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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9/18
    일요일 호주제폐지 토론회를 보고 든 생각...
    간장 오타맨...
  2. 2004/09/18
    비디오를 봄,,, 연휴라 좋군요.
    간장 오타맨...
  3. 2004/09/18
    주인장 서명 멋있습니다. 나도 뜨거운 눈물 흘리고파..
    간장 오타맨...
  4. 2004/09/18
    아쉬움...
    간장 오타맨...
  5. 2004/08/31
    1999년 4월 지하철 파업
    간장 오타맨...

일요일 호주제폐지 토론회를 보고 든 생각...

  • 등록일
    2004/09/18 15:18
  • 수정일
    2004/09/18 15:18

KBS에서 호주제 관련 토론회를 하기에 간만에 TV를 경청하였다.
이 토론회에서 주요하게 호주제 찬성/반대로 양분화하여 각 진영에서 3인이 나와 호주제에 대한 입장들을 개진하는 것을 보면서 여러 잡생각이 들었다.


특히 호주제와 관련해서 반대하는 입장은 유교적 전통과 사회적 윤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 같았고, 호주제를 주장하는 곳에서는 한국의 근대화를 통한 패러다임의 변화 그리고 가족이라는 사회구성원의 조건의 변화,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당해야할 억압과 차별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토론회에서 아쉬운 것은(다른 토론회도 마찬가지이지만) 이해 당사자가 아니기에 쉽게 사안을 인식하고 말을 한다는 것이다.

 

철저히 족보체계라는 혈통주의가 낳은 산물....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혈통주의는 태생으로 인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던 고대사회와 봉건제 사회의 폐단을 발단으로 가족이라는 구성원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폐단은 만연된 남성들의 가부장적 권의를 부추기며, 사회는 이에 대한 여타의 안전망을 만들어 내고 있지 못하다. 유교적 정신만을 내세우면서 철저히 여성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혈통주의는 남성이 이 사회를 힘으로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기에 아직도 이 폐단은 허물어 지고 있지 못하다. 아니 허물어 트릴수 없는 덕목이 되었다 한다.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그들의 입장.... 호주제가 된다고 해서 사회가 해체되고 나라가 망하지 않는데 생날리가 난 것 처럼 호들갑 떠는 것은 자신들의 지배적 지위의 약화에 대한 불안감에 대한 역공격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이 아니기에 호주제 폐지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것이다.

남성은 역사적으로 계승(원시공산제 사회를 제외하곤.... 원시공산제는 철저한 모계중심의 사회였음.)발전한 남성 가부장주의의 권력의 달콤한 그리고 남성으로 살아가면서 느낄 수 없는 성차별의 폭력과 억압에 대한 느껴보지 않았기에 그들은 호주제 폐지의 목소리를 묵과하고 있으며, 호주제가 폐지되면 무슨 혁명이 일어나는 듯한 반대의 목소리를 드높이지 못하고 있다.

 

왜 한국사회가 호주제 폐지가 현실적 대안으로 나오는지에 대한 사회적 현상은 목도하지 않는다.


신문지상을 보면 이혼율 증가, 그리고 재혼율 증가 현상만 본다면 이런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고통과 이로인한 사회적 편견이 만연되어 사회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없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녀평등에 기인한 성명에 있어서의 선택권이 원초적으로 박탈되고 있으며, 남성중심적 사회이다 보니 남편이 죽어도 호주가 어머니가 아닌 아들이 되는 기현상을 낳는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보호자가 어머니가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남성이라는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조차 인정되지 않는다. 그들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또한 호주제가 만들어내고 있는 문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나 또한 이 당사자가 아니기에 구체적으로 모른다. 여성이 아니기에.... 단지 우리 어머님이 겪었을 고통만을 내가 살아오면서 느낄 뿐이다.(어머님이 재혼하셨기에 알 수 있다. 내가 아주 어릴적.... 나 또한 양아버지가 있지만 부계성을 따르기에 어디를 가던 김씨로 살아야 한다.)

 

나는 잘 모르지만.... 여성으로 당해야 할 억압과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히 밝히고 싶다.  여성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존재는 하지만 관습적이라는 타파되어야 할 억압적 도구에 의해 철저히 묵살된다. 여성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에 대하여 보장을 받고 있는가.... 호주제 폐지 사안만 보더라도 여성은 소수자를 떠나 헌법에 보장된 국민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조차 구제받고 있지 못하다. 유교적 규율과 규범이라는 관습이라는 혁파될 대상으로 말미암아서.... 호주제는 분명 폐지되어야 한다. 또한 성씨 또한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당 사자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호주제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한국의 망하지 않는다. 유교적 관습과 보수우익의 담론에 쪄든 기득권 계층이여 각성하라. 그렇다고 지구가 하루아침에 소멸되지 않는다. 그동안 잘못되었던 사회규율을 바로세우는 일에 제발 안티나 걸지 말기를 빌며....

 

횡수를 마칠까 합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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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를 봄,,, 연휴라 좋군요.

  • 등록일
    2004/09/18 15:15
  • 수정일
    2004/09/18 15:15

저번주 토요일부터 추석연휴라 집에서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비디오를 감상하였답니다. 영화관을 가지 않는 관계로 좋은 영화가 비디오로 나오면 주말 또는 주중에 한편이라도 비디오를 감상합니다.

 

이번에는 국화꽃향기, 선생 김봉두, 정채봉 선생님의 동화 오세암(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나왔더군요. 이전에 KBS TV문학관에서 보았었는데 참 좋은 동화인것 같더군요. 슬하에 자녀가 있는 분들은 함께 비디오를 집에서 자녀들과 봐도 좋은 애니메이션인것 같습니다.) 등을 보았답니다.



국화꽃향기를 원작인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영화 자체가 아름답게 꾸며졌더군요.
시대배경도 이전 80년대를 형상화하여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국화꽃향기를 보면서 알퐁스 도테의 "별"이라는 단편소설이 계속 머리에 맴돌더군요.

국화꽃향기에서 인화와 희재의 사랑을 보면서 별에서 스테파네트와 목동이 별이야기를 하면서 주고 받던 글귀가 영상화되면서 희비가 교차하던군요.

 

국화꽃향기를 보면서 순수하다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실이 아닌 소설이라지만, 이성간의 사랑이 현실에서 많이 퇴색되어지는 지금... 국화꽃 향기 같은 순수와 낭만 그리고 가슴이 저밀어 오는 듯한 슬픔(사랑하는 부인의 죽음. 참 진부한 스토리이지만 순수함 속에서 서로간의 사랑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결혼하고 난후 희재가 남편인 인화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 밖에 하지 못했다는 독백을 하면서 딸인 재인이에게 말하는 대목 하늘아 사랑해, 나무야 사랑해, 바다야 사랑해,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라는 한지로 만들은 그림책을 읽는 대목과 아이에게 이야기해주는 것 아빠 사랑한다는 말 많이 하라는 대목,,, 그리고 희재가 딸은 낳고 죽으면서 한 말 내 영혼에 당신과의 기억을 차곡차곡 고이모아 가져간다는 말할때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

국화꽃향기와 별이 저에게 대비되는 것은 알퐁스 도테의 별은 프랑스에서의 빠리꼬뮨이 실패한 후 민중들이 성적욕망으로 분노를 삭히던 시기 순수함이 무엇인지를 사회에 일깨우기 위해서 쓴 책이라는 것을 얼픽 국어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기억이 나더군요. 혁명의 실패와 사회적 혼란 그러던 혼란시기 순수가 사장되고 욕망의 시기에 대한 작가의 아픔을 글로써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 별에서 목동이 스테파네트를 보면서 생각한 독백.... 내나이 스물이기에.... 농장주의 딸이면서 그 동네에 뭇 사내들의 흠모의 대상이 었던 스테파네트를 목동이 느꼇을 순수함이 별에서 잘 나타납니다. 국화꽃향기도 순수라는 것이 이제는 진부한 옛 것으로 치부하는 현실에 대한 자그마하지만 가치있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선생 김봉두를 보면서 우리의 교육현실을 바라보게 되더군요.

촌지 그리고 학군이 좋다던 8학군지역... 보다 선생님으로부터 관심을 갖기 위해서라면 두손 두발 다 걷어 붙히는 우리내 어머니들 모습.... 지극한 사랑이 때론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라는 구도를 교육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시키는 현실을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첨단시설과 우수한 선생님들이 포진되었고, 학원가를 떠도는 우리내 청소년과 아이들이 산과 들 그리고 시냇물과 강가에서 자연을 벗삼아 뛰어놀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선생 김봉두를 보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휴먼 드라마라 선생님의 순수한 어린아이들의 동심에 감동받아 자신의 볼래 모습으로 되돌아 가는 장면.... 그러나 아쉽게도 6학년 학생의 졸업 후 학교가 폐교된다는 것들을 보면서 저도 유년시절 약 10리길(1Km=2.5리, 4Km) 걸어서 면에 있는 시종국민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더군요.(저희집은 영산강이 흐르고 조금만 나가면 서해 앞바다가 있어 농사일과 어촌일을 하던 대략 40가구의 친척이 모여사는 동네였습니다. 전라남도의 경우 대부분의 시골 마을들이 성씨가 동일한 문중(친인척 관계로 모인 마을 분들)을 이루고 사는 동네였지요. 지금은 강산이 변해 영산강하구 수로를 내어 강이 흐르지 않지만, 아직도 노루, 꿩, 토끼, 다람쥐, 산새, 학과 두루미 등을 볼 수 있는 동네입니다. 조금만 나가면 들풀 숲 속에 노루새끼들을 볼 수 있는 재미도 있답니다. 그래서 인지 저는 흙과 물과 바람에 흠뻑 젖어 살수 있었으며, 여름엔 동네 할머니들로 부터 무서운 귀신과 도깨비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박과 참외를 실컷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도시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었는 일들이죠. 그리고 동네에 텔레비젼이 별로 없어 김일의 레스링 경기와 드라마(여로와 수사반장)를 보기 위해 온동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텔레비젼을 시청하던 기억도 있구요. 모기불을 피워놓고 쌀가마니로 쏟아지는 별들을 보면서 정말 좋았던 기억들이 납니다. 이제는 이것도 도시생활에 젖어 추억이라는 것으로 밖에는 꺼낼 수 없는 오래된 기억 앨범이 되었지만 말이죠.)


도시는 모든 것을 갖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지만, 도시 문명에 수혜를 받지 않아도 시골의 특수한 가치가 있습니다. 단지 공기가 좋다. 자연이 경이롭다 라는 것이외에도 시골에 많은 것이 있습니다. 선생 김봉두를 보면 간접 경험을 시골 분들의 간접 경험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내음이 무엇인지 흠뻑 취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세암을 보면서, 또 다시 행복한 놈이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두 남매 처럼 이런 처지에 놓이지 않았고, 늘 부족하지만 그래도 행복이 있었던 유년시절을 보낸 저로서는 그리움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도시로 나오기 전까지는 그러나 오세암에서 나오는 두 남매(누나는 시각을 읽음. 스토리 중간에 나오는 회상 영상을 보면 엄마와 두 남매만 사는 집에 불이나서 어머니가 두 남매를 구하고, 불길에 휩싸여서 죽음을 맞이함. 이것을 모르는 남동생(남동생이 갓난아기 시절 집이 화재가 나서 어머님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름.)은 어머니를 그리워만 하고, 어머님이 죽었다는 사실을 동생에게 알리지 못하는 누나는 마음속으로만 어머님을 그리워 하며 동생에게 말을 못함. 남동생에게 누이는 어머니인 동시에 아버지 역활을 함. 그런 동생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누이의 고운 마음을 보면서 이 글을 쓰신 정채인 선생님의 따뜻함 마음을 훔쳐볼 수 있었다.


누이가 화재로 시각을 잃어버려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남동생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남동생의 누이에 대한 사랑은 영화 중반에 동네 아이들이 누이를 괴롭히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누이를 지키기 위해 다섯살난 아이가 자신보다 더 큰 아이에게 덤비는 장면, 그리고 엄마가 없기에 더욱 더 서러운 남동생, 코피가 나지만 누이에게 근심을 주지 않기 위해 콧물이라 말하지만 괴롭히는 아이들은 비웃기라도 하듯 코피라 말한다. 그리고 남동생은 괴롭히는 아이에게 덤벼서 그 아이가 코피를 쏟자 그 괴롭히는 아이의 어머니가 와서 남매에게 무심히 던지는 말들.... 남동생은 끝내 도망치면서 엄마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 나도 코피를 닥아줄 엄마가 곁에 있었으면, 남동생은 엄마가 돌아가신 것을 모른다. 저녁 늦게 잠든 남동생에게 누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면 이야기 하지만 동생은 피곤한지 꿈나라에 빠져 고이 잠들었다. 동생은 바람의 소리를 배우기 위해 스님을 따라 오세암으로 향한다, 향하지전 누이는 착한 동생을 잘 보살펴 달라며, 석탑을 돌며 기원한다.

 

오세암에 도착한후 얼마지나지 않아 스님은 물건 살것이 있어 큰 눈이 내리기 전에 마을에 내려가 장을 볼러 간다. 내일면 온다는 스님은 큰 눈으로 더이상 암자에 오르던중 사고를 당해 오르지 못하게 됨. 스님을 기다리던 남동생(이름이 길남이 임.) 스님이 가지 말라고 하던 암자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관세음보살이 모셔진 법당에 들어가게 된다. 엄마가 그리웠던 남동생 길손은 관세음보살을 보고 엄마라 부른다. 그리고 오세암에서 길남은 아기보살이 됨. 추위와 배고픔으로 인해 길남은 죽어서 아기보살이 됨. 스님과 누이가 왔을때 승천하는 길남을 보게 됨. 누이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겠다는 길손은 승천하면서 누이의 시력이 되돌아 오게 됨.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 애니메이션 오세암을 직접 보는게 감동을 더 할 것임.

참 좋은 비디오를 볼 수 있어 기분 좋은 연휴인 것 같습니다. 또 어떤 비디오 감상을 할지 고민이 됨. 그냥 비디오 숍에 가서 골라봐야쥐.... 마지막으로 오세암 애니메이션이 끝나면서 자막으로 흐르던 정채봉 선생님의 시를 여기에 끌적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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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하늘 나라에 가 게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데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 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 바치고
엉엉 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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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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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 서명 멋있습니다. 나도 뜨거운 눈물 흘리고파..

  • 등록일
    2004/09/18 15:09
  • 수정일
    2004/09/18 15:09

주인장 서명이 10월 들어 두번 바뀌었군요. 이 중에 최근 바뀐 서명 "언제쯤 뜨거운 눈물을 흘릴수 있을까" 정말 멋있는 말입니다.

 

살면서 눈물을 안흘려 본 사람은 없지만, 뜨거운 눈물을 흘린 적은 몇 차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눈물이 뜨겁다는 것은 아니죠... 희열의 정점에 다다른 눈물을 흘린 적 과거엔 몇번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눈물 흘린 겨를도 그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계기도 그런 눈물에 기대어 나를 추스릴 수 있는 용기도 그런 눈물을 흘릴 자신도 그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주인장이 표현한 것을 곡해/확장 해석 할 수 있으나 내가 느낀 바 그런 눈물을 비유한다면 딱 5번 그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은 91년 강경대 열사 투쟁시기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앞에서 전경과 대치하면서 보름을 신촌바닥에서 노숙투쟁으로 시위를 하던 시기이고, 두번째는 김귀정열사 투쟁때 백병원에서 였고, 세번째는 처음으로 들어간 신내동 철거투쟁때 철거대책위원회(철대위)가 내분으로 해체될때 였고, 네번째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였고, 다섯번째는 내가 아끼던 후배의 죽음이였습니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번 운다라는 말(태어나서 울고, 부모님이 돌아가실때 운다 정도)에 전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울음 그 자체는 인간만의 전유물도 아니고, 더더욱 남자의 전유물일 수 없기 때문이며, 인식을 갖고 있는 모든 만물이 다 가지고 있는 특성입니다. 전 우리집 소 누렁이가 자식이 팔려갈때 서글피 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울음을 비유해서 표현한다면 닭똥같은 눈물이라 하겠지요. 앞으로 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라는 의문 또한 듭니다.

 

내 삶에서 과연 과거처럼(잘 몰랐지만 열정이라는 미숙함과 무모함이라는 용기가 있었던 시절.... 잘 몰랐기에 이런저런 일도 할 수 있었고, 그러하기에 힘들하고 아파하고 그런 과정속에 미숙함이 조금은 성숙함으로 변하던 시절) 그런 일상적 삶을 지탱할 수 있을지 잘 판단되지 않고, 솔직히 말해 그런 용기가 없기에 자신 또한 없어지더군요.

 

그러나 저에게 이런 계기(과거의 눈물처럼 슬프도록 복바쳐오는 눈물은 흘려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그런 감성까지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용기와 자신감을 전당포에서 찾고 싶은 개인적 바램이겠죠.)가 도래한다면 흐느껴 울고 싶습니다.

 

"엄마가 휴가나온다면"의 싯구절 후미에 쓰인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 바치고 엉엉 울겠다"라는 싯구절 처럼...(정채봉선생님 시가 저의 가슴을 때리더군요.... 애니메이션 오세암 후미에 나온 시가 좋아서 외웠거든요.)

 

아마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수 있을까라는 말은 나와 너 너를 넘은 우리가 세상에 찌들어져 혼탁해져 있는가에 대한 메아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아마도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게 아니라 세상에 찌들어간다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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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 등록일
    2004/09/18 15:02
  • 수정일
    2004/09/18 15:02

NEIS에 관련 인권단체 단식농성단에 참석을 오늘로 마감하였다. 그러나 NEIS를 둘러싼 투쟁을 보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과연 우린 NEIS 투쟁에서 무엇과 투쟁을 하였는가?
지난한 NEIS 투쟁 우린 반성과 성찰을 하여야 한다. 무엇과 투쟁을 하였는지 이후 무엇을 할 것인지.... 개인적으로 NEIS 연석회의는 자신들의 투쟁에 대한 평가를 통하여 반성을 하여야 한다. 과연 무엇을 했고, 무엇을 위하여 네이스 투쟁에 결합하였는지에 대해 초심으로 돌아가길 바라며, 이후 과제들은 무엇인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들을 제출하여야 한다.



1. 네이스 투쟁에 정보통신운동단체는 어떠한 지점을 부각시켰어야 하는가?
NEIS는 작년부터 문제가 되었으나 우리 정보통신운동단체들에서는 주요하게 부각되지 못하다. 올 2월 전교조 투쟁을 기점으로 NEIS 투쟁이 촉발되었다.
그러나 NEIS 투쟁에서 우린 어느지점을 갖고 투쟁에 결합하였는지 면밀한 평가와 이후 이 사안에 대한 투쟁계획을 세워야 한다.

 

먼저 NEIS투쟁에서 우린 교육주체 투쟁으로 발전시켰어야 한다.
올해 교육시장개방과 NEIS 투쟁은 전교조에 있어 중요한 투쟁이며,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중차대한 사안이였다. 그러나 이 투쟁을 할 수 있는 전교조 자체동력이 잘 결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교조는 NEIS 투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러다보니 전교조의 자체내 투쟁에 있어 동력을 결집하는데 큰 어려움이 내적으로 존재하였다. 그리고 NEIS 연석회의의 출범.....
그러나 전교조와 NEIS 연석회의의 관계설정에 있어 문제성이 발견되었다. 문제점은 다름아닌 투쟁에 있어 전교조와 NEIS 연석회의와의 관계설정에 있어 NEIS 연석회의는 전교조 NEIS 투쟁을 지지하는 단위로서 역활이 규정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전교조도 연석회의에 참석하여 내부의 논의를 연석회의 안에서 풀어가고자 하는 노력은 있었으나 투쟁에 있어 수평적으로 해결한 단위로서의 역활규정은 미약하였다. 이런 결과는 곧 NEIS 투쟁을 전국적으로 이슈화시키고 대중투쟁으로 전화시키는 방향으로 투쟁을 확장시키지 못하였다.

이는 교육주체를 투쟁의 구심으로 세워나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NEIS 대응은 장기적 투쟁이다. 진지를 구축하여 이후 파생될 문제에 있어 다양한 각도의 분석과 문제점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대응해 나갔어야 한다. 언론화 또한 다른 이슈에 비해 상당히 진전되었으며, 이를 통한 다양한 이슈 화이팅도 있었지만 그 이슈 화이팅은 이슈 화이팅 이상의 의미로 확장되지 못하였다.

저의 주관적 판단은 궁극적으로 NEIS 투쟁에 있어 투쟁의 구심과 주체설정에 있어서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위한 작업을 NEIS 연석회의에서 진행하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투쟁의 구심 즉 교사, 학생, 학부모들에 대한 적극적 투쟁을 배치하고, 사업으로 발전시켜나갔어야 하지만 사안에 이끌려 이러한 대응을 유추시키는데 실패하였다. 지금 NEIS 투쟁 정국이 막바지에 다달아 있고, 이후 어떻게 전개될지 미지수이다. 과연 이러한 정국에 우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슈화를 떠나 장기적 포석속에 여러가지 이슈에 대해 부각하며 전교조의 투쟁과 긴밀한 연계와 이후 투쟁을 정보통신운동단위들의 투쟁전개를 위한 사전 포석들이 미진하였다.


2. 투쟁 전술의 부재....
투쟁 전술의 부재는 비단 이 사안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시기에 의해서 사안이 급박하게 돌아감으로 인해 제대로 투쟁에 대한 전술구사에 있어 이렇다할 방도를 찾아내고 있지 못한채.... 성명서/소송/헌법소원이라는 지난한 투쟁들로 일관되고 있다. 사안에 따라 성명서 발표, 행정소송, 헌법소원들은 필요하지만 일상적 투쟁 전술로 자리잡는 것은 어렵다. 이는 대외적으로 이슈를 확장시키기 위한 부분 전술로서 배치되어야 하지 전체 투쟁 구심으로 자리잡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할 수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냐면 이제 우리투쟁이 다소 외롭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지라도 제대로 투쟁다운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소리이다. 사안에 따라 점거농성이라든지 아니면 이슈를 확장시키기 위해 단식농성이든 전술적 고려가 이제 본격적으로 되야 한다.

우리의 투쟁이 외소화되고 전국적 사안이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 사안에 대한 이해당사자 그리고 운동에 복구하고 있는 단위들의 결합도와 이후 책임성 있게 사안을 끝까지 확장시키는 것은 이후 투쟁을 만들어나가는데 중요하다 생각된다.


3. 투쟁 사안에 대한 지속 가능성...
네이스 사안은 지속적으로 가져갈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교육이 존재하고, 한국이라는 국가가 존속되어지는 이상 결코 물러설수도 없으며, 물러서도 안되는 투쟁이다. 이는 인권단체들 단식농성투쟁에서 보여주었듯 해법이 없지만 이사안을 지속 가능하게 이슈로 대두시키고 끝까지 투쟁으로 이끌어 내고자 하는 활동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정보통신운동 관련 이슈들이 대거 확장되었다. 노동자감시, 프라이버시, 지문날인반대, 지적재산권, 스팸메일, NEIS, WSIS, 표현의 자유 등 여러가지 사안들이 산재되어 매 시기마다 복잡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 사안들에 있어서 우린 지속 가능한 활동 특히, 한가지 문제라도 해결 할 수있는 사안들은 없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지속가능하게 가져갈 사안이며, 반듯이 척결해야 할 사안이다. 그렇다고 만만한 사안도 아니며, 결코 포기되어서도 안될 중차대한 사안이다. 이러기에 사안 대응에 있어서 장기적 포석과 시야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린 지금 사안에 대한 설계와 투쟁을 예각화 시키기 보다는 사안에 급급해 사안별 대응에 상당히 치어가고 있다. 새롭게 대두되는 사안에 있어 확장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운동사안들만을 확장시키는 것 또한 결코 좋은 모습이라 볼 수 없다. 한 이슈와 사안별 운동체를 만들다면 이후에는 최소한 1년 단위의 자체 사업들에 대한 설계와 이후 해결 될때까지의 결의가 무엇보다 필요할 때이다.


4. NEIS 투쟁으로 불기시작한 전자정부와 정보인권의 문제....
우선 전자정부와 정보인권의 문제를 다루기전에 우린 전자정부의 골간이 되고 정보집적의 최우선 대상인 주민등록번호(주민등록증) 투쟁에 대한 기획이 있어야 할 것이다. 주민등록번호는 전자정부에 있어 다양할 정보로서 구실을 할 뿐만이 아니라 전자사회로의 이행에 있어 주요한 상품으로서 대두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이제 전자사회에서 새롭게 대두되는 인간들간의 등급화 할 수 있는 유효한 상표이다.

 

1) 네이스 해결없는 전자정부 대응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전자정부 대응 무엇을 할 것인가? 교육정보가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전자정부의 대응은 얼마나 실효성 있게 추진될 것인가? 그리고 민간영역으로 부터 자행되고 있는 전자주민카드. 전자의료카드 등 다양한 스마트카드등 개인정보를 집적하는 행위를 우린 무엇으로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전자정부의 대응의 첫번째 과제는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문제를 환기시키면서 정보 수집에 있어서 자기정보통제권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수십년간 국가가 개인정보를 집적해도 아무런 문제를 하지 못하던 지금... 이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권리들을 주장할 때이다. 그리고 각 정보집적에 있어 OECD 가이드라인이나 UN의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등이 적용되기 위해서도 주민등록번호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아울러 난 지금 당장 전자정부에 대한 대응을 위한 계획보다는 네이스 사안을 어떻게 가져나갈 것이냐가 우선시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다양한 대응에서 출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전자정부의 대응이 무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2) 정부가 추진중인 전자정부에 있어 정보인권 대두
전자정부 대응에 있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인 정보인권의 대두이다. 정보인권은 결코 타협할 수도, 간과해서도 안될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자정부 추진에 있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neis 투쟁에 있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직도 늦기 않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합을 하지 않고 뒤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 또한 결코 올바른 방향은 아니지만, 네이스 투쟁에서 우린 너무 소극적이 었으며 투쟁을 결코 공세적으로 가져나가지 못하였기에 아쉬움을 넘어 후회가 든다. 결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한들 무엇하리..... 우리의 역량이 이 것밖에 안되는 것이니..... 한숨을 내뱉지만..... 허탈하다. 나약하다는 것이.... 이후 도래할 사회가 그저 막막하다. 계속해서 점점더.... 악화 되어져가고 있기에....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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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지하철 파업

  • 등록일
    2004/08/31 11:25
  • 수정일
    2004/08/31 11:25

1999년 4월 지하철 파업투쟁은 이땅의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작년말 부터 신자유주의 공세, imf경제위기, 노동통제 강화,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권 죽이기는 엄청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매김 되어졌으나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정권의 사회적 이데올로기로 인해 아무런 대응 못한 현시점에서 지하철  파업투쟁은 현 정권의 개혁의 허구성을 잘 알 수 있는 계기이다.

 

지하철의 파업은 현재 침체에 늪에 빠져있는 노동자 투쟁에 새로운 활력과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연대투쟁이라는 노동자 투쟁의 대의를 새롭게 정립해가고 있다.



지하철에 대한 파업에 사회적 여론이라는 잣대를 드리밀면서 시민의 불편이 많다고 신문 및 방송에서 연일떠들어 대고  있지만 시민의 불편은 잠시일뿐이다.  정작 중요한 시민의 안전에 대한 생각들은 하지 못하면서 지하철 파업에 대한 현실에 불만들만을 토로하고 있다..

현재 지하철에 인력은 대단히 부족하다고 한다. 그런데 지하철에서는 인원을 감축한다는 것은 곧 시민의 안전을  무시한 처사가 아닌지...

현실의 불편은 잠시뿐이다.

지하철 파업은 생존권을 지키고 보다 질높은 지하철을 만들어 내려는 노동조합원들의 힘찬행동이다.

일각에서는 지하철 문제가 시민에게 크나큰 불편을 가져온다는 이유때문에 지하철 파업을 못마땅히 여기고 있다. 그러나 지하철 문제는 현재 서울시의 지하철 경영의 비합리성을 알리는 계기이다.

지하철 파업을 마냥 시민의 불편만을 이야기 한다면 그건 아마 시민의 의식의 결여라고 생각이 된다. 자신 눈앞에 있어서의 당장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단편적 사고가 아니고선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을것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정리해고 및 자진 퇴사가 빈번히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구조조정에 대한 허구성들을 폭로하고 있는 그들에게 박수 갈채는 보내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그들을 비판한다는 것은 시민의식 부재가 아닐지....

파업은 애들 장난도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하는 것이 아니다.
지하철 파업도 단지 구조조정만을 반대하며 노동조합원들의 일자리만을 지키기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낳아져가는 지하철과 대 시민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지하철 노동자의 행동인 것이다.

현재 많은 사업장에서 빅딜, 워크아웃(lay-off)를 통한 구조조정에 분쇄를 위한 많은 투쟁들이 전개되고 있다.
빅딜과 워크아웃을 통한 구조조정은 실업자들이 양산시키고 있으며, 하루에도 몇만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빅딜과 구조조정에 대한 문제는 지하철, 그리고 빅딜, 구조조정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가 계속적으로 지니고 있는 내재적 문제인 것이다...

작은 불편보다는 보다 큰 것을 볼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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