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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모

 

손 모


생활이 넉넉지 않은 부부가 우리 집 근처에 있는 간척지 하천부지에 논을 만들었다. 하천을 따라 만들어진 논은 아주 좁았는데 폭 10미터, 길이 2백 미터 정도밖에 안 되었다. 이들 부부는 집 앞에 있는 조그마한 논에 못자리를 하고 모를 리어카로 한 2킬로미터 떨어진 하천으로 옮겼다. 회갑을 넘긴 부부에게는 이 일이 무척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이 두 사람은 작은 논에 10일 동안 손모를 심어왔다. 난 여기서 오래 살았지만 이런 일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부부가 겸손하고 또 열심히, 검소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하천에서 물이 넘쳐 벼가 다 썩었던 일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 부부는 해마다 자기 살림을 하느님께 맡기고 있는 셈이다.


올해는 모심기 바로 전에 할아버지가 본당 노인회 소풍에 갔다가 갈비뼈를 다쳐 입원을 했다. 할머니는 모도 심어야 하고 할아버지가 다쳐 큰 걱정이었다. 우리 공소회장이 이것을 알고 그날 밤 공소에서 미사 끝나고 나온 신자들에게 같이 나가 모를 심자는 부탁을 하였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내기도 벌써 끝났고 또 고단해서 쉬고 싶어 일할 마음이 없었지만 미사를 실천하는 의미에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모내기를 하던 날 한 20명이 나왔다. 그들은 젊은 사람들이 아니라 대부분 쉰이나 예순이 넘긴 이들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들은 자기 일에 바쁘고 시간을 낼 마음이 없는 반면 나이 많은 사람들은 아직 고생하는 이웃을 동정하는 공동체성을 지니고 있다. 하여튼 일은 못자리에서 손으로 모를 찌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은 모두 이양기로 모를 심는데 손으로 모를 찌고 하니까 싫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나오니까 서로들 눈지를 보며 일을 시작했다. 모를 쪄가지고 길가로 옮겨 트럭에다 실었다.


노부부 집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손자가 와 있었고 벌써 못자리에 들어가서 올챙이를 잡고 묶인 모를 옮기며 재미있게 까불고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하천 논으로 가기 전에 집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술도 한잔했다. 그 집 딸과 며느리가 와서 맛있게 밥 준비를 했다. 다 먹은 다음 트럭을 타고 논으로 갔다.


논에 도착하여 10여 명이 한쪽에서, 또 다른 10여 명은 반대쪽에서 긴 논 가운데로 모내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몇 년 전에 손모를 해봤는데 기술이 없어서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경험과 솜씨가 있어야 손이 말을 듣는다. 손모 솜씨는 기술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인데, 농사꾼들은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하며 배웠던 것이다. 그런데 심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들이었다. 왜정 때부터 소모를 해왔던 사람들이다. 까다로운 지주들의 감독을 받으며 따가운 햇빛 아래에서 뼈저리게 손모의 기술을 배웠던 것이다. 빨리 그리고 단단하게 골에 맞게 심는다. 손과 모가 하나 되고 생명을 가진 손이, 생명을 가진 모를 생명 주는 땅에 심는 것이다. 농사꾼은 씨를 뿌릴 때 아버지 노릇을 하고 땅과 식물을 가꾸면서 어머니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침 그날은 현충일이었다. 양쪽에서 가운데로 오는 두 팀이 통일이 되었는지 소리가 났다. 한두 시간 만에 만나게 되니 얼마나 기쁜지 서로에게 인사하고 마지막 모를 심고 둑을 올라오며 딸과 며느리가 가져온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밥을 맛있게 먹고 막걸리를 마시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 후에는 서너 마지기의 넓은 논에 모내기를 해야 했다. 다시 논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남은 부분을 하기 위해 이제 다같이 한 줄로 모를 심었다. 잘 먹고 마셨으니까 이제 입은 완전히 불이 붙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가 다 나왔다. 정치, 종교, 농사, 사람들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다 나온다. 노부부의 사위는 천주교회 신자가 아닌데 성당 사람들이 성모님을 모신다는 소리부터 하더니 신자들을 막 야단쳤다. 그래도 아무도 화를 내지 않았고, 모를 심으면서 서로 비웃고 약 오르게 하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한참 쉬었다. 술을 먹은 다음에 다시 논에 들어가서 일하는데 더욱더 엉뚱한 이야기가 나온다. ‘......성서를 믿을 수 없다. 천당은 진짜 있을까?’ 등등. 열심히 믿는 한 할머니를 계속해서 약 올린다. 술 먹은 사람들이 그냥 단순히 놀리려고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 할머니를. 또 어떤 사람은 ‘야! 모나 심지. 엉뚱한 소리 하지 말자’고 외친다. 그 아저씨가 무섭고도-이 아저씨의 별명은 장군이다-재미있는 표정으로 농담을 하면서 빨리 빨리 하자고 ‘여’를 계속했다. 이 환갑을 넘긴 아저씨는 줄 관리를 할 뿐만 아니라 모도 열심히 심었다. 아저씨는 화를 내는 척하고 웃으면 주위가 다 밝아지고 ‘여’하는 소리로 논이 가득 찬다. 이제는 꼬마들, 사위, 며느리, 딸이 모두 논에 들어와서 잘 심든지 못 심든지 다같이 까불고 웃으면서 일이 끝나도록 힘썼다. 이런 농담을 하면서 어느새 일이 끝났다. ‘됐다’, ‘좋다’, ‘허리 아프다’, ‘아이고, 아파,란 소리가 나온다. 물건을 다 거두어 가지고 서로에게 인사를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나 피곤한지 그래도 얼마나 마음이 흐뭇하고 만족스러운지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한 것이다. 곤란한 입장에 처한 이웃을 무료로 도운 것이다. 공동으로 마음을 합하고 옛날식으로 손모를 하고 같이 먹으며 공동체가 무엇인지 배웠다. 손모하는 기술 같은 것은 직접 해봄으로써 알 수 있다. 그날 밤 잠자기 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농사일을 하는가! 어렸을 때부터 논밭 일을 성의껏 열심히 하고 불평 없이 일본 식민지든 미국 식민지든 간에 하느님을 믿고 가족을 먹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는 이 여성들! 그러면서도 그들은 조금도 신앙과 자신의 존엄성을 잃지 않았다. 기계로 하는 모내기는 거의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일도 두세 사람밖에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손모하는 그 분위기는 만질 수 없는 마음의 보람과 기쁨이며, 진심으로 협조가 무엇인지 같이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하여 있는지도 몰랐던 그 논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올해에 비가 너무 많이 오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다음엔 명성 높은 사람들과

우리의 역대 선조들을 칭송하자.

주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큰 영광을 나타내시어

옛날부터 당신의 위대하심을 보여주셨다.(집회 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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