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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스타일

  마담언니를 분개하게 만들었던 어느 중소규모 사업장.

계약 6개월이 넘도록 이런 저런 사정으로 방문을 못하다가 어제 드디어 갔다. 가보니 보건담당자는 삼성에서 감사가 나와서 바쁘다며 대신 작업장 순회점검을 안내해줄 사람을 준비해 놓았고 12시부터 시작될 건강상담시간은 사전에 신청을 23명이나 받아놓았다고 한다. 



 이 회사는 특검 수가가 비싸다고 다른 곳에서 검진을 했기에 우리에게 자료가 없다. 건강상담에 참고하기 위해서 달라고 했더니, 그게 지금 삼성에서 나온 사람들한테 들어가 있다고 한다. 어떻게든 12시전에 그 자료를 빼내서 주겠다고 하더니 시간이 다 되어서 나타나서는 머리를 긁적 긁적 거리며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시잖아요, 삼성스타일, 저도 그거 싫어서 4년만에 나왔거든요".

 

 내가 경험한 삼성관련 기업(주로 하청업체)은 이렇다.

회사 곳곳에는 일류가 되어야 한다는 식의 구호들이 적혀있다. 현장에서 조장이나 반장한테 뭔가 질문하면 똑부러지게 답변하고 뭔가 말하면 수첩을 꺼내들고 꼼꼼하게 받아적는다. 우리가 작성한 업무보고서는 담당자가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반드시 무슨무슨 그룹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실질적인 책임자가 읽고 결재를 한다. 다음에 방문하면 그 문제가 어떻게 결정이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준다. 큰 돈 들어가는 일, 이를 테면 환기시설을 개선한다든가 큰 시설을 바꾸는 일은 대체로 해결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마진률이 높아지면 자체 기술개발할 우려가 있으므로 현상유지 이상의 마진을 절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삼성왕국영토내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예를 들어 장비납품을 하러 들어가서 하는 작업에서 고농도의 유기화합물에 노출되어 머리가 아프다는 호소가 있거나, 중량물 취급으로 허리가 아프다든가 하면 어쩔 수 없다. 감히 작업장 평가를 해보자고 하는 순간, 물량이 떨어져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뒤에는 귀찮게 안 하고도 납품하고 싶어 안달하는 회사들이 줄을 서 있다.

 

 그러니 건강상담하러 왔으니 검진자료 달라는 그 당연한 말이 보건담당자 입에서 나오다가도 기어들어가는 것이다. 삼성스타일이 어려운 점은 하청업체 사정이 뻔한데다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과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는데 있다. 검진결과는 어땠냐 물어보니 3명을 제외한 수검자 전원이 정상 이었다기에 그럼 다음에 보자 하고 통과.  

 

  이 회사는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환기가 잘 안되는 곳에서 저농도 화학물질에 만성 노출되는 것이 원인일 수 있겠다. 일단 방진마스크라도 지급하고 필요한 사람이 쓰도록 하는 게 좋겠다. 환기시설개선에 대해서는 우리가 보고할 테니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열고 우리를 참석시켜달라고 했다. 작업자들은 20대 초반이 가장 많고 근무기간도 일년 이내인지라 반복작업에 의한 근골격계 질환이 심각한 사람은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조회시간에 예방체조정도는 해야되겠지.

 

 보건담당자가 싸인하며 하는 말이, "선생님들은 이렇게 쓰기만 하고 끝나니까 좋겠어요. 선생님들이 가끔 와서 이렇게  몇 줄 쓰신 거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 일해야 하는지 모르실꺼예요. 저 이거 들고 그룹장님한테 가면 깨져요. 그래도 잘못한 것은 배워서 고치면 된다고 하시니까 다행이죠."

 

 내 답변은 이렇다. " 알아요.  얼마나들 과로하는 지도 알아요. (나도 안타깝거든). 우리도 꼭 필요한 거만 쓰니까 신경써서 해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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