것은 아닌데.... 돈이 없으면 지원받거나 혜택을 받기가  어렵
 다는 것을 생각하며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 죄스러울따름입니다. 노동조합은 조합비와 돈이 있는 곳이기에 당연히 돈을 받아야 한다는 이 고정된 관념의 문제성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일상 그리고 활동에서 고민되는 것은 상근비를 받기위해 운동을  하는 것인지 활동을 위해 상근비를 받아야하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조직이 개인의 활동을 책임지기 위해 상근활동비와 활동을 보장해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문제이지만 그 상근활동비를 마련하기 위해 하는 일들이 과연 운동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요즘들어 부쩍 들더군요.

상근비를 버는 행위 그자체가 이제는 자본의 상술과 별반 다른게 없다는 생각만 하면 할수록 저의 고민들은 증폭됩니다.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활동비를 마련하는 것이 이제는 활동을 위축하고 정체성과 활동을 위축시키고 운동이라는 기능을 축소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할 수록 운동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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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 등록일
    2004/08/07 16:37
  • 수정일
    2004/08/07 16:37

노동운동에 꿈을 갖고 학교를 졸업하고 노동단체 활동을 한지도 언 6년이란 시간이 흘러갑니다.

처음 인천이란 동네에서 단체와 현장일을 해보았지만 무르익지 않은 인식의 부재로 현장생활과 노동단체 활동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뜻을 접었고, 지금 활동을 지향할 수 있게 만든 단체에 머문지도 언 2년하고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일 한것도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시간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서울에 위치한 노동넷이라는 단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나 풀리지 않는 갈증과도 같은 고민만 날로 증폭되어만 가고 있습니다.(투쟁은 무형의 산물이라 믿었고, 노동자의 헤게모니에 의해 정세는 규정되어지고 투쟁지형은 만들어진다는 말이 지금도 유효한가라는 의구심이 들더군요.)
 다름아닌 활동의 방식에 대한 저의 부재가 가져다준 또다른 문제점이죠.
 
 학교때 생각한 사고는 활동이라는 공간과 잘 접목이 되지 않더군요.(남들은 학생운동을 운동에 속하지도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 이유는 부모님으로 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으면서 생존의 위협에 자유롭고 또한 학생이라는 인털리겐챠의 특성을 들어가며 말하더군요... 치열함, 열정, 투쟁은 있으나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좌절하는 학생운동에 대한 따끔한 질책이라 믿습니다. 학생운동이라는 말 자체의 궂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80년대의 학생운동 복원에 촛점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운동이라는 것은 활동가라는 자임의 오만에서  나오는 실천이 아닌 지향성이라는 과정의 단련속의 성숙이 아닐까 개인적 생각을 해봅니다. 활동가는 많지만 운동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적다는 개인적 생각을 해봅니다.)
 
 정보통신운동을 하면서 드는 딜레마는 활동을 지향하는데 많은 의문을 저에게 던져주었습니다.
 표현의 자유운동을 하면서 정말 산전수전 수중전을 겪고 다양한 방식의 사업들을 펼쳤으나, 결과는 냉혹했습니다. 그러나 더욱이 문제시 되어졌던 것은 법안이 통과가 정말 쉽다는 것이고,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고 대중적 운동으로 활동을 하고자 공대위를 구성하였지만, 이 문제는 역시 해결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해야 할지... 뭐라 할말이 없습니다. 정확히 초기에 비해 결합도가 낮아진 저로서는 무어라 말 할 자격도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이를 위해 고전분투한 분들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저는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업습니다. 그리고 공대위 같은 느슨한 운동체는 시기에 의해 만들어지는 비상설투쟁체이기에 이러한 운동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개인적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유의 준거는 저는 우리의 운동 이 언제부터 대중적이고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매너리즘과 대리주의 빠져 운동보다는 공대위 안의 힘의 역관계에 의해 공대위 활동이  파행되어지고 있기에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인터넷공대위가 이렇게 운영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정말 저를 뺀 나머지 운영위원과  운영위원장님의 헌신적 활동이 있었기에 아직도 투쟁은 유효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후 활동을 하더라도 공대위 같은 방식의 활동은 대중화시키는데 결코 유효한 전술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올해 7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이 난 전기통신사업법 53조 개정안이 정통부의 국회로비로 통과되었다라는 글귀, 헌신적으로 활동을 진행하던 한 활동가의 이야기를 통해 정말 무기력함과 투쟁이라는 말은 말처럼 쉽지않다는 것을 또다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하기에 누가 겆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어렵다라는 말과 투쟁을 함께하자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하지 못하였습니다.   같이하지 못한 죄스러움과 동지를 혼자 그 힘든 역정에 내몰았다는 자책감에 그냥 말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저에게만 벌어지는 현실이 아니라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투쟁은 무형의 창조물이라는 의미를 다시금 알 수 있었습니다.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의원 로비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활동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무기력함이 들더군요. 비판의 대상이 칼자루를 들고  있기에 그들을 설득하여야 한다라는 말에서 서글픔 또한 들지만 지금 처한 현실 조건이기에 더욱 냉혹하게 다가옵니다. 법이 만들어지면 폐지하기 힘들고, 그 법이 우리를 옥죄오는 것을 막기위한 최소한의 방법임을 알고 있지만... 우리의 선택이 아닌 최선의 수단이 국회로비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만 듭니다.
 시민운동 다양한 운동단체들이 늘어났지만 운동의 진일보가 아닌 퇴보가 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자들은 다양한 영역에 운동이 진행되고 있어  시민단체들의 사회적 참여와 시민권력이 형성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많지만 그 다양성에 의거 분열과 반목을 어떻게 설명할지... 다양성이라는 것은 시민이라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말장난에 불과하지 않을지...
 
 얼마지나지 않아 노동운동 또한 국회와의 로비가 이루어질까? 과연 노동운동 정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막연하지만 엄혹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저의 무르익지 않은 인식은 위의 국회로비, 공대위, 대중운동의 매너리즘이 만연 되어지고 지속된다는 미래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제가 인식으로 부재로 상황을 판단을 잘 못 할 수 있으나, 전술을 취함에 있어   저는 이후 운동에 미칠 파장력과 원칙이라는 기조에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개인적 생각을 갖게 되더군요. 그래야 저또한 운동이 존속됨속에 운동을 삶으로써 지향할 수 있으니까요... 요즘 집앞의 냇가에 나있는 길을 자주걸으며... 무서운 상상을 해 봅니다. 운동이 없어진다... 일본의 극우파 대두... 운동권의 시민세력화 등등.. 그냥 엄울한 상상만을 해봅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운동의 주제이고, 주체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지 않고 지도와 피지도의  수직적 관계설정... 대중과 활동가라는 이중적 잣대의 태도는 또다른 대중과의 괴리만을 증폭시킬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이 떠오르더군요.
 관계의 최고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이라고, 과연 우리는 "입장의 동일함"을 획득하면서 운동이라는 일상적 행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간장 오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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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시대는 가고 실리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 등록일
    2004/08/07 16:18
  • 수정일
    2004/08/07 16:18

선배의 말에 대해 이제는 저는 부정하려 합니다. 열정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현실은 열정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으나까요.

학생운동시기 조급성 그리고 정세적 주객관적 조건에 대한 인식의  미비로 운동을 제단하려는 습성을 버리기 위한 저의 작은 노력이라 하겠습니다.
운동의 획득된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지탱해 나가는 것이니까요 .

선진활동가 그리고 직업적 활동가로 구분되는 혁명시기의 필요한 활동가의 상은 이제는 다시금 재정립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운동을 알기에 부족한 나이에 운동을 선엄적으로 재단했던 과거의  요인들 에 대한 자명한 비판을 해보려 합니다.



레닌에 의해 주창된 민주집중제라는 사회주의 모델링에 대하여 우린  기계적 도식을 통해 정세적 공세기로의 전화를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의 미성숙함은 현실적 토대를 주요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87년 노태우의 6.29선언에서 명시된 "대통령직선제"? 진행은 운동에 있어 지금 하나의 질곡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선거에 있어 혁명을 바라지 않았지만 대통령지선제를 통한 운동권의 정치운동의  대두는 현실운동의 대안세력으로서의 가능성이라는 정세적 인식에 기인하였지만 그 당시 운동을 하였던 사람이라면 자명히 알것입니다.


얼마나 무모한 생각이었던 가를.... 민중의 당, 민중당 교훈은 아직도 자세한 비판적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운동세력들의 민중의 독자적정치세력화(이하 민독정)은 지금 표류히고 있습니다. 선엄적을  통해 획득될 수 없는 계급투쟁의 지형들을 우린 현실 정치를 위해 파편적으로 왜곡하고 실질적 사민의 발호를 용인하고 있습니다.
 
89년 부터 불기시작한 동구사회주의 붕괴 그리고 한국에서 실업적으로 전개된 합비합 동시건설론은 맹아적 잔재를 저해하는 극단을 몰고 갔습니다.
 
이러한 사안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직도 학교 책상 서랍에 남아 있을 92년 진보와 지성이라는 책을 내고 공개학생정치조직운동(이하 공개학정조)의 대중에 대한 양적 측면만을 강요하게 하는 문제점을 낳았습니다.


현실 비합에서 운동을 하던 이들은 생활과 활동반경의 협소성 개인의  전망부재로 하나둘 비합에서 합으로 전화하며 운동의 양적인 측면을 상쇄시켜 놓았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우린 상당히 맹아적 조직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열정이라는 시대의 표상이라 말하며, 동구사회주의로 대별되는 사회주의권 붕괴를 현실적 문제로 대두시켰으며, 대안적  이념모색(사민의 발호와 개량적 흐름으로의 전화)을 통해 포스트주의로  회귀하는 기이한 현상을 초래하였습니다. 또한 밀려오는 이론의 늪에  빠져 합리화를 위한 운동권들의 모색의 시기였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실패는 아마도 예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중 노동자계급적 시각에 대한 명확성들은 수립하지 못하였습니다. 정세조건의 변화속에 첨예하게 대립되는 노동운동의  공세적 투쟁은 전체 노동계급운동으로 전화이기 보다는 대공장 그리고 남한 운동의 미성숙으로 인해 암울한 침묵으로 몰고 갔습니다.
 
지금 자명히 들어나고 있는것은 노동자계급들의 역사주체임을  다시한번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늘 노동자들은 투쟁을 전개해 왔던 것인데... 운동을 지향하는 분들은 큰 것 그리고 운동의 파장력에만 기대 사소한 것들에 대해 중요한 고리에 있어 포문들을 확립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이러한 과정들은 노동자계급들의 투쟁에서 자명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열정의시대 실리의시대라는 그런 운동의 관념적 태제를 이제는 버리려 합니다.
운동은 늘 존재하는 것이며 일상인 것 같습니다.
자기 도그마에 빠져 운동이라는 것에 대하여 거창한 것 그리고 무언가 감동과 파장력을 주는 것이라는 올바르지 못한 인식에 대해 이제는 하나 둘 비판을 통해 저를 추스려 볼라 합니다.

운동은 인생의 긴 여로라 생각하며....
그래서 이제는 서둘고 싶지 않습니다. 보다 천천히 더디게 가겠지만 이를 통해 제가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습니다.

그들과 투쟁속에서요...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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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칼럼을 보고나서

  • 등록일
    2004/08/07 16:07
  • 수정일
    2004/08/07 16:07

진보넷에 입주한 게시판중 가장 읽을 만한 게시판을 꼽으라면 전 단호히 하종강 칼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게시판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를 이어주고자 하는 하종강  선생님의 글속에 뭍혀 있는 흔적과 지금도 노동자계급에 대한 신심어린 열정을 버리지 않고 있는 그분의 현재 모습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설날 사무실에 홀로나와 하는 일 없이 빈둥대고 있다. 게시판에 있는 글  모두를 읽으면서, 전 아직도 열정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발견과 무엇보다도 존경스러운 것은 스스로 활동가임을 자임하지 않는 그분의 성품을 보면서 무한한 경의감과 존경심이 우러나오더군요.


현재 스스로 운동가임을 자임하는 사람은 많지만 하종강 선생님처럼 스스로 현장노동자들을 위해 365일 불철주야 몸소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노동운동 발전에 이바지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개인적으로 판단을 해봅니다.
 
우선 매우 놀라운 것은 87년 울산의 노동자 대투쟁을 시발로한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노동조합의 초기적 고민을 보면서 매우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현재  노동운동의 상태에 대하여 재고찰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선 제가 매우 놀란것은 87년 노동운동의 역사적 페이지를 장식한 투쟁의 요구 안에 대한 놀라움입니다.

 

당연히 현재상태를 보면 노동자계급의 정당한 권리라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사항들이 나열되었겠구나하는 생각들에 쇠망치를 두드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연한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막연한 생각속에 투쟁에 대하여 미학화  시켰다라는 반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87년 울산 노동자대투쟁의 요구안 즉슨(하종강 선생님 칼럼에 기재된 내용)  첫번째 요구안이 두발자율화, 두번째 요구안이 복장자율화,,,, 그리고 현재  임단협안에서 주요하게 논의되고 있는 내용인 임금인상 내용과 노동자 복지후생이라는 내용은 순번이 그리 높지 않게 한 10번째 나열되었다고 하더군요..(하종강선생님도 친구에게 전해들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의 내용에 대하여 믿기지가 않아제차확인을 하였으며, 이것도 믿기지 않았는지 직접 유인물에 쓰인 문구를 보고서야 확인하였다고 하더군요.)


현재 노동자들에게 있어 대공장의 상징과 노동자들의 상징물로 여겨져 있는 작업복이 그 당시에는 중고등학생의 교복처럼 공돌이의 표상이었다는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쉽게도 작업복이 노동자들에게  대공장과 중소사업장을 나뉘어주는 갈림길이 서있는 지금... 그전의 당시의  생각과는 너무 상반되어 있어 좀 머리가 복잡하더군요...
 
하여튼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다름이 아니라....
이만큼 노동운동 자체가 역사적 발전을 해왔다는 사실이며,,, 현재 투쟁이 공세적 수세적으로 몰리고 있더라도 노동운동은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저 같이 조급증에서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단비와 같은 좋은 말들이 있숩니다...
 
설날에 사무실에 나와 하종강선생님의 칼럼을 하루종일 보면서 간만에 희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갑갑한 사무실에 벗어나 노동자들의 함성속에 파뭍혀 함께 지지와 연대를  통하여 이땅의 진보라는 씨앗을 한아름 길거리에 심어 놓았으면 합니다...
 
  진보는 한자풀이처럼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전진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밀리더라도 일보후퇴 이보전진의 자세로요...
 
  이게 일치단결의 기치를 높이 치켜들고 함께 전진할 때이니 까요... 10사람의 한 걸음 보다 한 사람의 열걸음이 더욱더 필요한 시기인 이마당에요...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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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열린우리당이란 거대권력 탄생

  • 등록일
    2004/08/07 15:51
  • 수정일
    2004/08/07 15:51

탄핵역풍으로 힘을 얻은 열우당이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제 1당으로 도약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제2여당으로의 등장은 한국정치사에 있어서 진보정당의 출범을 알리는 서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이상을 득표한 상황에서 애초 캐스팅보드로서의 역활을 자처하던 민주노동당의 국회활동이 많은 제약이 있지 않을까?라는 걱정과 노무현 정권의 노사로드맵, 이주노동자 불법체류 단속, 장애인이동권, 이라크파병, 세만금 간척사업, 부안핵폐기장 반대 등 산개해 있는 사안들에 어떻게 대응이 주목되는 바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민주노동당내의 여러계파간의 정치적 행보가 주목된다. 5월에 있을  민주노동당 당대표 및 임원 선출에 있어 당권장악을 위한 각축의 장이 될 것이란  전망이 예측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지역주의라는 낡은 구도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과제로  남았음을 우리는 전국 국회의원 당선현황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몰락은 보수진영의 새로운 판짜기의 서곡임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수중도개혁 성향의 열린우리당 등장과 수구보수세력인 한라당의 건재는 보수세력에 있어 개혁의 필요성이 부각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뉴 지역주의 등장과 열린우리당이라는 보수개혁세력의 제1당 등극...
뉴 지역주의의 구도는 남한의 동서를 가르면서 확연히 들어났다. 수구세력의  아웃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박근혜 한나라당의 박정희 향수와 눈물의 호소한  기반에 의거하여 수구세력의 일치단결의 결과를 가져왔다. PK와 TK 그리고  강원지역에서의 한나라당의 압승과 수도권, 충청, 전라, 제주지역에서의 열린우리당의 압승은 뉴 지역주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전국적 열린우리당의 고른득표와 경남권에서의 몇 석의 의석확보로 전국정당으로 발돋음하였다 자평하고는 있지만, 이는 크나큰 착각이다. 이번 선거가 미디어선거로 거야견제 대 거여견제론이라는 양당 대결구도로 치닫게한 미디어(공중파, 신문, 인터넷언론) 선거였기에 가능하였다.

그리고 또한 막판에 가면서 정책은 아예없었으면서 선정적 지역주의의 호도한 이들의 얄팍한 선거전술이 그 위용을 드러낸 결과의 초래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 기반한 정책선거였다면 아마도 군소정당도 고른 표를 얻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은지에 반문은 없고, 다만 열린우리당/한나라당의 양강구도의 득표, 민주당과 자민련의 총선 참패,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의 국회입성만으로 이번선거를  자축한다면 이 사회의 정당정치는 실종되었다 할 수 있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남한내 고착되어져 군소정당의 등장은 더욱더 어렵게 된 사실이 무엇보다 아쉽다.  정당의 다양성은 말종되고 기존 세력들의 세력규합과 합종연횡하는 남한 정치사의 현실은 아직도 멀었다 할 수 있다. 지역주의와 기존 세력들이 잔존하는 이상  남한내 진보정치 실현과 정치개혁은 먼 미래에도 오지 않을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든다. 한예로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공공연히 노동자 민중의  말에서 회자되지만 이 기치를 든 정당이 남한내 졸립할 수 없는 현실은 아직도  우리가 갈길이 헌난함을 증명해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열린우리당의 보수개혁 드라이브는 이제 순풍에 돛을 달았다 할 수 있다. 노무현이 추구하고자 하는 개혁은 작년 1년을 평가해 보자면 철저히 신자주의에 근거한 "자본주의 시장민주주의 구현", 민주주의 법치를 통한 세련된 노동자  민중통제, 국익을 가장한 친미외교(국익이라는 명분을 통해 자행한 이라크파병,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신무기도입에 따른 국방예산 증액 등)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반개혁적인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선봉장임을 여실히 드러났다.  이렇듯 노무현  정권의 실정은 개혁은 표방하나, 주요한 사안에 있어 한나라당과 차별성이  없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다만 차별성이 있다면, 한나라당과 다르게  시민사회세력들을 열린우리당 체제내에 편입시켜 이미지적 개혁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빼면 그놈이 그놈임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열린우리당이라는 개혁을 가장한 보수(수구보수가 될지 합리적보수세력으로 발전할지 알 수는 없지만)세력에 경계하고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지구화 전략에 대응을 위한 방안을 목소리 내어야 한다. 또한 열린우리당  등장은 내 개인적 사견으로 대중적 촛불시위의 종말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든다.


이제 이라크 파병반대, 한칠레 FTA 비준 철회, 이주노동자 불법단속 추방 및  노동비자 발급, 비정규노동 철폐, 테러방지법 재정반대, 경제자유구역법 폐지, 개정 집시법 폐지 등 현안에 우리는 주력하여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위 나열한 사안에 있어 철저히 관철시켜 나가며, 노동자 민중의 통제권을 세련되게  강화시켜 나갈 것이다.(권력이 속성이란 권력을 잡기 이전까지는 개혁적 의지를  표명하지만 권력을 찬탈한 순간부터 그 권력을 유지안정을 위해 보수세력으로 필연적 귀결됨은 우린 역사적 경험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열린우리당의 제1당 등극은 그야말로 사회진보진영의 새로운 판짜기가 될 것이다. 열린우리당을 심정적 지지한 시민사회세력과 이에 반하는 세력간의 균열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균열은 균열을 넘어 구별정립되어야 한다.


운동진영에 있어 정치세력화에 결탁한 세력과 그에 맞서는 세력간으로서의  재편은 사회진보운동진영의 운동적 진로를 결정할 중요한 단서이며, 민주노동당의 국회입성을 통한 입법운동이라는 전술을 펼치는 것은 결코 적절치 못하다.(내 개인적으로 국회입성한 민주노동당은 정책정당과 비제도에 맞선 의회 투쟁정당으로서 노동, 소수자(비정규/여성/이주/장애/동성애자)노동자, 민중들을 위한 투쟁및 제도개선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것만이 과거 낡았지만 보수대 진보라는 구도의 선명성을 낳을 것이며, 현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따른 총자본대 총노동의 대립구도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시민사회단체 저명인사의 정치등용문으로서 개혁세력 이미지를 존속시킬 정당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철저히 할 것이며, 주요 정책은 중도보수세력으로서의 자기입지를 확연히 드러낼 것이다.
 
 
 한나라당의 개헌저지선 100석 이상인 122석 의석확보의 의미....
 
50석 이하로 전락할 수구보수세력인 한라당은 박근혜라는 구원자를 얻어서  기사 회생하였다. 기사회생한 방법 또한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책은 실종하였고 과거 향수와 눈물을 통한 지역주의세력에 호소하며, 잘못하였으니 다시한번만 기회를 달라는 유치한 선거가 지역정서를 달래며, PK/TK지역의 표심을 갈랐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행위가 정치현실에서 자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지역주의라 는 낡은 사슬의 견재함을 다시금 각인할 수 있다.
 
과연, 한나라당은 합리적 보수세력으로 재편될 것인가? 나는 아니다라 단언코 말 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책적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지향하는 점에 있어서는 서로 상통하는 부분이 많기에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이  추구하고자하는 큰 틀에서는 별 이견없이 동조할 것이며, 사소한 부분에 있어 다소  불엽화음만 있을 것이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사례로, 이라크 파병/테러방지법/개악 집시법/한칠레FTA 등 큰 방향에 있어서는 서로 통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합리적 보수세력을 가장한 수구세력으로 명맥을 유지할 것이다. 이번 총선결과로 인해 대여공세에 있어서는 다소 주춤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의 지역구도를 안착화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지역주의를 조장을 위한 새로운 재편을 암암리에 모색 할 것이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퇴장....
제 17대 국회의원 선거는 3김 시대의 청산을 통한 뉴 지역주의 대두이다. 과거에 PK 맹주 김영삼, 전라 맹주 김대중, 충정 맹주 김종필이라는 지역할거주의가 이번 총선계기로 완전히 퇴장되었다. 이는 민주당과 자민련의 표심에서 확인되었다.
 
자민련의 퇴장은 이미 예견되어 있던 역사적 서막이다. 자민련 한때 충청과 수도권에서 50표 정도에 달하는 표를 갖는 제3당으로 굴림하였지만, 변화하는 정세인식을 간파하지 못한 김종필의 정세인식 부족과 지역주의에 근거한 정치행태가 표심으로부터 이탈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번 총선에서는 정당명부  비례대표로 10선을 노리던 김종필총재는 당선되지 못하는 현상을 맞이하였다. 이를 서막으로 이번 총선은 분명 3김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자민련은 지역주의에 의거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모색하였지만, 충청권의 표심은 열린우리당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자민련은 보수세력으로 그 지위를  상실하였지 만 자신들의 입지를 어떻게 극복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민주당은 추매애의 삼보일배로 민주당의 지역향수를 자극하였으나 결과는 탄핵심판과 정동영의 거대야권 견제론에 힘을 싫어주었다. 이미 예상된 민주당의  패배는 원내교섭단체 구성의 실패로 그들의 행보가 주목된다.
 
이번 탄핵심판은 확연한 양상을 나타냈다. 고착된 지역세력인 전라도와 경상도지역에서 전라도 열린우리당, 경상도 한나라당이라는 뉴 지역주의를 등장시켰다.


민주당은 탄핵후 폭풍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는 것을 반등시키지 못하고, 지역주의 당으로 전락하는 사태를 초래하였다. 이는 한국정치의 편가르기식  지역주의라는 구도를 민주당이 잘못 해석한데서 초래한 자업자득이 아닐지 개인적 판단이 든다. 그러나 민주당은 당분간 자신들의 전열을 가다듬어 다음 지자체에 권토중래를 위한 마지막 도약을 준비할 것으로 보여진다. 열린우리당의 국정운영에 그  승부수는 숨겨져 있을 것이다.
 
민주당의 역사적 퇴장으로 한국정치사는 이후  양강구도(열린우리당/한나라당)의 고착기로 심화확대될 것이다. 이후 민주당이 권토중래하여 3당 체제에 편입할 수 있을지 자민련과 같이 서서히 퇴장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자민련과 민주당의 퇴장은 3김 체제의 청산과 뉴 지역주의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대립구도로 점철되었다. 또다른 자본의 재편기에 과연 진보정치는 어떻게 새로운 구도 대립각을 새울 수 있을까?
 
 
민주노동당의 제3당 등극....
노동자 서민의 정당을 표방하며 당당히 국회에 제3당으로 입성한 민주노동당  활동에 많은 운동세력들이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 입성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불안요소가 남아 있다. 불안요소는 다름아닌 5월에 있을 민주노동당 당대의원대회(당 임원 겸임금지에 따른 당대표 선출과 당 임원 선출)라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노동자, 민중(도시빈민, 농민, 학생, 인텔리) 등  다양한 세력들이 규합하며 만든 진보정당이기에 이번 선거선전은 이들에게 있어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이전투구의 장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든다.
 
5월에 있을 당 대표 선출과 당 임원 선출에 따라 민주노동당의 행보가 결정될 것이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진보운동연구소(민족민주운동진영)에서 나오는 자료를 보면 민주노동당을 기반으로 한 농민, 민중의 통일지향적인 2010년경 건설이라는 내용을 보면서 민주노동당의 지금의 축배를  들기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세우지 못하다면, 정치세력간의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질될 위험성이 농후하다는 판단이 든다.

분명한 것은 민주노동당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선승리에 도취된 나머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못한다면, 민주노동당이라는  당명은 물론 당의 진보정당이라는 취지에 막대한 위상이 훼손될 위험성에 놓여있다.


이번 당대회가 민주노동당에게 있어 발전이냐 위기냐의 판갈이될 중요한  사안이 걸렸다.(당을 헌실적으로 가꾼 이들이 있기에 이러한 일은 추호도 위심할 여지가 없다고 보여지나 과거 한국운동진영의 행태를 봐왔을때 세력간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이전투구를 통해 유의미한 투쟁들이 맥없이 사그러 들었음을 주지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우려는 있어서도 발생해서도 안되지만.... 결코 없기를  바래본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이번 선거에 자만하지 말고, 자신의 정책내용을 보자  풍부히하기를 바란다. 민주노동당의 정책전반에 걸친 좋은 성적을 받았겠으나 정책이라 함은 실현되었을 때만이 정책목적이 다할 수 있다. 꼭 이번에 제시된 공약이  문건과 토론용 자료가 아닌 실현가능한 법 제도로 구현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민주노동당의 정책적 선명성도 명확해지기를...
 
군소정당의 해산....
개정된 선거개정법에 의해 국회의원 선출자 또는 비례대표 전체득표수 3%이하 정당에 대해서는 당 해산이 된다. 이전에 비해 강화된 선거개정법에 의해 국회의원을 배출하지못한 당과 비례대표 3% 미만의 당은 해산과 더불어 재창당을 할 수 있는 요건도 까다로와 졌다.
 
제17대 선거에서 사회당과 녹색사민당을 제외하곤 노동자, 민중들의 계급적 이념을 표방하는 군소정당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군소정당 등장은 민주주의의  다원성과 다양성을 통한 정치발전의 필요한 요건임에도 불구하고 남한 정치진영에 있어서 좀처럼 틈바구니를 해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조건이다. 민주노동당의 경우에도 군소정당으로서 설움을 톡톡히 맛보지 않았던가?
 
사회당이라는 진보정당과 계급정당을 표방한 군소정당의 해산은 정치사의 불운이라 하겠다. 사회당의 해산이 사회당원들만의 당 해산이겠는가? 반쪽  진보정당의 해산이요, 계급정당의 해산이 아니겠는가? 이후 계급정당을 목표로 출마하는  많은 계급진영의 반쪽의 실패라 개인적 평가하고 싶다.
 
이 땅에서 다양한 정치세력들의 각축을 통한 진정한 부르주아민주주의 성립은 언제쯤 도래할 수 있을지.....
 
 이번 총선은 여대야소/진보정당 의회진출이라는 커다란 이정표를 남겼다. 그러나 이러한 이면엔 아직도 길거리를 떠돌고 있을 실업자/노숙자, 불법단속에 의해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장, 이라크 파병철폐, 신용불량으로 내몰려 자살을  고민하시는 신용불량자 등 다양한 이들에게 이번 총선은 과연 어떠한 의미였을까? 과연 이들에게 다른 415가 되었을까?


선거일만 되면 자신도 모를 췌면과 마법에 걸리는 이땅의 노동자 민중들... 그들에개 정치적 결단과 희망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열린우리당의 제1당 도약은 내 개인적으로 제일 무서운 사건임은 틀림없다. 민주주의라는 다수의 횡포에 우린 또 무기력하게 대응하지 못할 것이며,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무수히 많은 노동자 민중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 불보듯 뻔한 현실로 다가왔끼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총선이라는 마법과 자기 췌면에서 벗어나 시급한 현안인 이라크  파병반대, 개정 집시법 반대, 장애인이동권 쟁취, 비정규직 철폐, 불법 이주노동자 추방단속 저지 및 노동비자 발급 등 산개된 현안 투쟁에 일치단결하여 투쟁을 전개하여야 한다.
 
정치권력과 자본의 속성에서 보여왔듯이 정권을 잡으면 어김없이 노동자  민중의 탄압을 필연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는 탄압에 맞선 투쟁과 개선할  과제들을 길거리에서 제17대 국회의원들에게 던져지자.... 그리고 투쟁하자!!!!
 
간장 오타맨...
 
 P.S 밤을 세워가며 총선방송을 보고 아침 신문을 보면서 들었던 잡생각과 열린우리당의 제1당 등극에 대한 두려움이 들어 잡생각을 끌적여 보았습니다, 주인장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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