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4월

    작년 하반기부터 부쩍 업무관련성 평가서 의뢰가 늘었다.  그거 하나 쓰는데 조사에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 웬만하면 좀 안하려고 해왔는데, 오겠다는 것을 말릴 수도 없다.  다행인 것은 전공의 선생의 수가 늘어서 일을 같이 한다는 점이다.

 

1. 올초에 쓴 업무관련성 평가서 두 장

    o 비정규직 용접사의 폐질환 - 2월 중순에 마무리해서 넘겼는데, 본인한테 잘 치료받고 있느냐 물어보러 전화했더니 근로복지공단에서 아직 연락이 안왔다 한다. 환자는 작년 여름부터 기다렸는데, 내가 늦게 처리한 게 가장 큰 원인이지만(변명하자면 자료를 제대로 받는데 시간이 걸렸다), 전체적으로 행정처리가 늦는 것 같다.

 

   o 교대근무자 없이 24시간 일했던 경비직의 뇌혈관질환 - 법원에서 내가 쓴 것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아 유족들이 항소했다고 한다. 유족의 말 " 선생님이 쓴 걸 읽어보니 그 이상의 말이 필요없을 정도예요. 그런데도 판결문은 아주 더럽게 나왔어요"

 

2. 요즘

 

  o 과로와 높은 직무스트레스에 노출되는 항만 하역 작업 반장의 뇌혈관질환

      - 항만 작업의 특성, 배가 들어오면 일하고 아니면 대기하는 불규칙한 근무특성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직종이라도 소규모 다품종을 취급하는 사람들이 더 힘들다더라.  이건은 노동조합이 있어서 자료가 잘 되어 있었고, 급성 과로가 명확하여 어려운 점이 없었다.

 

  o 도로에서 전선 설치 작업자의 추간판 탈출증

     - 요추부 퇴행성 변화가 진행되면서 급성으로 생긴 추간판 탈출증의 MRI 소견에 대해 배웠다. 전공의선생이  차분하게 문헌리뷰를 잘 해주어서 기특했다.

 

  o 장기간 장시간 미행감시 업무 작업자의 경추 추간판 탈출증

     - 정면주시를 할 수 없는 작업의 특성상 하루 작업의 60^이상을 목이 비뚤어진 자세로 업무수행, 하루 15시간 작업(비인간적인 노동과 질병의 업무관련성을 평가한다는 것이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o 새벽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던 페이로다 작업자의 뇌졸증

- 환자 상태가 나빠서 업무특성(급성 과로, 직무스트레스 여부)을 파악할 수 없어 좀 더 회복되면 오시라했는데, 산재신청을 포기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회사에선 사건이전 일주일치 월급만 주었다고 분개하던 보호자에게 노무사를 소개해주었었다.  만성 과로는 산재승인이 잘 되지 않아 난감했었는데, 포기한다니 착잡하다.

   

 o 호흡기 증상으로 인해 퇴사한 이주노동자

- 고용허가제로 들어왔는데, 작업장의 공기가 너무 나빠서 기침이 심해서 그만두었다. 기침은 좋아졌는데, 퇴사처리를 둘러싸고 업무와 관련된 건강문제가 있었는지 알기를 원했다.  폐기능 유발검사상 정상이어서 일단 안심은 했으나 앞으로 유사한 작업을 하는 곳에는 취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증상이 있어도 참고 일하다가 큰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은데, 그만둘 수 있었던 현명함이 다행스럽다. 말이 안 통하는 이주 노동자의 검사진행을 세심하게 살펴본 전공의 선생이 고맙다.

 

o 도장작업을 했던 이주 노동자의 알레르기성 피부질환

- 얼굴이 입국당시와 비교해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푼 사진과 유해인자 노출에 대한 자료를 보내왔다. 착한 분석기관의 호의로 노출되는 화학물질에 대한 성분 분석을 무료로 했으나 알레르기 유발물질은 없었다.  범인을 찾기가 쉽지 않겠다. 계속 조사중 .

 

    업무관련성 평가서를 쓰면서 느낀 점의 하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직업병이 생긴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이 하루에 만오천개 하면 저는 이만개 했어요."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한 노동자가 한 말이다.  이 분 뿐 아니라 직업병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 보면 한결같이 동료들보다 손이 빠르고 일을 잘해서 칭찬받았는데, 병에 걸리자 모른척 한다고 속상해했다.  몸 아플때까지 열심히 하는 것이 이 나라 전체가 앓고 있는 병인 것 같다.

 

    본격적인 검진철이 시작되었다.  다음주부턴 일정 빡빡.  골치아픈 프로젝트는 5월말까지 계속된다.  살살 다녀야징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