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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밥

 

 빈집에 문을 만들어서 달려고, 버려진 목재를 가져다가 톱질을 했다.  문짝 얘기를 꺼냈더니 사람들은 각목으로 틀을 짜서 비닐을 대는 것이 좋다, 나무로 와꾸를 짜서 합판을 대라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문은 이미 머릿속에서 구상이 끝난 상태. 재활용품 창고에서 가져온 톱으로 미리 재 온 칫수에 맞게 두꺼운 나무를 톱으로 잘랐다. 겨우 두꺼운 각목 하나를 잘랐을 즈음 전화가 왔다. 이장님 댁에 저녁밥을 먹으러 가자고 평화바람이 전화를 한 것이다. 얼씨구나, 하고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도두리벌에 저녁 안개가 깔리고, 해는 구름 속에 잠겼다. 도두 2리 이장님 댁으로 걸어서 갔다. 논바닥에는 살얼음이 끼고, 논두렁은 미끄러웠다. 논두렁 길을 걸으며 유심히 땅을 살폈다. 오래전에 이곳은 갯벌이었고, 어쩌면 조개 껍질을 주울 수 있을 지 모르니까. 내내 땅을 보고 걸은 덕분인지, 동네에 이를 즈음에는 색깔과 무늬가 다른 조개 껍질 조각 몇 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이 조개가 언제 살았던 것인 지를 알아 낼 방법은 묘연하지만, 민물조개가 아닌 것만은 일단 확실하다. 부안에서 만났던 '조개 박사' 아저씨가 문득 떠올랐다. 그 분이라면 작은 조개 껍질만 보고도 많은 설명을 들려 주실텐데.

 

 역시 살림집에서 먹는 밥은 맛이 다르다. 굴이 들어간 무생채, 콩나물 무침, 조기찜, 해물탕, 돼지고기 수육, 구운김, 동치미와 김치... 전에는 채식주의자였고, 대추리에서는 '육식자제 주의자'가 되었지만 오늘은 반드시 돼지고기를 먹으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돼지 고기를 먹지 않고도 단백질 섭취는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였고, 미네랄이 풍부한 굴까지 먹었으니, 작업을 일찍 마친 보람이 있었다. 내일 아침밥까지 먹고 가라고 하시길래, 아주머니 말씀을 따라 밥 두 그릇을 먹고나서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다. 사방은 이미 어두웠다. 팔공 아저씨 트럭을 타고 대추리로 돌아왔다.

 

 내일도 해야할 일이 아주 많다. 손수레 끌고, 톱질하고, 망치질 하고, 빨래 하고, 밥 먹고, 잠깐씩 놀이방 아이들과 놀고... 그러다 촛불 행사를 다녀오고 찻집에 들러서 차를 한잔 마시고 나면 하루가 저문다. 지킴이네에 와서 책을 펼치고 앉으면 잠이 쏟아진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감기 기운이 떨어질 때까지는 밤에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쉬었으면 싶지만... 찻집에 앉아 난롯불을 쬐며 노닥거리다가 '팽성은 우리땅' 블로그가 문득 생각이 나서 숙소로 달려와 일기를 적는다. 아, 이런 걸 왜 만들었지? 아까운 휴식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흘려보내다니!  컴퓨터는 누가 만들었을까? 시 한 편을 읽고도 마음과 몸이 움직이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아, 그만 자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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