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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개혁

<새로운 개혁>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19세기 초 전 세계를 물들였던 약탈적 제국주의와 그다지 다를 게 없다. 예수의 이름을 모욕하며 사람의 목에다 칼을 대고 개종을 요구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노예로 부려먹었던 극악한 죄는, 여전히 본질을 숨기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다. 지구의 한쪽구석에서는 20만 원짜리 축구공을 차고 다니고 다른 한쪽구석에서는 그 축구공을 어린아이들이 하루에 400원의 임금을 받고 만든다. 전 세계에서 생성된 부는 20%의 사람만이 서로 나눠 먹고 나머지 80%는 점점 더 빈곤해 진다. 이제 가난이 가난을 낳고 부는 부를 낳는다. 더 이상의 수직적인 계급이동은 사라져 간다. 자선하는 일들 속의 진실함은 줄어들고, 자선은 가난을 지배하는 방법이 되어버린 지금의 시대는 평범한 모든 사람들의 정신을 좀먹는 일에 매진 중이다.

 

  그런 전 세계적인 경향은 한국에도 가장 강한 영향력을 끼친다. '세계화'의 미명아래 벌어지는 약탈은 서민의 삶을 좀먹고 가진 자들의 풍요로움을 한없이 확장시킨다. 이미 이 나라의 땀흘리는 사람들 중 60%는 고용보험의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기에, 그들은 생존의 자리에서 악에 받히며 살아간다. 이 나라가 방글라데시보다 풍요로우면서도 행복지수가 낮은 것도 바로 현실에서 날마다 목격하는 불평등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웰빙'이나 '몸짱' 하면서 기름진 삶이 행복한 것이라고 떠들어대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 노동자가 분신 자살하는 일이 여전히 벌어진다. 그런 극단적인 '냉정' 과 '열정'의 공존 속에서 땀흘리는 삶에 대한 모욕은 나날이 일상화된다.

 

  전 세계적인 범죄가(난 이것을 경제구조의 차원이 아닌 범죄의 차원으로 생각한다.) 횡행하는 이 현실은 대부분의 서민들의 삶을 보다 각박하게 몰아가지만 서민들 자신도 이런 구조에 대한 관심이 없다. 삶의 전장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그런 거대담론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게 그들의 잘못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미명아래 수혜를 노리는 사람들이 나쁜 건가? 그건 지나가던 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은 서민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한국정치사회의 왜곡된 개혁담론에 있다. '개혁'의 본질은 지금까지 숨쉬지 못했던 민중을 정치, 사회, 경제적인 주인의 위치로 되돌리는 것이다. 무수히 쏟아지고 무수히 실패했던 정권 탓인지 이미 사람들이 '개혁'이란 말에 지쳐 보이지만, 실제 개혁이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건 사람들이 개혁이 이뤄진 세상이나 개혁이 못 이루어진 세상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가 가진 개혁의 스펙트럼은 IMF극복으로부터 시작해 오늘날 '친일청산과 언론개혁', '지방불평등 해소' 까지 맞닿아 있지만 그런 민족주의적인 담론들은 실제로 삶의 지배논리를 숨기는 방패로 사용된다. 그런 개혁의 과제들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개혁이 이루어진다 한들 서민의 삶이 나아지겠는가. 이 정부는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여기까지다. 언론개혁과 친일청산을 통해 자신의 지지 층을 만족시키고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도덕성을 선점하지만, 오늘날 서민의 삶을 약탈하는 경제적인 구조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자신이 말하는 개혁이 서민들을 위한 것처럼 부풀려져 있지만 실제 서민의 삶을 바꾸는 경제적 구조는 개혁하지 않으니까 개혁의 수혜는 소수가 독점한다. 그 저급한 의도가 한국 현실정치가 공유하는 '개혁'의 실체인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체제'와 '체계'를 혼동한다. 이를테면 부시와 케리 중 누가 당선되든 미국이란 체제는 변함 없이 제국주의 본질을 고수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의 개혁이 성공해도, 나중에 딴나라당이 집권하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져도, 서민의 삶이 괴로움으로 치닫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더러운 '냉정'과 불쌍한 '열정'의 동거는 멈출 기색이 없다. 그들이 말하는 개혁이 실제 우리를 속이는 개혁일 뿐,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개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참된 개혁의 본질을 물을 줄 알아야 한다. 그저 관념적이거나 역사적 흐름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주인인 사람이 참 주인이 되는 원칙과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하는 평등을 다시 세워야 한다. 원래는 상식이었으되, 세계관의 오염된 기울기 때문에 왼손잡이 취급받는 그런 가치들을 다시 한번 새겨야 한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 청지기 인생으로서 이 삶 안에서 최대한 정의로운 삶을 구현해 가는 것은 '상식'이 존중되는 새로운 개혁을 고민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우리를 속여온 거짓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에겐 '새로운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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