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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면담을 요청함

뻐꾸기님의 [두 친구] 에 관련된 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지만 짧게 적는다. 짧게라도 적지 않으면 잊어버릴까봐.

 

자동차 라디에타 부속품을 만드는 K 실업.

꽤 오랜만에 방문했더니 공정과 그 유해인자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거의 다 바뀌었다. 숙련된 작업자들은 대부분 퇴사하고 이주 노동자, 병역특례, 사내 하청업체 소속 작업자들로 대체되었다.



  8시부터 11시까지 약 50명 검진. 오늘도 생산에 차질있으니 빨리 좀 해달라는 독촉을 받았다. 독촉한 사람 차례가 되어 물어보니 바로 그 때 나와 대화중이던 작업자의 일이 밀려있어서 그런 거라고 미안해 한다.

 

 #1. 지난 번 방문 때 사내 하청으로 옮기라는 압력과 월급 쬐금 올려준다는 감언이설 사이에서 망설이던 아주머니는 다행히 잘 버티고 있었다. "잘 하셨어요" 하고 칭찬하자 씩 웃는다.

 

#2. 작업장 순회점검을 하는데 직장이란 사람에게 아주머니들 안전매트 좀 사주라고 했더니 금시초문이란다. 관리과 뿐 아니라 담당 부서장을 먼저 설득하는 것이 빠른 법인데 이 사업장에서는 그 점을 놓친 것 같다. 

 

 #3. 2년전 부터 어깨가 아팠던 아주머니는 이제 운동장애까지 생겼다. 정밀검사하고 요양치료해야 한다고 했더니 "그렇게 좀 해 주세요"한다. 그래놓고 나중에 작업장 순회점검을 하는 데 쫓아와서 "아무래도 산재는 어려울 것 같아요" 하길래 일단 아픈 것 부터 해결하자고 한다. 아주머니가 선호하는 것은 공상치료, 개인부담 치료, 산재 순이다.

 

#4. 오래된 고혈압 환자인 뚱뚱한 아주머니는 계속 상담거절 상태였다. 오늘 검진하면서 치료받지 않는 진짜 이유에 대해서 조용히 물어보았더니 아저씨가 하도 속을 썩여서 여기저기 아파서 약을 달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 오년동안 약은 질리도록 먹었다고 한다. 하여간 약이라면 지긋지긋하다. 죽더라도 약먹는 건 싫다는 것이다. 그럼 살이라도 빼시라고 했더니 이게 다 약살이란다.  약먹고 찐 살이란 뜻이다.  의약분업전, 아마 여기 저기 아프다고 찾아간 약국에서 스테로이드 호르몬 계통의 약을 받아서 장기간 드신 것 같다. 

 

#5. 팔과 얼굴에 심한 접촉성 피부염을 가진 사람이 세 명 있었다. 모두 신규 입사자인데 둘은 이주 노동자, 한 명은 병역특례이다. 납땜할 때 쓰는 플럭스 성분에 의한 알레르기 증상이 고열 작업으로 더 심하게 나타난 것 같다. 환자들에 따르면 피부증상이 있는 사람이 내가 확인한 사람 말고도 몇 명 더 있다고 한다. 빠른 치료와 원인규명을 위한 조사 및 대책 수립을 강력히 권했다. 그랬더니 관리부장이란 자가 기분나쁘게 나온다. 나더러 "선생님은 목숨걸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저희들은 고려해야 할 것이 여러가지가 있지요" 어쩌구하면서 싸가지 없이 군다. 그래서 최근 화학물질 건강장해에 관한 관리감독이 강화되고 사업주 구속도 가능한 상황이니 사장이 직업성 피부질환 집단 발생에 대해 알아야 할 할 테니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우리 지역에서 직업성 피부질환 유소견자 판정이 나간 사업장이 모두 안전보건진단을 받았음을 알려주고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서로의 의무를 다할 수 있기를 빈다는 말로 정리했다. 

 

#6. 유기용제 스프레이 작업자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최근 작업물량 증가로 두통과 어지러움 등의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환기시설 개선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3억을 들여 설치했다는 이 회사의 국소배기시설들은 전반적으로 잘 가동되지 않고 있다. 무수히 많은 검토가 있었으나 결론은 개선 유보. 역시 사장을 만나야겠다.

 

 이 회사 관리자들은 하나같이 상식이하의 언행을 한다. 다시 발걸음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무례하게 군다.  그러나 우리를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안 갈 수 없다. 검진끝나고 나올 때 '내년에 또 만나요' 하고 웃으시던 식당 아주머니의 얼굴, 그리고 수고했다고 주시는 삶은 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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