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상원사 가는 길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의 눈세상으로 빠져들어...다시 적멸보궁까지 가는 길에...

눈보라 속... 삼보일배와 오체투지를 하는 님들을 만났다.

대자연 아름다움 속에서 "석가모니불"을 읖조리며 몸을 던지는 님들의 염원은...무얼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전거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려면

빠른 걸음으로 10분

자전거를 타면 5분...조금 빨리 가려고 가끔 자전거를 타게 된다.

 

자정이 지나 조문을 다녀오는 길에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타고 오는 길이라서

지하철역까지 가지 않고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집에 갔다.

 

그러나 다음 날 지하철역에 가보니

감쪽같이 자전거가 없어졌다.

싸구려 중고 자전거지만 몸에 익은 녀석인데... 흑~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장작불

***추운 날에는 이 노래가 흥얼거려지더라구 -..-

 

 

장작불

 

                                          백무산

 

우리가 산다는 건 장작불 같은 거야
먼저 불탄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불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늦게 붙은 놈은 마른 놈 곁에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마침내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장작 몇 개로는 불꽃을 만들지 못해
여러 놈이 엉켜 붙지 않으면
절대 불꽃을 피우지 못해
몸을 맞대어야 세게 타오르지
마침내 활활 타올라 쇳덩이를 녹이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DMZ풍경

기습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토요일

민통선 안쪽 장단반도와 임진강 그리고 장항습지를 둘러 보았다.

자연이 숨쉬는 풍경을 보았다.또한 DMZ에서 조차 자연이 파괴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펌] 돈이나 권력은 못 드려도 머리는 드립니다

*** 얼떨결에  ^^

 

돈이나 권력은 못 드려도 머리는 드립니다
[진보싱크탱크⑥] 정치·외교의 싱크네트 '새로운 코리아 구상을 위한 연구원'
출처 : 오마이뉴스
09.11.18 10:18 ㅣ최종 업데이트 09.11.18 11:24 김동환 (heaneye)

 
집권 초기 '강부자 정권'이란 비아냥을 들었던 이명박 정권은 감세나 반값 아파트, 친서민 등 실제 서민들에게는 별다른 이익을 주지 않는 보수적인 정책들을 친근감 있는 언어로 포장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이른바 '무늬만 친서민' 프레임이다. 

'대안없는 진보'. 이것 역시 잃어버린 10년을 외쳤던 보수진영이 정해놓은 프레임이다. 진보진영 내에서도 이에 일정 부분 수긍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오마이뉴스>는 최근 5차례에 걸쳐 우리시대 진보의 대안을 만들고 있는 싱크탱크들의 활동을 소개한 데 이어 2차 기획을 내놓는다. <편집자말>
 
"북한이랑 서해에서 또 붙었다며?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지난 13일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북측 대표단 단장은 남측 단장에게 경고성 통지문을 보냈다. 10일 일어난 서해교전과 관련 "서해에는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이 있다"며 "지금 이 시각부터 그것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무자비한 군사적 조치가 취해지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북측의 표현은 강경하지만 최근 남북 간의 대화가 재개되고, 얼어붙었던 민간 분야의 교류가 천천히 녹고 있는 분위기라는 점에서 이번 발표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언론에서 나름대로 분석 기사를 통해 남북 정세를 보도하지만 대부분의 대중들은 신문에 나오는 '6자회담'이니 '그랜드 바겐'이니 하는 외교 개념을 제대로 챙겨 아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사정이지만 여전히 궁금함은 남는다. 이제 북한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지난 2005년부터 활동 중인 '새로운 코리아 구상을 위한 연구원(아래 코리아 연구원)'은 이런 의문들을 풀어주는 가장 권위 있는 국내 싱크탱크 중 하나다.    

적은 운영비로 생존하는 특별한 방법

  
코리아 연구원 홈페이지
ⓒ 코리아연구원
코리아 연구원

 

 


코리아 연구원의 가장 큰 특징은 단체의 이름에 어울리는 넓은 연구 범위와 다양한 연구 인원이다. 현재 대학교수급 연구원 40여 명이 정치-외교, 경제-통상, 사회통합 부문에서 실증적 분석에 기초한 정책 대안 및 국가전략 제시를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민간 싱크탱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규모의 인력구성이다.

코리아 연구원의 김경순 사무처장은 "출발할 때부터 국가의 전략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서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연구소가 만들어질 당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가져야 할 국가 전략이 정치-외교, 경제-통상, 사회통합의 세 부문이라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코리아 연구원은 이 분야들 중 특히 안보 문제를 포함한 정치-외교 부문에서 압도적인 연구실적을 내고 있다. 북한 관련 문제가 터지면 본질을 꿰뚫는 관련 논평이 이곳에 거의 실시간으로 올라올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정치-외교 분야를 담당하는 정치외교연구센터에서 지난 5년동안 생산해 낸 게시글의 숫자는 약 1만 500여 건.   

재미있는 것은 이런 규모나 활동에 비해 코리아 연구원의 운영비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코리아 연구원의 1년 예산은 대략 1억원 정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코리아 연구원에는 월급 받는 사람이 행정 관련 업무를하는 사무처장과 직원 한 명뿐입니다. 연구원들은 모두 무급으로 자기 생업을 가지고 있고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수준입니다. 각각의 연구원들이 자기 분야를 가지고 있는 전문 지식인들이기 때문에 어떤 분야의 글이 필요하다 싶으면 그때마다 사무처에서 글을 청탁하는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코리아 연구원 김경순 사무처장
ⓒ 김동환
코리아 연구원

 

"이런 개념을 '싱크네트(Think Net)'라고 한다"고 덧붙이는 김경순 사무처장. 상근 연구 인력을 유지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싱크탱크에 기부하는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아서 이런 싱크네트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싱크네트 방식은 연구 환경에 크게 제약을 받지 않으며 사안마다 유연하게 협업이 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싱크네트 방식은 비용이 적게 드는 대신 모든 연구원이 한 공간에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의 시의성과 효율성을 위해 중앙에서 전체 연구를 조절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코리아 연구원에서는 '연구기획위원회'가 조정탑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연구기획위원회는 총 8명의 연구기획위원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무엇에 대해 연구하고 어떤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할 것인지를 정하는 회의를 갖는다.

미국 뉴딜과 MB 뉴딜은 뭐가 다른가?

이런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코리아 연구소의 보고서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가 원고지 50매에서 100매 사이의 분량으로 작성되는 '현안진단'. '현안진단'은 재보선이나 한·EU FTA, 개성공단, 비정규직 문제 등의 개별적인 사안에 대한 분석 보고서다. 두 번째는 현안진단 분량의 글 3~4개가 한 주제로 묶여있는 '특별기획'으로 '오바마 시대의 한반도 전망' 등 거시적인 현실 진단과 더불어 정책에 대한 제안이 곁들여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코리아 연구소에서 지금까지 생산된 현안진단은 154개, 특별기획은 27개다. 평균을 내 보면 지난 5년동안 매주 1개씩 50매에서 100매 사이의 보고서를 만들어온 셈이다.

최근 나온 코리아 연구소의 현안진단 중에는 북한의 정책 변화와 남북관계를 보는 5가지 논점(이정철), 현 구역개편론 평가와 바람직한 방향(허훈), 오늘 다시 선거를 생각 한다: 정치공학의 그림자(홍재우)가 반응이 좋았다.
 
'북한의 정책 변화와 남북관계를 보는 5가지 논점'은 북한 관련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다섯가지 요점을 잡아 어렵지 않게 풀어낸 글이다. 북한의 최근 변화가 우리 정부의 주장처럼 제재의 효과가 아니라 협상 전술이 변화한 것이며, 그러한 북한의 대외 강경행보 중단은 중국이 상당부분 관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 구역개편론 평가와 바람직한 방향'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구역개편 논의에 허점을 짚고, 구역개편이 결국에는 지방자치 및 분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 다시 선거를 생각한다 : 정치공학의 그림자'는 요즘 이명박 정부가 왜 선거제도의 변화를 추진하는지를 친이계와 친박계로 나뉘어져 있는 한나라당의 구조를 통해 분석한 글이다.
 
'하토야마시대 일본과 동아시아, 전망 및 제언'은 장기 집권해온 자민당이 왜 2009년에 무너졌는지, 그로 인해 한일, 한미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올 것인지를 다각도로 다뤘다. '미국의 뉴딜과 MB의 녹색뉴딜 비교분석 및 제언'에서는 미국의 뉴딜을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진했던 것과 최근 오바마가 추진 중인 정책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이를 이명박 정부의 뉴딜정책과 비교하고 있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 글에서 왜 오바마의 뉴딜이 '그린 뉴딜'이고 이명박 정부의 뉴딜은 '그레이 뉴딜'인지를 '토건경제'와 '역주행'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2009년, 4대강국 정세 전망과 한국의 정책방향'은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의 동북아정책들을 각각 분석해서 그 정책들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했다. 또한 네오콘적 환상 속에서 출발한 이명박 정부의 외교가 어떤 모습인지, 그런 방향의 외교에서 왜 남북관계의 출구를 찾을 수 없는지를 분석했다.
 
인지도 높이고, '시민 후원형 싱크네트'로 거듭나야

  
주변 4강의 변화 속에서 한국은 어떤 새로운 정책을 내놓아야 할까?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6월 16일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모습.
ⓒ 청와대 제공
한미정상회담

 

정책연구가 가치를 가지려면 해당 정책이 전문가는 물론 일반 국민과 정책담당자에게 영향을 미쳐 연구 결과가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그러나 '대북 압박정책에서 벗어나자'고 주장하는 코리아 연구원의 진보성향 정책 제안이 이명박 정부에서 정책으로 채택되기란 사실상 어렵다.

매주 생산되는 양질의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코리아 연구원이 일반 대중에게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리아 연구원의 보고서는 일반 대중이 읽기에는 다소 어렵고 현재 정책에 직접적으로 반영되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금 없이 대부분의 재정을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한국의 진보 싱크탱크에게 낮은 인지도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코리아 연구원의 고민 역시, 낮은 인지도와 부족한 재정 사이에 있다.  지금은 한 달에 만원씩 후원하는 200명도 채 안 되는 후원회원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 익명의 독지가가 모자라는 대부분을 도와주지만 그렇게 언제까지나 지속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시민 후원형 싱크네트'로의 체질 변환이 시급하다. 

"어느 싱크탱크나 재정적인 문제가 가장 어려울 거예요. 우리 연구소 같은 경우는 연구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상근자를 좀 늘렸으면 하지만 그게 잘 안 되니까 고민입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좀 더 연구가 정교해 지겠지요"

연구기획위원장인 동국대 박순성 교수도 재정 확충의 필요성에 동감한다. 그러나 시민들의 후원 참여가 절실한 상황과는 달리 코리아 연구원의 홈페이지에는 아직 시민 참여와 소통을 위한 구조적인 기능들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다. 이런 조건으로는 빠른 시일 내에 '시민 후원형 싱크네트'로 변모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부자감세·4대강 뛰어 넘을 대안 찾아라
 
정치가가 혼자서 자신의 정책을 만드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복잡한 현대사회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앙 정계에 진출한 지 4년밖에 안 되는 짧은 정치경력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미국진보센터(CAP)의 정책 지원이 있었다. 오바마가 대선 때 공약으로 내걸었던 미국진보센터의 정책들은 미국 유권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지금 차근차근 실현되고 있다. 

상근직원 125명, 1년 예산 2000만 달러, 미국 내 영향력 10위 안에 드는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와 코리아 연구소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지식인들이 유연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신의 전문 지식을 기여하는 형태로 사회참여를 하고 있는 싱크네트가 적절한 기회를 만났을 때 어느 정도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섣불리 단정 짓기 어렵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상징적인 구호로 집권에 성공한 이명박 정부는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다 결국 무늬나마 서민정책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지역주의와 이념정치로 일관해왔던 우리 정치에서도 어떤 정책을 제시하는지, 어떤 의제를 제시하는지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4대강, 부자감세 등 정책 설정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주는 화두들이 언론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야당들은 여당의 정책을 비판할 뿐 대안이 될 만한 자신들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식인들로 구성된 싱크네트인 코리아 연구원은  다가올 2012년 대선에서 진보진영에 어떤 정책을 제시할 수 있을지, 그들의 발간할 다음 보고서가 기대되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 정책 수정 위해서는 진보 싱크탱크 연대 필요"

[인터뷰] 코리아 연구원 박순성 연구기획의원장

급여가 나오지도, 권력으로의 길이 보장되지도 않는데 그들이 정부 정책 연구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코리아 연구원을 통해 민간 싱크탱크 활동에 참여한 지 올해로 6년째인 박순성 연구기획위원장에게 들어보았다.

 

 

  
코리아 연구원 박순성 연구기획위원장
ⓒ 김동환
코리아 연구원

- 코리아연구원은 어떤 목표를 지향하고 있습니까?

"정책 보고서를 통해 공익을 지향하는 바람직한 국가 의제를 설정하고 정책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게 목표입니다. 요즘에는 우리가 만드는 정책이나 정책 대안이 현 정부에 의해서 수용되기가 사실상 어려운 현실이지요. 현 정부 정책을 잘 비판해서 방향을 선회하는 것에라도 기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장기적으로 바라는 것은 한국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국가가 필요한 정책대안을 생산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지식인들의 사회참여, 자기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전문연구 네트워크가 되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싱크탱크 운동을 하며 보람있었던 부분과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보람있었던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코리아연구원을 통해서 대안적 정책은 어떻게 짜며 협동 프로젝트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사회과학적 지식을 현실과 접목시키는 방법적인 면에 대해 많이 배웠고요. 연구원을 시작한 지 5년이 되었는데 코리아연구원이나 다른 싱크탱크들이 지식인들이 좀 더 큰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는 하는 터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쉬운 점은 요즘 들어와서 상대적으로 젊은 연구자들의 참여가 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저희 연구원만 해도 90년대 학번이 좀 적어서 보완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코리아 연구원에 와서 글을 쓰면 자기 글에 대한 피드백도 받고 사회참여도 되지요. 앞으로 젊은 연구자들이 더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 지금 우리사회의 진보싱크탱크의 수준과 가장 주력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진보싱크탱크들이 역할분담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코리아연구원이 외교-안보쪽에 집중한다면 새사연은 경제쪽에 집중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과 경쟁이 활발하게 이뤄졌으면 좋을 것 같아요. 원래 역할분담을 위해 진보 싱크탱크끼리 심포지엄도 하고 했는데 이게 잘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시민들 상황에 맞게 교정하기 위해서는 진보 싱크탱크들의 연합,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코리아연구원 연구기획위원장으로서 시민사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코리아연구원이 주로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자극을 주는 글을 쓰다 보니 글의 주제나 글쓰기 방식이 다수의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는 어려운 감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전문적인 식견을 담으면서도 충분히 쉬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대중들의 관심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것이 싱크탱크기 때문에 시민사회에서 코리아 연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많이 참여해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동환 기자는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재학생입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60384&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손전화 세탁사건 -..-

너무 부지런해도 탈인가?

 

아이가 농구하러 갔다와서

샤워하러 들어간 사이

땀에 쩔은 옷을 나는 세탁기에 무심코 갖다 넣었다.

 

다음 날 아침 안해는

다른 옷들을 모아서

무심코 세탁기를 돌렸다.

 

아이의 추리닝 바지를 널려는 데

유난히 무거워 보니

액정에서 물이 출렁이는 전화기를 발견했다....악~

 

아그랑 일말의 희망을 품고서...

AS센터로 들고가 맡겼는 데

손전화기의 사망선고...

 

알뜰살뜰 되로 아끼고

결국 말로 푼다더니...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눈물

도서관 참고열람실에서

우는 소리가 나서 보니

강풀의 만화 '바보' 를 보던 원의 우는 소리였다나...

"너무 불쌍해서 울었다"는 데...

 

그날 밤

이 만화책을 빌려와서

거실에서 읽던 쏭이도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다음 날

마눌이 다시 이 만화책을 읽었는 데

낮에 읽은 탓인지 맹숭맹숭했다나.

 

흠~

난 아직 그 책을 못 봤으니

어떨지 모르겠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대근칼럼]비핵·개방, 그리고 거짓말

북한의 대화 메시지를 받아든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엉거주춤이다. 전술적 변화일 뿐이라는 판단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이 신중함을 탓할 생각은 없다. 북한의 행보에 의심스러운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차 공세를 위한 숨고르기일 수도 있다. 문제는 신중함이 아니라 신중함을 통해 드러나는 이명박 정부의 자세, 즉 교착국면을 돌파할 의지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전술적 변화든 뭐든 변화는 변화다. 움직여야 한다. 고민해야 한다. 이명박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 얼마전까지 이명박의 고민은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 통민봉관(通民封官)하면 어떻게 하나’였다. 그런데 정작 그런 전술을 구사한 쪽은 북한이 아닌, 남한이었다. 한·미공조는 확실히 하면서(통미) 북한과의 대화는 스스로 봉쇄했다(봉남). 또 대북 민간 교류를 허용하면서도(통민) 북한 당국과의 대화는 기피했다(봉관). 그런데도 이명박이 유화 공세와 위협의 혼란스러운 신호를 받고 있다고 고백할 정도로 북한은 변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이명박은 이런 상황 변화에 상응하게 섬세하고 정교한 대응을 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 그런데 그는 연합뉴스·교도통신 인터뷰에서 느닷없이 최근 북한 움직임은 위기 탈출을 위한 유화책이라고 ‘폭로’하고, 핵보유 기정사실화를 목표로 한다고 ‘고발’하고, 핵포기 진정성이 없다고 ‘분석’하면서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묘한 정세와 어울리지 않는 무디고 거친 발언이다.

8·15경축사와 다른 행동의 정부

분위기 탈 줄 모르는 이 남자의 무감각증은 어디서 온 것일까. ‘북한이 밀리고 있다, 조금만 더 밀면 완전히 무릎을 꿇릴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그게 성공만 한다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역대 어느 정권도 이루지 못한 위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판타지다. 그게 가능했으면, 과거 정권이, 주변국이 지금까지 비핵화에 실패했을 리 없다. 상상은 자유이지만, 최소한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해야 한다. 이명박의 분석대로 유화 공세가 북한의 전술적 선택이라면, 제재와 압박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의 굴복이 아니라 3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같은 강력한 반격 가능성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핵능력은 더 향상되고, 북한은 더 위험해지고 북핵 문제는 물론 남북관계도 악화되고 복잡해져 풀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렇게 안될 수도 있지만, 그건 운 좋은 경우이다. 이명박은 운을 믿는가.

북핵은 적대적인 외부 환경에 반응한 결과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한·미 연합전력, 핵우산, 북·미 적대관계를 그대로 두고는 절대 북한 스스로 무장해제하지 않는다. 개혁·개방도 마찬가지다. 외부 환경의 변화 없이 북한 홀로 결단할 수가 없다. 사실 북한이 아니더라도 가만히 기다리면 혹은 겁을 주면 알아서 비핵화하고 개혁·개방할 체제는 지구상에 없다. 이것이 바로 북한이 도발·위협할 때 북한을 포위하고 제재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해도, 해결책이 못되는 이유이다. 진정 비핵·개방을 원한다면 북한에 대한 적극적 관여, 북한과 주변국의 관계 개선을 촉진해야 한다. 비핵·개방은 북한이 불안해할 때가 아니라 안전하다고 느낄 때 시작된다. 그러나 이명박은 이런 노력을 포기함으로써 핵능력 및 내부통제의 강화라는, 비핵·개방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북한을 유도, 자기 원칙이 남북관계 개선·북핵문제 해결이라는 목표와 충돌하는 지점에까지 몰리고 있다. 북핵문제가 악화되고 남북관계가 파탄나더라도 북한에 큰 소리 한 번 쳐봤다는 소박하고도 소심한 업적을 손에 쥐는 것이 목적이라면 상관없다.

북 핵포기 진정 바라는지 의문

그러나 ‘비핵·개방 3000’이 진짜 목적이라면, 대북정책의 원칙 및 수단들은 북핵문제 해결, 남북관계 발전과 조화되도록 수정해야 한다. 물론 아직 그런 기미는 없다. 그래서 이런 의심이 고개를 든다. 혹시 비핵이니 개방이니 하는 것이 말과 달리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의 축적을 요구하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않기로 한 것 아닐까. 그렇다면, 비핵·개방을 지난 10년 정권보다 잘 할 수 있다는 장담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지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한 8·15 경축사는 거짓말이었다고 사과해야 한다.

<이대근|정치·국제에디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펌:민족화해] 강 건너 외국땅에서 우리나라를 보았다

신의주에서 중국을 바라봐야 할 나는 강건너 외국땅에서 우리나라를 보았다

김채원 청심국제고 1학년

압록강, 두만강 따라 1,295km

북한이라는 단어 자체는 귀에 박힐 정도로 들어봐서 지겨울 때도 됐지만 북한의 실체는 내게 언제나 미지의 세계였다. 심지어 처음 ‘조중 접경지역 답사’의 안내지를 볼 때는 “북한이 여기 있었지!”하고 지도를 보며 새삼 놀라기도 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지도를 그릴 때 마다 아무 생각없이 한반도 형상을 그려왔고 그 위쪽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것을 거의 느끼지도 못했다. 더구나 우리 집은 서울보다 판문점이 가까운 일산이다. 이렇게 북한을 “코 앞에” 놔두고도 북한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해보고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이런 나에게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해로 흘러가는 505km의 두만강을 따라, 그리고 서해로 들어가는 790km의 압록강 끝까지 조선-중국 접경지역 답사는 뜻밖의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중국 땅을 이동하면서 강 건너편의 북한 주민들을 불과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서 북한과 통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국경지역의 제일 흔한 풍경은 강을 따라 계속되는 평범한 농촌마을의 모습이었다. 굴뚝 달린 허름한 집들이 줄지어 모여 있고 그 주변으로 옥수수밭과 보리밭이 이어졌다. 중국 쪽과 달리 북한 쪽은 평지가 아닌 민둥산 꼭대기까지도 다락밭이 많다는 점이 특별한 구경거리였다.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부들의 모습은 멀리서 보기에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낚시하는 사람은 인형으로 착각할 정도로 몰입하고 있는 게 신기했고, 자전거를 타고 양을 돌보는 소년의 모습도 놀라웠다. 물가에서 빨래하는 아주머니들도 자주 볼 수 있었고 물가에서 고기잡이하는 아이들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국경 지역 북한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집들이 허름하고 옷들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굶주리는 단계를 벗어난 것인지 어느 정도 표정과 걸음걸이에서 여유가 느껴지기까지 했다.

강을 따라가 보니 허름한 농촌만 있는 것은 아니라 상당히 큰 공장들과 중소도시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산봉우리에서 내려다 본 무산시엔 수많은 굴뚝이 있어서 한눈에 보기에도 공업도시로 보였다. 무산시는 철광석을 캐는 광산도시라고 했다. 그런데 공업도시인데도 집들은 농촌마을과 거의 똑같아 보였다. 중국의 집안시에서는 물안개 낀 압록강 건너 만포시의 제련소를 보기도 했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오고 있었고, 굴뚝 주변의 산은 황량해 보였다.


튜브 끼고 물놀이 가는 아이들

장백현에서 압록강을 따라서 산책하면서 바라본 혜산시도 꽤 큰 도시였다. 강가를 따라서 허름한 집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거대한 공사현장도 보였다. 그곳이 “150일전투”를 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붉은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강을 따라 조금 더 가다보니 보천보전투기념탑도 선명하게 보였다. 이 때 신기한 풍경이 강 건너에 펼쳐졌다. 약 백 명도 넘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가는지 튜브를 모두들 하나씩 어깨에 메고 두 줄로 걸어가고 있었다. 망원경으로 보니 신나게 장난치며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강변에는 한 무더기의 아이들이 튜브를 한 쪽에 쌓아두고 놀이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북한 아이들은 굶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분명 신기한 광경이었다. 조선족 가이드선생님은 국경지역은 그나마 식량사정이 괜찮은 편이라고 귀띔해주셨다.

중국의 단동에서 본 신의주는 공장도 보이고 바닷가에 작은 배들도 많이 세워져 북한의 다른 마을보다 훨씬 발달된 도시 같았다. 강변에는 압록강각 이라는 큰 건물이 있고, 그 앞 강가에서 수영하며 공놀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신의주도 강 건너의 중국의 단동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압록강에서 유람선을 타면 양쪽에 너무도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한 쪽은 거대한 신도시, 또 다른 쪽은 북한의 작은 도시가 보인다.


외국 땅에서 바라보는 우리나라

그러나 이때쯤 나는 이미 북한의 국경지역 마을들과 사람들을 충분히 봐서 더 이상 신비감은 없었고 머릿속은 이런 생각으로 차있었다. 나는 무엇을 보려는 걸까? 이번 답사에서 난 뭘 봐야할까? 그러다가 그제야 무엇이 중요한 건지 깨달았다. 우습게도 이번 여행에서 나는 외국 땅에서 우리나라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가 강대국들에 의해 왜곡되지 않고 온전히 흘렀다면 어쩌면 나는 저기 압록강의 신의주에서 중국을 바라보면서 신기하다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지러운 한자가 여기저기 써 있는 이곳은 명백한 외국인 중국이었다. 내가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신이 나서 멀리서 망원경으로 쳐다보는 저쪽이 알고 보니 우리 땅인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뿐만 아니라 나는 내가 배웠던 고대사와 조선시대 그리고 근대사를 북한의 아이들도 배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역사를 공유했던 한민족이 서로 분단되어 있다는 것이 그제야 실감나게 다가왔다. 이번 답사에서 방문했던 역사의 유적지들이 생각났다. 항상 자부심을 안겨주는 광개토대왕비, 아쉬움으로 남는 조선 건국의 시발점이 된 위화도, 우리 민족의 정신을 보여준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쏘기 직전 4개월 간 거주한 생가, 윤동주가 다닌 용정중학교와 혜란강, 압록강에 끊어진 채 남은 단교.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들이 역사의 흔적들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었다. 항상 나의 가슴을 짓눌렀던 답답함과 아픈 민족 수난의 현장을 보는 듯 했다.

특히 백두산 서쪽으로 올라서 천지를 보지 못해 아쉬워하다가 결국 남쪽으로 다시 올라 천지를 기어코 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다. 천지의 반대편 북한의 땅에서도 천지를 바라보고 있겠지. 이거 뭔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상황인데.... 은하수를 사이에 둔 견우와 직녀 같구나. 안개 너머 천지 저편에는 북한이 있겠지.

하지만 통일을 해야 되는 이유가 견우와 직녀처럼 반드시 감정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통일은 분쟁을 평화로 되돌린다는 의미, 또 강대국들과 냉전에 흔들린 역사를 되돌린다는 의미에서 꼭 실현해야 할 가치인 것 같다. 통일이야말로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이 세계평화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반도는 몇 안 되는 분쟁지역으로서 전 세계인이 주시하고 있다. 통일문제는 비단 우리 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의 문제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워서 나중에 한반도에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도록 나도 뭔가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그 전에 통일이 되면 더더욱 좋겠고....

<민화협의 민족화해에 기고한 글>

http://www.kcrc.or.kr/?doc=bbs/gnuboard.php&bo_table=z_column_2&wr_id=3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홍구] 환히 웃으며 돌아오세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이니 장수하셨다. 그런데 슬프다. 너무 슬프다. 더 오래 사실 수 있었는데 … 더 오래 사셔야 하는 건데 …. 지난 5월 몸의 반쪽이 무너지는 일을 당하시고, 남은 반쪽으로 무리를 하시다가 … 몇 년 일찍 보내드린 아픔은 그래도 견딜 수 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게,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좋은 꿈이 아니었다. 편안하게 가셨다는 병원 당국의 설명과는 달리, 그분은 악몽을 꾸고 울면서 가셨다.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인터넷에서 ‘서거’라는 두 글자를 본 것은 마침 그날 저녁 한겨레신문사 특강에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의 역사를 다루기로 하여 강의안을 작성하던 중의 일이다. 멍한 머리로 기억을 애써 더듬어가며 그분이 걸어온 길을 정리하려 하였지만, 그의 삶은 곧 한국 현대사였다. 그 굽이굽이에 남긴 참으로 많은 업적과 깊은 발자취를 어찌 90분 짧은 강의안에 다 기록하겠는가? 박정희를 위협한 박빙의 대통령 선거, 납치에서의 기적 같은 생환, 다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내란음모 조작 사건, 양김의 분열과 선거의 패배, 대통령 당선, 남북 정상회담, 노벨평화상 수상 등 하나하나가 장편소설로 써도 모자랄 진한 이야기들로 점철된 것이 그의 생애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삶에서 가장 빛나고 오래 기억될 모습은 입원하시기 직전의 마지막 두 달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10년간의 민주정권을 지내면서 사람들은 다 싸우는 법을 잊어버렸다. 촛불이 꺼진 뒤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충격과 슬픔과 분노를 겪고도 겨우 시국선언이나 했을 뿐, 우리의 근육은 살아나지 않았다. 현재진행형으로 숨 돌릴 새 없이 세상은 거꾸로 가는데, 우리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때 중심을 잡아주신 분은 단연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역주행을 처음 지적하고, 현재의 문제를 민주주의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이명박 정권의 본질을 독재정권이라 규정하고, 민주당, 진보정당, 시민사회 등 민주연합세력의 대동단결이라는 방안을 제시한 것은 다름 아닌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터뜨린 오열이 보여주듯 가장 깊이 슬퍼하면서, 가장 치열하게 싸운 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행동 없는 양심은 악의 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처절하도록 간단한 진실을 온몸으로 보여준 분은 바로 그분이었다.


위기는 이명박 정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말씀처럼 악의 세력과 다퉈서 이기는 것도 아주 쉽고, 지는 것도 아주 쉽다. “아무것도 안하면 지니까.” 사람들이 다 싸우는 법을 잊어버렸을 때, 그분은 꼭 각목을 휘두르지 않고도, 고문당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법을 제시하셨다. 답은 복잡하지 않다.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하고,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에 투표를 하지 않으면” 되고, 나쁜 신문 보지 않고, 집회에도 나가고, 인터넷에 글 올리고, “하다 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고 연부역강한 젊은이들이 “하루도 쉬지 말고 민주화, 서민경제, 남북화해를 위해 힘써 달라”고 부탁하셨다. 특별한 유언이 따로 없으셨다고? 그분은 온몸으로 유언을 쓰고 간 것이다. 그분은 가만히 계시기만 해도 비바람을 막아주고 뙤약볕도 막아주는 지붕 같은 분이었다. 이제 우리는 지붕 없는 한데에 나앉았다. 부디 그분이 남긴 정치적 유산을 탐하지 말고, 유지를 잇도록 하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