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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어제 빈집이 하나 생겼다. 재활용품 창고를 지나서 지킴이네로 가는데 어디서 망치질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 보니, 협의매수를 했던 집에서 한 아저씨가 알루미늄 섀시 문짝을 뜯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집주인과 가족들이 이삿짐을 나르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 이사를 나가는구나. 그 집 아주머니와는 안면이 있는 사이였지만, 조금도 서운하지가 않았다. 이삿날에 이웃은 보이지 않고, 고물상이 와서 멀쩡한 집을 쇠망치로 부수는 광경은 대추리에서 새삼스럽지 않은 일. 저녁에 다시 그 집 앞엘 가보니 집은 아주 흉가가 되어 있었다. 떼어낸 문의 유리는 모두 깨져 있고, 문손잡이까지 뽑아가버린 집안에는 쓰레기들만 뒹굴고 있었다. 개 한마리가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폐가의 마당을 어슬렁거렸다.

 

 자기가 살던집을 사람이 다시 살 수 없도록 부수고 나가는 것. 그것이 국방부와 토지공사에서 협의매수에 응한 자들에게 내린 지침이다. 지킴이네 집의 유리창을 깨라는 말들도 암암리에 돌고 있다고 한다. '빈집 프로젝트 음해 공작'이 진행 중인 것이다. 그런식의 해코지는 지킴이네에 입주할 때부터 예상했던 바이다. 앞으로는 토지공사의 움직임이 점점 바빠지겠지.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일들이 하나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길을 가다가 빈집 담벼락에 기대 놓은 나무 판넬을 보거나, 버려진 문짝을 보면 칫수를 재곤 한다. 문으로 쓸만한 게 없나 두리번거리면서 다니다보니, 동네 구석구석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녹이 슬면서 생겨난 철판 위의 무늬들, 오래되고 무거운 종이 걸린 천주교 공소, 색색의 양철판을 이어 붙여서 만든 창고 벽... 그리고 동네 곳곳의 양지바른 자리에 웅크려 앉은 고양이들, 구기자와 개나리 덩쿨 위의 참새떼, 쑥새, 박새, 붉은 머리 오목눈이... 세월의 흐름이 묻어나는 것들, 생명의 작은 움직임들을 마주칠 때마다 기운이 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함께 일하고 이 마을을 지킬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 대추리는, 빛을 하나씩 잃어가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유리전구 같다. 빛이 꺼진 자리에 반딧불이처럼 내려 앉을 사람들이 필요하다. 마을에 생겨나는 어둠이 너무 무섭다.

 

 

 

 

* 죽은 햄스터 두 마리를 빈집 마당에서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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