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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8/06
    채만수 부소장의 강의를 듣고....
    간장 오타맨...
  2. 2004/08/06
    5월... 내가 느끼던 학교풍경
    간장 오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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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역특례병 노동자
    간장 오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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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4/08/06
    한달의 공장생활과 코피
    간장 오타맨...

채만수 부소장의 강의를 듣고....

  • 등록일
    2004/08/06 20:29
  • 수정일
    2004/08/06 20:29
20세기 운동사에 관한 채만수 부소장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간의 평가들에 대한 개인적 생각들을 그냥 생각해 보았다....
 
80년 광주로 부터 시작한 이념운동의 성숙과 쇠퇴 한국사회의 계급운동 대한 고찰의 계기였다. 이념운동이 쇠퇴(정확히 말해서 사회주의 국가로 통칭되어졌던 동구사회주의권의 붕괴의 충격 그리고 한국 진보진영의 이념적 빅뱅시기...


내가 운동했던 곳에서는 NDR론(NationalDemocacy Revolution)의 폐기 한 후 모색의 일환으로 일국적 사회주의에 대한 재고찰이라는 한국적 사회주의 구현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한국 정치 경제 문화 사회에 대한 접목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사추위와 민중회의의 통합을 통해 만들어진 민정련등 합법정당 전술을  구사하면서 자신들의 이념적 조직적 고리들을 하나둘 읽어갔다.)폐기하고 한국적 사회주의라는 일국적 사회주의에 대한 망상과 합법정당운동의 과대포장에 얼룩져 조직의 방향들이 거의 소진되어졌던 시기를 기억한다..
 
그처럼 한국 진보진영의 급격한 쇠퇴의 요인이 무엇이였는지 이념에 대한 재고찰이였는지 아니면 운동에 대한 접근방식에 대한 문제였는지 나름대로 고민들을 다시 한번 하는 계기였다.....
 
러시아 노동자 농민들에 의해 건설된 혁명적 사회주의 국가인 소비에트(평의회) 즉 소련의 혁명은 20세기의 충격 그이상의 의미였다. 맑스- 레닌주의가 이념적사회가 아닌 현실로서 만들어질 수 있는 사회임을 보여준 사건이며.. 노동자 인민의 국가는 노동자계급에 의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주는 20세기의 잊혀지지 않는 역사적 사건이다.
 
러시아의 혁명에 대한 고찰로 부터 시작한 모델적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학계 그리고 학생운동 진영과 진보운동 진영들의 입장을 조직하고 이후 대안적 사회에 대한 전형을 혁명에 대한 복원이라든지 아니면 새로운 사회에 대한 모델적  접근이 추상적 이론이 아닌 현실적 태로서 러시아에서 이루어졌다. 이것이 주는 의미는 맑스주의가 이론적 산물이 아닌 현실 세계에 대한 해법임을 증명하는  계기였으며 19세기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는 맑스의 구호가 현실적 과업으로  이룩되어진 사건이다. 맑스주의는 급속도로 노동자 계급 진보적 인텔리겐챠들에게 확산되어졌으면 각 국가들은 인터내셔날을 통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슬로로건 아래 모이고 각 국가들의 계급해방 투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맑스-레닌주의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논쟁의 화두이며 이후 일국적 사회주의  구현이라는 국가권력을 모든 노동자에게로 라는 슬로건 국가의 소멸 등 혁명 기치의 근원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학계에서 맑스주의에 대한 다양한 각도에서의 연구 그리고 실천적 활동에 대한 해법들을 많은 학자및 사회진보운동진영에서의 지속적 토론의 개재들이다.
 
그러나 아무도 아직도 이념적 사회주의라는 기치에 대해 명확성을 가지지 못하며 자신의 조직적 강령과 노선으로 채택되어지고 있지 못하는 현실에서의 이번 강연회는 초보적 수준의 강연회였을 망정 현재 한국진보진영 운동에 대한 성찰의 기회였다.
 
착목한 지점은 스탈린적 한계가 구체적인 사회주의 붕괴의 요인으로 간주되어질 수 있는 담론인가라는 문제 부터 시작한 20세기 사건과 계급대립의 양산에 대한 이야기들이 진행되어지면서 과거로의 여행 그리고 그 당시에 대한 생각들을 한번해보는 계기였으며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과연 스탈린의 공산당의  일당 독재라는 형태의 논의점들.. 여기서 우린 스탈린적 과오들에 대한 맹공적인 비판과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성찰의 부재라는 측면들을 강조하면서 그의 당운영및 이행기적 사회주의 구현(사회주의라는 것은 레닌에 의하여 규정하자면 과도기적 이행기라 볼 수 있다... 러시아에서의 혁명이 부르주아지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화 즉 2단계적 혁명론이라고 우리는 속칭해서 부른다.. 이사회에 대한 공산주의로 가기 위한 끝임없는 혁명적 사업의 완수는 즉 노동자 평의회에 대한 권력의 이양과 국가라는 제도에 대한 국가의 소멸론적 근접 그건 모든 권력과 생산수단이 노동자들에 의해 장악되어지고 운영 되어지었을 때 공산주의로 가는 이행기적 사회주의라는 것은 완수되어질 수 있다.

공산주의라는 개념은 분명 맑스가 사용한 언어이지만 러시아 혁명기에 레닌에 의한 맑스-레닌주의적 입장에서 단계론적으로 사회주의를 통한 공산주의로의 전환이라는 고민들이 이루어졌으며.. 또한 국가라는 토대가 서서히 소멸해가는 과정 속에 모든 상부구조에 있어서의 실질적 프로레타리아트 독재는 구현되어질 있다는 고전적 사상들에 대한 생각들이다..   국가와 혁명과 공산당 선언에서 비추어 견주한다면....)이  실질적으로 구현되어지지 못하고 당에 있어서의 중앙적 통제의 강화가 이루어졌다....
 
  채만수 부소장님의 이야기에 대한 나의 사견을 부쳐 이야기 한다면은  러시아 사회는 아직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아직 구현되지 못한 생산력이 낮은 상태였다라는 점을 창목한다... 그 당시 러시아에서는 플레하노프를 위시한 사회민주주의 세력(사회과학서적에서 사회주의자를 속칭 할때 사회민주주의 자라고 속칭한다)과 나르시즘을 위시한 농촌 계몽운동을 하는 세력들이 존재하였다. 나르시즘은 우리가 중학교인가 고등학교인가 에서 배운 상록수가 계몽주의 운동으로  대표되어지는 브나르드 운동이라는 농촌계몽활동의 전형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아나키즘에 빠진 러시아 인민들 상황들... 여기서 스탈린주의의 오류라는 점들을 그동안 많이 논의하였다. 러시아 사회는 혁명의 시기에 있어서도 봉건제 사회에서 자본주의로 전화되어지는 과정에 있던 봉건제와 자본주의적 요소가 혼재되어진 사회였다... 이러다 보니 혁명이후 레닌의 사후에 스탈린에 의해 당장악이 이루어진후 당에 대한 통일성 강조와 당강화와 이행기적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스탈린의 기계적 생산성 향상 정책(높은 생산력으로 도달하기 위한 인위적 노동강화)에 대한  문제점들을 지적하였다....

 음 해깔린다 나르시즘인가 나드로키주의자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책을 읽은지 오래되어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 것을 보니 머리가 썩어가고 있다는 반증이이겠군요... 흐흐
 
그러나 이러한 후문도 존재한다...
레닌에 의해 주창되어지고 계획되어진 NEF(New Economic Plan)  일명 네프정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실현한 인물이 스탈린이 었지 않았느냐는 반문들... 그리고 당의 결속력과 강력한 중앙집권이 필요한 러시아의  혁명 이후의 사회에 대한 모습들은 올바르지 않았는지... 그러나 이 논의에서 조금 비켜 생각하면 스탈린의 당의 강제는 개인적이 사견과 정치적 논리들의 혼재속에서 이루어졌다는 후문들이 있다. 나야 사회과학자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니 판단의 기준이 분명 없지만 노동자들에 의한 자발성에 의한 당의 강제가 그 시기에 적절하게 배치되어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내적 모순들이 존재하지 않았을까라는 문제들이 든다.
 
채만수 소장님은 그건 아마도 제국주의의 방해책동에 의해 어쩔수없이 그렇게 우리에게 비추어졌다는 이야기를 한것으로 생각해 본다.... 러시아의 붕괴는 한 요인에 의해 붕괴한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페레스트로이카라는 개방화 물결과 자유화 물결로 러시아의 붕괴 요인으로 복기엔 좀 한계들이 내재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러시아가 과거와 같은 자신의 사상적 국가로서의 사회주의 기치는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평가는 어떻게 날지라도 내재적 모순에 의해 붕괴 되어졌다는 사실을 우린 간과해서도 안되는 일이고 모든 책임을 스탈린주의라고 치부하기에도 채만수 부소장의 말처럼 여러 요인이 있다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관료화니 코민테른이라는... 문제보다 제3 인터네셔날 이후  코민포름이라는  러시아 중심의 국제적 사회주의 운동의 흐름들의 내적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다만 복잡 다양한 내재적 문제들 속에서 러시아라는 국가가 혁명 이후 너무 쉽게 붕괴 되어졌다는 점들에 있다,
 
이후도 계속 논의하면서 가져가야할 문제이지만....
이번 강의를 계기로 더욱더 심층있게 고민해 들어가야 겠다.
 
또한 소련사회 규정이에 있어 채만수 부소장님의 이야기들... 채만수 부소장님은 과연 어느세력에서 소련의 사회적 규정을 국가자본주의라 불리우는 세력들의 논의에 대한 확고한 입장... 과연 소련사회가 자본주의로  지칭되어질 수 있는 요인이 어느 곳에 있는가....
 
국가 자본주의를 이야기한 조직은 아마도 IS(국제사회주의자 그룹)에서 90년대 중반에 소련사회 규정을 하고 자신들의 활동을 펼치면서 노동자 연대라는 대중신문을 통해서 널리 자신들의 입장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는 이념적 국가의 붕괴에 대한 명확성을 제시해 주었다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들의 반정립적 사회주의 사상들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짜맞추기하는 것이였지.. 나의 사견임. 또한 중요하게 착목할 지점은 트로츠기가 스탈린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것.  둘은 정치적인 앙숙의 관계였다.그리고 혁명의 시기에 있어 객관적인 사실에 의하면 전략가와 전술가로서의 면에서 트로츠키가 스탈린보다 더 뛰어났다는 사실.
 
그러나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쉽게 말해 도미노 게임식의 혁명)이 과연  일국적 국가라는 틀거리와 제국주의 시대와 냉전이라는 자본주의와의 첨예한 대립속에서 과연 타당한 문제였던가라는 문제들이 있다.
 
혁명에 있어서 지금은 어떨지는 잘 모르지만 난 개인적 사견은 아직도 연대라는 말에 대헤 동의. 그렇다고 그것이 각 사회규정과 정치적상황이 다른 자본주의 차이속에서 혁명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즉 아직도 일국적 사회주의자체에 대한 옹호를 하면서 난 각 국가간의 벽이 아무리 허물어 진다고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국가들은 거의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가독점자본주의자들에 의해서  종속적으로 규정되어진다는 사실을 착목하면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 자체를 확장적 시각으로 해석하였다라는 생각을 한편으로도 한다....
 
이렇듯 20세기는 혁명과 혁명의 쇠퇴를 함께 지닌시기이다...
또한 성과들이 더 많은 사실들... 맑스주의가 이론적인 모델로서의 사회가  아닌 우리들의 현실사회였다는 점들을 본다면 정말 계급사회  허황된 끔이 아니였다는 점들이다.
 
오늘 이야기 하면서 여러 생각을 해보았지만.
21세기는 필연적 사회주의가 구현되는 세상이 될 것라는 말들이..
아직도 가슴속에 남는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서....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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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내가 느끼던 학교풍경

  • 등록일
    2004/08/06 20:07
  • 수정일
    2004/08/06 20:07
봄의 무거움...
봄은 계절의 시작을 알리기는 절기의 처음....
난 이러한 봄의 느낌들....
 
그러나 나의 봄은 늘 무거움 그리고 풀리지 않는 늘 갑갑한 마음의 한 언저리를 부여잡는 계절이었다.


늘 봄 학교내 풍경은 정말 우리를 늘 경건하게 만들었다.
늘 학교 방송국에서 나오는 5.18 방송멘트....
그리고 늘 차분히 마음을 경건하게 만드는 노래소리....
늘 무거움으로 나를 짖눌렀다.
 
아니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늘 5월의 학교와 시내에 나가지만 하면 느낄 수 있었던 코를 찌르는 체루탄 냄새.... 그런 5월을 난 동경하면서 살아갔다.
늘 가슴을 조리면서 늘 연일 벌어지는 집회와 그리고 학내 투쟁들 속에서  파묻쳐 살았다.

그런 나에게 있어 5월은 정말로 늘 가슴이 텅빈 날들의 연속이었으며 늘 후배 동기 그리고 선배들과 함께 술집에 가서 5월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저녁 지는줄 모르게 술을 마시고 취하고 그리고 목청것 소리높여 노래를 부르면서 학교주변 술집과 학교켐퍼스를 누비면서 늘 술에 찌들어 가슴조이면서 살았던

5월......
그런 5월이 지금 특별법 제정이 된다고 한다.
그들이 국가유공자로 칭호 된다고 한다.
정말 잘된 일일까.....
그게 올바른 일일까....
 
내가 느끼던 5월 학교풍경 그런게 아니었다. 늘 떳떳하지 못하게  가슴을 움크리게 하던 그런 5월... 그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그런 추모의 한달로 난 기억한다. 그리고 늘 가두투쟁 속에서 5월 영령들을 만나던 그런 5월 지금은 과거의 한 추억으로 잊어져 가고 있다...
 
학교내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학교내 5월의 방송가 멘트는 그런 분위기 조차 느끼지 못하게 할정도로 많이 세월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 나의 후배들은 나의 무거움보다는 지금 세대의 풍만함에 만취한건지 아니면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그런 경향들에 심취해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나의 추억속의 흔적은 지금 현실에서 되살아나지 않더군요...
 
나만의 느낌은 아니고 나만의 추억은 아닌데... 그리고 시간이 이리 많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지금 나의 추억은 아주 먼 옛날 이야기 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니 현실에서 되살아나고 있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 모르겠지만 시대가 변했다들 사람들은 말하지만 시대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멈춰서 있을뿐 전진하지 못하면서 늘 전진만 사고하는 그런 시대에 난 지금 살고 있기에 이런 잡스러운 생각들을 해본다....
 
정말 학교는 그곳에 그대로 있는데  사람들이 바뀐 학교안은 나의 시대의 나만의 추억도 모두 ㅃㅒ앗아 가버린 착각을 느끼면서 학교안 내가 느끼고 숨쉬었던 공간들을 둘러 보고 왔다.
 
이제 학교에서 나의 흔적을 찾아보지 않으련다. 현실을 즉시하지 못하고 이상과 과거의 집착하는 버릇을 고치기 전 까지는....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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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특례병 노동자

  • 등록일
    2004/08/06 20:01
  • 수정일
    2004/08/06 20:01
회사의 병력특례병들과 친해져 자주 술을 마시러 회사 주변에 술집을 싸돌아 다니고 있죠....
 
회사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종종 한답니다.
참 느끼고 생각하지 못했던 그들의 고민들을 듣다보면 내가 얼마나 편하게 살아왔는가를 되돌아 보게 되더군요.
 
그들도 나름대로 미래와 희망이 있더군요.
그런데 사회라는 제도화된 조건에 의해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꿈이란걸 그냥 자신의 환상으로만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더군요.


대부분의 병역특례병(저희 회사병력특례병)들이 중학교 졸업생들이 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비록 중학교 졸업자이지만 고등학교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하면서 회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야 느껴보지 못했지만 사회라는 울타리에서 학력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중요한지를 느끼게 되더군요. 중학교 졸업자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사회로 부터의 냉대와 그리고 유흥가 주변에서 자신의 청춘을 허비하는 것도 어찌보면 학력이라는 잣대로 그들을 판단하는 사회가 그들을 유흥가로 밀어넣고 있다고 생각이들더군요.
 
그들도 그곳에 있기가 싫지만 중학교 졸업장 가지고 회사생활하기가 요원하지 않다고 하더군요. 늘 들어간 공장은 쥐꼬리만한 월급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중학교 졸업생이라고 놀리는 비웃음 썩인 뒷다마 그러한 모든게 그들에게 있어 가혹한 정도라고 말하더군요.
 
그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는 지금 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회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과분하게 누리면서 살아왔는지 지금 생각되더군요.
늘 부족하게 누렸다고 투덜거리면서 살 생각하면 복에 겨워서 그런 땡깡을 부렸는지 그들의 보면서 반성을 하게 됩더군요. 지금 그래서 너무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어 정말 기분좋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젊음에서 느낄 수 없었던 많은 점들을 우리 회사 병역특례병들을 통해서 배워나가고 있죠. 그들이 지금 나의 스승이고 삶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들이죠. 그래서 그들과의 술자리에서는 귀를 쫑긋세우면서 술을 먹고 있답니다.
 
오늘도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참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지금 비록 힘든 병역특례병 생활을 하면서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들 모두가 검정고시에 합격해 또다른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내 었으면 합니다. 참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힘든 노동을 하면서 학습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만은 아니구나 생각을 하고 있죠.
 
우리 회사 병역특례병들이 다들 검정고시의 합격의 기쁨을 누리기를 기원해 봅니다.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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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업의 여독

  • 등록일
    2004/08/06 19:55
  • 수정일
    2004/08/06 19:55

몸의 피곤함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일이 가면 갈수록 쉬워지는데 피곤은 가면 갈수록 축척되어가는 건 왜일까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아주 피곤기를 느끼고는 있으나 무슨 조화인지 잠은 쉽게 오지 않는거 있죠..  흐흐



오늘 잠이나 실컷 잘려고 마음을 먹었는게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잔업의 여독을 풀수 없는게 못내 아쉽군요.
 
사무실에만 오면 정말 무슨 조화인지 저조차 모르게 잠이 쑥 달아 나는거 있죠 정말 신기할 정도입니다. 퇴근을 하고나면 정말 피로감에 시달려 비몽사몽 할정도의 극도의 피곤함을 느끼면서도 사무실에만 오면 그런 피곤기는 어디로 사라진것 처럼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얼까 곰곰히 생각해봐도 저도 모르겠어요...
 
귀신의 곡할 노릇이라는 말자체가 이걸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흐흐
 
내일은 아마 철야를 한다고 하더군요.
철야를 하면 당연히 사무실에는 오지 못하겠죠. 보통 새벽 1시까지 일을 해야하니까요. 그래서 기숙사에서 잠은 잘 것 같아요.

기숙사에서 내일도 건한 술파티가 있겠군요.. 잔업을 하면 모두 회비를 걷어서 끝나고 나면 기숙사에서 건하게 한잔 꺽는 답니다. 거의 사경을 헤메일 정도로 술을 마시기때문에.. 다음날 일들은 거의 건성으로 하거든요. 내일은 아마 살아서 기숙사에서 잠을 정할 수 업을것 같더군요. 월급도 채불이되어 벼르고 있는 몇몇 병특아이들의 괴성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만 해도 지금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이거든요..
 
내일의 투쟁에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곤한 잠을 자야겠습니다..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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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의 공장생활과 코피

  • 등록일
    2004/08/06 19:52
  • 수정일
    2004/08/06 19:52
공장생활도 한달을 넘겼습니다. 내평생 처음으로 월급이란 것도 받아 보구요.. 히히^^
 
돈벌기가 이리도 힘든 것인가를 새삼느끼게 되더군요. 돈쓰기는 쉬우나 벌기가 쉽다는 말이 이제는 알것 같기도 합니다.
 
참! 저 공장 들어간지 한달 넘겼는데... 우째 이런 일이 그날 한달기념을 내몸이 축하라도 해주는 건지 뭔지 저도 모르겠지만...  작업을 하고 화장실로 달려가서 담배를 피울려고 하는 와중 코에서 붉디붉은 피가 흘러나오더군요.


피곤기가 가시지 않은때라 정신도 몽롱한 상태였는게 코피를  한바탕 흘리고 나니 몸이 정말 가뿐해지는 기분이들면서 정신도 개운해 지더군요. 그동안 게으름을 피우면서 생활을 해서 인지 코피라는 것을  흘리는데 왜이리도 기분이 좋은지 저도 코피를 보면서 무언가에 대한 희열을 느끼는 기분이 드는데 이게 무슨조화인지 모르겠군요...
 
다만 예전 공부를 하다 자습장이나 공책에 흘렸는데 공부를 하지않고  있는 지금 생활도 널널하다 보니 코피 흘리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다 보니 저도 모르게 코피를 보고 기분이 좋았나 봅니다. 참 이상한  놈 이다라 생각하겠군요... 그치만 전 기분이 좋았답니다...
 
무언가에 열중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는것 그자체로도 기분이  좋거든요. 그런게 아마 목적의식성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삶의 정도와 인식의 차이에 따라 목적과 의식은 다르게 점철 되어지기  마련이 잖아요.. 그래서 위치가 사람을 규정하나 봅니다.
 
정말 고등학교때의  코피와는 사뭇 다르지만 나도 무언가에 열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데 정말 희열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달  10일이 나도 모르게 기다려 집니다. 그날은 내가 임노동을 해서 번 나의  노동의 댓가를 화폐란 임금을 받는 날이니 까요.

그리고 나의 화폐는 또다른 상품을 구매하겠죠. 그건 아나 주로 술이라는 상품을 구매하니까요.  그냥 술먹자는 소리였습니다.


오늘 간만에 푹 잠을 잤습니다.. 그래서 새벽녘에 깨어서 할 힐도 없고해서 그냥 지금은 통신에 흔적이나 끌적이고 있죠.

참 이상한 놈이라고만 보시지 마세요... 흐흐
 
참 모두들 오늘 있을 은주누나 결혼식에 참석하겠군요.

오늘은 모든분들 영양보충하는 날이 되겠네요.. 저야 늘 공장 생활을 하다보니 고기는 빠지지 않고 늘 먹습니다.  너무 혼자만 잘 먹고 잘사는 것 같아서 미안함도 있죠...

식사가 넘 좋게나와서요... 공장 직장님왈 쇠가루와 쇠먼지에서 작업을 하면 고기로 쇠가루를 씻겨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돼지고기가 아니라 소고기로요... 저희는 늘 소고기만 나오더라구요...

정말 먹기 힘든 고기인데.. 저녁은 주로 족발아니면 편육 그리고  종종 보쌈이 나오죠.. 정말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고 있죠....
 
그리고 자유배식과 부폐식이라서 정말 양것 많이 먹을 수 있어  기분이 좋군요..  저야 먹을 것만 잘 주면 일열심히 하는 놈이니까요....
 
시간은 그리고 빨리 지나가군요... 어느덧 현장의 낯설움은 살아지고  그들과 함께 하루레 매몰되 살아가고 그들과 함께 공장/직장/반장/조장을 험담을 하면서 막연한 노동자로서의 동질감들을 하나둘  만들고 있는 지금.... 난 왜이리도 지질이 못난 놈이가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왜냐 사람이 사는 곳인데 왜이리도 공장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낯설움을 느꼈을까?라는 생각을 보면서요...
 
이제는 그 현장이 나의 삶의 공간이자 운동의 공간으로 생각하고  그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나에게 자축하며 글을 마칩니다. 정말 한달 잘 견디어냈다... 간장...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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