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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칼럼]비핵·개방, 그리고 거짓말

북한의 대화 메시지를 받아든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엉거주춤이다. 전술적 변화일 뿐이라는 판단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이 신중함을 탓할 생각은 없다. 북한의 행보에 의심스러운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차 공세를 위한 숨고르기일 수도 있다. 문제는 신중함이 아니라 신중함을 통해 드러나는 이명박 정부의 자세, 즉 교착국면을 돌파할 의지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전술적 변화든 뭐든 변화는 변화다. 움직여야 한다. 고민해야 한다. 이명박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 얼마전까지 이명박의 고민은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 통민봉관(通民封官)하면 어떻게 하나’였다. 그런데 정작 그런 전술을 구사한 쪽은 북한이 아닌, 남한이었다. 한·미공조는 확실히 하면서(통미) 북한과의 대화는 스스로 봉쇄했다(봉남). 또 대북 민간 교류를 허용하면서도(통민) 북한 당국과의 대화는 기피했다(봉관). 그런데도 이명박이 유화 공세와 위협의 혼란스러운 신호를 받고 있다고 고백할 정도로 북한은 변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이명박은 이런 상황 변화에 상응하게 섬세하고 정교한 대응을 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 그런데 그는 연합뉴스·교도통신 인터뷰에서 느닷없이 최근 북한 움직임은 위기 탈출을 위한 유화책이라고 ‘폭로’하고, 핵보유 기정사실화를 목표로 한다고 ‘고발’하고, 핵포기 진정성이 없다고 ‘분석’하면서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묘한 정세와 어울리지 않는 무디고 거친 발언이다.

8·15경축사와 다른 행동의 정부

분위기 탈 줄 모르는 이 남자의 무감각증은 어디서 온 것일까. ‘북한이 밀리고 있다, 조금만 더 밀면 완전히 무릎을 꿇릴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그게 성공만 한다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역대 어느 정권도 이루지 못한 위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판타지다. 그게 가능했으면, 과거 정권이, 주변국이 지금까지 비핵화에 실패했을 리 없다. 상상은 자유이지만, 최소한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해야 한다. 이명박의 분석대로 유화 공세가 북한의 전술적 선택이라면, 제재와 압박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의 굴복이 아니라 3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같은 강력한 반격 가능성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핵능력은 더 향상되고, 북한은 더 위험해지고 북핵 문제는 물론 남북관계도 악화되고 복잡해져 풀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렇게 안될 수도 있지만, 그건 운 좋은 경우이다. 이명박은 운을 믿는가.

북핵은 적대적인 외부 환경에 반응한 결과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한·미 연합전력, 핵우산, 북·미 적대관계를 그대로 두고는 절대 북한 스스로 무장해제하지 않는다. 개혁·개방도 마찬가지다. 외부 환경의 변화 없이 북한 홀로 결단할 수가 없다. 사실 북한이 아니더라도 가만히 기다리면 혹은 겁을 주면 알아서 비핵화하고 개혁·개방할 체제는 지구상에 없다. 이것이 바로 북한이 도발·위협할 때 북한을 포위하고 제재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해도, 해결책이 못되는 이유이다. 진정 비핵·개방을 원한다면 북한에 대한 적극적 관여, 북한과 주변국의 관계 개선을 촉진해야 한다. 비핵·개방은 북한이 불안해할 때가 아니라 안전하다고 느낄 때 시작된다. 그러나 이명박은 이런 노력을 포기함으로써 핵능력 및 내부통제의 강화라는, 비핵·개방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북한을 유도, 자기 원칙이 남북관계 개선·북핵문제 해결이라는 목표와 충돌하는 지점에까지 몰리고 있다. 북핵문제가 악화되고 남북관계가 파탄나더라도 북한에 큰 소리 한 번 쳐봤다는 소박하고도 소심한 업적을 손에 쥐는 것이 목적이라면 상관없다.

북 핵포기 진정 바라는지 의문

그러나 ‘비핵·개방 3000’이 진짜 목적이라면, 대북정책의 원칙 및 수단들은 북핵문제 해결, 남북관계 발전과 조화되도록 수정해야 한다. 물론 아직 그런 기미는 없다. 그래서 이런 의심이 고개를 든다. 혹시 비핵이니 개방이니 하는 것이 말과 달리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의 축적을 요구하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않기로 한 것 아닐까. 그렇다면, 비핵·개방을 지난 10년 정권보다 잘 할 수 있다는 장담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지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한 8·15 경축사는 거짓말이었다고 사과해야 한다.

<이대근|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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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민족화해] 강 건너 외국땅에서 우리나라를 보았다

신의주에서 중국을 바라봐야 할 나는 강건너 외국땅에서 우리나라를 보았다

김채원 청심국제고 1학년

압록강, 두만강 따라 1,295km

북한이라는 단어 자체는 귀에 박힐 정도로 들어봐서 지겨울 때도 됐지만 북한의 실체는 내게 언제나 미지의 세계였다. 심지어 처음 ‘조중 접경지역 답사’의 안내지를 볼 때는 “북한이 여기 있었지!”하고 지도를 보며 새삼 놀라기도 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지도를 그릴 때 마다 아무 생각없이 한반도 형상을 그려왔고 그 위쪽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것을 거의 느끼지도 못했다. 더구나 우리 집은 서울보다 판문점이 가까운 일산이다. 이렇게 북한을 “코 앞에” 놔두고도 북한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해보고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이런 나에게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해로 흘러가는 505km의 두만강을 따라, 그리고 서해로 들어가는 790km의 압록강 끝까지 조선-중국 접경지역 답사는 뜻밖의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중국 땅을 이동하면서 강 건너편의 북한 주민들을 불과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서 북한과 통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국경지역의 제일 흔한 풍경은 강을 따라 계속되는 평범한 농촌마을의 모습이었다. 굴뚝 달린 허름한 집들이 줄지어 모여 있고 그 주변으로 옥수수밭과 보리밭이 이어졌다. 중국 쪽과 달리 북한 쪽은 평지가 아닌 민둥산 꼭대기까지도 다락밭이 많다는 점이 특별한 구경거리였다.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부들의 모습은 멀리서 보기에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낚시하는 사람은 인형으로 착각할 정도로 몰입하고 있는 게 신기했고, 자전거를 타고 양을 돌보는 소년의 모습도 놀라웠다. 물가에서 빨래하는 아주머니들도 자주 볼 수 있었고 물가에서 고기잡이하는 아이들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국경 지역 북한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집들이 허름하고 옷들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굶주리는 단계를 벗어난 것인지 어느 정도 표정과 걸음걸이에서 여유가 느껴지기까지 했다.

강을 따라가 보니 허름한 농촌만 있는 것은 아니라 상당히 큰 공장들과 중소도시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산봉우리에서 내려다 본 무산시엔 수많은 굴뚝이 있어서 한눈에 보기에도 공업도시로 보였다. 무산시는 철광석을 캐는 광산도시라고 했다. 그런데 공업도시인데도 집들은 농촌마을과 거의 똑같아 보였다. 중국의 집안시에서는 물안개 낀 압록강 건너 만포시의 제련소를 보기도 했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오고 있었고, 굴뚝 주변의 산은 황량해 보였다.


튜브 끼고 물놀이 가는 아이들

장백현에서 압록강을 따라서 산책하면서 바라본 혜산시도 꽤 큰 도시였다. 강가를 따라서 허름한 집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거대한 공사현장도 보였다. 그곳이 “150일전투”를 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붉은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강을 따라 조금 더 가다보니 보천보전투기념탑도 선명하게 보였다. 이 때 신기한 풍경이 강 건너에 펼쳐졌다. 약 백 명도 넘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가는지 튜브를 모두들 하나씩 어깨에 메고 두 줄로 걸어가고 있었다. 망원경으로 보니 신나게 장난치며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강변에는 한 무더기의 아이들이 튜브를 한 쪽에 쌓아두고 놀이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북한 아이들은 굶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분명 신기한 광경이었다. 조선족 가이드선생님은 국경지역은 그나마 식량사정이 괜찮은 편이라고 귀띔해주셨다.

중국의 단동에서 본 신의주는 공장도 보이고 바닷가에 작은 배들도 많이 세워져 북한의 다른 마을보다 훨씬 발달된 도시 같았다. 강변에는 압록강각 이라는 큰 건물이 있고, 그 앞 강가에서 수영하며 공놀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신의주도 강 건너의 중국의 단동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압록강에서 유람선을 타면 양쪽에 너무도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한 쪽은 거대한 신도시, 또 다른 쪽은 북한의 작은 도시가 보인다.


외국 땅에서 바라보는 우리나라

그러나 이때쯤 나는 이미 북한의 국경지역 마을들과 사람들을 충분히 봐서 더 이상 신비감은 없었고 머릿속은 이런 생각으로 차있었다. 나는 무엇을 보려는 걸까? 이번 답사에서 난 뭘 봐야할까? 그러다가 그제야 무엇이 중요한 건지 깨달았다. 우습게도 이번 여행에서 나는 외국 땅에서 우리나라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가 강대국들에 의해 왜곡되지 않고 온전히 흘렀다면 어쩌면 나는 저기 압록강의 신의주에서 중국을 바라보면서 신기하다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지러운 한자가 여기저기 써 있는 이곳은 명백한 외국인 중국이었다. 내가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신이 나서 멀리서 망원경으로 쳐다보는 저쪽이 알고 보니 우리 땅인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뿐만 아니라 나는 내가 배웠던 고대사와 조선시대 그리고 근대사를 북한의 아이들도 배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역사를 공유했던 한민족이 서로 분단되어 있다는 것이 그제야 실감나게 다가왔다. 이번 답사에서 방문했던 역사의 유적지들이 생각났다. 항상 자부심을 안겨주는 광개토대왕비, 아쉬움으로 남는 조선 건국의 시발점이 된 위화도, 우리 민족의 정신을 보여준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쏘기 직전 4개월 간 거주한 생가, 윤동주가 다닌 용정중학교와 혜란강, 압록강에 끊어진 채 남은 단교.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들이 역사의 흔적들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었다. 항상 나의 가슴을 짓눌렀던 답답함과 아픈 민족 수난의 현장을 보는 듯 했다.

특히 백두산 서쪽으로 올라서 천지를 보지 못해 아쉬워하다가 결국 남쪽으로 다시 올라 천지를 기어코 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다. 천지의 반대편 북한의 땅에서도 천지를 바라보고 있겠지. 이거 뭔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상황인데.... 은하수를 사이에 둔 견우와 직녀 같구나. 안개 너머 천지 저편에는 북한이 있겠지.

하지만 통일을 해야 되는 이유가 견우와 직녀처럼 반드시 감정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통일은 분쟁을 평화로 되돌린다는 의미, 또 강대국들과 냉전에 흔들린 역사를 되돌린다는 의미에서 꼭 실현해야 할 가치인 것 같다. 통일이야말로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이 세계평화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반도는 몇 안 되는 분쟁지역으로서 전 세계인이 주시하고 있다. 통일문제는 비단 우리 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의 문제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워서 나중에 한반도에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도록 나도 뭔가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그 전에 통일이 되면 더더욱 좋겠고....

<민화협의 민족화해에 기고한 글>

http://www.kcrc.or.kr/?doc=bbs/gnuboard.php&bo_table=z_column_2&wr_id=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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