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3월 10일 이른바 "노점노동연대"라는 조직이 출범했습니다.

 

 

거기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관련기사 입니다.  [한국 인권 뉴스 펌]

 
 


노점노동연대(준) 출범, "노점상은 사장 아닌 '노점노동자'" 2010·03·11 17:51
 
 

최덕효(대표 겸 기자)

임성규 민주노총 전 위원장 "우리들의 이해관계에만 얽매어서는 안 되고, 크게 보는 연대로 정치적인 전망을 가져야"
- 노점노동연대 "본조직 건설은 노점운동 단결 모색하는 과정 될 것"

노점상을 ‘노점노동자’로 규정한 노점운동단체인 노점노동연대(준)가 공식 출범했다.

노점노동연대(준)는 3월 10일 오후 민주노총 서울본부 대강당에서 이 단체 회원들과 연대단체 인사들 그리고 용산범대위 유가족들이 참여한 가운데 발족식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다.

노점노동연대(준)는 발족선언문에서 “원칙과 방향을 상실한 노점조직은 기만적인 관리대책으로 급속히 와해되고 있으며, 부패구조속에서 제도권력의 대리인 역할을 자임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개탄하고 “노점운동의 원칙과 방향을 세우기 위해” 단체를 출범시킨다고 취지를 밝혔다.

    

또, 노점이 양산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속에서 노점은 더이상 불법과 합법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등 지자체가 노점상에 강요하고 있는 관리정책은 “저임금의 불안정노동으로 더 많은 서민을 몰아넣으려는 정부와 자본의 의도”이므로 “노점노동연대(준)은 비공식부문을 양산하는 구조를 차단하는 운동의 주체”로서 “노점의 노동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판대, 관리노점 등 다양한 형태의 노점에 대한 포괄적인 대응 뿐 아니라 신규노점을 조직”하는 것은 물론 노숙인, 주거빈곤층을 비롯하여 “사회구조의 변화를 위해 노동자 민중과 연대할 것”이라고 말하고 “노점노동연대 본조직 건설은 노점운동의 단결을 모색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    

연대사에서 이재웅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은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할 수밖에 없는 노점상들이 ‘노점노동’의 의미를 붙인 것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라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사회를 자본가들에게 더 이상 맡기지 말고 우리가 바꿔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은 노점노동연대(준)가 노점노동자로서, 비공식부문 노동운동으로서, 진보적 노동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을 제시한 것에 대해 선견지명이라고 주목한 다음, 비공식부문 노동자들과 84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합치면 정규직 노동자보다 훨씬 많은 만큼 자본에 대한 투쟁을 적극 전개하자고 말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장애인이면서 노점노동자로 운명을 달리한 최옥란 열사, 최정환 열사, 이덕인 열사를 소개하면서 열사들의 뜻을 기려 “억압과 차별이 구조적인 문제이므로 각자의 위치에서만 싸우지 말고 연대세력과 희망의 의지로 뭉쳐 사회변혁을 시키는데 함께 하자.”고 주문했다.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이날 발족식에는 정종권 진보신당 부대표, 조희주 용산범대위 공동대표, 이재웅 민주노총 서울본부장,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 양용민 퀵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신동우 용산범대위 빈민대책위 집행위원장, 용산범대위 유가족(전재숙, 김영덕, 유영숙), 노수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서울연합 의장을 비롯하여 전국노점상총연합, 민주노점상 전국연합, 빈민해방철거민연합, 전국철거민연합, 주거연합,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민주노총 공공서비스노조, 노들 장애인 야학 등 단체 관계자들이 연대차 참여했다.

또 천주교 빈민사목위원회 이강서 베드로신부, 전국철거민연합 성낙경 사무국장,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대표, 사회당 최광은 대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지지영상으로 노점노동연대(준) 발족을 축하했다.

    
    △ 임성규 민주노총 전 위원장

한편, 임성규 민주노총 전 위원장은 발족식에 앞서 열린 특별강좌(노점노동을 위하여)에서, “경제활동인구 2,400여만 명 중에서 30~35%(800여만 명)가 임금노동자로 분류되지 않는 비공식 부문으로 노점을 포함한 자영업과 농민 등이 해당된다”면서, 특히 “자본의 탄압으로 일자리가 없어 거리로 내몰린 노점상은 사장이 아니라 노동자”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참석자들에게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서 여러분에게 돌아온 게 뭔가?”라고 반문하고 “자본주의는 애국심을 이용해 국가안에 여러분들을 가두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노동자로서의 존재의식을 깨달을 것”과 “(운동이) 우리들의 이해관계에만 얽매어서는 안 되고, 크게 보는 연대로 정치적인 전망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노래하는 노동자 "지민주 동지"


노점노동연대(준)는 지난해 3월 전노련이 서울시 노점관리대책에 합의하자 이에 반대해 나온 전노련 내 혁신세력과 기존의 노점노동조합연대(준)가 지난해 말부터 소통을 시작하여 올 1월 14일 ‘노점운동 전망 토론회’, 2월 23일 ‘디자인 서울 규탄 기자회견’ 등 공동행동을 거쳐 이날 공식 통합됐다. 준비위원장은 조덕휘 전노련 전 집행위원장이 맡았으며, 김인자 노점노동조합연대 전 사무처장(용산범대위 현장팀)과 현장 활동가들이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제가 걸게그림 제작을 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대게 걸게그림은 큽니다.

건물벽에 걸거나 아시바에 걸어야 하기 때문에 커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한테 선전, 선동을 해야하기 때문에 또 커야 합니다.

이런 그림을 그리다보면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도데체 이 큰 그림을 어떻게 그리냐고?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작은 그림은 붓으로 그리지만 이렇게 큰 그림은 빗자루로 그립니다.

ㅎㅎㅎ

그렇수 밖에 없습니다.

언제 붓으로 여백을 다 채우겠습니까?

천상 빗자루 밖에 없지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잊지맙시다. 용산!

 

 

어제가 제가 용산학살현장에서 사고난 지 꼭 1년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오늘 용산사무실에 나오면서 팬스가 쳐진 "남일당"건물을 보면서 왠지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자본가들은 망각을 원합니다.

그러나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흑백이었던 그림을 오늘 포토샵으로 다시 작업을 해봤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특수고용 노동자 탄압을 당장 멈춰라! [전비연 성명서]

 

 

건설노조 탄압은

자본의 책임 전가에 도전하는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이다!

- 노동부의 노조설립변경신고 반려를 규탄하며



이명박 정권, 특수고용 노동기본권을 전면 부정


지난 2월 5일, 노동부는 전국건설노동조합이 대표자 변경에 따라 제출한 노조설립신고사항 변경신고 요청을 거부했다.

이에 앞서 노동부는 지난 2008년 11월에 “사용자단체들이 건설노조 및 운수노조에 근로자가 아닌 덤프, 레미콘, 화물트럭 등 차주가 가입한 것이 노조법 위반이므로 이를 시정해 달라는 진정서가 접수되었다”는 등의 명목으로 건설노조, 운수노조에 대한 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이후 노동부는 “근로자가 아닌 덤프, 레미콘, 화물트럭 차주들이 노조에 가입한 것이 노조법 위반이라며 이를 자율적으로 해결”하라는 시정명령을 2009년 동안 3차례 통보하였다.

아울러 노동부는 노조가 이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법외노조 통보 등의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건설노조 3기 집행부가 새로이 출범한 2010년 현재 “법 위반사항이 시정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뤄진 노조의 결의는 하자있는 결의"라며 끝내 건설노조의 법적 지위를 문제삼고 나선 것이다.

1999년 재능교육교사노조의 조직화․파업투쟁을 필두로 학습지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보험모집인, 레미콘․덤프․화물트럭 운송노동자, 간병인, 퀵서비스기사, 요양보호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이 잇따라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실질적으로 노동자이면서도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노동기본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노사정위원회, 국회 등을 무대로 ‘특수고용직 보호’에 대한 논의만 무성하였으나 실내용은 계속 후퇴를 거듭해왔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조직화가 진전될수록 이를 억누르기 위한 부당노동행위는 극심하게 자행되었고, 법원과 정부는 노골적으로 자본의 편을 들어 왔다.

그럼에도 건설노조, 운수노조를 필두로 특수고용 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이 계속되자 드디어 산별노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려는 방향으로 탄압이 집중되려 하고 있다.


건설노조 탄압은 비정규직 조직화․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에 대한 반격


정권과 자본은 왜 특별히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에 집중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건설노조가 그동안 전개해온 활동들을 되돌아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동안 건설노조는 건설현장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바꿔내기 위한 투쟁, ‘건설일용직’이란 이름으로 고용불안, 임금체불, 노동재해, 노동법과 사회보장법 적용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건설현장을 바꾸어내는 투쟁, ‘개인사업자’라는 잣대를 들이밀며 자본이 부담해야 할 모든 비용을 말단의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관행을 바꾸어내는 투쟁을 끈질기게 전개해 왔다.

이를 통해 불법하도급의 온상인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와 직접고용, 임금체불시 원청이 직접 책임지도록 하는 근로기준법개정, 건설현장에서 일요일 휴무, 1일 8시간 근무제 등 노동시간 단축 등을 쟁취해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건설일용직, 타워크레인, 레미콘․덤프․굴삭기 등 특수고용 노동자의 조직화가 자리잡고 있다.

건설산업은 ‘원청→하청→재하청 … →비정규직노동자’와 같은 식으로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뿌리깊어, 발주처와 건설사가 하청업체에, 하청업체는 다시 노무도급업자와 노동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이 먹이사슬 구조 속에서 건설현장 노동자의 거의 대부분이 누구에게 고용되어 있는지도 불분명한 비정규직, 특수고용으로 일하고 있다.

이러한 부당한 구조에 도전하는 유일한 집단이 바로 건설노조이고, 건설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이 진전될수록 자본의 책임전가가 어려워지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조직화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를 노려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위기와 자본의 책임 전가에 걸림돌이 되는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시도


이는 운수노조 화물연대 본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2003년 이후 화물연대의 투쟁은 화물운송업에서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었으며, 화물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으로 인해 정부는 자본을 위한 규제완화 위주의 정책을 일부나마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작년 박종태 열사의 자결은, 대자본이 모든 비용을 아래로 아래로 전가하고 마침내 맨밑바닥의 특수고용 노동자의 마지막 피땀 한방울마저도 쥐어짜려 하는 현실에 대한 폭로에 다름 아니었다.

여기서도 역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와 투쟁이었기에 정권과 자본은 운수노조,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다른 돌파구가 없는 정권과 자본으로서는 노동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위기를 비껴가고자 한다.

여기서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와 투쟁인 만큼 이를 무력화하는 것에 사활을 걸지 않을 수 없다.

쌍용자동차를 비롯한 구조조정 사업장, 철도와 같은 공공부문에서 특히 노조 죽이기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0년 상반기,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을 새로이 전개하자


건설노조는 지난 2월 4일 대의원대회를 통해 ‘노조탄압 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투쟁’ 등 핵심과제를 중심으로 4월 전면파업 돌입을 결의하였다.

더불어 전교조․ 공무원노조․ 운수노조 및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 및 진보진영과 연대하여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하고 있다.

이러한 투쟁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단지 현재 탄압받고 있는 노조들의 사수 문제를 넘어서 자본의 책임전가에 맞서 노동자대중의 기본적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 실천들이 하나로 모아질 때 비로소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그동안 노사정위․국회 등에 갇혀 논의만 무성했던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문제 역시, 자본이 어떻게 자신이 부담해야 할 비용과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는가를 폭로하고 이에 맞서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되고 싸울 권리가 있음을 요구하고 투쟁하는 것으로 다시금 위치지워져야 한다.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역시 비상한 각오로 이러한 투쟁을 만들어 가는 길에 복무할 것을 결의한다.



2010년 2월 10일


전국비정규노동조합연대회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다행히 단식을 멈추셔서 한 걱정 덜었습니다.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정리해고철회 단식투쟁 24일째 입니다.
밑에 글은 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조함호 회장에게 쓴 편지입니다.


나는..살고 싶습니다.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님께)


짧은 배움으로도 회장님의 안부부터 여쭙는 게 예의겠으나 다급한 사람의 안부를 먼저 전하는 것도 큰 결례는 아닐 듯 싶어 제 소식을 먼저 전합니다.

보고를 받으셨겠지만 저는 회장님의 정리해고 방침에 맞서 단식을 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 진숙이라는 사람입니다.

며칠 전 몸무게를 재보니 43kg입디다. 10kg이 넘게 사라졌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몸의 변화를 물으시기에 심장을 손아귀 힘 센 사람이 꽉 움켜쥐었다가 놓는 것 같다했더니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가장 위험한 징존데요” 하시더군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새벽에 혹은 오밤중에 제 심장을 움켜쥐는 악력 센 손이 꼭 회장님의 손인 것만 같습니다.

저는 그 손아귀 힘을 뿌리칠 기력을 나날이 잃어갑니다.

두 번 째, 소변에서 거품이 부글거린다 했더니 단백뇨라는군요.

몸이 지방을 다 쓰고 근육도 다 쓰고 이제 마지막으로 몸에 남은 단백질을 쓰면서 버티는 거라고.

단백질마저 다 쓰고 나면 20일이 될 무렵부터는 이제 장기에 손을 댈 거라고.

내 몸이 살기 위해 장기를 갉아먹기 시작한다는군요.

오늘이 23일쨉니다.




14일째 되는 날은 못 일어났습니다.

몸을 일으킬 기력이 없으면 의식도 못 일어나야 옳으련만 의식은 새벽 두시에 일어나 몸을깨워 화장실 가고 세수도 하고 물도 마시자고 보채는데 딴청을 부리는 몸은 참 서럽습니다.

3일을 그렇게 누워만 있었습니다.

몸에선 살비듬이 징역 징벌방의 석회처럼 허옇게 떨어집니다.

그렇게 내 몸을 떠나가는 살비듬마저 아깝습니다.

그저께 나온 혈액검사 결과는 백혈구 수치가 2300까지 떨어졌다는군요.

5000이 정상인데. 2000이하로 떨어지면 골수에 이상이 생길뿐더러 내 몸이 어떠한 감염에도 대응할 능력이 사라진답니다.

이런 얘기들이 회장님껜 기쁜 소식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왜 이러고 있냐구요.

제 목숨뿐만이 아니라 수천 명의 목숨줄을 움켜쥐고 있는 회장님의 그 억센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입니다.

회장님께서도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겠지만 이미 한진중공업에선 2003년 구조조정을 막아내겠다고 싸우던 두 명의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들이 죽고 나서야 노조는 20년이 넘은 숙원사업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해고됐던 두 명 동료의 복직과 수십 명 해고자들의 복직까지 이루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만 제외됐구요.

대한조선공사를 한진이 인수하면서 이어졌던 세 명 열사들에 대한 추모공원이 지어지고,

노동조합 건물이 5층 복지관으로 번듯하게 지어져 노사가 화기애애하게 테이프를 자르고,

30억을 들여 식당이 새로 지어지고, 임금이 올라가고, 성과금이 두둑해지고..

수십 년을 싸우고 수십 명이 구속되고 해고되어도 단 한 가지도 해결할 수 없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던 광명천지였죠.

저는 참 신비로웠습니다.

이렇게 해줘도 회사가 안 망하는구나.

해고자가 떼거리로 복직되고 임금이 이렇게나 오르고 노조사무실이 현장으로 옮겨져도 회사가 안 망하는 거였구나.

근데 왜 두 사람이나 죽여야 했을까.

두 사람이나 죽고 나서야 그런 일들이 이루어졌다는 게 뼈가 저리긴 했지만전 그게 회장님 나름의 속죄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6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일러를 켜지 않는 걸로 비겁한 속죄를 하고 있듯이.




누리면서도 불안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갈까.

이 불안한 평화의 댓가로 우린 뭘 지불하게 될까.

이 위태로운 평화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 위태롭고 불안한 평화는 6년이었습니다.

그리고 9년 만에 성향이 다른 노조집행부가 들어섰습니다.

제가 작은 텐트를 치고 단식에 들어간 날이 하필이면 부산에선 6년만의 추위가 엄습했다고 호들갑을 떨던 날이었습니다.

회사에선 전기를 끊었습니다.

발전기라도 돌려달라고 노조에 요구했지만 그 무섭도록 추운 하루가 다 가도록 발전기는 오지 않았고 결국 다른 데서 발전기를 가져다 돌렸는데 새벽에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아침까지 벌벌 떨며 기다리다 노조에 전화를 했는데 “진숙이한테 기름 갖다 주지 마!”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집행부.

오십 넘은 나이에 단식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짧게 적은 유인물마저 복사를 거부했던 집행부.

그 집행부가 들어선 지 1주일 만에 구조조정 통보를 하셨지요.

투쟁보다는 교섭에 치중했던 집행부 엿 먹으라는듯이 결국 교섭 중 정리해고 신고서를 노동부에 접수하셨구요.

정리해고를 밀어붙이는 회장님에게 만일 어떤 의도가 있는 거라면 그 의도를 무리없이 관철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갖추어 진 거죠.




352명을 신고하셨다구요.

물론 명단작성을 완료하셨을테구요.

혹시 그 352명의 하나하나 얼굴을 떠올려 보셨나요.

그의 불안한 눈빛, 굳은 살 박힌 두꺼운 손, 검은 기름때가 골골이 박힌 주름살들, 담뱃진에 찌든 누런 이빨, 어눌한 말, 한 벌을 장만하면 몇 년씩 입어대는 입성들.

그리고 가장에게 모든 걸 의지하고 사는 그의 아내. 아이들 게다가 연로하신 부모님들.

352명을 짜르면 적어도 천명 이상의 삶이 무너지겠지요.

그는 잘해야 하청노동자가 될 것이고 그의 아내는 한 달 5~60만원의 알바 자리에 인격을 짓밟히며 온갖 수모를 겪게 될 것이고 아이들은 학원이 끊길 것이고 그 아이들은 어김없이 비정규직이 될 것이고..




작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평균 연봉이 30,887,724원 입디다.

연봉 3천만 원짜리 철밥통들.

352명의 연봉을 합치니 10,872,478,848원 이더군요.

회장님이 굳이 짜르겠다는 352명의 목숨값을 다 합쳐봐야 회장님이 작년에 한진에서 챙겨 간 주식배당금 120억에도 못 미치더란 얘깁니다.

이 계산을 하면서 울었고 이 부분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회장님에겐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크게 표도 안 나는 그 돈 때문에 천명이 넘는 저들은 얼마나 불안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밤들을 뜬 눈으로 뒤척이고 있을까요.

그의 가족들은 또한 얼마나 두려운 채로 살얼음판 같은 시간들을 디디며 떨고 있을까요.




아직도 새벽이면 가장 먼저 눈앞에 떠오르는 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뽀오얀 콩국입니다.

단식을 하면 원래 가장 많이 먹던 음식이 생각나는 법인데 근래 콩국을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생각하다가..

열여덟 살 겨울. 122번 화진여객 시내버스 안내양 시절.

새벽 4시 15분이면 김해에서 첫 차가 출발합니다.

첫차 손님과 막차 손님은 대부분 같습니다.

연장 가방을 짊어진 아저씨들, 큰 고무다라이를 인 아지매들.

그들은 대개 내리는 곳도 같습니다.

아저씨들은 구포 인력시장에, 아지매들은 자갈치시장에.

문짝이 덜덜거리는 새벽 첫차 안에서 빈속으로 김해벌판을 가로지르면 속은 견딜 수 없이 쓰리고 온몸이 경운기처럼 벌벌 떨립니다.

그땐 버스 안에 스팀도 없었습니다.

충무동 천일예식장이 회차 지점입니다.

거기 콩국을 파는 구루마가 있었습니다.

발이 곱아서 걸음을 게처럼 옆으로 걸으면서도 콩국 구루마까지 용케 뛰어갑니다.

기사님 꺼 까지 두 그릇을 사서 곱은 손에 받아들고 질질 흘리면서 게처럼 다시 뛰어 와입 천장이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먹었습니다.

비로소 온 몸에 피가 돌고 속이 화아 해지던 온기. 저절로 나오던 한 마디.

“아! 살 거 같다!”

다른 사람들은 단식 3~4일이 지나면 먹고 싶은 게 없어진다는 데 저는 위장마저도

평범치를 못한 모양입니다.




굶는 자와 먹는 자의 시간의 길이는 다릅니다.

하루가 100시간도 넘는 거 같습니다. 특히 새벽은 대공분실의 시간보다 기나깁니다.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언제까지 할 거냐고, 단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고.그때마다 저는 단 한명의 조합원이라도 지키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할지 몰라 애가 터집니다.

많은 분들이 건강이 무너지고 난 이후를 걱정하십니다.

그러나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게 아니라는 게 확실한 상황인데 정리해고가 일상화 된 현장에서 우리 조합원들이 일상적으로 짤려 나간다면 전 살아도 산목숨이 아닙니다.

마음 같아선 회장님께 게임이라도 제안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제가 하루를 버티면 한 명씩 명단에서 제외되는 게임.

백혈구가 0이 될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면 352명 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2003년도처럼 끝난 다음에 울고불고 하지 않으려구요.

두 명이나 잃고 보일러도 못 켜고 그렇게 못나빠지게 살지 않으려구요.

솥발산에도 못 가고 추모식에도 못 가고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구요.

그때 85호 크레인 밑을 끝까지 지켰던 젊은 친구들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려서 눈도 못 마추치는..

더 이상 그렇게 안 살려구요.




화장실 출입도 막으니 거울도 못 보던 상황이라 사진이라도 찍어서 제 몸을 보고 싶었습니다.

11일 째 되는 날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내 몸은 이미 영혼을 담을 능력을 상실해가는구나.

저 몸을 그대로 염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많이 울겠구나.

2003년의 나처럼 앉아서도 울고 서서도 울고 누워서도 울겠구나.

어떻게든 저 몸에 콩국 한 그릇 먹여 화색이 돌게 해야겠구나.

피땀도 흘려보고 피눈물도 흘려 본 저 몸뚱아리 딴 건 몰라도 콩국이라도 먹여 어떻게든 살려내야겠구나.

저는 아직도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