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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받은 전화-특수검진 미검문제

  비교적 규모가 큰 사업장의 보건관리자한테 전화가 왔다.  예산책정이 안되어 안과와 이비인후과에 의뢰한 환자들의 진료를 볼 수 없는 상황인데 어쩌면 좋겠냐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만 이야기했으면 괜찮은데 환자들도 진료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항의전화가 왔으며 노동조합에서도 왜 진료를 받아야 하는가 불만이 많다고 전한다. 

  검진과정에서 타과 의뢰진료를 낼 때는 사전에 본인의 동의를 구한다.  나는 건강문제가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기능의 손상이나 삶의 질에 관한 것일 경우 본인이 심각하다고 느끼지 않는 문제라면 이차검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건강문제가 많은 사람들한테 나타나는 것인 경우 집단의 건강을 위해서는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사측에 작업장 개선을 권할 때는 객관적 근거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안과나 이비인후과적 문제에 대해서 이차 검사를 진행하는 목적은 개인의 건강과 삶의 질의 향상뿐 아니라 집단의 건강을 위한 대안마련의 기초자료를 확보하는 데 있다. 



  근로감독에서 중요하게 챙기는 부분이다.  미검자의 사유가 적합하지 않으면 사업장에 지도감독명령이 떨어진다.  그러니 미검문제는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우리는 미검자에 대해서 본인이 원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사측에서 동의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에 대해서 사유를 기록한다. 

 

  실제로는 어떠냐.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이차검사를 받으려면 자기 휴가를 내야 하고 근무중에 병원에 올 수 있다 하더라도 동료들의 눈치도 보이고 어디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찍히는 것도 싫어서 이차검사를 받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막상 본인이 이차검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받으려고 하면 펄쩍 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억울한 심정으로 검사에 마지못해 응하게 된다. 사측은 전문가가 권한 이차검사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할 근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사측이 동의하지 못해서 미검처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검은 그 특성상 개인의 사생활보호에 어려운 점이 많다. 

그래서 비교적 덜 심각한 건강문제이고 개인이 대처할 능력이 있는 경우 개인의 건강문제가 공개되는 것을 원치않으면 굳이 이차검사를 내지 않는다.  특히 알레르기성 질환들은 감수성이 있는 개인에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환자가 비난을 받을 소지가 충분하고 딱히 치료방법도 없다.  그래서 천식과 같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병이거나 많은 사람들이 이환되어 작업장 개선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검진을 더 진행하지 않는다. . 판정은 사후관리를 위해서 내리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건강문제와 작업환경과의 관련성을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무슨 판정을 받느냐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 경우 환자들이 마음이 바뀌어서 진료를 받기 싫으면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고 사유서를 첨부하여 미검처리하면 된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면 사측에서 책정된 예산이 없으니 개인부담으로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고 한다.  당연히 반발이 생겼겠지.  게다가 문제가 시끄러워지는데 그 주인공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다들 이차검사를 안 받겠다고 했겠지. 검진과정에서 그들이 나에게 한 질문에는 이차검사를 받게 되면 혹시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포함되어 있었다.  당신 혼자만 받는 건 아니라고 했을 때 그럼 받겠다고들 답변했었다.

 

  이런 전화를 받기까지 과정을 들여다 보면 앞으로 더 세심하게 처리해야 할 숙제를 던져준다. 

 

   첫째는 사업장 보건관리자와 충분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말로 하면 별 문제 아닌 것이 공문으로 처리되면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공문으로 처리하지 않고 말로만 한다면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회사는 내가 전화를 해서 자세한 설명을 하려고 했으나 너무 바빴다.  이 정도의 문제는 검진팀에서 알아서 잘 설명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더 꼬이는 경우들도 있다. 떠날 날이 얼마남지 않은 지금 대여폰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으나 사실 그걸 만들러 갈 시간도 없었다.  직원들이 내가 연락이 안되어 너무 힘들어 하니 오늘은 대여폰을 알아보아야겠다.  그런데 그런 건 어디가서 해야 하는 것인지.

 

  둘째, 이차검사에 대한 동의를 받을 때 더 분명한 절차가 있어야겠다.  타과의뢰가 필요한 경우 이차검사 동의서를 받아두는게 좋겠다. 때로 수검자들은 의사앞에서 주눅이 들고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고개를 끄덕이나.  이문제는 수검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중요하니 세심하게 처리해야 겠다. 

 

   오늘 아침에 받은 전화는 우리 병원이 노사양측, 수검자와 갈등이 생기는 지점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모두들 출장다니느라 바쁘다보니 내부에서도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사측이나 노측, 수검자와도 잘 소통이 안되는 것 같다.

 

  일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지속되고 새로운 문제가 더해지면 좀 지친다.  원만한 검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더 필요한 게 있는 지 좀 더 생각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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