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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기업에 검진하러 간 날

뻐꾸기님의 [요지경] 에 관련된 글. 

  자동차 시트 프레임을 만드는 D공업. 제발 계약을 해지하자고 해도 소용이 없다. 회사의 주요 간부들은 모두 같은 성씨이고 사장의 친인척이며, 얄미운 총무과장을 빼고는 일 년이상 다니는 사무직원이 없는 것 같다. 생산직은 이주 노동자를 빼고는 오래된 생산직 노동자들은 전부 소사장이고, 일부는 불법 생산직 파견이고, 더 값싼 노동력을 찾아서 개방교도소에서도 인력을 동원하고 있다.



 

우리 간호사가 엄청나게 노력해서 소사장들도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세상에, 총무과장이란 자가 청력검사하는 곳에 붙어서 검사결과가 나쁘면 찢어버리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올해 검진인원이 약 80명밖에 안되서 알아보니 소사장들은 검진을 받는 것이 불이익의 근거를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검진을 거부한 것 같다고 한다. 분명히 이 회사에서 생산감독을 받으며 회사가 제공한 작업장에서 일을 하지만 법적으로 사장인 그들에게 특수건강진단을 받으라고 설득할 근거도 없지만 그 결과가 나빴을 때 그나마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하니 제도권 산업보건기관인 우리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작업장 순회점검을 하면 관리자들이 쫒아와서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아예 무시하고 우리끼리 작업장을 돌아본 적도 있다.  언젠가는 허리부담이 심각할 것으로 보이는 작업을 하는 인도에서 온 이주 노동자에게 허리 아프지 않은가 물어보니 ‘많이 많이 아프다, 그래도 요가를 꾸준히 해서 견디고 있다’는 답변을 들으면서 그 큰 눈을 바로 보기가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 작업은 조금만 신경쓰면 허리를 비트는 각도를 조정해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작업이어서 우리 산업위생사가 업무보고서에 권고사항을 적었는데 물론 소귀에 경읽기이다.  이 사업장을 담당했던 버섯아줌마는 방문할 때마다 제발 계약해지하라고 총무과장에게 면박을 주었고 그렇게 세게 나간 덕분에 만성 질환 관리 사업은 좀 진행이 되었다. (버섯 아줌마는 이걸 읽으면서 기분이 어떨까?) 

 

  오늘은 이 회사 소속인 사무직 노동자들과 이주 노동자들만 검진을 받는다. ‘이주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열악하고 드러나지 않는 건강문제가 있을 것 같지만 말이 통하지 않고 통한다 하더라도 아파서 쫓겨날 걱정에 말할 리가 없다. 사무직 노동자들은 말은 통하나 작업환경이 양호하고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있으니 오늘 검진이 일찍 끝나겠구나’ 생각하고 검진을 시작했는데,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이 있어 꾸준히 관리중인 환자들의 상태가 하나같이 엉망이다.  시간이 없어 병원 못 가는 사람은 야간 진료, 주말진료하는 의원을 알려주고, 약은 먹는데 혈압이 제대로 조절 안되는 사람은 우리 병원 토요 진료 예약으로, 개인의 의지가 문제인 사람은 설득을 한다. 나중에 우리 과 직원들로부터 들어보니 눈치빠른 총무과장이 그렇게 사후조치를 권고받은 사람들을 하나 하나 붙들고 개인의 의지 부족이 문제의 원인임을 확인시켰다고 한다. 과로사로 불리우는 작업관련 뇌심혈관질환 예방 의무를 사업주에게 가르친 효과가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주 노동자들은 태국인이 대부분이었는데 한 명을 빼고는 말이 하나도 안 통한다. ‘배아파요, 목아파요, 머리 아파요’가 공통적인 호소 증상이고 두세명은 심각한 요통과 무릎의 통증이 있다. 콘크리트 바닥을 딛고 서서 하루에 14시간씩 물건을 옮기면서 아프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은가! 이학적 진찰상 정밀검사를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여 ‘작업평가및 작업자세교정, 자가치료법’을 알려주는데 이게 전달이 된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무릎이 아프다는 사람은 정밀검사나 의학적인 치료보다는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작업조정을 위해 총무과장과 논의해보자고 했더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럼 증상이 좀 좋아질 때까지 8시간이상 일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괴롭다.  그렇게 한참을 이주 노동자들과 손짓 발짓 하고 있는데 총무과장이 와서 빨리 좀 진행해달라고 한다. 생산일정에 차질이 있다는 것이다.


  희안하게도 그 뒤부터 들어온 이주 노동자들은 아무 증상이 없고, 한국인 노동자들은 아예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서서 빨리 보내달라고 재촉을 한다. 내가 지체하면 사람들이 현장에서 가서 싫은 소리 듣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라는 대로 기본 사항만 체크하고 보내는데 거의 마지막에 총무과장 차례가 되었다. 그래도 “아시잖아요, 어쩔 수 없는 거?” 하며 미안한 척은 한다. 완성차에 부품을 제 때 납품 못하면 일분에 60만원에서 70만원 사이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럼 물건을 미리 만들어 놓으면 될 것 같지만 재고를 쌓아놓았다가 완성차에서 오더를 바꾸면 전량 폐기해야 하기 때문에, 재고를 쌓아놓을 공간도 없기 때문에 그날 보낼 부품을 그날 그날 만들어야 하는 게 하청업체의 현실이다. “벌금물리는 완성차가 나쁜 거죠, 뭐” 하면서 ‘내가 왜 이 사람을 위로하려고 하는 거지?’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그 순간 작년에 이 자가 청력검사결과가 나쁜 사람의 검사지를 찢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것 생각이 나면서 짜증이 인다. 

 

  업무일지를 쓰면서  산업위생사 방문때 요통과 무릎 통증호소가 있었던 작업의 부담정도를 평가하고작업자세교육을 해달라고 메모를 남겼다. 그런데 일지를 적으면서 생각해보니 뭔가 빠진 것 같다. 앗. 청소부 아저씨가 검진을 받지 않았다. 지난 번 방문 때 총무과장이 상담을 요청했던 분인데 의처증을 포함한 편집증이 있어보이는 분이다. 가족들에게 연락하라고 명함을 주고 나왔는데 예상했던 대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보건 담당자에게 청소부 아저씨는 왜 검진 안 받았냐 물어보니 용역직원이라 그렇단다. 안부를 물으니 요즘은 결근도 하지 않고 청소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답을 들었다. 지난 번 방문 때 총무과장이 인정있는 모습을 보여 내가 좀 감동했을 때 누군가가 ‘아마 그 큰 공장을 군말없이 청소하는 사람을 구하기 힘들어서 그랬을 것이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돌아오는 길, 검진버스가 기름이 떨어져서 길에서 서 버렸다. 상식이하로 행동하는 D공업 때문에 심신이 피로한 직원들에게 마지막 어퍼컷인 셈이다. 원래 오후에는 미군기지주변 주민건강조사 현장에 가서 설문지 점검을 하기로 했는데 버스 고장으로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포기하고 일찍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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