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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산리에서

 

매산리에서


지난 몇 해 동안 매산리에 살면서 한국 농민들의 문제를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이렇게 살게 된 것은 서울 대신학교를 졸업한 마리아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그 사람은 농민의 권리와 농촌생활의 개선을 위해 조직된 가톨릭 농민회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농촌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과 함께 생활을 나누는 것이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보다 나은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요즈음 농촌에는 점점 빈집이 늘어가는 실더이기 때문에 그녀는 우선 서울에서 약 두 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서해안 지역에 빈집을 구해 살고 있었다. 마침 그 당시에 골롬반회에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결정했고 한국의 농민들이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나는 마리아의 초대를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한 골롬반 선교회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가 의도한 바는 50세대 가량 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고 일하며 예배드리는 것이었다. 제일 먼저 놀랍게 여기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가 많고 보수적인 신자들이었다. 더욱이 신부가 농촌에 살면서 직접 농사일을 한다는 사실에 그들은 몹시 놀라는 기색이었다.


마리아와 나는 작은 집 주변에 야채를 심고 가꾸었다. 전통적인 흙집이라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다. 방바닥은 나무나 볏짚에 불을 지펴서 구들을 데우는데, 추운 겨울에 난방을 하려면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중앙난방식과 달리 직접 몸을 움직여 땔감을 마련해야 하고, 가마솥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면서 불의 신비를 접하게 된다.


맑은 공기를 호흡할 수 있고 모터를 이용하여 수정같이 맑은 지하수를 끌어올려 마신다. 식료품은 우리가 직접 재배한 것이나 마을 사람들이 재배한 것을 먹는다. 마을 사람들은 쌀과 김치를 넉넉하게 가져온다. 김치는 여러 가지 양념이 가미된 발효식품으로 배추나 무로 만들며, 밥과 김치 이 두 가지는 한국 식사의 주종을 이룬다. 우리는 해변에 살기 때문에 조개와 또 다른 해산물도 먹을 수 있다. 이곳의 별식으로는 개장국이 유명한데, 여름 삼복더위를 물리치기 위해 필요한 음식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지역 농민들을 도와줌으로써 그들이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살충제나 제초제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을 보급하고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내기를 한 후에 적어도 세 번 논매기를 해야 하는데, 발이 푹푹 빠지는 논에서 하루 종일 엎드려 논을 매고 나면 여간 허리가 아픈 게 아니다. 그 밖에도 모판과 모상자를 준비해 논에 옮겨 심는다. 그 다음으로는 가을에 벼를 베고, 볏단을 묶고 그것을 모아 타작한다. 그 밖에도 우리는 담배 ․ 당근 ․ 양파 ․ 마늘 ․ 상추 ․ 시금치 ․ 콩 ․ 고추 ․ 토마토를 심고, 배추와 무와 쪽파와 갓도 심는다. 그리고 과수원 일도 했는데 필요 없는 사과 봉오리는 미리 따주는 접과를 하고, 가을에는 사과 따는 일을 도와준다. 몇 년 후에 육체적 노동을 못할 때가 되면 농사일이 나의 늙은 몸에는 힘들겠지만, 지금까지는 튼튼해지고 건강해지기 우해 농사일이 적절하다는 사실은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가 도시 본당과 인연을 맺은 이후부터 무공해 야채를 직거래할 수 있도록 조정해 주는 일을 도와주고 있다. 주민들은 농촌 일손이 모자라는 때라 더욱이 우리의 도움을 환영하고 있다.


주로 지방 성당에서 행해지는 전례 행사에서는 지방에서 밀려올라간 도시 빈민을 위한 정의와 노동자 ․ 농민 ․ 양심수(적어도 감옥에 2천 명이 있다)들의 정의를 찾아주고, 농업의 가치와 문화의 보존과 진정한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으며, 창조의 순수성 등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후자가 가장 급소를 찌르는 대목이지만 앞에 언급한 것들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다. 농민들이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향후 5년간 수확량의 30퍼센트가 감소할 것이다. 이 기간 동안 토양은 휴식이 필요하며, 종자와 환경은 독성 화학품 없이 해충을 견뎌낼 수 있도록 적응해야 할 것이다. 소출 감소는 곧바로 소득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유기농가는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된다. 세계적 추세대로 이런 환경공학적 문제는 시간과 세심한 배려와 교육을 요구한다. 우리는 가정을 돌며 미사도 드리고 있다. 그때 그날의 복음을 토론하면서 그 내용이 오늘의 삶에 적용되며, 농민들의 문제에 적용되는지를 서로 나눈다. 문제는 다양하다. 젊은 층은 적절한 수입이 없어서 도시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이다. 도시에 가서도 그들은 도시 빈민의 일부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호화 주거생활에 제물이 되고, 공해와 도시생활의 모든 윤리적 문제를 물려받게 된다. 시골에 사는 부모들은 자녀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고 교회 밖에서 결혼하게 될 것을 우려하며, 자녀들의 구원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가톨릭적 양심에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들은 교육비 부담은 물론 학교교육의 질에 대해서도 염려스럽게 생각한다. 시골 학교조차도 대학입시를 목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어서 좋은 직장을 얻는 데서만 인생이 성공한다는 관점에서 대학입시 공부에 전념하는 교육의 문제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입시 중심의 교육은 협동정신보다는 경쟁을 기본으로 삼는다. 농사짓는 일은 낮게 취급되고 선생들도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대학 진학을 못하게 되면 부모들처럼 가난한 농부로 전락한다고 위협하면서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독촉한다. 자녀들 학비 부담이 화학농법을 유기농보다 먼저 택하는 이유가 된다. 농부들은 음주와 도박에 방치되어 있고, 나약한 자화상은 저소득으로 인해 삶에 대한 용기를 저하시키며, 힘든 농사일에 대한 경멸로 인해 농촌은 점점 더 서구화되어 간다. 시골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면 그들은 아직 농사를 짓고 있다라고 말하기보다는 놀고 있다라고 말한다. 서구 문명은 텔레비전 뉴스나 드라마나 광고 등을 통해 호화스러운 생활, 사치스러운 의복과 화장품, 증권 거래를 통한 이윤 등 일반적으로 달콤한 생활을 조장한다. 농민들은 단순하고 너그러우며 따뜻하고 친절하며 열심히 일하며 어린아이 같은 외모를 지니고 있다. 이런 성격은 대중매체가 쉽게 무시해 버리지만 농민들의 순박한 모습은 친근한 이웃처럼 매혹적이다. 기계화는 공동작업 정신을 파괴했다. 그 한 예로 돈 많은 사람들은 돈 없는 사람들에게 높은 임대료를 받고 콤바인과 트랙터를 세내어 쓰게 한다. 많이 판매하고 돈을 많이 소유하게 되면 더 많이 소비한다. 농산물 가공 시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이제 농촌에는 나이든 사람들만 남아 있어 누가 농사일을 계속할 것인지를 염려하게 되었다. 한국인 4천만 명 중 천만 명이 아직 농촌에 살고 있는데 정부는 2000년대에 가서는 농촌 인구를 7백만으로 감소시키려 하고 있다. 정부의 이런 제안은 농촌에서 살려는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정부 농정의 부족으로 농산물 가격파동이 심해 농민들은 무엇을 심어야 하고, 언제 내다 팔아야 할지 항상 걱정이다. 최근 국제 자유무역을 장려하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약은 도처에서 농민들의 원한을 사고 있다. 대부분 값이 싼 수입 농산물은 한국 농산물 값과 생산을 하락시켰다. 부유한 업자들은 유통과정과 판매에서 엄청난 이윤을 얻고 있다. 식량 자족도는 1960년대에 80퍼센트에서 오늘의 35퍼센트로 하락한 까닭은 변모되어 가는 식생활과 농산물 수입에 기인한다. 한국은 거의 모든 수입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고, 이 모든 심각한 결과로 마치 미국 경제 속국 같은 인상을 주어 지역적 자유와 독립성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서방의 밀가루와 육류제품 선전과 시장 확보가 쌀과 김치와 같은 전통적 식품 소비를 저하시켜 농민들의 경제 사정을 크게 악화시켰으며, 모든 문화적 측면에 해로움이 극심하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김치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어 매년 몇 십만 평의 밭에서 배추가 썩어가고 있다.


도시 소비자들도 이제는 한국동란 당시 미국 병사들처럼 김치 냄새를 불평하고 있다. 과자류 ․ 빵 ․ 사탕류 ․ 음료수 ․ 햄버거 ․ 케첩 ․ 프렌치프라이 등에 맛들이며 자라난 아이들은 밥과 김치 맛을 잃어버렸다.


고도로 대기오염을 유발시키는 각 공장은 농촌 지대로 이전중이며, 화공약품으로 오염된 수질을 더욱 악화시티고 있다. 공기와 수질은 오염되었고 도시 문화가 농촌 전통 문화속으로 침투하고 있다.


농지는 점점  골프장 ․ 휴양지 ․ 고속도로로 흡수되어 가면서 농민들에게는 만족을 주지 못하지만 특권층에게는 만족을 주고 있다. 도시에 비해 농촌 의료시설이 미흡한 사실도 농민들을 걱정스럽게 한다. 이사야 예언자는 억압에서 멀어진 예루살렘을 예언하면서 “너희는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이사 54,4 참조)라고 했다. 우리도 이렇게 실현되도록 기도한다. 견고하게 번창하는 농촌사회와 이런 사회적 가치 없이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지속될 수 없다라는 것이 토머스 제퍼슨의 신념이었다. 나는 농촌에 머물러 있는 동안 이런 신념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매산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거룩한 뜻과 농촌생활 개선을 위해 전국농민운동에 가입했다. 우리는 모든 자연과 모든 생명체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과 함께 깨끗한 식품생산에 헌신할 복음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한다. 우리는 성서가 가르치는 대로, 그리스도의 몸이 상징하는 대로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자 한다. 이 지역 본당 신부님은 우리의 노력을 평가하고 협조해 준다. 올해 우리는 본당에 소속된 6개 마을공소에 작은 성서 모임을 구성하려고 한다. 농촌의 미래는 불투명하며 농민들은 개선을 요구하는 농촌정책을 제시했으나 최루탄 가스를 맞았고 투옥되었다. 일반적 불만은 절망을 가져온다. 사람들은 뛰쳐나가 무엇이든지 가장 적절한 방안을 모색하고 싶어 한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를 해서 하늘을 움직이는 것이고, 세상 흐름과 합세하는 편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성령이 활동하시니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직 농촌에 남아 있는 남녀노소는 예수께서 살아 계시고 갈릴래아로 그들보다 먼저 가신다는 것을 믿고 있다.


* 편집자주 : 이 글은 88, 89년 농민들의 수세싸움 ․ 고추싸움 ․ 우루과이라운드 저지 투쟁과 같은 농민들의 생존 투쟁이 정점에 올랐을 때의 상황이다. 신부님은 농촌 현장에 살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농민들이 회의하고 싸움을 준비하고 투쟁하는 그 과정에 항상 함께했다. 그리고 이미 그 이전부터 유기농에 대한 중요성을 계속 강조해 왔다. 아무도 귀기울이는 사람이 없어도․․․․․․․. 그 후 10년 동안 농촌은 빠른 속도로 해체되었고, 한국 농업은 주변 산업으로 밀려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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